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3.04. | 생명의 삶 | 임채영 목사
오늘 3월에 넷째 날 금요일이네요.
여러분 금요일 하면 무슨 생각이 나십니까?
한국교회는 전통적으로 금요일 그러면 기도하는 날이었죠.
철야하며 기도했던 그때를 기억하며 혹시 오늘 우리는 그 귀한 전통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시 한번 기도의 자리로 돌아오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서울 아현동에 있는 서북 교회에서 사역하고 있는 임채영 목사입니다.
오늘 말씀은요. 누가복음 18장 31절부터 43절까지입니다.
말씀을 깨닫지 못한 제자들, 말씀의 능력을 경험한 맹인
누가복음 18장 31절에서 43절 말씀입니다.
31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선지자들을 통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 32 인자가 이방인들에게 넘겨져 희롱을 당하고 능욕을 당하고 침 뱉음을 당하겠으며 33 그들은 채찍질하고 그를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되 34 제자들이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으니 그 말씀이 감취었으므로 그들이 그 이르신 바를 알지 못하였더라 35 여리고에 가까이 가셨을 때에 한 맹인이 길 가에 앉아 구걸하다가 36 무리가 지나감을 듣고 이 무슨 일이냐고 물은대 37 그들이 나사렛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하니 38 맹인이 외쳐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39 앞서 가는 자들이 그를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40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명하여 데려오라 하셨더니 그가 가까이 오매 물어 이르시되 41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이르되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42 예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매 43 곧 보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를 따르니 백성이 다 이를 보고 하나님을 찬양하니라 |
오늘 우리가 이런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여정에 계십니다.
그 여정에서 자신이 고난받아 죽을 것이고, 3일 만에 부활하실 것이다라고 말씀하시죠.
여러분이 말씀은 제자들에게 처음으로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이번을 포함해서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은 최소 세 번 이상 자신의 십자가와 고난 그리고 부활을 말씀하셨어요.
그런데 이 말씀을 듣는 제자들 여전히 깨닫지 못합니다.
여전히 예수님이 누구인가를 보지 못하고 있는 거예요.
근데 반면에 앞을 보지 못하여 구걸로 연명했었던 여리고의 한 시각장애인
비록 육신의 눈은 멀었지만 예수님의 진 면목을 바라보고 메시아로 믿었던 진짜 비전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
오늘 그 사람의 이야기가 오늘 본문에 펼쳐집니다.
먼저 31절부터 33절까지를 보겠습니다.
31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선지자들을 통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
32 인자가 이방인들에게 넘겨져 희롱을 당하고 능욕을 당하고 침 뱉음을 당하겠으며
33 그들은 채찍질하고 그를 죽일 것이나 그는 삼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되
여러분
제자들 비롯한 유대인들은요 메시아 곧 하나님의 기름 부 음 받는 자가이 땅에 온다면
오늘 압제 받고 있는 우리 민족들의 현실을 뒤엎고
영광스러운 다윗과 솔로몬 시대의 그 영화를 재현할 것이다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들의 메시아에 대한 생각은요.
힘없이 저항하지도 못하고 고난 받는 종과 같은 메시아가 아니라
영광스럽고 열광으로부터 높임을 받는 메시아였어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죽을 것이다.
그리고 3일만에 부활하신다라는 말씀을 몇 번씩이나 거듭해서 설명하셨지만
제자들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미 제자들에게 두 번을 말씀하셨고 그럼에도 알아듣지 못했어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세 번째에도 말씀하시는데 알아듣지 못하는 겁니다.
주님께서 모르셨을까요?
십자가 지시기 전에 10번이 아니라 100번을 말해 줘도 못 알아들을 것이다라고 하는 것을 이미 알고 계셨을 겁니다.
그럼에도 거듭해서 이 고난을 말씀하시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그것은 나중을 위해서입니다.
십자가 고난과 부활 이후에 제자들이 감당해야 될
복음 전도자로서의 사명을 깨닫게 되었을 때, 예수가 누구인지를 알게 되었을 때,
그때 비로소이 모든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깨달아지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으셨기 때문입니다.
메시아에 대한 왜곡된 이해가 제자들을 사로잡고 있었죠.
이와 같이 우리들도 주님과 동행한다고 하면서 주님에 대한,
그 주님의 말씀에 대한 왜곡된 이해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아닐까?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제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가 원하는 가상의 메시아를 만들어 놓고
마치 우리 주님이 거기에 맞춰 주셔야 하는 것처럼 그렇게 신앙생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이해하는 폭이 좁다고 하더라도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늘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뜻을 깨닫기를 기다려 주십니다.
우리의 인생의 여정을 되돌아보면요.
우리 모두의 인생을 놓지 아니하시고, 거듭 말씀해 주시는 우리 주님의 사랑과 은혜가 없었더라면
우리가 이만큼 믿고 주님을 따르는 모양이라도 갖출 수 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런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동시에 주님의 뜻과 상관없는 나의 의와 자의식으로 여전히 깨닫지 못하는 주님의 뜻이 오늘 우리에게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아야 됩니다.
