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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를 드린 헌금, 종말을 대비하는 신앙(누가복음 21:1~9)(20220314)

2022.03.14. | 생명의 삶 | 윤광서 목사                                                                                                         

 

전부를 드린 헌금, 종말을 대비하는 신앙

 

샬롬
영화 교회를 섬기는 윤광서 목사입니다.
오늘도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어떤 사람들이 '영혼이 없이 말한다'라는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말하는 사람의 진심이 느껴지지 않고 그저 모양만 갖춘 말을 일컬을 때 사용하는 것이지요.
이 말이 참 재미있는 것은 사람이 정말 영적인 존재라서 영혼이 담긴 말과 영혼이 담기지 않은 말

즉 진심이 담긴 말과 그렇지 않은 말을 구별한다는 것입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실 땐 어떠실까요?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언행 가운데, 그의 진심이 있는지 혹은 그의 온 마음을 다 하는지 모두 아실 것입니다.
우리의 고백과 찬송이 하나님을 향하여 늘 온 전하도록 우리의 마음의 중심을 담아 주님께 드릴 수 있도록

그리고 그 사랑으로 이웃을 섬길 수 있도록 힘쓰는 귀한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누가복음 21장 1절에서 9절까지의 말씀을 통해

진심을 다하는 믿음의 백성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전부를 드린 헌금, 종말을 대비하는 신앙


누가복음 21장 1절에서 9절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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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수께서 눈을 들어 부자들이 헌금함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
2 또 어떤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 넣는 것을 보시고
3 이르시되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4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5 어떤 사람들이 성전을 가리켜 그 아름다운 돌과 헌물로 꾸민 것을 말하매 예수께서 이르시되

6 너희 보는 이것들이 날이 이르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7 그들이 물어 이르되 선생님이여 그러면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런 일이 일어나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8 이르시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라 하며 때가 가까이 왔다 하겠으나 그들을 따르지 말라
9 난리와 소요의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하지 말라 이 일이 먼저 있어야 하되 끝은 곧 되지 아니하리라


어제 우리가 함께 나눈 누가복음 20장 45절에서 47절까지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서기관들의 외식을 본받지 말라는 경고를 제자들에게 주셨습니다.

이어지는 오늘 본문에서도 이 외식과 진심의 대한 태도에 관한 교훈을 일깨워 주십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헌금함에 봉헌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시게 되었습니다.
그중에는 부자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유난히 눈에 띄었던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가난한 과부였는데, 헌금함에 렙돈 두 개를 넣는 것을 예수님께서 보셨지요.
그때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그보다 앞서 언급했던 부자들의 액수가 얼마였는지 성경은 자세히 전하지 않지만

과부의 헌금은 두 렙돈이라고 정확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두 렙돈이 얼마나 되는 금액이기에 그렇게 말씀하셨을까요?
렙돈은 데나리온의 100분의 1에 해당하는 가치를 가집니다.
데나리온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보통 노동자의 하루 품삯을 가리킵니다.
편의상 하루 일당을 10만 원으로 잡는다면 렙돈 하나는 천 원 정도가 되는 거죠.

그러니 두 렙돈은 약 2,000원 정도 되는 가치를 가진 돈입니다.
부자들이 이보다 더 적게 넣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다른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다고 말씀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4절 말씀을 보면

4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판단 기준은 보통 사람들이 보는 것처럼 외적인 것에 있지 않았습니다.
단지 숫자, 금액의 많고 적음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헌금을 드린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담겼는지를 보신 겁니다.
생활비 전부를 드렸다면, 이 여인은 자신이 먹고살아야 하는 문제에 대한 관심보다 하나님 과의 관계를 더욱 귀하게 생각하고 있음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나의 삶이 내 주머니 속에 돈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나를 먹이시고 돌보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것이지요.

 

여러 유대 문헌을 통해 보면 이스라엘 공동체의 봉헌은 그 금액과 종류가 공개되었다고 전해집니다.
'돈' 인지 '물품' 인지, '수량'이나 '금액'은 얼마인지 다 알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그러다 보니 하나님 앞에 드린다는 의미보다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 것인가에 관심을 두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아마도 자랑스럽게 헌금함 앞에서 섰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았습니다.
자신의 적은 금액을 의식했거나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였다면 어쩌면 성전에 나오지 조차 않았을지 모릅니다.
여인은 오직 하나님 앞에서 내 모든 것이 주님의 것임을 고백하는데만 마음을 두고 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 칭찬을 들은 이유가 아닐까요?
주님은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분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늘 진정으로 점검하고 살펴야 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입니다.

나의 마음이 온전히 하나님만 향하여 있는지,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께 귀한 마음과 정성을 들이기를 기뻐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 것이겠습니다.

