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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되는 죄와 실패로 애통하는 지도자 (에스라 9:1~15)(20220420)

2022.04.20. | 생명의 삶 | 안광국 목사                                                                                                         

 

거듭되는 죄와 실패로 애통하는 지도자

 

할렐루야 금호 중앙 교회를 섬기는 안광국 목사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한 여러분 모두의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가장 궁금해하고 또한 가장 알고 싶은 것 중에 하나는 바로 우리의 미래와 관련된 일입니다.
'내 미래가 과연 어떻게 될까?'

그것을 궁금해하지 않는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미래가 어떻게 될까요?

우리의 미래는 반드시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대로 될 것입니다.
그럼 우리의 미래를 잘 알려면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의 섭리가 어디에 잘 나타나 있는지를 살펴봐야 되겠죠.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죠. 

결과적으로는 우리는 다가올 미래에 대해서 궁금해하면서도 과거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잘 읽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 과거의 말씀 가운데 기록되어져 있는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대로 우리의 미래가 펼쳐진다는 것을 우리는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미래가 궁금하십니까?

하나님 말씀 열심히 읽으십시오. 열심히 묵상하고 암송하십시오.
그 하나님의 과거에 우리의 믿음의 선조들에게 주신 말씀 가운데 여러분의 미래에 대한 해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도 그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 앞에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깨달아 아는

성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우리가 묵상할 하나님의 말씀은 에스라 9장 1절에서 15절까지 있는 말씀입니다.

 

거듭되는 죄와 실패로 애통하는 지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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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일 후에 방백들이 내게 나아와 이르되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이 땅 백성들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가나안 사람들과 헷 사람들과 브리스 사람들과 여부스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모압 사람들과 애굽 사람들과 아모리 사람들의 가증한 일을 행하여
2 그들의 딸을 맞이하여 아내와 며느리로 삼아 거룩한 자손이 그 지방 사람들과 서로 섞이게 하는데 방백들과 고관들이 이 죄에 더욱 으뜸이 되었다 하는지라
3 내가 이 일을 듣고 속옷과 겉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 기가 막혀 앉으니
4 이에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떠는 자가 사로잡혔던 이 사람들의 죄 때문에 다 내게로 모여오더라 내가 저녁 제사 드릴 때까지 기가 막혀 앉았더니
5 저녁 제사를 드릴 때에 내가 근심 중에 일어나서 속옷과 겉옷을 찢은 채 무릎을 꿇고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향하여 손을 들고

6 말하기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끄럽고 낯이 뜨거워서 감히 나의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오니 이는 우리 죄악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 우리 허물이 커서 하늘에 미침이니이다
7 우리 조상들의 때로부터 오늘까지 우리의 죄가 심하매 우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우리와 우리 왕들과 우리 제사장들을 여러 나라 왕들의 손에 넘기사 칼에 죽으며 사로잡히며 노략을 당하며 얼굴을 부끄럽게 하심이 오늘날과 같으니이다
8 이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잠시 동안 은혜를 베푸사 얼마를 남겨 두어 피하게 하신 우리를 그 거룩한 처소에 박힌 못과 같게 하시고 우리 하나님이 우리 눈을 밝히사 우리가 종노릇 하는 중에서 조금 소생하게 하셨나이다
9 우리가 비록 노예가 되었사오나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그 종살이하는 중에 버려 두지 아니하시고 바사 왕들 앞에서 우리가 불쌍히 여김을 입고 소생하여 우리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게 하시며 그 무너진 것을 수리하게 하시며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우리에게 울타리를 주셨나이다
10 우리 하나님이여 이렇게 하신 후에도 우리가 주의 계명을 저버렸사오니 이제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

