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1.19. | 생명의 삶 | 윤길중 목사
안녕하세요.
부천 온누리 교회를 섬기는 윤길중 목사입니다.
누가복음을 통해 예수님을 묵상할 수 있는 은혜가 너무나 감사합니다.
예수님은 새로움을 늘 주시는 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새 시대를 여셨고, 새 마음과 새 영으로 충만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을 닮아 갈수록 우리의 속 사람은 날로 새로워지게 됩니다.
오늘도 말씀 묵상을 통해 새 생명의 은혜가 저와 여러분 가운데 임하기를 원합니다.
오늘 나눌 말씀은 누가복음 5장 27절에서 39절 말씀입니다.
죄인을 위한 구주, 새 시대를 여신 예수님
누가복음 5장 27절에서 39절 말씀입니다.
27 그 후에 예수께서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르라 하시니 28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따르니라 29 레위가 예수를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하니 세리와 다른 사람이 많이 함께 앉아 있는지라 30 바리새인과 그들의 서기관들이 그 제자들을 비방하여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3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32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33 그들이 예수께 말하되 요한의 제자는 자주 금식하며 기도하고 바리새인의 제자들도 또한 그리하되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나이다 34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 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너희가 그 손님으로 금식하게 할 수 있느냐 35 그러나 그 날에 이르러 그들이 신랑을 빼앗기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36 또 비유하여 이르시되 새 옷에서 한 조각을 찢어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옷을 찢을 뿐이요 또 새 옷에서 찢은 조각이 낡은 것에 어울리지 아니하리라 37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가 쏟아지고 부대도 못쓰게 되리라 38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 39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 것을 원하는 자가 없나니 이는 묵은 것이 좋다 함이니라 |
예수님이 한 제자를 부르시는 장면입니다. 27절, 28절 말씀입니다.
27 그 후에 예수께서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르라 하시니
28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따르니라
예수님께서 세리라는 직업을 가진 레위를 제자로 부르십니다.
예수님의 제자의 기준은 세상 사람들과 보기에는 달랐습니다. 뛰어난 도덕성이나 재능이나 스펙이 아니었습니다.
오늘 부르신 마태라고도 하는 레위는 오히려 만인의 욕받이였던, 로마정부의 세금징수원 세리였습니다.
예수님은 죄인 세리를 제자로 부르시고 계십니다.
세리에게 특별한게 하나 있다면 부르심에 즉각 응답한 것일 겁니다.
'예수님이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따르니라'라고 했습니다.
비록 욕은 먹었지만 그가 누려왔던 안전과 소유를 버리고 전적으로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은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닙니다.
어떤 선택을 하는데 있어서 우리를 주저하게 만드는 것의 이면에는 늘 금전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더 좋은 집, 더 좋은 차, 더 좋은 교육, 더 좋은 환경에 사는 것을 목표로 삼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신 성도의 목표는 달라야 합니다.
예수님이 나무 좋아서 예수님에 비하니 모든 것이 배설물 같이 여겨지더라 라는 바울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예전에 신학교 때 배운 영성 훈련의 목적이 생각납니다.
부적절한 집착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되는 것, 이것이 영성 훈련의 목적이라고 배웠습니다.
부적절한 집착을 내려 놓아야 그리스도를 온전히 따라갈 수 있습니다.
레위 마테는 예수님과 지인들을 자기 집에 초대에 큰 잔치를 열만큼 부유한 사람입니다. 29절 30절입니다.
29 레위가 예수를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하니 세리와 다른 사람이 많이 함께 앉아 있는지라
30 바리새인과 그들의 서기관들이 그 제자들을 비방하여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예수님은 세리를 차별하지 않으십니다.
그의 부끄러운 과거를 묻지도 않으십니다.
지금 현재 회개하고 돌이켜서 주님을 따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십니다.
하지만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예수님과 제자들을 비방하고 있습니다.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하면서 비난합니다.
죄인과 함께 하는 것은 율법을 어기는 것이고 부정하게 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의로운 분이시고, 부정한 사람이 정결하게 되고 정화를 얻게 되는 것
이것이 예수님과 함께하는 삶의 축복입니다.
우리는 사람에 대해서 호불호가 있습니다.
하지만 신앙이 성숙하면서 그러한 호불호는 옅어지고 희미해져야만 합니다.
내가 생각하는 기준이 주님의 기준이 아니라, 나만의 기준일 수 있다는 것을 돌아봐야 합니다.
