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2.11. | 생명의 삶 | 김주환 목사
안녕하세요.
허브 교회를 섬기고 있는 김주환 목사입니다.
제가 유학생활을 했었을 때, 친구들이 이사하는 것을 이제 서로 도와주게 되지요.
한 번은 한 친한 미국 친구가 이사하는 것을 도와준 적이 있었습니다.
시험기간이라서 많은 친구들이 오지 못해서 거의 그 친구랑 저하고 둘이서 모든 짐을 옮겼는데요.
제가 그 집을 뭐 워낙 여러 번 방문했었기 때문에 이 친구가 혼자 사는 사람 치고는 꽤 집을 깨끗하게 정돈하면서 살고 있구나 이런 생각을 했었어요.
하지만 이사하는 날 거실에 있던 카펫을 들어 올리는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겉으로는 굉장히 멀쩡해 보였던 카펫 아래는
아... 온갖 머리카락과 벌래 사체들과 정체불명의 이물질들로 가득했기 때문이죠.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바리새인들의 모습이 바로 이 카펫과 비슷합니다.
겉으로 볼 때는 괜찮아요. 그럴듯해 보이지만, 그 속은 상상할 수 없는 더러움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죠.
오늘의 말씀은 누가복음 11장 37절에서 54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위선과 왜곡의 삶에는 긍휼이 없습니다
누가복음 11장 37절에서 54절 말씀입니다.
37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한 바리새인이 자기와 함께 점심 잡수시기를 청하므로 들어가 앉으셨더니 38 잡수시기 전에 손 씻지 아니하심을 그 바리새인이 보고 이상히 여기는지라 39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 40 어리석은 자들아 겉을 만드신 이가 속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41 그러나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이 너희에게 깨끗하리라 42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는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43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을 기뻐하는도다 44 화 있을진저 너희여 너희는 평토장한 무덤 같아서 그 위를 밟는 사람이 알지 못하느니라 45 한 율법교사가 예수께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이렇게 말씀하시니 우리까지 모욕하심이니이다 46 이르시되 화 있을진저 또 너희 율법교사여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너희는 한 손가락도 이 짐에 대지 않는도다 47 화 있을진저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드는도다 그들을 죽인 자도 너희 조상들이로다 48 이와 같이 그들은 죽이고 너희는 무덤을 만드니 너희가 너희 조상의 행한 일에 증인이 되어 옳게 여기는도다 49 그러므로 하나님의 지혜가 일렀으되 내가 선지자와 사도들을 그들에게 보내리니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며 또 박해하리라 하였느니라 50 창세 이후로 흘린 모든 선지자의 피를 이 세대가 담당하되 51 곧 아벨의 피로부터 제단과 성전 사이에서 죽임을 당한 사가랴의 피까지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과연 이 세대가 담당하리라 52 화 있을진저 너희 율법교사여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서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 하시니라 53 거기서 나오실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거세게 달려들어 여러 가지 일을 따져 묻고 54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을 책잡고자 하여 노리고 있더라 |
예수님은 누군가와 식사하는 자리를 일부러 피하신 적이 없으세요.
친구의 초대 일은 예수님을 반대하는 바리새인의 초대 이든, 예수님은 언제나 초대에 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파 사람에 초대를 받아서 가시게 됩니다. 37절, 38절입니다.
37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한 바리새인이 자기와 함께 점심 잡수시기를 청하므로 들어가 앉으셨더니
38 잡수시기 전에 손 씻지 아니하심을 그 바리새인이 보고 이상히 여기는지라
예수님은 바리새파 사람의 초대를 박아서 그가 초대한 장소로 갔습니다.
그리고 식사를 하기 위해서 식탁에 앉으셨어요.
이제 문제는 예수님이 손을 씻지 않은 상태에서 그냥 식탁에 않으셨다는 거예요.
바리새파 사람은 이 장면 보고 놀랍니다.
그리고 오해하지 마세요.
여기서 손 씻는 행위는 위생적인 측면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종교의식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원래 이 제사장들만 씻게 되어 있었어요.