11 전에 주께서 주의 종 선지자들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얻으려 하는 땅은 더러운 땅이니 이는 이방 백성들이 더럽고 가증한 일을 행하여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그 더러움으로 채웠음이라
12 그런즉 너희 여자들을 그들의 아들들에게 주지 말고 그들의 딸들을 너희 아들들을 위하여 데려오지 말며 그들을 위하여 평화와 행복을 영원히 구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왕성하여 그 땅의 아름다운 것을 먹으며 그 땅을 자손에게 물려 주어 영원한 유산으로 물려 주게 되리라 하셨나이다
13 우리의 악한 행실과 큰 죄로 말미암아 이 모든 일을 당하였사오나 우리 하나님이 우리 죄악보다 형벌을 가볍게 하시고 이만큼 백성을 남겨 주셨사오니
14 우리가 어찌 다시 주의 계명을 거역하고 이 가증한 백성들과 통혼하오리이까 그리하면 주께서 어찌 우리를 멸하시고 남아 피할 자가 없도록 진노하시지 아니하시리이까
15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의로우시니 우리가 남아 피한 것이 오늘날과 같사옵거늘 도리어 주께 범죄하였사오니 이로 말미암아 주 앞에 한 사람도 감히 서지 못하겠나이다 하니라


먼저 1절부터 7절까지에 있는 말씀을 묵상해 보겠습니다.

1 이 일 후에 방백들이 내게 나아와 이르되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이 땅 백성들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가나안 사람들과 헷 사람들과 브리스 사람들과 여부스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모압 사람들과 애굽 사람들과 아모리 사람들의 가증한 일을 행하여
2 그들의 딸을 맞이하여 아내와 며느리로 삼아 거룩한 자손이 그 지방 사람들과 서로 섞이게 하는데 방백들과 고관들이 이 죄에 더욱 으뜸이 되었다 하는지라

1절, 2절 말씀을 보니까

'에스라와 많은 사람들이 이스라엘에 돌아와 보니까

이스라엘에 있었던 사람들 중에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이방 사람들과 같이 혼인하고 

또 돌아온 이후에도 그 사람들을 떠나보지 않았다'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절 말씀에 보면 '더욱더 으뜸이 되었다. 앞장서서 그와 같은 일들을 하였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여러분 이 말씀은 단편적으로 이해를 하면 절대로 안되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이방 사람들과 결혼하는 것 자체가 죄인가?

오늘날로 보면 어떤 민족을 넘어서서 타민족에 있는 사람을 아내나 남편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성경에서 금한 일인가?

여러분 가운데 그런 국제 결혼을 하신 분들도 있을 텐데

이런 분들이 이 말씀을 잘못 이해하면 굉장히 실족하게 되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이방 족속들 중에 사위나 며느리로 삼지 말라고 하신 이유는 그들에게 잘못된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말씀에 보면 복음이 이방 사람들에게 증거 되는 일에 대해서 

이스라엘 사람들, 유대인이면서 예수님을 믿었던 사람들조차도 그것을 굉장히 꺼려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왜 예수님을 믿고 난 이후에도 그런 유대 민족주의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게 된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그것을 금지하셨기 때문이지요.
하나님이 금지하셨지만, 왜 금지하신지에 대한 이유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죠.

 

그래서 그것을 깨달은 

사도 바울과 또 베드로가 백성들에게 나서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증거해야 한다'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죠.
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증거하고 그들을 만나야만 합니까?

복음이 그들을 변화시키기 때문입니다.
결국 복음이 이방 사람들을 변화시키든지 

아니면 이방 사람들이 믿고 있는 신에 의해서, 신앙들에 의해서 하나님의 사람들이 변질되는지 

그와 같은 영적인 싸움이 일어나는 것이죠.


우리가 만약, 그 어떤 것으로도 매이지 아니한다고 말씀하시는 그 복음의 능력을 우리의 마음 가운데 가지고 있고,
그 어떤 상황 가운데에서도 인생을 변화시키는 그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의 능력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우리는 많은 이방 사람들을 만나야 됩니다.
만나고 그들에게 복음을 증거해야 됩니다.

어떤 경우에는 그들 중에 가족으로 맞아들여야 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선교사님들 중에는 선교지에 나가서 그 선교지에 있는 민족들을 양자나 양녀로 삼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사람들을 복음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의미를 깨달아 알지 못하고, 그냥 '이방인들과 결혼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라고 생각한다는 것은

너무나 큰 실수를 범할 수 있는 그런 이 결정이 된다는 것이죠.


