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3.05. | 생명의 삶 | 임채영 목사
3월 5일 토요일입니다.
여러분들에게 토요일은 어떤 의미가 있는 날인가요?
한 주간 동안 있었던 우리의 삶을 돌아보고 주일을 준비하는 날이 된다면, 토요일은 우리에게 아주 귀한 날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도 이 말씀으로 함께하는 귀한 날 될 수 있기를 바라고요.
저는 서울 아연동에 있는 서부 교회를 섬기고 있는 임채영 목사입니다.
오늘 말씀은 누가복음 19장 1절부터 10절까지 입니다.
회개 결단과 삶의 열매는 거듭난 증거입니다
누가복음 19장 1절에서 10절 말씀입니다.
1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더라 2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3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4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6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7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10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
인생을 살 수록 점점 더 만남이 소중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죠.
살아가면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함께 하는 것보다 더 큰 행복은 없을 겁니다.
인생은 만남으로 시작되죠. 그리고 만남으로 성숙되고, 만남으로 인생은 버텨지고, 만남으로 인생은 완성된다.
라고 말해도 과하지 않을 겁니다.
여러분의 인생을 돌아보시면요.
인생의 여정 중에 많은 만남이 있어 왔고, 또 앞으로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중에 최고의 만남은 우리 주님과의 만남 일 겁니다.
오늘 본문도 삭개오라고 하는 사람과 주님과의 만남이 나오죠. 2절을 볼까요?
2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이 사람의 이름은 삭개오예요.
그리고 이어지는 삭개오에 대한 설명이 나와요.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단 한 문장이지만 한 인간에 대해서 정확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에 세리장 그러면 권력과 부의 대명사 하였죠. 그리고 삭개오는 부자였습니다. 돈까지 가지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는 행복했을까?
위로 올라가서 1절을 보시면요.
1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더라
예수에 대한 소문을 듣게 되는데, 그 예수라는 사람이 삭개오가 살고 있는 그 동네를 지나 간다라는 소문을 들었을 때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한 사람이 있었을 겁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기와 함께 세리로 일했었던 레위라고 하는 사람,
그런데 사실은 세리로서 앞날이 보장된 삶을 살고 있었던 그 사람이
어느 날 예수라는 사람을 만났다. 그리고 그의 제자가 되겠다고 사직서를 내던지고 떠난 떠났다는 거예요.
그 소식을 들으면서 삭개오는
'과연 예수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기에 이 자리를 포기하고 가는가? 나도 예수를 따라 가면 다르게 살 수 있을까?'
아마도 그런 생각을 했을 겁니다.
그런데 바로 그 예수 그 사람이 이곳 여리고로 온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갑자기 그의 가슴이 뛰기 시작합니다.
혹시 예수라는 사람을 만나면 내 인생도 행복할 수 있을까?
그래서 그는 예수가 온다는 그곳으로 나가지요.
3절 4절을 보십시오.
3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4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자 이런 갈증을 가지고 삭개오가 예수님을 보려고 나왔어요.
근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미 예수님을 보기 위해 나와 있는 사람들로 인해서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루고 있었어요.
거기다가 삭개오는 키가 작아서 예수님을 볼 수 없었습니다.
여기에서 삭개오의 그다음 모습을 보세요.
돌무화과나무
우리에게는 뽕나무로 더 익숙하죠. 돌무화과나무 위에 올라갑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그 당시에 유명인사였어요. 세리장이에요. 그가 나무에 올라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요즘 같으면 신문에 날 일입니다.
자 삭개오가 드디어 나무 위에 올라갔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보이는 거예요.
그리고 예수님이 오기를 그 위해서 기다립니다.
기다리면서 아마 삭개오는
'예수님이 내 앞을 지나가실 때에 어떻게 불러야 될까?
뭐라고 소리칠까? "다윗의 자손 예수여!" 이렇게 부를까?
아니면 뭐라고 부를까?'
생각하고 있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나무 아래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5절을 보세요.
5 예수께서 그곳에 이르사 쳐다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예수님이 삭개오의 이름을 부르시는 거예요.
'삭개오야 삭개오야'
여러분 아마도 삭개오 에게는요. 엄청난 충격이었을 겁니다.
