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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부활, 우리의 부활 (고린도전서 15:20~34)(20220606)

2022.06.06. | 생명의 삶 | 안광복 목사                                                                                                                                      

 

주님의 부활, 우리의 부활

 

안녕하세요. 

청주 상당교회를 섬기는 안광복 목사입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 문답 제45 문답에는 부활에 대한 이러한 신앙고백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에게 어떤 유익을 줍니까?

첫 째, 그리스도는 부활로서 죽음을 이기셨으며 죽으심으로써 얻으신 의의 우리로 참여하게 하십니다.

두 째, 그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우리도 이제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살아났습니다. 

셋째,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의 영광스러운 부활에 대한 확실한 보증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바로 저와 여러분의 부활로 이어지고, 그 부활의 놀라운 능력 안에서 우리는 오늘도 소망과 생명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부활의 첫 열매이신 주님에 대한 말씀 고린도전서 15장 20절에서 34절 말씀입니다. 

주님의 부활, 우리의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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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21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23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24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25 그가 모든 원수를 그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반드시 왕 노릇 하시리니

26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27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두셨다 하셨으니 만물을 아래에 둔다 말씀하실 때에 만물을 그의 아래에 두신 이가 그 중에 들지 아니한 것이 분명하도다
28 만물을 그에게 복종하게 하실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신 이에게 복종하게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
29 만일 죽은 자들이 도무지 다시 살아나지 못하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 어찌하여 그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느냐
30 또 어찌하여 우리가 언제나 위험을 무릅쓰리요

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32 내가 사람의 방법으로 에베소에서 맹수와 더불어 싸웠다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33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34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

 

20절 말씀 먼저 한번 읽겠습니다. 

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

첫 열매라는 것은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열매가 있다는 거죠?

첫 열매라는 것은 앞으로 많은 무수한 열매들이 나타날 것을 그렇게 예시하는 그런 말씀이죠. 

 

주님께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 것이오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 

주님만이 부활하신 것이 아니라 

그 주님의 부활 사건을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이요 은혜의 말씀이죠.

 

21절 22절을 보면 

21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대표성의 원리입니다.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소속의 중요성을 이야기하지요.

대표성의 원리와 소속의 중요성 

얼마 전에도 우리나라 그 손흥민 선수가 엄청난 활약을 끼쳤죠?

많은 국민들이 좋아하지 않았습니까?

정말 자기 일처럼 기뻐하고 좋아했죠.

그것은 뭡니까? 대표성의 원리예요.

 

손흥민 선수를 개인적인 친구나 친인척 관계여서가 아니라,

같은 민족으로서 같은 대한민국 청년의 그 귀한 멋진 활약에 많은 국민들은 함께 기뻐했죠. 

K팝이나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여러 드라마나 영화도 좋은 소문들 소식들이 있을 때마다 우리들은 같이 으쓱하고 기분이 좋습니다.

이게 바로 대표성의 원리죠.

어디에 속해 있는가? 누군가에 속해 있는가?

 

아담 안에서 속해 있는 사람들이 죽은 것처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은 삶을 얻을 것이다. 생명을 누릴 것이다. 

그렇다면 그 생명이 그 부활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가?

그 부활의 순서에 대해서 23절 24절 이야기하고 있어요.

23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24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각각 차례대로 된다. 

부활은 그 부활에 대한 소망을 품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그 사건에 대한 분명한 믿음의 고백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들, 천국 백성들에게 각각 이루어지는 개별적인 그런 사건이에요.

 

그래서 이 부활의 놀라운 능력은 우리 부모님이 뭐 신앙이 좋으시고, 선교사 하시고, 목회자고

아니면 다른 엄청난 믿음을 가지셨기 때문에 같이 묻어서 가는 게 아니고,

각각 이루어지는 그런 놀라운 하나님의 은총의 역사이죠.

차례대로 이루어지는 거예요. 

첫 열매이신 그리스도 그다음에는 강림하실 때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로 그 순서가 이루어지고요.

 

25절 이하에는 통치의 순서를 소개를 해요.

25 그가 모든 원수를 그 발아래에 둘 때까지 반드시 왕 노릇 하시리니
26 맨 나중에 멸망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사망이 멸망받는다는 거예요.

맨 마지막에 사망이 멸망받는다.

 

여러분 사도 바울은 신학자입니다.

그는 죄에 대해서 또 죽음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깊은 신학적인 견해를 펼치고

그리고 그냥 신학적이고 학문적인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대단히 실제적인 측면에서 우리들에게 권면을 하고 있어요.

죽음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어떻게 멸망받는지 

사망에 대한 이야기가 고린도전서 15장 마지막 부분에는 승리자라고 이야기를 하지만 사망은 놀라운 승리자지요. 

하지만 여기에는 결국에는 마지막에 멸망 받을 그런 존재다.