여러분 1절 말씀에 보면 '그들의 가증한 일을 행하였다'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 말 성경에 보면 '그들의 관습을 따랐다'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방 사람들과 만날 때에 중요하게 주의해야 될 것은 그들의 관습을 따르지 않는 일입니다.
그들의 관습 가운데에는 종교적인 의미가 담겨 있기도 하죠.

 

또한 2절 말씀처럼 으뜸이 되고 앞장서서 죄를 짓지 말아야만 합니다.
그것을 우리가 주의한다면, 우리는 이방 사람들과의 접촉점을 통해서 그들에게 복음을 오히려 증거 할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본문 말씀 가운데 너무나 은혜가 되는 것은 이 일을 듣고 4절 말씀에 보면 

4 이에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떠는 자가 사로잡혔던 이 사람들의 죄 때문에 다 내게로 모여오더라 내가 저녁 제사 드릴 때까지 기가 막혀 앉았더니

이 사람들의 죄 때문에 다 모여 오고, 저녁 늦게까지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예배를 드리며

어떻게 할지를 물었다는 것이죠.


그런데 6절 말씀에 보면요.

6절 이하에 '그들의 죄, 이 사람들의 죄'라고 이야기하지 않고 '우리의 죄악이 많다'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 6절 말씀 같이 한번 읽어볼까요?

6 말하기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끄럽고 낯이 뜨거워서 감히 나의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오니 이는 우리 죄악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 우리 허물이 커서 하늘에 미침이니이다

하루 동안 하나님 앞에 잠잠히 기도하던 에스라와 사람들은

그들의 죄악에서 이 사람들의 죄악에서 우리의 죄로 완전히 관점이 바뀌어지는 큰 변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8절에서 15절까지의 말씀 가운데 '우리'라는 단어가 스물한번이나 반복되고 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변화인가요?

'그들의 죄, 그들의 죄, 이 사람들의 죄'에서

'우리의 죄, 우리의 죄, 우리 하나님' 우리로 바뀌어진다는 것이죠.


교회 공동체는 너희가 라고 말하면 망하고 우리가 라고 말하면 살아납니다. 

 

교회도 공동체 가운데 많은 분열을 경험하게 되죠. 참 슬픈 현실입니다. 

근데 그 분열의 모습을 보면 다 '너희가' 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거예요.
'우리가'라고 말하면 그 잘못과 혹은 다툼과 허물조차 꿰어지고 치료되는 놀라운 은혜가 경험되는데,
'너희가'에서 '우리가'로의 변화가 너무나 크다는 것입니다.

 

성도님들 중에는 각 교회 목회자님들에 대해서 그렇게 불만족스러운 분들도 있죠.
성도님들 중에 목사님들에 대해서 만족하는 분은 '우리 목사님'이라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불만족스러운 성도들은요.
'누구누구 누구 목사'가 이렇게 얘기를 하죠.
참 재미있는 일이죠?

우리 목사님에서 아무개 목사가 이렇게 되어지는 것이죠.


그것은 목회자와 성도의 관계뿐만 아니라 성도들과의 관계에도 적용되어 줄 수 있습니다.
우리 장로님이, 우리 권사님이, 우리 집사님이, 우리 청년이, 우리 교사가, 우리 아이들이 에서
아무게 장로가, 아무게 권사가, 아무게 집사가, 아무게 청년이라고 이야기를 하면

그 갈등은 절대로 해결되어질 수 없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삶을 한번 돌이켜보시겠습니까?

여러분은 우리 장로님, 우리 권사님이라고 말하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아무개 장로, 아무게 권사라고 이야기를 하는 사람입니까?
여러분의 말이 바뀌어지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의 태도가 바뀌어지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변화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의 교회 가운데 이런 갈등과 어려움을 겪고 있는 그런 교회가 있다면,

여러분의 마음과 여러분의 말부터 바뀌어야 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놀라운 치유의 역사가

여러분의 교회 가운데, 여러분이 속한 공동체 가운데 이루어지게 될 줄 믿습니다.

 

이방 여인과의 결혼은 귀환한 이스라엘 공동체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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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절부터 15절까지 있는 말씀을 묵상해 보겠습니다.


