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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을 성취한 부활, 부활을 전하는 증인(누가복음24:1~12)(20220328)

2022.03.28. | 생명의 삶 | 노치형 목사                                                                                                         

 

말씀을 성취한 부활, 부활을 전하는 증인

 

샬롬

오늘도 하나님이 주신 생명으로 우리가 승리를 누리게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생명에 큰 기쁨이 더하는 하루 되길 소망합니다.
저는 온누리 교회를 섬기는 노치형 목사입니다.


하루를 살다 보면 우리가 여러 가지 상황을 접하게 됩니다.
특별히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우리는 생명보다 죽음이라는 생각을 더 많이 갖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우리의 생각이 어디로 가게 될지 그것을 한번 묵상해 보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생명입니다.
그것을 기억하면서 오늘 말씀을 같이 읽기 원합니다.
오늘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누가복음 24장 1절에서 12절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함께 듣겠습니다.

 

말씀을 성취한 부활, 부활을 전하는 증인


누가복음 24장 1절에서 12절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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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2 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겨진 것을 보고
3 들어가니 주 예수의 시체가 보이지 아니하더라
4 이로 인하여 근심할 때에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섰는지라
5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6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7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한대
8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
9 무덤에서 돌아가 이 모든 것을 열한 사도와 다른 모든 이에게 알리니
10 (이 여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라 또 그들과 함께 한 다른 여자들도 이것을 사도들에게 알리니라)

11 사도들은 그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려 믿지 아니하나
12 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에 달려가서 구부려 들여다 보니 세마포만 보이는지라 그 된 일을 놀랍게 여기며 집으로 돌아가니라


우리가 살아갈 때 생명과 죽음 중에 어떤 것을 더 많이 묵상하게 될까요?
아마 생각마다 또 생활마다 달라지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 우리는 죽음에 대한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부활(復活)'이라는 단어를 다시 한번 떠올리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진정 주고 싶은 선물은 바로 이 '부활'이라는 단어입니다.
죽음을 거쳐 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부활'입니다.

 

우리는 그 첫 번째 부활의 사건을 예수님을 통해서 만나게 됩니다.
그 예수님을 통해 만날 수 있는 부활을 오늘 본문을 통해 함께 보기 원합니다. 1절에서 4절에 말씀입니다.

1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2 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겨진 것을 보고
3 들어가니 주 예수의 시체가 보이지 아니하더라
4 이로 인하여 근심할 때에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섰는지라

안식일이 지나고 예수님을 그토록 잘 모시고 싶었던 여인들은 이제야 향품을 넣기 위해서 예수님을 누인 그 무덤을 향해 가게 됩니다.
그곳에서 만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당연히 예수님의 시신이 었을 것입니다.
그 전 날 저녁이 되기 전에 십자가 위에서 이미 죽음을 맞이 하신 그 예수님의 그 육신을

제대로 향품을 넣지도 못하고 무덤에 뉘었다는 그 아쉬움 때문에

그 여인들은 밤을 잘 자지 못하고 새벽같이 일어나서

그 율법의 규례를 지키기 위해 기다렸던 그 걸음을 걸어서 무덤을 향해 갔던 것이죠.

 

하지만 그들의 마음속에 그 슬픔은 계속 되었을 것입니다.
사랑했던 예수님을 잃어버린 슬픔, 그 슬픔은 얼마나 큰 것입니까?
우리는 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보내며

우리 주변에 많은 사랑했던 사람들 또 친했던 사람들을 떠나보내고 있습니다.
수없이 많은 장례의 소식들이 줄을 이어 문자로 도착하는 것을 우리는 체험합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이 여인들과 같은 슬픔만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인지...

 

그런데 그 슬픔의 여인들 가운데 근심에 문제가 하나 터졌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예수님의 시신이 사라졌던 것이죠.
사람들은 그것을 '도난설'이라고 해서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갔다. 부활한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 위장을 한 것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여인들에게 는 그런 일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자기들이 정말 사랑했던 그 예수님의 시신마저도 볼 수 없다는 것이 그 여인들에게 는 큰 고통이 되었을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시신 외에 다른 두 사람이 서 있는 것을 보았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절망의 전조일까요? 아니면 희망으로 이끌어 가는 하나의 단서가 될까요?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 두 사람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천사들이 었다는 사실을...

