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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의 반석 위에 인생 집을 세우는 제자 (누가복음 6:39~49)

2022.01.23. | 생명의 삶 | 조호영 목사                                                                                                         

 

순종의 반석 위에 인생 집을 세우는 제자

 

 

안녕하세요.

온누리 교회를 섬기는 조호영 목사입니다.
오늘은 거룩한 주일입니다.
코로나에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예배당에서 그리고 또 영상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모든 성도들에게 큰 은혜와 기쁨이 넘치길 기도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영(靈, Spirit)이십니다.
영신 하나님께 예배할 때 모든 성도들은 성령 안에서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그렇게 영과 지혜로 예배하는 예배자를 찾으십니다.
저와 여러분이 바로 그 한 예배자 되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오늘 말씀은 누가복음 6장 39절에서 49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순종의 반석 위에 인생 집을 세우는 제자


누가복음 6장 39절에서 49절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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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맹인이 맹인을 인도할 수 있느냐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아니하겠느냐
40 제자가 그 선생보다 높지 못하나 무릇 온전하게 된 자는 그 선생과 같으리라

41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2 너는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형제여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할 수 있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라 그 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
43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
44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
45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46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
47 내게 나아와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마다 누구와 같은 것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48 집을 짓되 깊이 파고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과 같으니 큰 물이 나서 탁류가 그 집에 부딪치되 잘 지었기 때문에 능히 요동하지 못하게 하였거니와
49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주추 없이 흙 위에 집 지은 사람과 같으니 탁류가 부딪치매 집이 곧 무너져 파괴됨이 심하니라 하시니라


오늘 평지 설교를 마무리하면서 예수님은 인도자가 눈이 먼 상태에서 다른 사람을 인도함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39절 40절 보겠습니다.

39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맹인이 맹인을 인도할 수 있느냐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아니하겠느냐
40 제자가 그 선생보다 높지 못하나 무릇 온전하게 된 자는 그 선생과 같으리라

예수님이 자신이 눈먼 것을 모른다고 지칭하는 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율법 학자들은 그들의 직임으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을 가르치는 그런 선생의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눈이 멀어지는 것을 알지 못한 채, 다른 사람들을 자신이 가는 길로 가자고 인도한다면, 결국 엉뚱한 길로 가 둘 다 구덩이에 빠지게 된다 말씀하십니다.
이들의 문제는 자신들이 눈이 멀었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자신들도 회계하고, 용서받고, 구원받아야 할 죄인임을 모른다는 것이죠.
자신들이 가르치는 말씀대로 자신들도 살지 못하면서, 자기들은 의롭다고 착각합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형제들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은 이미 의로운 선생이 된 그 위치에 머물러서 쉽게 가르치고 지적하고 판단합니다.
자신은 늘 의롭고 공의롭다고 믿고 자랑하는 사람의 특징은 바로 남을 쉽게 비난하고 그리고 비판하는 것이죠.
그런 바리새인들을 향해 예수님은 '위선자'다라고 말씀하십니다.

 

41절 42절 보겠습니다.

41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2 너는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형제여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할 수 있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라 그 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

참 두려운 말입니다.

왜냐하면 선생 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안 하면 누가 하랴?
내가 교육적으로 가르쳐야지, 심지어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생각하면서 쉽게 정죄하고 비판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모습은 어떠한지를 바라보지 않는다.


어제 QT 말씀에도 이렇게 말씀하셨죠.

누가복음 6:37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나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어떠한가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목사로 또 부모로 교회와 사회의 리더십으로 과연 어떤 마음으로 사람들과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지,

혹시 나는 의롭고 다른 사람들은 다 죄인처럼 정죄하고 있진 않은지, 그렇게 설교하고 있지 않은지,

혹시 엄마로서 자녀들에게 그렇게 다가가고 있진 않은지,

 

먼저 진정한 스승 되신 보해사 성령님에게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님이 내 안에 오셔서 나의 마음과 그 생각을 비춰 주실 때,

나의 눈 안에 있는 들보와 같은 나의 죄와 연약함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진정한 의인, 참 스승 되시는 예수님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이웃을 바라볼 때,

우리는 내 눈에 있는 들보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자신이 죄인 중에 괴수라 자신 안에 숨어 있는 죄와 연약함을 보며 가슴 아파하고 고통했던 것처럼 내 안에 들보와 같은 죄성과 연약함을 먼저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아가 회개하며 나아갈 때, 그때 진정 나의 이웃에 눈에 티를  보는 관점이 달라지고,
그것을 어떻게 도울지를 깨닫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종종 부모들은 아이들의 허물과 실수를 지적하며 훈계와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사랑과 권리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의 눈에서 티를 빼기 위해 비난하고 또 정죄하고 하는 말과 행동으로 그들에게 큰 상처를 주곤 합니다.
그리고 정작 오랜 세월 함께 살면서 그런 부모들 눈에 들어 있는 큰 들보를 본 아이들은 부모를 위선자다 외식하는 자다라고 생각하면서 마음을 닫아버리고 부모를 미워하고 외면하고 떠나는 모습을 종종 봅니다.

