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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분별을 저버린 비겁한 판결자(누가복음23:13~25)(20220324)

2022.03.24. | 생명의 삶 | 백상묵 목사                                                                                                         

 

바른 분별을 저버린 비겁한 판결자

 

 

안녕하세요.

저는 광진구 자양동에 있는 요한 서울 교회를 섬기는 목사 백상욱입니다.
오늘도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말씀과 동행하는 삶을 살고자 하는

여러분 모두에게 좋으신 하나님의 은혜가 종일토록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란 말이 있습니다.
하나의 하나하나의 선택이 모여서 한 사람의 인생이 만들어진 것이고,

인류의 선택을 통해 인류의 문화와 역사가 만들어지는 것이죠.

오늘 본문에는 인류의 모든 역사를 통틀어 가장 잘못된 결정, 가장 문제가 큰 결정, 가장 처참한 결정이 오늘 본문의 실려 있는데,

이 엄청난 잘못 저지른 결정에 관여한 두 종류의 사람에 관해서 본문은 다루고 있습니다.
오늘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누가복음 23장 13절부터 25절까지의 말씀입니다.

말씀을 들어보겠습니다.

바른 분별을 저버린 비겁한 판결자


누가복음 23장 13절에서 25절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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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빌라도가 대제사장들과 관리들과 백성을 불러 모으고
14 이르되 너희가 이 사람이 백성을 미혹하는 자라 하여 내게 끌고 왔도다 보라 내가 너희 앞에서 심문하였으되 너희가 고발하는 일에 대하여 이 사람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고
15 헤롯이 또한 그렇게 하여 그를 우리에게 도로 보내었도다 보라 그가 행한 일에는 죽일 일이 없느니라

16 그러므로 때려서 놓겠노라
17 (없음)
18 무리가 일제히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을 없이하고 바라바를 우리에게 놓아 주소서 하니
19 이 바라바는 성중에서 일어난 민란과 살인으로 말미암아 옥에 갇힌 자러라
20 빌라도는 예수를 놓고자 하여 다시 그들에게 말하되

21 그들은 소리 질러 이르되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22 빌라도가 세 번째 말하되 이 사람이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나는 그에게서 죽일 죄를 찾지 못하였나니 때려서 놓으리라 하니
23 그들이 큰 소리로 재촉하여 십자가에 못 박기를 구하니 그들의 소리가 이긴지라
24 이에 빌라도가 그들이 구하는 대로 하기를 언도하고
25 그들이 요구하는 자 곧 민란과 살인으로 말미암아 옥에 갇힌 자를 놓아 주고 예수는 넘겨 주어 그들의 뜻대로 하게 하니라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십자가 형 언도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죠.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재판 과정을 다루고 있는데, 
예수님의 재판 과정을 통해서 예수님에게 십자가형을 내리게 된,

십자가형을 내리도록 관련된 한 부류의 사람과 십자가형을 내린 한 사람에 관한 이야기가 본문에 실려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형이라는 엄청난 인류의 범죄와 잘못이 우리 인류에 가장 큰 잘못 중에 하나 아니겠습니까?
여기에 관련된 첫 번째 한 부류의 사람들은 무리들로 속칭된 사람들입니다. 본문 13절을 읽어보지요.

13 빌라도가 대제사장들과 관리들과 백성을 불러 모으고

빌라도가 이런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지금 재판을 진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뭐라고 말하는가? 18절을 읽어보지요.

18 무리가 일제히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을 없이하고 바라바를 우리에게 놓아주소서 하니

하면서 무리들은 예수님을 예수님에게 사형을 언도해달라고 요청하고 있고,

더 나아가서 십자가형을 언도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23절을 읽어보겠습니다.

23 그들이 큰 소리로 재촉하여 십자가에 못 박기를 구하니 그들의 소리가 이긴지라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많은 무리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 입성하실 때

호산나 찬송을 하면서 예수님을 메시아 요 왕으로 환호했던 사람들이 아닙니까?

그런데 왜 일주일 만에 이들은 돌연히 바뀌어서 예수님을 십자가 형에 처해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까?

소리 지르고 있습니까?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습니까?
이들에게는 뒤에서 관여한 사람들의 책동과 선동이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것입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바로 대제사장이고 관리들이며 여론을 만들고, 언론을 조성했던, 선동꾼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러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가 본문을 통해 이해해야 할 중요한 사실 중에 하나는

우리가 스스로 생각하는 힘이 없으면,

다른 사람이 만들어 놓은 프레임에 갇혀서 

우리가 세상을 잘못 보고 편협하게 좁은 시각으로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무리들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예수님을 향하여 메시아여, 다윗의 자손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제사장들이 만들어놓은 프레임에 갇히게 되었는데, 그 프레임이 무엇인고 하니 14절에 있습니다.

14 이르되 너희가 이 사람이 백성을 미혹하는 자라 하여 내게 끌고 왔도다 보라 내가 너희 앞에서 심문하였으되 너희가 고발하는 일에 대하여 이 사람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고


'백성을 미혹하는 자'라고 제사장들이 한 말입니다.

제사장들은 생각하기를

로마 제국에 의해서 지금 유대가 어느 정도 자치적 역량을 가지고 유대 민족이 끌어가고 있는데,

만약에 사람들이 모이고 군중들이 모여 민란이라도 일어나면

그러면 로마 제국이 이 민란을 다스리면서 지금까지 주었던 자치적 역량까지도 빼앗아갈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백성을 미혹하는 자'라고 말하는 것은 제사장의 무리요, 공회원 그들의 생각이었던 거예요.
그들의 자치적 역량이 박탈당한 것을 두려워해서

백성들이 모이는 것을 두려워하고 

그래서 예수님을 백성을 미혹하여 민란은 일으키는 자로 포장하고 프레임을 씌운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생각에 갇히지 않으려면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들 특별히 정치하는 사람들이 정치적인 목적을 위하여 프레임을 만들고

사람들을 네 편과 내편, 피아를 구분하게 만듭니다.
이 정치하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이 프레임으로 국민들의 편이 갈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편 가르기가 되고 네 편 내 편이 되면

극단적으로 사람들을 옳고 그름으로 몰아서, 중간지대나 통합과 화합을 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흑백논리가 되는 것입니다.