 

예수님은 부자들의 헌금과 한 과부의 헌금을 어떻게 평가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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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이 성전을 가리키며 예루살렘 성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찬사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헤롯왕은 성전을 건축하고 있었죠.
헤롯은 기원전 20년에 성전건축에 착수했는데, 그전까지는 바벨론 포로였다가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재건한 소위 스룹바벨 성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성전은 어려운 시기에 지어졌기에 초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헤롯은 이 성전을 유다 백성들에 대한 유화정책(宥和政策)의 일환으로 다시 건축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증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헤롯 성전은 이스라엘 로서는 세 번째 성전이 되는 셈인데,

세부 공사까지 다하면 AD 63년 경우에야 비로소 완성이 되었으니 (공사기간이) 80년이 넘게 걸린 것을 우리가 감안해 본다면 얼마나 크고 웅장하게 지어졌는 지를 짐작할 수 있게 됩니다.

 

이 성전은 아름다운 돌들과 받쳐진 많은 물건들로 지어졌습니다.
값비싼 돌들과 귀한 장식품들이 사용되었을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많은 돈이 들었을 것이고, 재정을 부담할 수 있는 이들은 앞서 두 렙돈을 바친 가난한 과부 같은 이들 이라기보다는 돈이 많은 부자들이 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웅장한 성장을 기대하며 값비싼 아름다운 돌들과 화려한 헌물에만 주목했다면,

실상은 과부의 헌금보다는 부자들의 헌금이 더 모여져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들이 드러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령 어떤 교회가 예배당을 짓는데

'지금 우리가 예배당을 건축하고 주차장도 필요하고 첨단 시설도 설치해야 하는데 

이 모든 일들을 위해서는 부유한 교인들의 헌금이 절실합니다.

가난한 교인들의 헌금만으로 되겠습니까?'
이런 생각이 은연중에 우리 생각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을 해 보아야 할 것이겠습니다.
기왕 성전을 짓는다면 초라하기보다는 크고 웅장하게 정성을 다해 짓는 것이 좋겠지만,

그런 가운데에 과부의 두 렙돈 같은 중심이 담긴 믿음에 봉헌이 적은 것이라는 이유로 소외되지는 않는지 잘 살펴보아야 할 것이겠습니다.

 

이 말을 들으신 예수님께서 6절에서

6 너희 보는 이것들이 날이 이르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했고, 그렇기에 이스라엘 모든 백성의 신앙 중심지였습니다.
이러한 중요성만큼 성전은 크고 화려했으며 누가 보아도 위험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유독 예수님의 눈만큼은 이미 허물어질 것이 명백한 무너져가는 건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그렇게 보셨을까요?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께서는 성전에 들어가셔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9:46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니라

예루살렘 성전은 누가 보아도 화려했지만,
정작 그 안은 외식하는 자들로 그저 자기 욕망을 탐하는 자들로 가득했습니다.
성전의 모습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듯 위험이 있었지만,

정작 그 안에선 어떠한 하나님과의 만남도 그 어떤 영적 교류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성전 안에 온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찾는 하나님께 온 마음 다해 예배하는 자들이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성전을 향해 무너질 것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껍데기만 남은 진정한 예배와 기도가 사라진 성전은 무너질 수밖에 없음을

또한 그러한 신앙도 무너질 수밖에 없음을 경고하시는 것이지요.

 

예수님의 믿을 수 없는 이 예언에 많은 사람들이 놀라고 이내 사람들의 질문이 이어집니다.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는 것입니까? 어떤 징조가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그 질문에 하나하나 대답해 주십니다.
거짓 메시아가 나타나 사람들을 미혹하고 거짓 믿음이 판을 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난리와 소요가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러한 소식에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도 주십니다. 그 이후가 9절 하반 절에 나옵니다.

9 난리와 소요의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하지 말라 이 일이 먼저 있어야 하되 끝은 곧 되지 아니하리라

즉 예수님이 말씀하신 징조들이 나타날 때 그때가 마지막 심판이 가까워진 때이며 그 시기가 지나야 진정한 끝이 올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런 예수님의 예언과 경고는 진정한 신앙을 잃어버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온전히 돌이켜 바른 신앙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결국 심판 가운데에 자신들의 거짓이 다 드러날 것이란 말씀이기도 합니다.

 

오늘 나의 신앙생활을 점검해 보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우리의 신앙은 껍데기만 남아 있는 것은 아닌지,
과연 진짜 믿음, 온 마음을 다하는 신앙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지, 우리의 자신을 겸손히 돌아볼 때입니다.
가진 것이 너무 적었지만 하나님께 온 마음을 드렸던 가난한 과부의 믿음을 기억하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름다운 예루살렘 성전을 두고 사람들 생각과 예수님 생각은 어떻게 달랐나요?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을 기억하기를 원합니다.
외적으로 보이는 것에만 온 신경을 쏟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온 생각을 하나님께 드리는 진정한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를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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