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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적 깨달음에 그친 창조주의 위대하심 (욥기 36:16~33)

2021.12.18. | 생명의 삶 | 윤광서 목사                                                                                                         

 

교육적 깨달음에 그친 창조주의 위대하심

 

평안하십니까?
영화 교회 윤광서 목사입니다.
어느덧 성탄절이 한 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모두가 설레는 마음으로 성탄절을 기다리는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오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예수님이 오신 목적이고, 이유가 되십니다.
비록 세상은 얘기치 못했던 감염병으로 답답하고 근심 어린 이야기 속에 둘러싸여 있지만 

진리의 생명이신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안과 기쁨으로 모든 상황을 넉넉히 이기 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과 함께 승리하는 복된 날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은 어제에 이어서 욥기 36장 16절에서 33절까지의 말씀을 묵상하겠습니다.

 

 

 

교육적 깨달음에 그친 창조주의 위대하심


욥기 36장 16절에서 33절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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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대를 환난에서 이끌어 내사 좁지 않고 넉넉한 곳으로 옮기려 하셨은즉 무릇 그대의 상에는 기름진 것이 놓이리라
17 이제는 악인의 받을 벌이 그대에게 가득하였고 심판과 정의가 그대를 잡았나니
18 그대는 분노하지 않도록 조심하며 많은 뇌물이 그대를 그릇된 길로 가게 할까 조심하라
19 그대의 부르짖음이나 그대의 능력이 어찌 능히 그대가 곤고한 가운데에서 그대를 유익하게 하겠느냐
20 그대는 밤을 사모하지 말라 인생들이 밤에 그들이 있는 곳에서 끌려 가리라

21 삼가 악으로 치우치지 말라 그대가 환난보다 이것을 택하였느니라
22 하나님은 그의 권능으로 높이 계시나니 누가 그같이 교훈을 베풀겠느냐
23 누가 그를 위하여 그의 길을 정하였느냐 누가 말하기를 주께서 불의를 행하셨나이다 할 수 있으랴
24 그대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기억하고 높이라 잊지 말지니라 인생이 그의 일을 찬송하였느니라
25 그의 일을 모든 사람이 우러러보나니 먼 데서도 보느니라

26 하나님은 높으시니 우리가 그를 알 수 없고 그의 햇수를 헤아릴 수 없느니라
27 그가 물방울을 가늘게 하시며 빗방울이 증발하여 안개가 되게 하시도다
28 그것이 구름에서 내려 많은 사람에게 쏟아지느니라
29 겹겹이 쌓인 구름과 그의 장막의 우렛소리를 누가 능히 깨달으랴
30 보라 그가 번갯불을 자기의 사면에 펼치시며 바다 밑까지 비치시고

31 이런 것들로 만민을 심판하시며 음식을 풍성하게 주시느니라
32 그가 번갯불을 손바닥 안에 넣으시고 그가 번갯불을 명령하사 과녁을 치시도다
33 그의 우레가 다가오는 풍우를 알려 주니 가축들도 그 다가옴을 아느니라


엘리후이 하나님의 교훈과 책망을 받아들일 때 얻게 될 나중에 회복에 대해 언급을 합니다. 16절을 보면

16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대를 환난에서 이끌어 내사 좁지 않고 넉넉한 곳으로 옮기려 하셨은즉 무릇 그대의 상에는 기름진 것이 놓이리라

고 말합니다. 그렇다고 엘리후가 단순한 의 해피엔딩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전에 우리가 함께 생각해야 할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우선 고난의 상황이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 가운데 있음을 분명히 인정하는 것입니다.
의 고난도 당연히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어우러진 일입니다.
이건 친구들이건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하나님의 다스리심과 인도하심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무지와
어리석음의 결과입니다.

 

또한, 좁지 않고 넉넉한 곳이라는 말과 상에 놓인 기름진 것이라고 하는 표현처럼,

물질적이고 실제적인 충족이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보상하시는 결론일 것이라고 생각해서도 안됩니다.
물질적인 것은 부차적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궁극적으로 허락하시는 복은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를 회복하고, 더욱 신실하게 주님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며, 그 은혜를 주시고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로 날마다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엘리후는 나중을 말하면서 이 악인에게 임할 심판을 받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 심판과 형벌을 면할 길은 없다고도 말합니다.
의 고난을 보는 엘리후의 시각을 다시 한번 우리는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엘리후에게 이르기를 뇌물을 받쳐서 용서받을 생각은 아예 하지 말라고 권고하기까지 합니다.

