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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약한 사람을 배려하는 사랑 (고린도전서 8:1~13)(20220517)

2022.05.17. | 생명의 삶 | 이해영 목사                                                                                                         

 

연약한 사람을 배려하는 사랑

 

 

안녕하세요. 

남양주 온누리 교회를 섬기고 있는 이혜영 목사입니다. 

오늘 본문 고린도전서 8장부터 11장 1절까지는 고린도 교회의 중요한 문제 중에 하나인 우상 제물을 먹는 문제들로 이어지게 됩니다.

사도 바울이 이런 특정 주제에 관해서 이렇게 긴 글을 남기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우리가 앞으로 며칠 동안 계속 그 이유를 찾아가길 원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 부분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원리가 있는데 바로 '성숙한 자유'입니다.

연약한 사람들을 존중하고 배려하여서 스스로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절제하는 자유'입니다. 

그것은 오늘날 우리들의 상황과 매우 밀접하게 관련이 되죠.

오늘날 우리들에게 있어서의 자유와 권리에 대한 요구와 주장은 어떠합니까?

이미 너무나 많은 도를 넘어섰다고 생각합니다.

성에 대한 자기 결정권도 너무나도 강하게 주장하는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요.

그러하기에 오늘 말씀이 큰 도전을 줄 것입니다.

오늘 묵상할 본문은 고린도전서 8장 1절에서 13절 말씀입니다.

 

연약한 사람을 배려하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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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2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3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도 알아 주시느니라
4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을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
5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불리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6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느니라
7 그러나 이 지식은 모든 사람에게 있는 것은 아니므로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 고로 그들의 양심이 약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
8 음식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내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않는다고 해서 더 못사는 것도 아니고 먹는다고 해서 더 잘사는 것도 아니니라
9 그런즉 너희의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10 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믿음이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

11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믿음이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12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13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

 

초대교회에 있어서 우상 재물을 먹는 문제는 우리 한국 교회의 조상들에 대한 제사 문제만큼이나 매우 중요한 관심사였고 또 현안이었습니다. 

고린도에는 아프로디테 신전과 또 아폴론 신전을 비롯해서 12개가 넘는 대형 신전이 있을 정도로 우상숭배가 극심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신전들에서 우상들에게 바쳐진 재물들이 시장으로 유통되고 있었기 때문에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은 이 문제에 심각하게 봉착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우상 제물을 먹는 문제에 관하여서 교훈하기 전에 먼저 그 판단의 기준이 어떤 이론적인 지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연약한 자들을 배려하는 사랑에 있어야 한다라고 아주 중요한 기준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1절부터 3절까지 읽어봅니다. 

1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2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3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도 알아주시느니라

바울은 우상 제물을 먹는 문제에 관하여서 지식은 교만하게 하지만 사랑은 덕을 세운다 라는 중요한 원칙을 제시합니다.

지식이 나쁘다는 것이 결코 아니지만 지식이 사람을 교만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 것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도 알아주실 것이다라고 밝히면서 사랑을 강조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판단의 중요한 근거는 지식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것을 꼭 기억해야, 우리가 어떤 문제와 사건에 관하여서 해석하고 판단할 수 있는 중요한 기준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상 재물에 관한 바울의 견해는 어떠할까요? 4절입니다. 

4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을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

또 8절도 이어서 볼까요?

8 음식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내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않는다고 해서 더 못 사는 것도 아니고 먹는다고 해서 더 잘 사는 것도 아니니라

4절에서 바울은 우상 자체는 세상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앞에서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또한 8절에서는 음식 자체가 오직 한 분뿐이신 유일하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그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음식 자체는 성도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기 때문에 음식의 섭취 여부가 성도의 신앙의 그 여부를 판단하는 어떠한 기준도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이 7절에 있습니다. 

7 그러나 이 지식은 모든 사람에게 있는 것은 아니므로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 고로 그들의 양심이 약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

여기 7절에서 '그러나'가 중요합니다.