사람을 품지 못하는 것은 그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주님의 마음으로 품지 못하는 나의 사랑 없음은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십자가 사랑은 온 인류를 품으시는 사랑이었습니다.
십자가 사랑 없는 비난은 무익합니다.
예수님은 비방하는 자들을 향해 모인 무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1절 32절 말씀입니다.
3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32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가 사람을 어떠한 태도로 대야 하는지, 교회 밖의 사람들에게 어떠한 마음으로 대해야 하는지 잘 알려주고 계십니다.
대체로 우리를 화나게 하고 불편하게 하는 사람들은 연약한 사람들입니다.
또한 어떤 사람은 용서가 필요한 게 아닙니다.
치료가 필요한 사람이 있습니다.
교회 다닌다고 신자임에도 세상 사람보다 더 덕이 되지 못하는 사람들을 적잖이 보셨을 겁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필요한 것이고, 영혼의 치유소인 교회가 필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모두 다소 차이가 있지만 각자가 치유의 여정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나를 품어 주고, 용납해 주는 이가 없었다면 어떻게 이 여정을 잘 걸어올 수 있었겠습니까?
나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 주시는 고마운 교우님 때문에,
계속해서 치유의 은총을 베푸시는 자비로운 주님 때문에,
그 사랑 때문에 오늘 이만큼 은혜로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사랑을 우리 마음에 부어 주셔서 연약한 사람들을 품을 수 있는 넉넉함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이 바라시는 마음은 긍휼 한 마음입니다.
동병상련(同病相憐)의 마음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고,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도록 늘 기도해야 합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또 예수님을 비방합니다. 무엇 때문에 비방하고 있습니까? 33절로 35절 말씀입니다.
33 그들이 예수께 말하되 요한의 제자는 자주 금식하며 기도하고 바리새인의 제자들도 또한 그리하되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나이다
34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 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너희가 그 손님으로 금식하게 할 수 있느냐
35 그러나 그 날에 이르러 그들이 신랑을 빼앗기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이번에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향하여 금식 문제로 비방하고 있습니다.
금욕과 절제를 실천하는 요한의 제자들과 비교하면서 말입니다.
요한의 제자는 자주 금식하는데 왜 너희는 안 하고 있느냐? 이런 비방을 하는 겁니다.
신실한 유대인은 일주일에 두 번 금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때 예수님이 대신 답변을 해주십니다.
예수님 혼인 집 신랑 비유를 하시면서 혼인집에서 금식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예수님이 대신 나서 주셔서 항상 제자들을 보호해 주시는 장면이 너무나 좋습니다.
혼인집 신랑은 예수님 이시고 그의 신부는 바로 성도요 교회입니다.
예수님의 오심은 인생의 잔치가 시작되는 것에 비할 수 있습니다.
잔칫집에는 기쁨과 충만함이 있습니다. 종교적 신앙은 기쁨이 없습니다.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에 금식하는 바리새인들에게는 기쁨이 없습니다.
늘 불평과 짜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늘 사납습니다.
금식을 한다고 금식 안 하는 사람들을 비난하고 정죄하는 우월 의식은, 금식을 안 하느니만 못한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가르쳐 주신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금식은 반듯이 이웃 사랑으로 표현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으로 표현되는 믿음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36절로 39절 말씀이 읽겠습니다.
36 또 비유하여 이르시되 새 옷에서 한 조각을 찢어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옷을 찢을 뿐이요 또 새 옷에서 찢은 조각이 낡은 것에 어울리지 아니하리라
37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가 쏟아지고 부대도 못쓰게 되리라
38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
39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 것을 원하는 자가 없나니 이는 묵은 것이 좋다 함이니라
예수님은 새 시대를 여셨습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전하시는 새로운 방식의 말씀은 새 옷, 새 포도주에 비유하십니다.
새 부대는 새 포도주를 담는 우리의 마음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옛 종교에 머물러 예수님의 새로운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우리 안에 굳어버린 고정관념, 선입견, 편견들이 주님이 주시는 은혜를 가로막아 버립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있는 마음의 묵은땅을 기경하고 새 은혜를 담을 그릇을 준비하는 1월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사랑의 주님
우리의 묵은 마음을 기경해 주옵소서
우리의 왜곡된 마음, 상처 난 마음을 치유해 주옵소서.
옛 자아를 벗어버리고, 새 자아를 입혀 주옵소서.
새 마음과 새 영을 부어 주옵소서 나날이 새로워져 가게 하시고,
주님과 일치를, 주님과 연합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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