2022.06.07. | 생명의 삶 | 안광복 목사
안녕하세요.
청주 상당교회를 섬기는 안광복 목사입니다.
폴리캅(Polycarp)은 사도 요한의 수제자였고 초대교회 당시 서모나 교회의 감독이었죠.
그는 로마 제국에 의해서 화형을 당했는데, 순교 직전 다음과 같은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전능하신 주 하나님이시여.
제가 순교자들의 무리에 들고, 당신의 그리스도가 마신 잔에 동참하여, 영혼과 육신이 영생의 부활을 누리며, 성령의 불멸을 얻는 자격을 오늘 이 시간에 누리게 하시니 당신을 찬양합니다."
폴리캅은 이 땅에서도 하늘에 속했던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누구에게 속해 있느냐에 따라 우리의 부활은 능력과 영광으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부활에 대한 귀한 진리의 말씀 고린도 전서 15장 35절에서 49절의 말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영광스러운 부활의 몸으로 변화될 그날
35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36 어리석은 자여 네가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37 또 네가 뿌리는 것은 장래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맹이 뿐이로되 38 하나님이 그 뜻대로 그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39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 40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41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42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3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4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45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46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사람이 아니요 육의 사람이요 그 다음에 신령한 사람이니라 47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48 무릇 흙에 속한 자들은 저 흙에 속한 자와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들은 저 하늘에 속한 이와 같으니 49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
오늘 본문에 보면 부활에 대한 두 가지 질문을 소개를 합니다.
35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첫 번째 부활이 어떻게 가능하겠느냐?
두 번째 가능하다면 어떤 몸이 되겠느냐?라는 것이죠.
여러분 부활은 전적인 믿음의 영역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받아들일 수가 없죠.
그렇다면 그저 100% 믿음만을 가지고 그 부활을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우리의 이성과 상식적인 어떤 토대 거기에서 어떤 도움을 받을 수는 없겠는가? 하는 것을 한번 생각해 보죠.
어느 정도 우리가 그래도 이성적으로 합리적으로 수긍이 간다. 뭐 그럴 수도 있겠다. 하는 그런 여지가 좀 있어요.
궁극적인 것은 물론 믿음의 영역이지만,
이를테면 이런 겁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데요. 씨앗의 원리예요.
사도 바울이 말하죠.
36 어리석은 자여 네가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37 또 네가 뿌리는 것은 장래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맹이뿐이로되
뭐냐 하면 우리가 수확을 거두는 밀이나 쌀이나 다른 과일 같은 것도 마찬가지죠.
그 과일 자체를 심을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저마다의 그 알갱이 독특한 씨앗들 다 심기 마련이죠.
그 씨앗들을 심지만 거둘 때는 그 씨앗이 발화가 되고 숙성이 되어서 때로는 바나나와 같이 때로는 수박과 같이 때로는 파인애플과 같이 때로는 밀리나 보리와 같은 그런 다양한 어떤 형태로 나타나죠.
하지만 씨앗만 가지고는 정말 특별한 전문가나 농부가 아닌 이상은 우리는 잘 구분을 할 수도 없죠.
마치 그런 거예요.
그 씨앗이 나중에는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처럼 다른 열매의 그 형체를 심는 것이 아닌 것처럼, 바로 부활도 그런 모습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라는 거죠.
여러분 멋진 색깔을 가진 나비들이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 나비가 애벌레에서 시작을 하잖아요.
그 애벌레 상태에서 때로는 고치의 그 상태로 어느 정도 기간 동안 있다가 거기에서 그 고치를 허물고 이제는 나비가 되는 그런 과정들, 개구리도 보면 올챙이 아주 꼬물꼬물 한 올챙이에서 조금씩 조금씩 형성이 되고 다리가 생기고 그러면서 이제 개구리가 되는 것처럼, 바로 다른 모습의 그런 형체들, 분명히 같은 존재이기는 하지만 다른 모습의 그런 형체들이 있다는 것을 지금 사도 바울이 설명을 합니다.
서두에 말씀을 드린 것처럼 부활은 전적인 믿음의 영역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일상에서 이성적인 그런 측면에서
그나마 그래도 합리적인 그런 과정을 통해서 이해할 수 있는 그런 부분 그런 영역이 있다라는 거예요.