이러한 지식이 모든 사람에게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이 지식으로 자유를 누리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공동체에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불편한 마음을 갖고 양심이 약해지고 더러워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그 사람들을 의식하고 배려해야 한다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지식보다 사랑이 앞선다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내가 주장할 지식을 부지런히 찾고 구하기보다 지금 당장 내 주변에 있는 사람을 돌아보아야 한다는 사실이 하나님 말씀 속에서 들려옵니다. 

오늘 그것을 쫓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우상 제물 먹는 일을 두고 고린도 성도들 사이에 어떤 견해가 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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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절을 다시 읽습니다.

9 그런즉 너희의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어떤 음식이든지 먹을 수 있는 자유와 권리가 있지만,

그것이 믿음이 약한 자들을 걸려 넘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 자신의 지식을 신뢰하고 또 그것을 근거해서 자신의 자유를 행사하게 된다면 10절과도 같은 그런 일이 발생하게 됩니다.

 

10절입니다. 

10 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믿음이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

지식이 있다고 자처하는 사람이, 우상의 집에 앉아서 우상에 바쳐진 음식을 먹는 것을 어떤 믿음이 연약한 자가 보았을 때 그것은 엄청난 사건이 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이 약한 자가 실망했어 또는 실족했어 정도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 오히려 '양심이 담력을 얻어' 오히려 양심이 담력으로도 똑같이 행하도록 동기를 제공하는 사례가 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여기서 바울은 사례로서 단순히 우상 제물을 먹는 것인가 먹지 않는 것인가 그거를 말하지 않았죠. 

'우상의 집에 앉아서 먹는다'라는 말로 바꾸었습니다.

아마도 우상 재물을 얼마든지 먹을 수 있다라고 지식을 과시하는 사람은 결국에 교만해져서 우상의 집에 가서 앉아 먹는 경우까지 발전할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염두한 것으로 보입니다.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은 고린도전서 10장에서 곧 밝혀지겠지만, 귀신과 교제하는 것이며 명백한 우상숭배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당시 고린도의 중요한 용문화 사업들이 신전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것들을 생각해 본다면 그런 일들이 있을 수 있었겠죠. 

오늘날 우리 주변에도 중요한 비즈니스 때문에 우상의 집과 방불한 곳을 왕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우상의 집에서 먹는 것을 연약한 자가 보고 그것을 똑같이 따라 할 경우에 이런 경우는 어떠한 경우라고 볼 수 있는 건가요? 11절과 12절과 같은 매우 위험한 순간이 됩니다.

11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믿음이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12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결국 그 지식으로 인해서 그가 과신하던 그 지식으로 인해서 그 믿음이 약한 자가 멸망하는 엄청난 사건이 엄청난 비극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고 말합니다. 

결국

그러한 과신하는 지식으로 인해서 우상 재물을 그렇게 손쉽게 먹는 그런 행위들은 결국에 그리스도께 죄를 짓는 큰 범죄로 맞닿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13절을 보시죠.

13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

바울은 만약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면 자신은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얼마든지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를 이렇게 완전히 거부할 수 있는 성숙한 자유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상 재물을 먹는 문제로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지식보다 사랑이 앞서야 한다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많이 알아야 하지만, 그러나 더욱더 우리는 사랑해야 합니다.

이것이 나와 연약한 형제들과 또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십자가를 생각한다면 그것을 위하는 최고의 일일 것입니다.

 

믿음이 약한 성도의 양심을 상하게 하는 일은 결국 누구에게 죄짓는 일인가요?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허락하신 이 구원의 기쁨과 감격과 놀라운 자유와 권세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서 얼마든지 제한할 수 있고, 얼마든지 절제할 수 있는 성숙한 자유로
우리 안에 있는 수많은 연약한 자들이 주께로 돌아오며
하나님의 은혜 안에 거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그러한 우리 성도님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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