율법에 의하면,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이 재사장들에게 요구되던 것을 이제는 모든 사람들에게 요구하기 시작한 것이죠.
여러분 이게 바로 율법주의입니다.
주님이 나에게 요구하신 것은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요구하는 것,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자주 볼 수 있는 현상이죠?
우리 자신의 삶 속에 이런 모습이 없는지 돌이켜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해야 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또
내가 해서는 안 된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도 하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
우리 안에 있는 이러한 잘못된 율법주의가 뽑혀 나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39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
40 어리석은 자들아 겉을 만드신 이가 속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41 그러나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이 너희에게 깨끗하리라
우리 주님에 의하면 진정한 경건은 종교 성에 있지 않습니다.
관대함에 있는 것이죠.
주님은 결국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종교는 잊으라. 종교 대신 베풀어라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베푸는 것이 진정한 경건이다.
42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는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43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받는 것을 기뻐하는도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가장 잘하는 것을 놓고 책망하고 계세요.
여러분 바리새인들이 제일 잘하는 게 뭘까요?
율법주의에 자들 종교인들이 제일 잘하는 게 뭘까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거는 것이에요.
이들은 드러나는 것에는 목숨을 걸었지만, 영원한 것에는 관심도 없었고 간과했습니다.
그들의 십일조가 잘못됐다는 게 아닙니다. 사랑하지 않는 게 잘못됐다는 것이죠.
하나님을 사랑하면 십일조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십일조를 한다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아니죠.
왜냐하면 사랑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십일조를 드릴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가 모든 헌신이 주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에서 비롯된 진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6절 말씀을 함께 봅니다.
46 이르시되 화 있을진저 또 너희 율법 교사여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너희는 한 손가락도 이 짐에 대지 않는도다
우리 주님은 율법 교사의 잘못을 계속 지적하고 계십니다.
율법주의 자들은 자신도 지기 어려운 짐을 다른 사람들에게 지우고, 자신은 손 끝 하나 까딱하지 않기 때문이죠.
율법주의는 어려운 짐을 지게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어떤 분이시죠? 마태복음 11장 28절에 말씀대로
마태복음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무거운 짐을 덜어 주시고 직접 들어주시는 분입니다.
오늘도 예수님으로 인해서 진정한 쉼과 진정한 평안을 누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목회자로서 점점 더 이런 기도를 많이 하게 됩니다.
'주님 제가 다른 사람들의 어려운 짐을 더 무겁게 하지 않게 도와주세요.'
'자신이 목회자로 부름을 받았다고 해서, 성도들까지 목회자처럼 살도록 요구하는 율법주의에 빠지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우리는 자신이 무거운 짐을 홀로 지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다른 사람들도 다 무거운 짐을 지고 힘겹게 살아가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관대하고 친절을 베풀어야 되는 줄 믿습니다.
52절 말씀입니다.
52 화 있을진저 너희 율법 교사여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서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 하시니라
이 중세시대 때
성경은 설교단에 쇠사슬로 묶여 있었습니다.
성직자 만이 성경의 내용을 읽고 이해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일반인들에게는 접근금지였던 것이죠.
오늘은 성경을 강대상에 묶어 놓는 일은 없습니다.
적어도 제가 알기로는 없는 거 같아요.
그런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마치 성경이 강대상에 묶여 있는 것처럼 성경에 접근하지 않습니다.
성경을 잘 읽지도 않습니다. 이해하지도 못합니다.
그냥 성직자들의 설교를 듣는 것으로 만족하려고 하죠.
여러분 설교를 듣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우리는 매일 말씀을 가까이하면서 살아야 됩니다.
누구나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수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말씀을 가까이하는 사람을 반드시 도와주십니다.
말씀이 우리를 살립니다.
오늘도 말씀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주님
항상 저의 중심을 보고 계시는데
저는 겉모습에 너무 많은 힘을 쏟고 있습니다.
날마다 주의 말씀을 가까이하기 원합니다.
주의 말씀으로 교만과 탐욕으로 탁해진 저의 마음과 영혼을 깨끗하게 씻어 주옵소서
말씀을 통해 임하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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