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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십자가, 심판의 십자가(누가복음23:26~32)(20220325)

2022.03.25. | 생명의 삶 | 백상욱 목사                                                                                                         

 

구원의 십자가, 심판의 십자가

 

안녕하세요.

저는 광진구 자양동에 있는 요한 서울 교회를 섬기는 백상욱 목사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하루의 문을 열고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여러분 모두에게

선하신 하나님의 복되신 은총이 종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세상 사람에게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혹자는 예수 믿는 사람과 예수 믿지 않은 사람으로 나누지만,

사실은 예수 믿는 사람들 중에서도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시는데

예수님의 뒤를 따라 예수님과 함께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사람 세 부류의 사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세 부류의 사람은 서로 다른 목적과 서로 다른 뜻을 가지고 예수님을 따르고 있는데요.

어쩌면 이들은 오늘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며 그리스도를 따르는 세 종류의 사람을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누가복음 23장 26절부터 32절까지의 말씀입니다.

 

구원의 십자가, 심판의 십자가


누가복음 23장 26절에서 32절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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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그들이 예수를 끌고 갈 때에 시몬이라는 구레네 사람이 시골에서 오는 것을 붙들어 그에게 십자가를 지워 예수를 따르게 하더라
27 또 백성과 및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따라오는지라
28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29 보라 날이 이르면 사람이 말하기를 잉태하지 못하는 이와 해산하지 못한 배와 먹이지 못한 젖이 복이 있다 하리라
30 그 때에 사람이 산들을 대하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며 작은 산들을 대하여 우리를 덮으라 하리라

31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 하시니라
32 또 다른 두 행악자도 사형을 받게 되어 예수와 함께 끌려 가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형을 언더받고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올라가실 때,

예수님과 함께 골고다길을 가고 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중에 한 부류는 구레네 사람 시몬이죠 

오늘 본문 26절에 그에 대해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데요.

26 그들이 예수를 끌고 갈 때에 시몬이라는 구레네 사람이 시골에서 오는 것을 붙들어 그에게 십자가를 지워 예수를 따르게 하더라

 

이 구레네 사람 시몬은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었습니다.
사실은 예수님의 대해서 잘 알지도 못했고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는 의도도 전혀 없었던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멋모르고 엉겁결에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무 의도도 없이 그저 잘못 얽혀서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에 포함된 사람이었죠.
이 사람은 자신의 삶에 관여하고 계신 하나님의 섭리도 모르고 엉겁결에, 뜻하지 않게 사실은 억울하게 이 길을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자신과 아무런 관계없는 일에 휘말린 사람입니다.

억울한 일을 겪었습니다.


여러분 

세상을 살다보면 나 자신의 잘못과는 상관없이 억울한 일에 관여하고 휘말려서 고난을 겪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내가 왜 일을 겪어야 하는지, 나의 잘못 가는 아무런 상관없이 다른 사람들 때문에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거나, 사회적인 어려움을 겪거나 사람들에게 오해를 받아 말할 수 없는 괴로움을 겪는 사람들도 있는 것이죠.
우린 이렇게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무언가에 얽혀서, 어려운 일, 고난, 내 십자가 아닌 남의 십자가를 지고 고달픈 일을 겪을 때가 있는 것입니다.
구레네 사람 시몬이 그런 격입니다.

그는 영문도 모르고 당해서 죽음의 자리까지 끌려갔습니다.

 

놀라운 사실은요.

그가 이렇게 억울하게 고난을 당했기 때문에 사실 예수님께서 쉼을 얻을 수 있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아주 고통스러운 채찍을 맞으셔서 걸을 힘마저도 없었습니다.
그런 예수님께서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올라가는 일이 예수님의 육체적인 힘으로는 너무나 부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억울하게 끌려온 구레네 사람 시몬이 예수님의 십자가로 대신 져 주셨기 때문에,

예수님은 잠시라도 구레네 사람 시몬 때문에 쉼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이죠.

 

사랑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혹시 억울한 일을 당해서 마음이 아프고 화나고 속상할 때가 있습니까?
만약 여러분이 억울한 고난을 겪으며 누군가의 인생에 십자가 잠시 놓이고 나로 인해 그가 조금이라도 쉼을 얻을 수 있다면 여러분에게 복된 것입니다.
구레네 사람 시몬은 지금은 고통스러운 남의 십자를 지고 있지만 이 일을 계기로 그가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교회사에 전해오는 전설에 의하면 그는 곧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 중의 한 사람이 되어서 복음을 전하는 생애를 살았다고 전해주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억울하게 남의 십자가를 지고 고통당하는 여러분의 고통을 아시고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 가운데 이것을 반드시 보상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운 재판장이십니다.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에게는 의로운 상급으로 보상해주신다는 것을 믿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렇게 영문도 모르고 예수님이 십자가를 대신 졌던 구레네 사람 시몬

그는 억울했지만 그가 그 십자가를 잘 감당했을 때 훗날 그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 있었던 것처럼 

여러분의 삶에 당한 고난을 잘 감당할 때 하나님이 반드시 보상해 주십니다.

또한 아울러 교회 공동체 안에도 그리스도를 잘 알지 못하고

아내를 따라, 친구 따라 이런저런 이유로 영문도 모르게 교회를 끌려왔지만,

그리고 그것이 자신에게 시간낭비인 것처럼 여겨졌지만

그러는 사이에 그가 그리스도를 알게 되어 놀라운 구원의 은총에 참여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입니다.

