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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의 특성이 말해 주는 창조 세계의 다채로움 (욥기 39:5~30)

2021.12.26. | 생명의 삶 | 이해영 목사                                                                                                         

 

동물의 특성이 말해 주는 창조 세계의 다채로움

 

 

안녕하세요.

온누리교회의 남양주 캠퍼스를 섬기는 이혜영 목사입니다.
2021년 마지막 주일이 되었습니다.

오늘 예배를 통해 처음과 마지막 되신 우리 하나님을 마음껏 예배하고 감사드리기 원합니다.


지금 전 세계가 고통하고 있는 이 펜데믹은 결국 인간 중심주의가 불러온 병들어 버린 자연의 역공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은 철저히 자기 중심적 이라고 말할 수 있고, 교만하고 오만한 태도를 버리고 다시 하나님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 욥기 39장 5절에서 30절을 통해 하나님의 눈으로 온 세상과 또 인생을 바라보는 귀한 안목을 갖는 오늘 이 하루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동물의 특성이 말해 주는 창조 세계의 다채로움


욥기 39장 5절에서 30절 말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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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누가 들나귀를 놓아 자유롭게 하였느냐 누가 빠른 나귀의 매인 것을 풀었느냐

6 내가 들을 그것의 집으로, 소금 땅을 그것이 사는 처소로 삼았느니라
7 들나귀는 성읍에서 지껄이는 소리를 비웃나니 나귀 치는 사람이 지르는 소리는 그것에게 들리지 아니하며
8 초장 언덕으로 두루 다니며 여러 가지 푸른 풀을 찾느니라
9 들소가 어찌 기꺼이 너를 위하여 일하겠으며 네 외양간에 머물겠느냐
10 네가 능히 줄로 매어 들소가 이랑을 갈게 하겠느냐 그것이 어찌 골짜기에서 너를 따라 써레를 끌겠느냐

11 그것이 힘이 세다고 네가 그것을 의지하겠느냐 네 수고를 그것에게 맡기겠느냐
12 그것이 네 곡식을 집으로 실어 오며 네 타작 마당에 곡식 모으기를 그것에게 의탁하겠느냐
13 타조는 즐거이 날개를 치나 학의 깃털과 날개 같겠느냐
14 그것이 알을 땅에 버려두어 흙에서 더워지게 하고
15 발에 깨어질 것이나 들짐승에게 밟힐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16 그 새끼에게 모질게 대함이 제 새끼가 아닌 것처럼 하며 그 고생한 것이 헛되게 될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나니
17 이는 하나님이 지혜를 베풀지 아니하셨고 총명을 주지 아니함이라
18 그러나 그것이 몸을 떨쳐 뛰어갈 때에는 말과 그 위에 탄 자를 우습게 여기느니라
19 말의 힘을 네가 주었느냐 그 목에 흩날리는 갈기를 네가 입혔느냐
20 네가 그것으로 메뚜기처럼 뛰게 하였느냐 그 위엄스러운 콧소리가 두려우니라

21 그것이 골짜기에서 발굽질하고 힘 있음을 기뻐하며 앞으로 나아가서 군사들을 맞되
22 두려움을 모르고 겁내지 아니하며 칼을 대할지라도 물러나지 아니하니
23 그의 머리 위에서는 화살통과 빛나는 창과 투창이 번쩍이며
24 땅을 삼킬 듯이 맹렬히 성내며 나팔 소리에 머물러 서지 아니하고
25 나팔 소리가 날 때마다 힝힝 울며 멀리서 싸움 냄새를 맡고 지휘관들의 호령과 외치는 소리를 듣느니라

26 매가 떠올라서 날개를 펼쳐 남쪽으로 향하는 것이 어찌 네 지혜로 말미암음이냐
27 독수리가 공중에 떠서 높은 곳에 보금자리를 만드는 것이 어찌 네 명령을 따름이냐
28 그것이 낭떠러지에 집을 지으며 뾰족한 바위 끝이나 험준한 데 살며
29 거기서 먹이를 살피나니 그 눈이 멀리 봄이며
30 그 새끼들도 피를 빠나니 시체가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있느니라


욥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열 가지 동물들을 제시하시면서 말씀하십니다.
본문은 다섯 번째 동물부터 열 번째 동물까지 여섯 가지의 동물들을 제시하시는데요.
먼저 들나귀와 들소는 인간이 살 수 없는 그런 초원 지대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동물들의 초점을 맞추어서 그들의 삶을 조명하고 계십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길들여지지 않는, 그래서 사람들이 다를 수 없다는 특징을 갖습니다. 5절 과 6절을 읽어봅니다.

5 누가 들나귀를 놓아 자유롭게 하였느냐 누가 빠른 나귀의 매인 것을 풀었느냐
6 내가 들을 그것의 집으로, 소금 땅을 그것이 사는 처소로 삼았느니라

들나귀는 집에서 키우는 일반 나귀와 달라서 길들일 수가 없다 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데요.
왜 어떤 나귀는 길들일 수 있는 것이고, 또 어떤 나귀는 길들일 수 없는 들나귀가 되는 것일까요?

또 들나귀는 사람들이 살 수 없는 들이나 소금기 있는 광야를 서식처로 삼고 살아갑니다.
왜 그들은 다른 일반 나귀들처럼 조금 더 나은 환경에서 살지 못하는 것일까요?

