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5.15. | 생명의 삶 | 이해영 목사
안녕하세요.
남양주 온누리 교회를 섬기는 이해영 목사입니다.
오늘 주일, 복된 주님의 은혜와 또 부활의 능력이 우리 성도님들의 하루의 삶에 충만하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리스도인의 분명한 정체성은 어떤 직무를 수행하느냐는 그런 사역의 내용이나, 혹은 어떤 일에 종사하느냐는 그런 직업의 형태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우선적으로 주님의 부르심에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시키시려는 분이시라기보다 우리가 무엇이 되게 하시도록 부르시는 분이십니다.
그리스도인이란 말 그대로 그리스도를 닮아가도록 부르심 받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할례 자이든 무 할례 자이든 종이든 주인이든 상관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에게서 얼마나 깊고 진한 그리스도의 향기가 뿜어져 나는가? 그리스도의 모습이 드러나는가에 달려 있을 것입니다.
오늘 묵상을 통해서 저와 여러분이 주님의 부르심으로 인해 더 진실한 그리스도인들로 도약하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 우리가 묵상할 본문은 고린도전서 7장 17절에서 24절 말씀입니다.
부르심을 받은 자리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17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와 같이 명하노라 18 할례자로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무할례자가 되지 말며 무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할례를 받지 말라 19 할례 받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요 할례 받지 아니하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 20 각 사람은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 21 네가 종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았느냐 염려하지 말라 그러나 네가 자유롭게 될 수 있거든 그것을 이용하라 22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인이요 또 그와 같이 자유인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 23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24 형제들아 너희는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 |
17절을 다시 한번 읽어봅니다.
17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와 같이 명하노라
모든 그리스도인에게는 나름대로의 직분이나 소명이나 부여된 사명이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고, 단지 주께서 각자에게 나눠주신 대로 또 각자에게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라고 그렇게 명령합니다.
그것도 모든 교회에서 그렇게 하라고 아주 중요하게 명령을 전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시청하시는 우리 성도님들의 부르심은 무엇입니까?
목사로 혹은 선교사로 혹은 교사로 또 순장으로 찬양 사역자로
이와 같은 자신의 부르심을 응답하시는 분이 계시겠지만, 아마도 주저하시는 분들이 적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나를 무엇으로 부르셨는가?'라고 하는 이 물음은 언제나 고민되면서도 아주 중요한 주제가 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소중한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18절을 읽습니다.
18 할례자로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무 할례자가 되지 말며 무 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할례를 받지 말라
바울은 할래 자체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기에,
할례 받은 사람은 할례 받은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말고 할례 받지 않은 사람은 굳이 할례를 받으려 하지 말라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사람을 할례자나 무 할례자로 부르신 것이 아니라
할례자들 중에서 부르셨고 무 할례자들 중에서 부르셨다는 사실입니다.
이 말을 오늘날 우리 현대적인 맥락에서 이해를 한다면
목회자나 선교사만 부르신 것이 아니라 사업가가 되었든지 근로자들이 되었든지 어떤 노동자들이든지 공무원이든지 또 심지어는 전쟁 포로 중에서도 또 심지어는 수감 중인 사형수를 부를 수도 있는 것이지요.
어떤 위치 또 어떤 상황에 있는 사람일지라도 하나님은 자신께로 나아오라고 그렇게 부르시는 분이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부르심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19절입니다.
19 할례 받는 것도 아무것도 아니요 할례 받지 아니하는 것도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
할례 받는 것도 아무것도 아니고 할례 받지 아니한 것도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곧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결정적인 부르심은 이러저러한 일들을 훌륭하게 수행하는 어떤 겉모습의 여부로서 정의되는 것이 아니다는 사실입니다.
할례자인지 무 할례 자인지와 같은 그런 문제로서 고민하는 것은 무의미하고 헛될 뿐이다라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어떤 사역을 크고 대단하게 해서 정체성이 분명한 것이고 어떤 사역이 작고 미미해서 사역의 소명으로서 부르심으로 불확실하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논쟁은 할례자인가 무 할례자인가라는 논쟁과 같다는 것입니다.
부르심을 받은 우리들에게 있어서 진짜 선명한 부르심은 오직 하나님의 개명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20절을 다시 한번 읽습니다.
20 각 사람은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
바울은 이제 새로운 상황을 묘사할 때도 다시 한번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고 명령합니다.
역시 부르심의 구체적인 내용은 없이 부르심 그대로를 지내라고 그렇게 명령한 것입니다.
21절을 보면은요.
21 네가 종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았느냐 염려하지 말라 그러나 네가 자유롭게 될 수 있거든 그것을 이용하라
고린도 교회는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사회적 배경이나 지위가 많이 달랐죠.
그러나 대부분은 가난하고 미천한 신분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런 신분과 상관없이 염려하지 말라고 밝힙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이루는 방법이 환경과 신분에 종속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종은 자유인이 되기를 너무 힘쓰지 말라고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종으로 살아가라는 말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본질은 이미 참 자유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22절도 보시죠.
22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인이요 또 그와 같이 자유인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
반대로 자유인으로 주님께 부르심을 받았다면 이제 이제부터 그리스도의 종으로 여길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사람의 종이 아닌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마치 그리스도를 섬기듯 누구든지 섬길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에 대한 명령을 마지막으로 이렇게 확실하게 선언합니다. 24절인데요.
24 형제들아 너희는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
종으로 있을 때 부르심을 받았든, 자유인으로 있을 때 부르심을 받았든
부르심을 받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공통된 정체성은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것이다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이고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 모든 것의 핵심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님과 함께 거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앞서 19절에서 보았었죠. 19절
19 할례 받는 것도 아무것도 아니요 할례 받지 아니하는 것도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
네! 너무나도 중요한 선언입니다.
지금 이 24절도 지금 19절처럼 말해볼 수 있겠습니다.
'종도 아무것도 아니오 자유인도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하나님과 함께 거할 따름이니라'
그렇죠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스도인이란 말 그대로 그리스도를 닮아가도록 부르심을 받은 사람입니다.
할례 자이든 무 할례 자이든 종이든 주인이든 상관없습니다.
여러분들의 사역이 크든, 작든, 대단하든, 아주 미미하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제 여러분에게서 깊고 진한 그리스도의 향기와 빛을 뿜어내면서 자라 가도록
오직 하나님의 개명을 지키기 원합니다.
오직 하나님과 함께 거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나로 그리스도인 되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도록 부르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립니다.
할례 자이든 무 할례 자이든
종이든지 주인이든지 상관없이
하나님이 부르신 그리스도를 쫓는 자 되게 하셨기에
내 안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내 안에서 그리스도의 영광의 빛이
오늘 이 땅을 살아가면서 얼마든지 언제나 항상
주의 말씀 안에 거하며 주와 함께 살아가며 나타내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주께 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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