구레네 사람 시몬은 이처럼 영문도 모르고 그리스도를 따르고 있는 사람을 보여줍니다.

 

구레네 사람 시몬이 잠시나마 예수님의 십자가를 진 것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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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십자가를 따라 뒤를 따르고 있었던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예루살렘의 여인들입니다.

오늘 본문 27절과 28 절에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데요.

27 또 백성과 및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따라오는지라
28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이들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죽음을 비통하게 여기고 애통하게 생각했던 사람들입니다.
이들의 마음속에 난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셨고, 예수님이 메시아셨으며, 자신의 고난과 자신의 죽음과 자신의 비참에서 건져 낼 유일한 구세주라는 것을 기대하고 소망하고 믿고 있었던 것이죠.

예수님은 저렇게 죽어서는 안 될 분이라고, 의인이라고 믿고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의인의 억울한 죽음에 대하여 비통한 마음을 가지고 슬피 울며 그 예수님의 마지막 길에 동참하기 위하여 그 뒤를 따르고 있었던 사람들이었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예수님을 사랑하는 예수님을 좇는 사람들이었던 것이죠.


그런데 놀랍게도 예수님께서 이 여인들을 바라고 하신 말씀이 뭐라고 하셨습니까?

28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왜 그런 것입니까?
예수님의 죽으심 바로 너희와 너희 자녀들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죠.
예수님의 죽으심은 지금 슬피 울고 있는 이스라엘 여인들과 온 땅 여인들과 그들의 자녀들이 죄로 말미암아 죽어야 할 죄 값을 대신하기 위한 죽음이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죽음 때문에 슬퍼할 것이 아니라.

예수님 같은 분이 죽어야 하는, 너희들의 죄와 너희 자손들의 죄로 인하여 비통한 마음을 가지고 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또, 예수님을 잘 좇는 사람이지만

누구도 그들의 죄로부터 벗어날 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해도 그들이 갖고 있는 죄로부터 자유롭게 되어 의롭게 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들의 행위가 그들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 그들의 죄를 사라지게 해주지 못합니다.
오직 그것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피로써만 구속함을 받고 속량함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하게 슬퍼해야 될 것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죽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을 수밖에 없게 만든 나의 죄요. 우리 인류의 죄요. 온 세상의 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향하여 연민과 동정심과 애통의 눈물을 흘릴 것이 아니라.

그만큼 자신의 죄를 향하여 애통하고 통해 하며 비통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신 두 번째 말씀인 것이죠.


세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를 지고 갔던 두 명의 행악자들입니다.
오늘 본문 32절에 이렇게 표현해하고 있는데요.

32 또 다른 두 행악자도 사형을 받게 되어 예수와 함께 끌려가니라

이들은 예수님과 함께 십자형을 언도받고 골고다 사형 집행장을 향해 가고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이들 또 예수님과 함께 골고다 십자가 길을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자기의 죄 때문에 십자가를 지고 가고 있는 것이고, 자기의 죄 때문에 죽음을 겪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들이 받는 십자가 형은 죗값입니다.

자신의 잔인하고 악랄하며 비참한 죄로 인하여 죽는 것이죠.

이것은 마치 온 인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오늘날 온 인류가 겪는 모든 죽음은 자신의 죗값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으심과 이 행악자의 죽음이 똑같은 것처럼 보여도

예수님의 죽으심은 우리를 위한 죽으심이고 우리의 죽음은 우리 자신의 죄 때문에 죽는 자기 죄 값인 것입니다.

이것이 근본적인 차이입니다.

 

혹 어떤 사람은 예수님도 다른 사람들과 별반 다를 바 없이 죽음에 넘겨졌는데 우리와 다르게 무엇이냐고 생각하고 말합니다.
이 아마도 행악자도 그렇게 여겼을지 모릅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나의 죽음, 예수님의 십자가와 나의 십자가 무슨 차이가 있나?

별반 차이가 없다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것이죠.
예수님의 죽음은 우리를 위한 죽음이지만 이 행악자들은 자신의 죄로 인하여서 죽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님의 죽음은 생각할 때
나의 죄 값을 대신한 그리스도의 죽음인 줄로 깨닫게 되면,

그는 십자가에 향해 걸어왔던 그 길이 영생을 향한 복된 길이 되지만,

예수님과 내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는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죄 값으로 인해 죽어가는 버림받은 사람이 되고 말 것입니다.


사람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에게는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어떤 종류의 사람입니까?

예수님이나 여러분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여러분은 억울하게 엉겁결에 예수님을 따르고 있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예수님을 향하여 사랑하고 예수님의 죽음을 슬퍼하지만, 자신의 죄에 대해서는 어떤 태도를 갖고 있는 사람입니까?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가 우리 자신의 죄를 통해 하면서

우리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감격과 감사의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그런 복된 우리 남은 생애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위해 가슴 치며 우는 여자의 무리에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무엇인가요?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할 때
나를 위해 대신 죽으신 주님의 십자가가 마음에 도전을 주고 감동을 줍니다.
그러나 그의 죽으심은 나의 죄 값 때문입니다.
주님의 십자를 생각할 때마다
내 속에 숨겨져 있는 숨은 죄를 보게 해 주시고, 나의 죄 비참함을 보게 해 주셔서
애통하는 마음과 통회하는 마음으로
거룩함과 정결함을 얻게 해 주시고
날마다 거룩한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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