 

그들을 통해서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됩니다. 본문을 계속해서 읽겠습니다. 5절부터의 말씀입니다.

5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6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7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 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한대


이 말씀을 들은 여인들의 그 마음이 어땠을까요?
정말 어리둥절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죽음'이라는 단어가 주는 염려가 이제는 '생명'이라는 단어로 변화되게 되었다 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 본문을 읽으며 '생명'이라는 단어로 우리의 마음을 옮기게 되길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천사들이 여인들에게 상기시킨 예수님 말씀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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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생각하고 근심하던 여인들에게 생명의 생각이 들어갔을 때, 그 여인들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처음은 어리둥절했을 것입니다.

'도대체 이 소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그 말이 서서히 믿어지기 시작한 것이죠.

그래서 그 여인들은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다'라는 그 두 천사의 소리를 제자들에게 전하기로 결심하게 됩니다.
어리둥절하고 아리송한 모든 일이 우리에게 다가왔을 때 우리는 주저하게 됩니다.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는 움직이면 안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기억력을 떠올려 보지만, 그 예전의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것을 기억해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멈춰 섰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 여인들은 그 말이 기억났던 것입니다.
평상시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그 말씀들을 잘 기억해 놓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언젠가 우리에게 꼭 필요한 순간에 하나님께서 그 예전에 주셨던 말씀을 확인시켜 주실 때,

우리가 그 말씀을 기억해 내고 즉각 순종하며 기뻐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 여인들의 행동과 또 그 여인들의 말을 들었던 제자들의 태도를 본문을 통해 함께 보겠습니다. 8절부터의 말씀입니다.

8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
9 무덤에서 돌아가 이 모든 것을 열한 사도와 다른 모든 이에게 알리니
10 (이 여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 라 또 그들과 함께 한 다른 여자들도 이것을 사도들에게 알리니라)
11 사도들은 그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려 믿지 아니하나
12 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에 달려가서 구부려 들여다보니 세마포만 보이는지라 그 된 일을 놀랍게 여기며 집으로 돌아가니라

아멘


여인들의 그 즉각적인 순종은 하나님의 말씀, 그 예수 그리스도의 그 말씀을 기억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말씀을 기억했던 그 여인들은 바로 제자들에게 달려갔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 본문 속에서 안타까운 사실은 열 두 제자가 아닌 열 한 사도라는 말입니다.
제자나 사도는 같은 의미로 쓰일 수밖에 없죠.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또 예수의 증인 된 삶을 살아가야 하는 그들의 모습, 그런데 그 한 명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는 그 슬픈 이야기를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기억하고, 바르게 떠올리고, 바르게 순종할 수 있었다면 

아마 이 자리에 12명의 사도들이 함께 있지 않았겠습니까?
그 여인들의 그 전파하는 그 기쁨의 소식을 듣고 그 열 한 사도들은 의아하게 여겼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바꾸면 '의심했다'라는 것이죠.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 우리는 의심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별히 이 부활에 대한 단어를 들으면 우리는 더 큰 의심을 하게 됩니다.
많은 이론과 많은 편견이 있는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부활을 빼놓고 무언가 믿을 수 있다라고 착각을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게 부활이 없다면 그들이 가장 불쌍한 사람일 거라고 얘기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중에 베드로는 뭔가 떠올랐다는 듯이 예수님의 무덤을 향해 다시 달려가게 됩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그냥 집으로 돌아가고 말죠.

우리 마음속에 어떤 하나님의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면 그 생각이 확인될 때까지 더 집중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 부활이라는 사건을 우리는 확실하게 믿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 믿음 속에서 죽음을 묵상하는 우리의 태도가 아닌 생명을 묵상하는 삶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를 보내기를 소망합니다.

 

여인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자 제자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나요?

 

죽음을 향해 가던 우리에게 부활의 소망을 주신 하나님
생명의 소식보다는 죽음의 소식을 더 많이 듣게 되는 일상 속에서
죽음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묵상합니다.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전해준 여인들의 선포를 의심했던 제자들의 마음들은 모두 내려놓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나와 우리와 깊고 구체적으로 함께 거하시는 분이시라고 의심 없는 믿음으로 받아들이며 
담대하게 선포하는 삶을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부활의 첫 열매 되시며, 우리 모두의 자랑거리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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