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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들의 죽음에도 변함없는 사랑과 충성(누가복음22:44~56)(20220327)

2022.03.27. | 생명의 삶 | 노치형 목사                                                                                                         

 

하나님 아들의 죽음에도 변함없는 사랑과 충성

 

할렐루야
거룩하고 귀한 주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이 3월의 마지막 주일에 하늘의 은혜로 풍성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저는 온누리 교회를 섬기는 노치형 목사입니다.


우리가 주일을 섬기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부활을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이 필요했습니다.
십자가에서 못 박혀 피 흘려 죽으신 그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의 사건이

우리를 다시 한번 예배의 자리로 또 부활의 소망의 자리로 인도함을 믿습니다.
오늘 그 말씀을 함께 묵상하며 나누기 원합니다.

오늘 주시는 말씀은 누가복음 23장 44절에서 56절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함께 듣겠습니다.

 

하나님 아들의 죽음에도 변함없는 사랑과 충성

 

누가복음 23장 44절에서 56절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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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때가 제육시쯤 되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며
45 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지더라

46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
47 백부장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 하고
48 이를 구경하러 모인 무리도 그 된 일을 보고 다 가슴을 치며 돌아가고
49 예수를 아는 자들과 갈릴리로부터 따라온 여자들도 다 멀리 서서 이 일을 보니라
50 공회 의원으로 선하고 의로운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51 (그들의 결의와 행사에 찬성하지 아니한 자라) 그는 유대인의 동네 아리마대 사람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52 그가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여
53 이를 내려 세마포로 싸고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바위에 판 무덤에 넣어 두니
54 이 날은 준비일이요 안식일이 거의 되었더라
55 갈릴리에서 예수와 함께 온 여자들이 뒤를 따라 그 무덤과 그의 시체를 어떻게 두었는지를 보고

56 돌아가 향품과 향유를 준비하더라 계명을 따라 안식일에 쉬더라


아주 오래전에 성경통독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사복음서를 한순간에 네게 다 동시에 읽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가장 슬펐던 순간을 체험했습니다.
그것은 네 번이나 계속 반복되는 순간이었는데요.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죽으심에 순간이었습니다.


우리가 이미 묵상했던 말씀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까지 가기에는

처음에는 너무나 기뻐하는 환호성이 있었고,

그리고 그 환호성이 며칠 가지 않아 제자들끼리 의심과 다툼과 나눔으로 이어졌고,

그리고 배신의 사건이 이어지고,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버리고 도망가는 일까지 하게 됩니다.

 

홀로 남으신 예수님께서는 억울한 누명을 이겨내지 못하고 잠잠히 침묵하시며, 그 고통, 수모 또 멸시를 다 받게 되시죠.

그런 상황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인 당하는 그 사형수의 자리까지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건을 생각할 때마다 우리는 슬프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상의 일곱 마디를 마치신 후에 고개를 떨구셨을 때,

그때 저의 마음도 함께 무너지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우리는 그 부분의 묵상을 지금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사람으로 태어나셔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살아가셨지만,
결국에는 사람이 맞이하는 죽음을 맞이하게 되셨다 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일에 대해서 오늘 본문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44절부터의 말씀입니다.

44 때가 제육시쯤 되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며
45 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지더라
46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
47 백부장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 하고
48 이를 구경하러 모인 무리도 그 된 일을 보고 다 가슴을 치며 돌아가고
49 예수를 아는 자들과 갈릴리로부터 따라온 여자들도 다 멀리 서서 이 일을 보니라

아멘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너무나도 안타까운 죽음이 얻습니다.
어떤 큰일 사람들이 생각할 때는 이스라엘 땅을 다윗처럼 다시 회복할 것이라고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런 일을 이루시지 않았습니다.
너무나 무기력한 모습으로 세상을 떠나는 모습만을 보여 줬을 뿐입니다.

 

하지만 그때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아주 큰 소리를 외치시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외침에는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 아버지께 맡긴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우리는 우리의 죽음을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죽게 될 때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말이 무엇일까?

그것은 예수님께서 하셨던 말씀처럼 '우리의 영과 마음과 몸을 그 모든 세상의 것들을 하나님께 다 맡겨 드린다'라는 고백입니다.
그것은 주인의 모든 것을 돌려 드리는 것과 같습니다.
주인에게 모든 것을 돌려 드린다는 것은 사실은 평안한 일이 되겠습니다.
무언가를 받아서 사용하던 사람이 그것을 다시 주인에게 돌려주게 되었을 때,
한편에 아쉬움도 있겠지만, 사실은 평안함이 더 클 것이라 생각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역을 마치시고 이제 하나님께 모든 것을 돌려 드린 것이죠.

 

그럴 때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졌다고 했습니다.

45 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지더라

다른 복음서에서는 위에서부터 아래로 까지 따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미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겠지만

이 성소의 휘장이라는 것은 얽혀서 짜여있기 때문에 그것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지기는 어려운 것이죠.
하지만 이것이 찢어졌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막혔던 담이 무너졌고, 또 장애물이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막혔습니까?
바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장애물이 바로 무너졌다 라는 것이죠.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가장 큰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 의미를 아는 사람은 알 것이고 모르는 사람은 모를 것이죠.