'저분이 내 이름을 알아? 나는 만나본 적도 없는데, 어떻게 내 이름을 알까? 도대체 저 예수라는 사람은 누굴까?'
자 여러분 지금까지는요
이 이야기가
삭개오라는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뛰어나온 이야기인 줄로 알았어요.
그런데 여기에서 보면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러 나온 이야기가 아니라,
이제는 역전되어서 예수님이 삭개오를 만나러 오신 이야기가 됩니다.
여러분 이것을 기억하세요.
여러분이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 하는 것보다 예수님이 여러분들을 더 만나고 싶어 한다는 그 사실
여러분이 하나님을 더 사랑할까요? 아니면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더 사랑하실까요?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시는 분입니다.
이사야 43장 1절을 보세요.
이사야 43: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우리를 부르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 거예요. 이 부르심이 은혜입니다.
기독교 신앙이 다른 종교와 다른 점이 여기에 있지요.
다른 모든 종교는요. 인간이 신이 되는 겁니다. 인간이 신에게 나오는 겁니다.
그런데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이 인간이 되시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찾아오시는 겁니다.
오늘도 우리들은요.
'내가 하나님께 나왔다'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오시면서 우리를 불러 내신 것 아닐까요?
내가 내 의지로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셨고, 우리는 그 부르심에 응답한 거지요.
자 삭개오도 보세요.
마음의 문을 열고, 자기 가정의 문을 활짝 열고, 이러한 예수님을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이런 고백을 하지요. 8절을 보세요.
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쭈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곱절이나 갚겠나이다
예수님 당시예요
사업 잘하는 사업가가 자기 재산의 한 4분의 1 정도를 사회로 환원하면 '훌륭한 사업가다' 이렇게 평가됩니다.
근데 이 삭개오는 4분의 1이 아니라, 재산의 절반을 주겠다!
여러분 이거 굉장한 변화입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이거예요.
이 사람을 예수님이 앞에 놓고,
'너 재산 절반 나눠 가난한 사람들에게 줘. 그리고 잘못한 게 있으면 4배나 갚아'
이렇게 소위 도덕적인 설교를 한 게 아니라는 겁니다.
'너는 이제부터 착한 사람이 돼야 돼. 그래야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어.'
이렇게 말씀하신 게 아니에요.
그냥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고 나니까 바뀐 거예요.
사랑하는 여러분
기독교는요. 도덕을 포함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요. 단순한 도덕적 종교가 아닙니다.
여러분 그렇다고 오해하지 마세요.
기독교가 도덕과는 관계없는 종교라는 말이 아닙니다.
기독교에는 도덕이 포함됩니다.
그런데 기독교 신앙의 수준은 도덕의 수준이 아니라는 거죠.
기독교의 신앙은 도덕적인 의지나 결단이 아니라.
예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이어지는 9절 보세요
9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 임이로다
여러분 이것은 확실한 선포입니다.
삭개오가 구원을 얻었다는 것.
그래서 그도 혈통이 아니라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선언이죠.
진짜 아브라함 자손은 혈통으로 되는 것 아닙니다.
인간의 힘으로 되는 것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되는 거죠.
그리고 참된 믿음은 삭개오처럼, 그 결과로써 변화된 삶으로 열매를 맺는 겁니다.
이것이 참된 거듭남의 결과죠.
예수님은 바로 이 일을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겁니다.
마지막 10절을 보세요.
10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이것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입니다.
잃어버린 자를 찾아서 구원하시기 위함이에요.
지금도 예수님은요, 이 일을 하기를 원하십니다.
바로 저와 여러분을 통해서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 즉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은 그 일을 하기 원하시는 것 아닐까요?
우리는 단지 그냥 먹고살기 위해서 삶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직장에 있든지 가정에 있든지 교회에 있든지,
우리의 말과 행동과 삶을 통해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가 드러나도록
그래서 그분이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시도록 은혜의 통로가 되어야 되죠.
이것이 예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누리는 삶이 아닐까요?
오늘 하루도 저와 여러분들에게 이 풍성함이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
그동안 우리의 인생의 주인이 우리 자신이었음을 고백합니다.
그래서 너무 힘들었습니다.
이제 그 주인의 자리를 우리 주님께 돌려드립니다.
오셔서 우리의 주인이 되셔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보호해 주시고, 인도해 주셔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이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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