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부활의 주님을 만난 부활의 증인 (요한복음 20:11~23)(20220417)

2022.04.17. | 생명의 삶 | 안광국 목사                                                                                                         

 

부활의 주님을 만난 부활의 증인

 

 

할렐루야.

금호 중앙교회를 섬기는 안광국 목사입니다.
거룩하고 복된 부활의 주일입니다.

죽음을 이기시고 무덤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의 놀라운 생명의 능력이 여러분 모두와 함께 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하나님의 말씀은 요한복음 20장 11절에서 23절까지 있는 말씀입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난 부활의 증인


요한복음 20장 11절에서 23절 말씀입니다.

더보기
11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부려 무덤 안을 들여다보니
12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 편에 앉았더라
13 천사들이 이르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이르되 사람들이 내 주님을 옮겨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
14 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으나 예수이신 줄은 알지 못하더라
15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이르되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16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 하니 (이는 선생님이라는 말이라)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
18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
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21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2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먼저 오늘의 본문 11절부터 18절 까지 있는 말씀을 함께 묵상하겠습니다.

11절 말씀에 보면 '마리아가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다'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진 것을 발견하고 너무나 당황해서 울었습니다.
본문에 '울었다'라고 하는 표현의 4번이나 등장을 합니다.

 

그리고 그 곁에 서 있는 천사를 알아보지 못하고 천사들에게 묻습니다.
'누가 우리 주님의 시신을 옮겼습니까?' 라고 다급해서 묻습니다.
또 예수님을 알아보지도 못하고 예수님께 조차 누가 예수님의 시신을 옮겼냐고 묻게 됩니다.

 

저는 이 본문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마리아가 조금 다르게 질문을 하였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런 묵상을 해보았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신 것입니까?'

이렇게 물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누가복음 15장 말씀에 보면 보통 탕자의 비유라고 하는 그런 비유가 나오죠.
둘째 아들이 아버지에게 유산을 요구합니다.
그것은 아들로서 하지 말아야 될 일이죠.

아버지께서 생존해 계시는데, 그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받게 될 유산을 달라고 하는 것은 

아버지를 굉장히 모욕스럽게 하는 일인 것이죠.

 

하지 말아야 될 질문들이 있습니다.

 

특별히 예수님께 예수님의 시신이 어디 있냐고 묻는 일은 좀 하지 말았어야 하는 일이죠.
일을 마치 손흥민 선수와 같은 축구를 잘 하는 운동선수에게 '어디에 축고 잘하는 사람을 알고 있습니까?'
혹은 노래를 잘하는 유명한 가수에게 '노래 잘하는 가수 혹시 알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라고 묻는 것과 똑같은 일입니다.

 

요한복음 14장 말씀에 보면 도마가 예수님께 묻습니다.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 못하오니 주님 길을 좀 알려주십시오.'

그때 예수님께서 도마에게 말씀하시죠.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이 의미는 이런 것이죠.

'도마야 내가 길이야. 아니 내가 길인데 나한테 길을 묻다니... 네가 참 어리석구나'

하는 질문과 대답인 것이죠.
때로 우리의 삶 가운데 우리의 질문이 곧 우리의 영성을 나타내는 그런 방법인 것을 우리가 깨달아 압니다.

 

정확한 질문을 해야 정확한 대답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빌라도의 재판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질문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한 말씀도 대답을 하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질문 자체가 대답할 만한 가치가 있는 질문이 아니었기 때문이죠.


우리의 삶 가운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예수님께 많은 질문들을 할 수 있지만,

우리의 질문이 정확한 질문이 아니라면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아무런 대답을 하시지 않았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아무런 대답을 하시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꼭 기억해야만 할 것입니다.

 

질문이 곧 영성이다.

 

우리가 어떤 질문을 하나님께 예수님께 하느냐에 따라서

하나님의 정확한 대답이 우리의 삶 가운데에 주어질 수 있다라는 것을 우리가 곧 깨닫고 

우리의 삶 가운데 하나님께 할 수 있는 많은 질문들이 있으나

우리가 하나님께 어떻게 질문해야 할지

그 영적인 분별력을 갖게 해달라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복된 오늘 주일이 될 수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님 시신을 찾던 마리아가 부활의 주님을 만난 심경은 어떠했을까요?

 

반응형


19절부터 23절까지에 있는 말씀입니다. 19절 말씀 우리 같이 한번 읽어볼까요?

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안식 후 첫날 저녁'이라는 것은,

'예수님께서 부활 하신 그날 저녁'이라는 의미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났나요?

