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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세주를 품고 드리는 구원의 찬가 (누가복음 1:39~56)

2022.01.04. | 생명의 삶 | 도육환 목사                                                                                                         

 

구세주를 품고 드리는 구원의 찬가

 

할렐루야

온누리 교회를 섬기는 도육환 목사입니다.
여러분은 오페라나 뮤지컬에서 이중창 곧 듀엣을 들어보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독창으로 들려주는 아리아도 좋지만, 아름다운 화음을 이루는 듀엣은 더 풍성하고 감미롭게 들리는 것 같습니다.
오늘 우리는 함께 묵상할 말씀에서 경건한 두 여성의 아름답고 고귀한 이중창 듀엣을 듣게 됩니다.
누가복음 1장 2장에 기록된 5편의 성탄 찬양 중에 오늘 엘리사벳과 마리아의 찬미를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믿음으로 순종한 두 여인의 찬가를 통해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럼 이제 구속사의 무대 위에서 부르는 두 여인의 듀엣을 경청해 봅시다.
오늘 묵상할 본문은 누가복음 1장 39절에서 5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구세주를 품고 드리는 구원의 찬가


누가복음 1장 39절에서 56절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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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이 때에 마리아가 일어나 빨리 산골로 가서 유대 한 동네에 이르러
40 사가랴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문안하니

41 엘리사벳이 마리아가 문안함을 들으매 아이가 복중에서 뛰노는지라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42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43 내 주의 어머니가 내게 나아오니 이 어찌 된 일인가
44 보라 네 문안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릴 때에 아이가 내 복중에서 기쁨으로 뛰놀았도다
45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그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46 마리아가 이르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47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48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49 능하신 이가 큰 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
50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

51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52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53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빈 손으로 보내셨도다
54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
55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영원히 하시리로다 하니라

56 마리아가 석 달쯤 함께 있다가 집으로 돌아가니라


천사 가브리엘로부터 자신이 성령으로 잉태할 것이라는 말씀을 들은 마리아는 지체하지 않고 일어나 유대 산골에 있는 사가랴의 집으로 갔습니다.

마리아는 이스라엘 북쪽에 위치한 갈릴리에 살았고, 사가랴와 엘리사벳의 집은 남쪽 유다 산지에 있었습니다.
족히 사흘 길은 되었을 먼 길이었지만, 말씀이 성취되는 현장을 보고 싶었기에 마리아는 한달음에 달려간 것입니다.
그것은 곧 마리아 자신이 천사에게 들은 잉태 예고를 확정한다는 의미이기도 했습니다.


드디어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아기를 가지게 된 두 여인이 만나게 되었습니다.
41절, 42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41 엘리사벳이 마리아가 문안함을 들으매 아이가 복중에서 뛰노는지라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42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만나 문안인사를 건넬 때, 엘리사벳의 복중에 아기가 뛰어놀았습니다.
일반적으로 아기가 5개월 정도의 태동이 시작되는 것을 생각하면, 그 뛰 논다는 표현이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닐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아기를 갖게 된 엘리사벳은 이 일이 일반적인 태동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사가랴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라고 예고했을 때,

아기는 주 앞에 큰 자가 될 것이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을 것이다라는 사실을 들었기 때문이지요.

 

마리아는 메시아를 막 잉태하였으니 아직 어떤 임신의 표도 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문안인사만 거친 상태입니다.

잉태 사실을 말하기도 전입니다.
그러나 계시와 계시가 연결된 것입니다.

복중에 아기 세례 요한이 본능적으로 반응하며 그리스도를 증거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기가 뛰노는 것을 느낀 엘리사벳도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큰 소리로 노래합니다.

42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요즘 우리가 예배 시간에 우리 성도들을 서로 축복하는 축복송과 같은 것입니다.


과연 마리아는 오고 가는 모든 세대의 여인들 중에 최고의 복을 가진 여인이 되었습니다.
아시지요. 마리아가 복 될 수 있었던 것은, 그 태중에 잉태된 아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아기는 장차 온 세상을 구원하실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이시며, 땅에 있는 자와 땅 아래 있는 자들이 모두 그 이름 앞에 무릎을 꿇게 될 것입니다.
사망과 흑암의 권세 아래, 사망당한 인류의 생명과 소망을 주신 분을 뱃속에 품고 있으니 

어찌 가장 복 받은 여인이란 말이 과장되겠습니까?
무한하신 창조주께서 유한한 피조물 인간의 몸을 빌리 셨을 때 사용된 축복의 통로가 된 것입니다.

 

45절 말씀을 보십시오.

45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그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마리아의 복을 다시 확정합니다.
마리아는 천사 가브리엘에게 이렇게 대답했지요?