환경에 적응한 그들의 진화론적인 발달이 아니라, 그들에게 그러한 생존의 습성이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들나귀를 자유롭게 놓아주셨기 때문인 것이고, 척박한 곳을 그들의 처소로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9절과 10절 도 읽어봅니다.

9 들소가 어찌 기꺼이 너를 위하여 일하겠으며 네 외양간에 머물겠느냐
10 네가 능히 줄로 매어 들소가 이랑을 갈게 하겠느냐 그것이 어찌 골짜기에서 너를 따라 써레를 끌겠느냐

들소는 힘이 매우 강한 그런 짐승입니다.
그러나 힘이 세다고 해서 들소를 가져다가 밭을 갈게 한다던지, 추수한 곡식 단을 실어서 그렇게 인간의 도움이 되게 할 수는 없다 라는 면을 하나님이 말씀하실 것입니다.
들소들은 그렇게 할 수 없는 짐승입니다.


하나님은 왜 사람이 들나귀에 빠른 발과 또 들소에 강한 힘을 사용할 수 없게 만드시는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그렇게 지으셔서 때문입니다.
우리가 왜 그것을 그렇게 지었느냐라고 항변할 수 없는 것이겠죠.
이것이 곧 하나님의 자유, 하나님의 섭리의 영역입니다.
그러니 욥은 인간의 자기중심적인 관점에서 자연이나 세상 그리고 자신의 삶을 보아서는 안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시선으로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너무나도 다른 특성을 지닌 수많은 동물을 지으신 하나님은 어떤 분 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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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하나님은 타조를 말씀하십니다.
타조는 사람이 보기에 참 이상한 동물이지요.
그래서 동물의 왕국과 같은 프로그램에서 매우 인기 있는 그런 짐승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다.

큰 날개가 있으면서도 날지를 못하지요.

또 다른 새들처럼 둥지를 만들어서 알을 품지도 않습니다.

그저 땅에 묻어서 뜨거운 땅 지열로 부활을 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새끼에 대해서도 무척 무관심 하지요. 자기 새끼가 아닌 듯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17절을 읽어보겠습니다.

17 이는 하나님이 지혜를 베풀지 아니하셨고 총명을 주지 아니함이라

하나님이 그런 지혜와 총명을 주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타조에게 실수하신 것일까요? 아니면 타조 만들기를 실패하신 것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겠지요.


타조에 이어서 하나님은 을 제시하십니다.

하나님은 에게 아주 강한 힘과 멋진 갈기를 주셨죠.
은 명령이 떨어지면 주점 없이 적진으로 돌진합니다.

화살이 날라 오든지 창이 날아오던지 멈추지 않고 아주 맹렬하게 달려가는 속성을 갖고 있습니다.
은 가축으로 쓰임새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전투가 벌어지는 전쟁터에서는 때로 사람보다도 더 귀한 것이 말입니다.
하나님은 말을 그렇게 지으셨습니다.


또 이어서 하나님은 를 말씀하십니다.
는 힘차게 떠올라서 날개를 펼쳐서 바람을 이용하는 그런 아주 멋진 비행을 보여주는 그런 새입니다.
가 어떻게 바람을 이용하는 지혜를 가질 수 있었을까요?

욥은 과연 그런 지혜를 매에게 가르쳐 줄 수 있는 것일까요?
결코 그럴 수 없을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독수리를 들어서 말씀하십니다.
독수리는 하늘을 높이 날면서 높은 곳에 둥지를 만듭니다.
'새들의 제왕'이라고 말할 수 있는 정말 멋진 그런 맹금류이지요.
멀리서도 먹잇감을 볼 수 있는 아주 뛰어난 시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독수리는 이상하게 사체를 먹는 특징이 있습니다. 30절입니다.

30 그 새끼들도 피를 빠나니 시체가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있느니라

매우 기이한 말씀이기도 한 너무나도 멋지고 그리고 너무나도 강력한 새 들 중에서도 제왕이라고 할 수 있는 독수리는 왜? 시체가 있는 곳에, 왜? 피를 빠는 그러한 속성을 갖게 되는 것일까요?
오직 하나님께서 독수리를 그렇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또 이렇게 다스리시는 이 세상은 사람의 생각, 사람의 필요 또는 사람의 기준에 의해서 좌우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라는 사실을 우리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열 가지의 동물들을 통해 이해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과 친밀하지 않은 이 열가지 동물들을 소환하셔서 인간과 인간의 삶의 방식과는 전혀 다르지만 나름대로의 질서와 규칙으로서 살아가는 그들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욥은 자신의 생각과 안목으로 세상과 자연을 이해할 것이 아니라 더 넓게 하나님의 창조자의 안목을 가지고 바라보아야 할 것을 요구하신 것이죠.

 

우리에게도 필요합니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하나님께서 모든 만물을 주관하고 계시는 그런 시각을 갖고 세상을 바라볼 때 인간 중심적인 생각과 이기적인 마음의 태도를 벗어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생각과 시선으로 온 세상을 다시 볼 수 있는 눈이 생겨 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창조 세게에서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 왜 중요할까요?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삶과는 너무나도 이질적인 그러한 세계마저
하나님께서 기르시고 다스리시고 사랑하시고 조성하시는 놀라운 하나님의 신비를 보았습니다.
우리의 삶의 부정적인 측면일지라도,
또 우리의 생활과는 동떨어져 있을 그러한 환경일 지라도
우리가 낙망하거나 원망치 아니하고,
하나님의 마음과 시선으로 온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그러한 마음과 눈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기적인 태도를 버리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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