 

흑백논리 안에 사로잡히면 죽기까지의 싸움은 상대방을 적으로 규정하고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사람처럼 여기게 만듭니다.

이렇게 흑백 논리에 사로잡히면 내편이 이기 위하여 작은 악을 간과합니다. 무시하게 만듭니다.

올바른 분별력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것이죠.

 

지금 백성들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받고 죽이게 하는 것이 민족을 이롭게 하는 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서는 작은 악도 받아 들 수 있다.

작은 악은 간과할 수 있다고 여긴 것입니다.

그래서 민란을 일으켰던 바라바를 놓아주라 도와주도록 요청합니다.

바라바는 어떤 사람입니까?

19절에 보면

19 이 바라바는 성중에서 일어난 민란과 살인으로 말미암아 옥에 갇힌 자러라

살인했던 사람을 놓아 달라는 어리석음을 하게 된 것이죠.

이것은 스스로 생각의 힘을 갖추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한 것입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을 때려서 놓아주겠다고 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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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갖추고 있지 못해서 정치꾼들이 만들어낸 선동된 프레임에 갇혔던 무리들과 다르게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며 양심적으로 생각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 바로 재판장인 빌라도였던 것입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신문하면서 자초지종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본래 역사적 사료에 의하면 빌라도는 굉장히 잔인하고 냉정한 사람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신문하면서 그가 가지고 있는 냉정함과 냉철함으로 예수님은 밀란을 일으킬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선한 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던 것이죠.

그래서 그는 '예수님에게서 아무런 죄가 없다'라고 이야기합니다.
본문 15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15 헤롯이 또한 그렇게 하여 그를 우리에게 도로 보내었도다 보라 그가 행한 일에는 죽일 일이 없느니라

잘못된 일이 없다고 말합니다. 무죄하다고 말합니다. 22절에서도 반복해서 말합니다.

22 빌라도가 세 번째 말하되 이 사람이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나는 그에게서 죽일 죄를 찾지 못하였나니 때려서 놓으리라 하니

반복해서

빌라도는 예수님이 '무죄하다. 죽일 만한 잘못이 없다'라고 선언하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마침내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는 양심적으로 생각하고 이성적으로 사유하고 합리적으로 판단을 내렸지만,

그러나 그는 주변 사람들의 눈치와 사람들이 선동하고 민란을 일으킬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그는 마침내 최악의 결정, 예수님을 십자가에 넘겨주도록 언도합니다.

24절, 25절

24 이에 빌라도가 그들이 구하는 대로 하기를 언도하고
25 그들이 요구하는 자 곧 민란과 살인으로 말미암아 옥에 갇힌 자를 놓아주고 예수는 넘겨주어 그들의 뜻대로 하게 하니라


결국 빌라도는 자기 양심을 거스르고 예수님에게 십자가형을 내립니다.

 

여러분이여.

양심을 갖추고 합리적으로 이상적으로 생각했다 할지라도

최종적으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언도한 사람은 재판관인 빌라도입니다.
재판관, 책임자, 최고 의사결정권자는 그의 판단과 결정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가 양심이 무엇을 말하고 있으며, 그가 합리적으로 어떻게 생각했다고 하여도, 또는 어떤 말을 주장했다고 해도 

결국은 그의 최종적인 선택이 그의 몫이고 그의 책임인 것입니다.
여러 면에서 빌라도는 그가 최종적인 결정을 내린 십자가형이야말로 빌라도에 의해서 내려진 것입니다.
그는 양심적이었으나 그는 최종 선택과 결정은 매우 잘못된 것을 선택했기 때문에,

기독교 역사 2천 년 동안의 우리는 사도신경을 외울 때마다 마리아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등장한 이름 한 사람

빌라도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십자가에 못 박힌 책임을 빌라도에게 두고 있지 않습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저나 여러분이 선한 양심이 살아서 모든 일에 양심을 따라 성령을 따라 판단하기를 바랍니다.
더 나아가서 양심과 성령을 따라 판단할 뿐 아니라 그렇게 결정을 해야 합니다.
그것의 순종해야 합니다.
순종까지 가지 않는다면 빌라도와 다를 바 없는 거예요.
무엇이 옳은 줄 알아도, 옳은 대로 선택하고 그 길을 걸어가지 아니한다면,
바로 빌라도와 같은 사람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살아갈 때 이 말씀이 빌라도를 마음에 곰곰이 되새기며,

나는 주님을 향하여 빌라도처럼 되고 있지는 않나?
주의 뜻이 무엇인 줄 알면서도, 무엇이 옳은 줄 알면서도,

사람들의 눈치와 이러저러한 사정과 정황상, 정치적 이유 때문에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잠시 양심을 잠재우고 세속적인 길을 걸어가고 있지는 않나?

자신을 돌아보면서 주의 말씀을 묵상하는 그런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은혜가 하루 종일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을 십자가 처형에 넘겨준 이유는 무엇인가요?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말씀을 주시고 
그 말씀을 깨달을 수 있도록 은혜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가 주의 말씀대로 발걸음을 내어드릴 때
선하신 하나님의 도우심을 날마다 경험하며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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