본문 39절을 보면
39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
같은 짐승이지만 서로 간에 다른 그런 육체를 갖고 있죠.
새는 새대로 또 물고기 하다 못해 곤충들 각각 다른 모습을 갖고 있어요.
다른 형상을 갖고 있죠. 인간의 육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그 인간의 육체가 부활의 몸으로 다시 바뀌어지고 다시 변화될 때 우리는 정말 상상할 수가 없지만 그 변화된 부활체의 그런 모습이 될 때 그 속에서 누릴 수 있는 엄청난 영광이 있고 하나님의 능력이 있음을 사도 바울이 오늘 본문을 통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그 부활 사건은 엄연한 진리이고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그 부활을 통해서 저와 여러분도 그 부활의 소망을 가질 수 있고 그 부활의 영광을 누릴 수 있음을 여러분 기뻐하시고 감사하시고 날마다 그 말씀에 근거해서 승리하며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계속해서 사도바울은 부활에 대한 그런 변화된 모습들이 어떻게 나타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설명을 하고 있어요.
42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42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우리가 뭔가를 심을 때 생명이 있는 것으로 심지만 결국에는 썩어질 것으로 심죠.
생명은 있는데 만약에 썩지 않는다 말이 되지 않죠.
썩어야지 사실은 거기서 또 다른 생명이 피어나는 것이죠.
43절에 보면
43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4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썩어질 것들로 심겨서 썩지 않을 것으로 나타나는 것처럼 때로는 영광스러운 것으로 강한 것으로 신령한 것으로 또한 부활의 영광의 그런 모습으로 나타나는 거예요.
여러분 계절이 바뀌죠 정말 혹독하고 추운 그런 겨울에서 봄이 됩니다.
온 대지가 깨어나죠? 그러면 그 시간에 따라서 그 미세한 기온 차에 따라서도 피어나는 꽃의 그런 종류들이 달라요. 제일 먼저 매화나 목련이 피어나죠.
그러고 나서는 뭐 진달래 벚꽃이 피어나죠?
그리고 철쭉과 최근에 장미가 막 이렇게 피어나지 않습니까?
그런 모습으로 그 변화된 그런 그 순서에 따라서 이런 것들이 바뀌어지는 거예요.
영광스럽고 찬란하고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바뀌어지는 거죠.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어디에 속해 있어야 되는가?
45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45절 첫 사람 아담과 이제 두 번째 사람 마지막 아담 예수 그리스도를 서로 대비를 시키고 비교를 하고 있어요.
47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47절도 보면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첫 사람 아담을 이야기하죠.
둘째 사람 하늘에서 오신 분 예수 그리스도를 이야기하죠.
땅에 속한 아담과 하늘에 속한 그리스도 우리는 어디에 속할 것인가?
하늘에 속한 인생이 될 때 하늘에 속한 그런 삶을 살아갈 때 우리들은 당연히 두 번째 아담이었던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같이 부활하고 같이 승리하게 될 것이다라는 것이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세상 속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하늘에 속하지 않고 땅에 속한 채 살아갑니까?
아담의 후손으로만 살아갑니까?
정말 육신의 모습으로 이 땅 가운데서 살아갑니까?
육신의 모습으로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부귀영화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 함몰되고 그 속에서 집착해서 살아갈 때 그 인생의 종결은 결국에는 죽음으로써 끝을 맺게 되는 것이죠.
우리들은 하늘에 속한 사람이에요.
하늘에 속한 사람으로서 이 땅에 속한 사람들에게 그 생명의 말씀을 증거해야 되지 않을까요?
부활의 놀라운 소망의 말씀을 날마다 날마다 선포하며 증거 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부활에 대한 분명한 확신을 가지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더욱더 신뢰하시며 그 주님 안에서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을 힘입어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시고 또 여러분을 섬기는 교회와 가정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살리는 영이신 성령 하나님
흙에 속한 우리의 육신의 형상을 하늘에 속한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입혀주시니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약하고 썩어 없어질 육신의 몸을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고 신령한 몸으로 바꿔주셨으니
이제는 땅에 속한 자의 삶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자의 삶을 영위하며 살게 하옵소서.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살리는 영이 되신 것처럼
우리도 육신에 속한 자들에게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하며 살리는 생명의 역사를 이어가게 하옵소서
우리의 영원한 생명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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