사람들의 눈에 보일 때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안식 후 첫날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그 날이 된다면

저는

예수님께서 빌라도에게 찾아가시거나, 

아니면 예수님을 못 박도록 주동했던 대제사장들과 이스라엘 관료들에게 나타나셔서

'이놈들아 내가 부활했다!'

라고 하시면 얼마나 속이 시원 할까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아니면 예루살렘 공중에 한 30분간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그렇게 요구했던 백성들에게

그들이 요구한 그 요구가 얼마나 잘못된 요구인지를 보여 주신다면 얼마나 통퀘했을까?

이런 상상도 해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이후에 제자들에게 가셨습니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가셨습니다.
어떤 큰 이벤트나 어떤 큰 기적을 이루시지 않았습니다.
왜 일까? 왜 예수님은 그렇게 하셨을까?

 

오늘 본문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제 마음 가운데 깨달은 한 가지 묵상은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과 함께 일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 방법을 알아야만 합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홍해를 가르는 그런 놀라운 일들과 전쟁에서 큰 승리를 이루는 일들,

혹은 엘리아가 갈멜산에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싸워서 이기는 어떤 놀라운 영적인 이벤트를 이루 시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때때로 삶 가운데 어떤 큰 이벤트가 일어나는 것을 바라고 또 준비하기도 합니다.
어떤 큰 집회를 하거나 아니면 어떤 세상 사람들의 이목을 받는 어떤 그런 놀라운 일들을 하고자 하기도 하죠.

어떤 선교사님들은 선교지에서 큰 어떤 집회나 이벤트를 하고자 하는 분들도 있고,

어떤 분들은 '크리스천들이 힘을 가져야 된다. 사람들을 모아야 된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그런 것들이 완전히 잘못된 방법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러나 성경 말씀과 역사를 비춰보면 하나님께서 그런 역사를 이루셨다 하더라도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로 일 하시는 방법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작고 연약한 한 사람에게 찾아가셔서,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하시고,

그 작고 연약한 한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말미암아 변화되고, 한 사람이 온전히 변화되는 그 방법을 통하여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시는 것을 우리는 말씀과 역사를 통해서 배우게 됩니다.
곧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은 곧 한 사람을 통하여, 두려움에 떨고 있는 한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일하시고 계신다는 것이죠.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깨달아 알 수 있는 것 그것은 무엇입니까?
'평강이 있을지어다'
'평강이 있을지어다'
너희에게는 왜 평강이 없느냐? 이렇게 반문하시는 의미일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함께 일하시고 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놀라운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는 사람은

하나님의 평강이 마음 가운데 있는 사람,

세상이 도저히 빼앗아 갈 수 없는 그 평강이 있는 사람,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평강이 있는 한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일 하신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말씀에 보면 우리의 삶에 앞서 믿음의 삶을 살아간 믿음의 사람들이 많이 등장을 합니다.
아벨과 아브라함과 노아와 또 다윗과 라합과 기드온과 삼손 많은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11장 35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은 톱에 켜서 죽임을 당하기도 하고, 칼로 죽임을 당하기도 하고, 돌에 맞기도 하고, 갇히기도 하고, 염소와 양의 가죽옷을 입고 피신을 당하며 산과 토굴과 동굴에 살아간 사람들도 있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을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왜 그 사람들을 세상은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일까요?
그 사람들의 마음 가운데에는 힘들고 어렵고 여러 가지 많은 학대와 권한이 있을 지라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진정한 평안이 그들의 마음 가운데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 가운데는 진정한 평안이 있으십니까?
그 세상의 어떤 어려움도 빼앗아 갈 수 없는 진정한 평안이 있으십니까?
만약 그 평안이 여러분의 마음 가운데 있다면,
여러분은 아마도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믿음의 사람일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의 마음 가운데 이런 진정한 평강이 없다면,
하나님께 진정한 평강을 달라고 간구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 가운데 이 세상이 빼앗아 갈 수 없는 진정한 평강을 주실 줄 믿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확신하고 그분과 동행할 때 내 삶에서 기대되는 변화는 무엇인가요?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의 마음 가운데 진정한 평강 없음을 불쌍히 여겨 주시고
하나님 안에서 예수님 안에서 진정한 평강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진정한 평강이 나의 마음 가운데 있게 하여 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 앞에서
예수님의 시신을 찾는 마리아와 같은 어리석은 질문이 우리에게 있지 않도록 
하나님 우리에게 정확한 질문을 하나님 앞에 드릴 수 있는
명철과 분별력과 지혜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