중국 선교회 일생을 바쳤던 허드슨 테일러가 사람들이 물었대요.
'어떻게 그렇게 험한 선교지에서 일생을 행복하게 사역할 수 있었는가? 비결이 무엇입니까?'
라고 물었을 때 그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하지요.
제 헌신과 행복의 비결은 하루를 어떻게 시작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연주자는 음악회가 시작되기 전에 악기를 조율합니다.
음악회가 끝난 후에 조율한다면 어리석은 사람이겠지요.
저는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하나님의 뜻과 맞추는 일부터 시작합니다.
그러면 인생이 행복해집니다.
이처럼 제자들이 깨닫지 못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이제 여리고의 한 시각 장애인이 등장하는데요.
그는 그들이 보지 못했던 것 그들이 듣지 못했던 것들을 듣게 됩니다.
이 사람이 예수님으로부터 고침 받게 되죠.
그런데 제자들과 달리 앞을 보지 못한다는 치명적인 결핍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향한 빛나는 믿음을 보여줍니다.
그는 나사렛 예수를 다윗의 자손이라고 고백하며 간절하게 도움을 간구하죠.
36절부터 38절을 한번 보십시오.
36 무리가 지나감을 듣고 이 무슨 일이냐고 물은대
37 그들이 나사렛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하니
38 맹인이 외쳐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앞이 보이지 않았던 시각장애인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사람들이 지나가는 길가에서 구걸하는 일밖에는 없을 겁니다.
그런데 여리고를지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예수님의 일행으로 거리가 소란스러워지니까.
시각장애인이 예수가 지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소리치는 거예요.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무리들 틈바구니 속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던지 시각장애인의 그 음성
그것이요 웅성웅성되던 무리들의 큰 소문을 뚫고 예수님께 전해집니다.
아마도 그러기 위해서는 악을 쓰며 울부짖으며 소리 낼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요?
39절을 보겠습니다.
39 앞서 가는 자들이 그를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예수님만이 자기에게 참된 구원을 가져다 줄 수 있는 메시아이심을 믿었기 때문에 그가 하나님의 기름 부 음 받은 다윗의
자손인을 믿었기 때문에이 시각 장애인은 온갖 수모를 아랑곳하지 않고 주님을 찾았던 겁니다.
이 시각 장애인은 육신의 눈은 멀어서 아픈 보지 못했지만 믿음의 눈이 밝은 사람이었습니다.
주님이 그의 믿음을 보시죠.
그리고 그의 소원대로 그 눈을 고쳐 주십니다.
41절 42절을 보십시오.
41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이르되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42 예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매
하나님만이 보지 못하는 사람의 눈을 뜨게 하실 수 있습니다.
이 시각장애인의 의심 없는 믿음이 바탕이 되었던 것 간절한 간구 때문에 그는 구원을 얻고 시력을 되찾는 기적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그저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 중에 하나, 선지자, 선생님으로만 알았더라면 경험하지 못했을 기적을 체험한 거죠.
이유는 단 하나이 사람은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으로 알고 있었다는 겁니다.
우리 주님은요.
주님을 구원자로 알고 메시아로 알고 주님이라고 고백하며 간절하게 부르짖는 자기 백성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의 도우심과 함께,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기 위해 주님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주님께서 우리의 삶에 필요한 은총을 베푸셔서 올곧게 주님을 따라서 걸어갈 수 있도록 우리를 인도해 주실 겁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내 삶의 주님이 역사하신 흔적을 보고 모두가 감사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날이 우리에게도 도래하지 않을까요?
43절 마지막 절입니다.
43 곧 보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를 따르니 백성이 다 이를 보고 하나님을 찬양하니라
우리 삶의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헬렌 켈러라고 하는 분 아시죠?
열병으로 생후에 17개월 이후에 보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삼중고를 겪었던 여인
근데 이를 극복하면서 마침내 온 세계에 불우한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의 아이콘이 되었던 그런 삶을 살았던 사람
그는 얘기했어요.
태양을 볼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고 볼 수 없는 사람은 불행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마음입니다.
마음속에 빛을 갖는 겁니다.
힘과 용기를 가지십시오.
가장 불쌍한 사람은 시력이 있지만 비전이 없는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을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눈이 있었지만 보지 못했던 바리새인들,
그런데 눈이 없지만 주님을 보았던 시각장애인
여러분 어떤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까?
우리가 깨닫지 못해도 여전히 말씀해 주시고 그 뜻을 가르쳐 주시는 주님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니 참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아버지의 뜻에 따라 자신의 삶의 길을 조율하시고 그 길을 피하시지 않으시고 걸어가셨던 것처럼
오늘 우리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에 우리의 길을 조율하고 그 길을 따라 걸어가게 하옵소서
육신의 눈은 멀었지만 주님의 진면을 확인할 수 있었던 한 시각장애인의 신앙고백이 우리 것으로 되게 하시고
우리도 우리의 구원자를 온전히 의지하고 그 은혜를 간구하는 심령으로 하루를 살아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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