하나님께서 모든 만물을 통치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도 하나님 안에서 그 통치를 받으시고

그렇기 때문에 그 하나님이 모든 만유의 하나님이심을 오늘 본문 후반부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만물의 주인 되시고, 우리의 진정한 주권자 되시고, 온 세상의 통치자 되시는 그 하나님을 더욱더 신뢰하며 찬양하며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부활의 '첫 열매'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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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절, 30절 말씀입니다.

만일 죽은 자들이 도무지 다시 살아나지 못하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

어찌하여 그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느냐?

또 어찌하여 우리가 언제나 위험을 무릅쓰리오.

죽은 자들이 살아나지를 못한다면 죽은 자들을 위해서 무엇하려고 세례를 베풀고 또 세례를 주겠느냐?

 

이것은 뭐냐 하면 이건 신학적으로 오류가 있는 이야기죠.

하지만 그 당시에 내세에 대한 죽음 이후에 세상에 대한 소망을 갖고 세례를 베풀었던 그런 종파나 또 그런 이야기들이 있었어요.

이것을 대인 논증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뭐냐 하면 자신의 논지를 주장하기 위해서 타인의 주장이나 아니면 어떤 특정한 현상을 끌어다가 사용하는 거예요.

그 어떤 타인의 주장이나 그 현상이 참인지 거짓인지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사람들에게 통용되는 사람들이 이해하고 있는 그 부분을 끌어다가 자신의 어떤 입장을 자신의 의견을 지금 설명하고 있는 바로 그런 이야기죠.

그만큼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이 갖고 있었던 부활에 대한 어떤 그런 소망이나 기대들이 있었다는 것을 이야기를 해요.

 

사도 바울은 그 부활에 대한 그 소망을 품고 어떻게 살았는지 31절에서 대단히 유명하고도 중요한 이야기를 하죠.

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나는 날마다 죽노라

여러분 이 말씀을 오늘 한 번 좀 깊이 묵상해 보셨으면 좋겠어요.

사도 바울이 '나는 날마다 죽노라' 본인의 믿음의 고백이기도 하고 신념이기도 합니다.

여러분 날마다 죽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될까요?

날마다 살아야 됩니다. 

날마다 살아나야 죽을 거 아니겠어요?

내가 날마다 죽는다는 것은 내 안에 있는 그 죄성, 내 안에 있는 그 욕심, 아직도 남아있는 그 혈기와 고집과 사람들 사이에서 늘 후회가 되고 아쉬움이 있었던 나의 연약한 그런 모습을 날마다 십자가에 못 박고 죽는다라는 그런 의미이고요.

그리고 다시 살아난다라는 거예요.

주님 안에서 다시 생명의 힘을 얻어서 소망의 은혜 가운데서 날마다 날마다 살아나는 것, 감사가 넘치는 그런 삶을 살아가겠다라고 이야기를 하죠. 

날마다 죽는 것은 '날마다 나는 부활할 것입니다.'라는 그런 믿음의 고백을 갖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 성도들은 어떻게 살아야 될 것인가? 33절 이하의 말씀입니다.

33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34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

선한 행실을 더럽히지 않도록 악한 동물들과 멀리하고 속지 말고 깨어서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아라.

우리에게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있어요.

종말론적인 그런 삶을 살아야 되죠.

 

여러분 사도 바울이 그렇게 열정적으로 살았던 것은 언제나 마지막 그 포인트를 묵상을 하고 늘 생각을 하면서 살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내가 이렇게 복음을 열심히 전하지 않으면 나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도 마찬가지고 나에게 영광의 면류관을 주실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 좋게 비교할 수 없다. 

늘 종말론적인 그런 삶을 살았고 마지막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실 그 상급을 생각하면서 살았기 때문에 

현재에 대해서 현세에 대한 허비함이나 낭비나 그리고 정말 헛된 그런 모습으로 자기 시간이나 자신의 모든 것들을 낭비하지 않았던 삶을 살았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고 부활에 대한 소망을 품는다는 건 뭡니까?

장차 우리에게 임할 그 소망만 그 부활의 순간만 기다린다는 것이 아니라,

그때를 바라보면서 생각하면서 오늘 하루의 일상을 최선을 다해서 살아간다라는 바로 그런 의미입니다.

이 부활의 소망을 품고 날마다 일상에서 주님과 늘 동행하는 성령 충만한 오늘 하루 복된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부활을 소망하기에 내가 주님의 방법으로 견뎌야 할 일은 무엇인가요?

 

만물의 주권자 되신 여호와 하나님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얻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인해 우리의 죄가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우리도 새 생명으로 거듭났음을 믿음으로 고백합니다. 
이제 우리의 연약한 죄성을 버리게 하시고
부활의 소망으로 거듭나 하나님의 의를 행하며 
선한 행실로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인생 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부활의 첫 열매 되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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