 

우린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다시 하나님 안에서 나를 바라보고 혹시 내가 그런 일이 있다면, 자녀들과 또 가족들에게 또 형제들에게 사과하고 용서를 비는 결단도 필요하지 않은가? 묵상해 봅니다.

 

내가 하루하루 쌓아 가는 말과 행실은 결국 어떤 열매를 내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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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종종 누가 어떤 교회 장로에게 사기를 당했더라,

직장에서 자기를 힘들게 하면 괴롭히는 사람이 교회 집사라더라,

또 어떤 교회 목사가 이런 나쁜 짓을 했다더라.
이런 안 좋은 소식을 종종 듣습니다.

 

또 이런 교인들의 모습 때문에 자신은 절대 교회 안 가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게 될 때, 마음이 참 괴롭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예수님 당시도 이렇게 무늬만 성도요. 선한 열매를 맺지 못하는 교인들이 그때도 많았구나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는구나.  46절에 보니까.

46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

물론 여기서는 특별히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대상으로 하신 말씀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면서 자신은 그렇게 살지 않고 자신의 영광과 명예를 위해 살아가는 그런 위선자의 모습을 지적하면서 하신 말씀일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들 가운데서도 말씀만 많이 듣고 은혜는 받았다고 하지만, 정작 그 말씀대로 살고 있지 않은 그 당시에 교인들의 모습을 또 빚 데어 하신 말씀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모습은 그때뿐 아니라 여전히 지금도 우리의 모습 가운데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모습임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을 향하여 그들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말씀하십니다. 48절 49절 보겠습니다.

48 집을 짓되 깊이 파고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과 같으니 큰 물이 나서 탁류가 그 집에 부딪치되 잘 지었기 때문에 능히 요동하지 못하게 하였거니와
49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주추 없이 흙 위에 집 지은 사람과 같으니 탁류가 부딪치매 집이 곧 무너져 파괴됨이 심하니라 하시니라

요즘 우리가 종종 쓰는 말이 있습니다.
'마음은 원이로대 육신이 약하여', 우리는 이 의미를 잘 알고 있습니다.
마음으로, 믿음으로 살고 싶은데 정작 육신이 그것을 잘 따라가지 못한다는 그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말일 것입니다.

 

그러나 종종 우리는 믿음으로 살지 않고 말씀을 그 불순종하는 나를 당연시해가면서 이렇게 말로 핑계를 대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보기도 합니다.

이런 마음은 시작도 하기 전에 이미 결정되었다 생각됩니다.

나는 내 육신이 좋은 대로, 내 상황이 편한 대로, 내 마음이 시키는 대로, 나의 욕망대로, 세상에 가치관대로, 나의 관점대로 살겠다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죠.
이런 모습은 교회를 수십 년 다녀도 절대로 건강한 열매를 삶 가운데 맺을 수가 없습니다.

늘 나에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 이생에 자랑하는 뿌리를 내리고 살면서 주여 주여 하지만,
기초 없이 맨땅에 집을 짓는 것과 같다 말씀하십니다.

이런 사람들은 인생의 어떤 환란이나, 고난이나, 폭풍이 불어오면 전혀 버티지 못하고 즉시 무너져 버리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 두 집의 공통점은요.

평상시 잘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멀쩡하게 둘 다 다 잘 서있는 집 같지만, 어떤 큰 파도나, 풍랑이 일 때면 순간적으로 결과가 다르게 나타납니다.
하나는 굳건하게 서 있고, 다른 하나는 폭삭 무너지는 그 모습,

바로 마지막 날 알곡과 쭉정이가 나뉘는 것 같은 그런 모습입니다.
우리의 믿음 생활도 이와 같다 생각합니다.
말씀을 함께 듣고 예배하며 동일한 모습으로 살아가지만, 삶의 주인인 하나님은 그 안에 선한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은 영광 받으시고,
삶의 주인이 여전히 자기 자신 사람은 악한 본성을 품고 자신을 위해 살아갑니다.


곧 열매 맺는 추수의 계절이 오면, 한 사람은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를 맺을 것이요.

다른 한 사람은 헛된 정욕의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과연 나는 어떤 열매를 맺고 살고 싶은지,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를 누렸던 솔로몬도 헛된 열매를 맺고 다 헛되었다 고백된 것을 기억하면서,

진정 우리 삶의 주인이신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주님 성령의 열매 맺도록 도와주세요'
믿음으로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소망합니다.

 

말씀대로 행하는 삶이 인생의 든든한 기초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더 말씀을 통해 저희들에게 반석 위에 나의 인생을 그 믿음의 집을 지으라고 말씀하시니 감사합니다.
오늘도 말씀 위에 집 짓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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