우리가 때로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그 기도에 응답을 받는 경우는 두 가지 경우입니다.
하나님의 직접적인 응답을 받는 경우가 첫 번째이고,

두 번째 응답은 기도하는 그 기도자의 내면에 결단이 서게 되는 것이죠.
하나님의 직접적인 응답이 없다. 하더라도, 그 내면의 결단이 생겨지는 것 자체가 기도 응답이 된다는 것이죠.


오늘 기도한 에스라와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무슨 특별한 일을 행하신 것은 아니지만,

에스라와 백성들의 내면에 결단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기도의 응답이었습니다. 

 

두 가지 결단을 합니다. 첫 번째 8절 말씀에 보면

8 이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잠시 동안 은혜를 베푸사 얼마를 남겨 두어 피하게 하신 우리를 그 거룩한 처소에 박힌 못과 같게 하시고 우리 하나님이 우리 눈을 밝히사 우리가 종노릇 하는 중에서 조금 소생하게 하셨나이다

'우리를 거룩한 처소에 박힌 못과 같게 하여 주시옵소서'라는 결단이 있었고요.

9 우리가 비록 노예가 되었사오나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그 종살이하는 중에 버려 두지 아니하시고 바사 왕들 앞에서 우리가 불쌍히 여김을 입고 소생하여 우리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게 하시며 그 무너진 것을 수리하게 하시며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우리에게 울타리를 주셨나이다

2번째 9절 말씀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게 하시며 그 무너진 것을 수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것이 두 번째 결단이었습니다.


첫 번째 결단 '우리를 하나님 처소에 박힌 못과 같이 거룩하게 하여 주시옵소서'라는 것은

거룩한 삶을 살겠다는 내면적인 결단입니다.
하나님 여태까지 우리가 삶으로 거룩함을 나타내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하나님의 성전에 박힌 못이 절대로 그곳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것처럼 

우리를 하나님의 거룩함에 박힌 못과 같게 하셔서 그 거룩함에서 떠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 거룩의 삶을 결단한 것이죠.


두 번째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게 하시며 무너진 것을 수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것은 무너진 것을 다시 세우므로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세우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코로나의 어려움 가운데 거의 2년 반의 시간을 살아오고 있습니다.
이 2년 반의 시간 동안에, 가장 많이 무너진 것이 바로 우리의 예배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예배가 무너져 있지는 않습니까?

여러분이 예전처럼 거룩하게 하나님 앞에 예배드려야 하지만, 때로는 코로나라는 이유 때문에,

때로는 하나님의 전에서 예배를 드릴 수 없다는 이유 때문에,

그렇게 예배를 드리기 시작한 영상 예배가

 

혹여 여러분의 마음을 게으르게 하고,

여러분이 편한 대로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가 아니라 

여러분이 편한 대로, 편한 복장으로, 편한 방법으로, 편한 시간에 그렇게 예배를 하는

 

그리고 예배의 은혜를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고 예배드렸구나. 예배 끝났구나. 예배 해치웠구나'

라는 마음이 들 정도로 여러분의 예배가 무너져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시는 엄중한 메시지는 무너진 예배를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무너진 예배를 회복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 앞에 물으며 여러분의 무너진 예배가 회복될 수 있는,

무너진 성전이 다시 세워질 수 있는, 그런 여러분의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혹은 여러분의 삶 가운데 무너진 것이 무엇입니까?

공동체성입니까? 교제입니까? 아니면 헌신입니까? 봉사입니까? 기도의 삶입니까?

무엇이 무너져 있습니까?

무엇이 무너져 있는지를 잘 살펴볼 수 있는

여러분의 내면과 여러분의 신앙의 삶을 잘 돌이켜봐서
'하나님 무너진 것을 다시 세우겠습니다'

라고 결단할 수 있는 귀하고 복된 성도의 삶이 되어줄 수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염치가 없어서 감히 구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하나님 성전에 박힌 못과 같이 거룩하게 하여 주시고
우리의 삶 가운데 무너져 버린 예배와 성전이 다시 세워지는
놀라운 역사가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너희가'라고 하는 우리의 언어와 마음이 바뀌어서,
'우리가'라고 하는 관점으로 변화되고
우리의 삶 가운데에는 많은 갈등과 허물이 치유되며, 아물어지는
놀라운 은혜가 우리와 우리 교회 공동체 가운데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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