누가복음 1:38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주의 말씀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음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말씀을 묵상하다 보면 저와 여러분도 동일하게 복 받은 사람임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성취될 것을 믿고 소망 가운데 살아갑니다.
우리는 매일매일 직면한 상황과 환경만을 보고 판단 내리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 역사하시고 일하시는 하나님의 성실하심, 신뢰하고 있지요.
개인적인 어려움도 팬데믹으로 위축된 세상도, 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다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완전하신 계획을 소망 중에 바라봅시다.
그래서 우리가 복이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거하시니 가상 복 받은 자가 된 것입니다.
시편 115편 15절 말씀으로 축복합니다.

시편 115:15
너희는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 복을 받는 자로다

아멘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서 복 주신 사람들입니다.
그 복을 따라 한해를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믿게 된 일이 내게 가장 큰 복인 이유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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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는 엘리사벳의 노래에 화답하여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통해서 하실 일들을 찬양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마리아 찬가라 부르는 유명한 말씀이지요.

먼저, 마리아는 자신에게 행하신 하나님의 큰 일을 찬양합니다.

 

46절에서 50절 말씀 읽어보겠습니다.

46 마리아가 이르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47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48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49 능하신 이가 큰 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
50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

아멘


마리아는 작은 동내 나사렛에 아무런 사회적 위치도 갖지 못한 어린 소녀, 자신에게 임하신 하나님의 크신 일과 긍휼 하심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구원하실 메시아를 처녀인 자신의 몸에 잉태하게 하셨습니다.
경이로운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그 메시아로 인해 만세에 복이 있는 여인이 되었습니다.
어찌 찬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내 영혼이 주를 찾아가며 내 마음이 내 하나님 구주를 기뻐한다.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전에 아이를 갖지 못하던 여인 한나가 그 아들 사무엘을 얻고 찬미하던 바로 그 노래 가사와 비슷합니다.
상황과 배경은 다르지만 하나님의 긍휼을 경험한 모든 사람들의 고백이기도 하지요.


저와 여러분 어떻습니까?
우리도 이렇게 찬양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요?
영원히 저주받을 수밖에 없는 죄인을 하나님의 아들이 찾아오셨습니다.

70억에 인류가 살고 있지만, 우리를 창세전에 택하시고 너는 내 것이라 구별하여 주님의 백성 삼아 주셨습니다.
우리의 생을 가치 있게 하셨고, 육체의 정욕을 따라 살다가 죽을 헛 된 인생이 아니라 영원한 나라, 변치 않는 진리를 붙들고 살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삶의 참 이유와 가치를 깨닫게 해 주셨지요.

마리아가 불렀던 것처럼 우리도 그녀와 함께 합창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하나님 한 분만 기뻐합니다.
묵상할수록 우리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울려 나는 찬양이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마리아의 찬양이 위대한 이유로 무엇입니까?
장차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을 예언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51절에서 53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51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52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53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빈 손으로 보내셨도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그의 팔로 힘을 보이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병든 자를 치유하시고, 귀신을 쫓아내셨고, 죽은 자를 살렸습니다.
보리떡 다섯으로 주린 군중들을 다 배불리 먹이셨습니다.

풍랑이 이는 파도를 말씀으로 잠잠케 하셨습니다.
그의 팔에 능력이 드러났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어지는 말씀을 보십시오.
우리 주님이 교만한 자를 흩으시고, 권세 있는 자를 내리 치시며, 부자를 빈손으로 보내신 적이 있습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리스도는 사회적 혁명을 주도하신 분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마리아가 참여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리스도는 그 겸손함으로 이 땅에 교만을 물리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동일한 분이셨으나,
자기를 비워 종의 모양을 입으셨고, 사람의 몸을 입으셔서, 죽기까지 자신을 복종시켜 주셨습니다.
주님의 겸손으로 이 땅의 교만한 자를 부끄럽게 하셨습니다.
마구간 말 구유 위에 탄생하셨고, 머리 둘 곳조차 없는 삶을 사셨으며, 죄인들과 함께 가난한 자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닦으시고 자기 사람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먼저 된 자가 나중 된다 하셨고, 자기를 높이는 자가 낮아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것 위에 뛰어나신 분이셨으나, 철저히 자신을 낮추심으로 선으로 악을 이기셨습니다.
힘으로 제압하고 꺾으신 것이 아니라, 사랑의 법으로 감화시키셨고, 스스로 변화되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방법입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우리는 그 주님을 찬양하며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들입니다.
더 겸손하고 사랑으로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쉽진 않지만 우리에게 주신 이 아름다운 제자도를 따라.

우리에게 주신 이 복음으로 조용히 녹아지고 불살라져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소금과 빛으로 살아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리아는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어떻게 노래했나요?

 

존귀하신 하나님
우리에게 겸손과 사랑의 본을 끼쳐 주신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주의 제자 된 저희들이 소금과 빛으로 주님의 뒤를 따라
세상을 새롭게 하는 일에 쓰임 받는 신실한 종들로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귀하신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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