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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회복을 위한 에스라의 귀환 (에스라 7:1~10)(20220409)

2022.04.09. | 생명의 삶 | 서경남 목사                                                                                                         

 

말씀 회복을 위한 에스라의 귀환

 

인천 온누리 교회를 섬기는 서경남 목사입니다.
'말씀 회복을 위한 에스라의 귀환'

오늘 말씀에는 족보를 말하고 있습니다.

에스라에 족보를 말하고 그리고 또 에스라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귀국을 하는데 3차 귀국으로 에스라가 들어오는 사건을 말하고 있습니다.

역사를 새롭게 쓰여 주는 것입니다.

 

저는 미국에서 오래 살았고요.

그리고 저는 서씨 고요.

아 근데 서씨가 '달성 서 씨'라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부모님들은 이북 분이기 때문에, 저는 달성이라는 곳이 이북에 있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언젠가 한번 제가 어느 교회 강의하러 남쪽 대구 쪽으로 지나가다 '달성'이라고 쓰여 있더라고요.

그래서 '어? 달성이 이북이 있는데 왜 여기도 있지?' 하고서 내려서 한번 물어본 적이 있는데,

진짜 거기가 진짜 달성 서 씨 들이 사는데라고 말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아! 그렇구나 내가 그동안 너무나 잘못 살았다.'

내가 잘못 알고 달성 서 씨가 저 이북에 있는지 알았는데, 이남에서 부터 시작된 것을 알았습니다.

그만치 우리의 삶에 족보가 중요하다는 것을 성경을 통하여 오늘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은 에스라 7장 1절서부터 10절 말씀이 되겠습니다.

 

말씀 회복을 위한 에스라의 귀환

 

에스라 7장 1절에서 10절 말씀입니다.

더보기
1 이 일 후에 바사 왕 아닥사스다가 왕위에 있을 때에 에스라라 하는 자가 있으니라 그는 스라야의 아들이요 아사랴의 손자요 힐기야의 증손이요
2 살룸의 현손이요 사독의 오대 손이요 아히둡의 육대 손이요
3 아마랴의 칠대 손이요 아사랴의 팔대 손이요 므라욧의 구대 손이요
4 스라히야의 십대 손이요 웃시엘의 십일대 손이요 북기의 십이대 손이요
5 아비수아의 십삼대 손이요 비느하스의 십사대 손이요 엘르아살의 십오대 손이요 대제사장 아론의 십육대 손이라

6 이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올라왔으니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자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도우심을 입음으로 왕에게 구하는 것은 다 받는 자이더니
7 아닥사스다 왕 제칠년에 이스라엘 자손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과 느디님 사람들 중에 몇 사람이 예루살렘으로 올라올 때에
8 이 에스라가 올라왔으니 왕의 제칠년 다섯째 달이라
9 첫째 달 초하루에 바벨론에서 길을 떠났고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어 다섯째 달 초하루에 예루살렘에 이르니라
10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


오늘 1절서부터 5절 말씀은 에스라가 등장하는 순간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보기 전에 4명의 그 왕들이 나오잖아요?

고레스 왕 그리고 다리오 왕, 아하수에로 왕 그리고 아닥사스다 왕 이렇게 볼 때

고레스 왕은 칙명을 내렸고 다리오 왕은 성전건축을 허락했습니다.

그리고 아하수에로는 에스더 남편이었죠. 그래서 등장을 거 진안 하는데 에스더서에 영향을 많이 끼쳤던 순간입니다.

그리고 아닥사스다 왕은 에스라와 느헤미야를 허락한 왕 이라고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1절에 보면 

1 이 일 후에 바사 왕 아닥사스다가 왕위에 있을 때에 에스라라 하는 자가 있으니라 그는 스라야의 아들이요 아사랴의 손자요 힐기야의 증손이요

여기 우리가 주목할 것은 '이 일 후에'

제가 이 말씀을 이렇게 볼 때에 '이 일 후에'는 며칠 후에 라고 생각했는데,
영어로 보면  After these things이라고 말하고 있어요.

이 일 후에라는 말 자체가 이렇게 보면 여기 벌써 60년이 지났어요.

그래서 어제 말씀하고 오늘 말씀은 벌써 60년이 지난 사건으로 인하여

이제 성전을 다 건축하고 이제 그 예배를 드리다 보니까

사람들이 이제 매너리즘에 빠지기 시작해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방법이

이제는 학개와 스가랴만 보낸 것이 아니라

이제는 말씀을 잘하는 스크라이프 그러니까 학자를 보내는 모습이 오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 학자를 소개할 때에 뭐라고 말하는가 하면

여기 2절, 3절, 4절, 5절에 이렇게 이름들이 나오는데, 여기에 보면은 5절에 보면

5 아비수아의 십삼대 손이요 비느하스의 십사대 손이요 엘르아살의 십오대 손이요 대제사장 아론의 십육대 손이라

여기에 보면은

십육대 때에 아론까지 올라가게 되는 것을 족보를 말하는 그 모습을 볼 때 

'아! 아론의 후손 에스라구나!'

여기에 왜 이렇게 길게 쓰냐? 1절서부터 5절까지 쓰냐?

왜냐하면 기록할 때 에스라가 참 학자로서 그리고 또 영어로 말하면 스크라이브 이것을 쓰는

그래서 이 말을 뭐냐면 싸파프 라고 말하는 데, 이것은 돌판에 쓰는 자들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게 이게 학자라는 것을 스크라이브이라고 에스라를 말하고 있는데,

 

이만 침 그때의 족보를 말하는 게 굉장히 중이에요.