저는 오늘 귀한 주일에 하나님께 예배하면서

우리를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도록 대신 죽임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며

찬양하는 하루를 보내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 일어난 현상들은 무엇을 말해 주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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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혀 돌아가시는 사건에 성소의 휘장이 찢어지는 사건이 있었다면,
사람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반응이 몇 가지로 나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본문에 보면 백 부장은 이 일을 보고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대한 평가를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었다. 의로운 자였다.'라는 평가를 하게 되죠.


하지만 구경하러 모인 사람들은 가슴을 쳤다고 했습니다. 왜 가슴을 쳤을까요?
조롱했던 사람, 그렇게 해서 뭔가 풀어보려고 했지만 내심 기대가 있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를 향해 어떤 기대를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보면서 '아무런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거죠.
성소의 휘장이 찢어졌지만 그 골고다 언덕은 성소에 휘장과는 거리가 먼 곳이었기 때문에 그 누구도 알 수 없던 일이었죠. 나중에 가서야 이 사건을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던 여인들 또한 구경꾼처럼 서 있을 뿐입니다.
물론 마음으로는 달려가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상황이 그들이 가로막고 있었던 것이죠.

 

그 옆에 있던 사람들의 반응이 이렇게 달랐던 것처럼,

다시 한번 묵상할 때 저와 여러분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그 죽으심을 바라보는 태도는 어떤 것인지 우리가 한번 깊이 묵상해 보기를 바랍니다.
나는 어떤 구경꾼의 자세에서 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예수 그리스도의 그 피가 바로 내 죄를 용서하고, 정결하게 하기 위한 능력이 되는 것을 확신하는 것인지 

또 예수 그리스도의 그 죽임 당하심이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나에게 의미가 있기에
이제는 내가 더 이상 죄악 가운데로 가지 않겠다고 결심하게 하는 어떤 이유가 되는지,
예수 그리스도의 그 죽으심을 묵상하며 우리 태도를 확인해 보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또 한 가지 더 우리는 묵상하기 원합니다.

예수의 죽음은 부활과 연결된다는 것을 우린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단지 살아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진정 소망해야 할 것이 있음을 성경은 말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 돌아가신 이후에 사건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합니다.
50절부터의 말씀입니다.

50 공회 의원으로 선하고 의로운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51 (그들의 결의와 행사에 찬성하지 아니한 자라) 그는 유대인의 동네 아리마대 사람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52 그가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여
53 이를 내려 세마포로 싸고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바위에 판 무덤에 넣어 두니
54 이 날은 준비일이요 안식일이 거의 되었더라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님을 처형하는 것에 반대했던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왜 그는 예수의 처형을 반대했을까요?
그러면서 누가복음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이었다고요.


진정 기다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가 그의 의사결정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내가 만약에 돈을 기다리는 사람이라면 그 돈을 얻기 위해서 의사결정을 하게 될 것이고,

내가 명예나 인기를 얻기 위해서라면 그것을 기준으로 해서 내가 뭔가 의사를 결정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은 어떻게 의사를 결정하게 될까요?

 

이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그 예수의 죽음을 탄식함으로 바라보면서, 그 청년 예수에게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무덤을 내어 주게 되는 결정을 하게 됩니다.
그것은 사실 부활에 대한 소망이 있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예수에 대한 평가가 아리마대 사람 요셉에게는 하나님이 아들의 하는 믿음이 있었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고, 결국에는 하나님이 이루시는 대로 인도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서 있었던 또한 결정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소망이 아직 남아 있었습니다.
그 청년 예수 그는 죽음을 맞이했지만 아리마대 사람 요셉에게는 하나님의 나라라는 희망이 남아 있었다는 것이죠.

 

우리에게도 그런 희망이 남아 있음을 확신하게 되길 바랍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에게는 예수라는 희망은 더 이상 없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를 압니다.

그 부활하신 예수를 우리는 희망하고 있습니다.
그것만 희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묵상했던 하나님의 나라를 희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희망을 가지고 온전한 예배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오늘 하루 되길 소망합니다.

 

요셉과 여인들은 예수님을 향한 사랑과 충성을 어떻게 표현했나요?

 

우리 예배를 받기에 합당하신 하나님
거룩한 주일을 맞아 삼위일체 하나님께 기쁨으로 예배하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코로나-19 상황이 점점 심각해져 가는 어려움 속에서도
예배의 자리로 찾아와 하늘의 기쁨을 누리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할 때마다 죄인인 우리들의 더럽고 추한 죄악을
십자가에서의 죽임 당하심으로 정결하게 해 주셨으니
크신 은혜에 감사하여 영과 진리로 참된 예배를 드리게 하여 주십시오.
나와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신 하나님 아버지를 찬양하기를 소망하며 
생명의 주인 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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