한국은 그냥 1세대를 말합니다.

저는 서 씨고 아까 말한 것처럼 달성 서 씨구나. 그냥 '아! 달성 서 씨구나'

 

근데 이제 다른 나라를 가면 이렇게 보면

제가 살던 남미를 보면

'주세 아우 바리스 페스 난데 스데 이메이다'

뭐 이렇게 말하면, 자기의 이름이 네다섯 게 있는 사람도 있어요.

그리고 중동에 가든가 그리고 이스라엘에 가면

자기의 족보를 밝힘으로써 인하여

자기의 조상들의 이름들을 다는 케이스가 많아서

그래서 이름이 여섯일곱 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우리는 많은 족보에 이름을 두고 싶지만

하지만 우리의 조상을 딱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롭다 함을 받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우리의 이름이고

그리고 죄인이 어떤 우리가 이제는 의롭다 함을 받은 ○○○인 것처럼,

우리 앞에 죄인이었지만 이제 그것을 예수로 말미암아 없애고 이제는 의롭다 함을 받고서

그리고 우리 조상의 이름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나는 이제 하나님의 생명의 책에 있다는 것을 알 고사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론으로 연결되는 에스라 계보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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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절서부터 10절 말씀에는 에스라에 귀환을 말하고 있는데,
에스라가 왜 왔나?

하나님 편에서 볼 때는 오늘 말씀의 6절에 보면

6 이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올라왔으니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자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도우심을 입음으로 왕에게 구하는 것은 다 받는 자이더니

여기에 두 가지가 참 중요한 것이

모세 율법에 익숙한 자라서

모세의 법을 알았던 분이고, 그리고 이 일을 하기 위하여 왕으로부터 구하는 것을 다 받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힘이었습니다.

그래서 영어로 보면 for the hand of the LORD his God was on him.

'하나님의 손이 그 위에 있었더라' 하는 표현이 있는 것처럼 

그리고 에스라는 이렇게 적절 한때에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에스라의 미션이 뭐냐 하면

포로 되기 전에 성경이 왜곡되어 있었어요.

여러분 잘 아시지만은 유다와 이스라엘의 왕들로 인하여, 타락함으로 인하여

많은 선지자와 그리고 이 글들을 쓰는 사람들한테 왕의 생각을 심어줬지 하나님의 생각을 심어주지 않았다는 것에요

무슨 말이냐면,

오늘 뉴스룸에서 진리를, 사실을 말해야 하는데,
정부가 요구하는 (뉴스를) 뉴스룸에서 말하는 것처럼 

그때만 해도 왕이 원하는 말들을 나의 주의 백성에게

선지자들이 글을 써서 이것이 하나님의 계시라고 왜곡시켰던 사건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래서 왕의 말로 왜곡되었으며, 그리고 백성들이 듣기 좋아하는 말로썯다는 것을 

근데 에스라는 그렇지가 않았다는 것이에요. 

모세에게 주신 그 율법에 익숙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법을 능동 하였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이방 왕이 인정했다는 것을 말하고 있어요.

 

그래서 이제 떠납니다

예루살렘에 오는 과정에 9절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9 첫째 달 초하루에 바벨론에서 길을 떠났고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어 다섯째 달 초하루에 예루살렘에 이르니라


여기 첫째 달 초하루라고 말하는 말 자체가

왜 고의적으로 이렇게 썼냐 하면 이 날이 바로 유월절이었던 거예요.

이 날짜가 거룩한 날이기 때문에 유월절에 떠나서 다섯 달 초하루에 예루살렘에 이르니

석 달 20일 동안 걸어왔어요.

바빌론에서부터 예루살렘의 거리가 1,400킬로예요. 굉장히 먼 거리죠.
날짜와 그리고 거리를 나눠보면 하루에 16킬로를 걸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6키로를 걸었다면, 지금 누구다 다 그럴 수도 있다. 이렇게 생각하지 많은 하지만,

그때의 그 가축들과 그리고 가지고 가는 그 금, 제사드릴 것 그리고 이 재물들과 뭐 이런 것을 다 갖고 왔는데,

16 키로면 쉬운 일이 아니에요.

그 가운데 여성도 있고 어린이도 있고 그리고 노인도 있는 가운데 

이렇게 참 어렵기 원 모습이에요.

 

그래서 어제 가 참 은혜받은 말씀, 묵상하면서 좋아하는 말씀은 10절에 

10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

여기 세 가지 단어가 제 마음속에 드는데 연구하고 그리고 준행하여 그리고 가르치기를 이 세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제가 신학교 다닐 때에 이 말씀을 우리 총장이 해준 적이 있습니다.

'너희들이 이제 졸업하면 이 말씀을 꼭 기억하라'

연구하고 준행하며 그리고 가르치기를 결심하는 너희들이 되기를 원한다.

야고보서에서 말하는 것처럼

우리의 믿음은 듣는 믿음만 아니라 실천하는 믿음이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스라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실천하는 힘이 있었으며,

그리고 하나님의 성전과 하나님의 축복이 있었다는 것을 성경을 통하여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바벨로 왕에게 인정받던 에스라가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말씀에 거하게 해 주심을 감사하고 
하나님께 예비하는 공동체로 회복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확고히 세워져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제 삶과 가정, 교회가 하나님의 보시기에 황폐하지 않도록
말씀에 부흥을 일으키소서
진리의 말씀을 연구하고 준행하고 가르치는 
하나님이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주님께서 지켜 주시고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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