18 그대는 분노하지 않도록 조심하며 많은 뇌물이 그대를 그릇된 길로 가게 할까 조심하라

그렇게 용서받는 것은 돈으로 될 일이 아니라는 말이죠.


엘리후에 언급이 하나님의 뜻에 완벽하게 근거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가 말하는 죄와 형벌 그리고 용서와 은혜에 가치관은 오직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하려는 간절한 열망으로 일관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용서는 재물로도 권력으로도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이 지난다고 해결될 문제 또한 아닙니다.
세상에서 흔히 기대하고 예상하는 것들과는 분명히 다른 것 아닙니까?
우리는 물질만능주의 세상을 살면서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합니다.
지식도, 권력도 심지어 하나님이 주신 사명과 능력도 세상의 재물을 얻을 가능성과 수단으로 환산합니다.
마침내 하나님의 복과 구원도 그런 방법으로 얻으려는 생각을 한다면,

하나님의 공의와 은혜에 대한 결정적인 무지를 드러내는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엘리후에게 그가 겪는 고난으로 인하여 악한 마음을 품지 않도록 권면합니다.
어려운 중에 주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인생은 약해지고 악해집니다.
하나님께서 을 붙들고 계시기에 이 겪고 있는 고통이 오히려 죄악의 길로 빠지지 않게 하는 은혜임을 말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큰지, 그 은혜로 우리 모두를 이끌고 계시며 누구도 잘못을 지적할 일이 없는 온전한
통치자가 되심을 강조합니다.

더러 상황과 형편에 불만을 가질 때 '주님께서 내게 왜 이러실까?' 항변하는 어리석은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볼 때가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그런 비난을 받으실 분이 아닙니다. 상황으로 인해 주님을 오해하지 않도록 하십시오.
어떠한 형편 속에서도 주님을 신뢰할 수 있는 비결은 늘 그분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내가 처한 상황과는 다른 교훈적 충고를 들을 때 어떤 마음이 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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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후는 창조주 하나님의 크고 위대하심을 다시금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기억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마땅히 은혜를 누릴 출발점이 됩니다.
엘리후는 또한 하나님은 옳지 못한 일을 하셨다는 지적을 받을 이유가 없는 분이심을 분명히 말합니다.
틀림이 없으시고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이 하신 일은 모든 사람에게 찬송을 받으실 만한 것임을 깨우쳐 줍니다.
하나님의 창조주 되심과 실수와 잘못이 없으시다는 점을 바르게 기억하면, 당연히 영광과 찬송을 받으실 분 이심을 우리도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높은 산에 올라 보셨습니까?
드넓은 벌판에 서 보셨습니까?
광활한 대자연 앞에서 창조주 하나님을 경험해 보셨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위대 하시고 놀라운 은혜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 임을 깨달을 때 우리는 찬송을 올리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엘리후는 27절에서부터 몇 가지 자연현상을 예로 들면서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인간의 무지함을 대조합니다.

27 그가 물방울을 가늘게 하시며 빗방울이 증발하여 안개가 되게 하시도다
28 그것이 구름에서 내려 많은 사람에게 쏟아지느니라
29 겹겹이 쌓인 구름과 그의 장막의 우렛소리를 누가 능히 깨달으랴

그렇습니다.

비가 내리고 그 피가 땅을 적시다가 다시 증발하고 구름에 맺혔다가 다시 비로 내리는 물의 순환도

주님이 아니면 누가 할 수 있으며, 그 오묘한 자연현상을 누가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구름을 어떻게 펴시는지 하늘에서 나는 천둥소리가 어떻게 생기는지 아무도 모르는 겁니다.


그러고 보면 유고한 세월 속에 과학자들이 밝혀 놓은 몇 가지 지식을 보며 대단한 발견이라 말하기도 합니다만,
다 밝히지 못하는 비밀은 또 얼마나 많으며, 하나님의 높고 위대하심은 실로 얼마나 대단한지 우리는 짐작조차 다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번개가 칠 때 온 하늘로 그 빛이 보내지게 하시고,
바다 밑 깊은 곳은 한없는 어둠 속에서도 그 나름의 생명의 원리를 갖게 하십니다.


어리석은 인간의 지혜와 지식으로는 아무리 생각해도 설명할 수 없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거듭 생각하게 합니다.
자연은 하나님을 배우는 소중한 학습장입니다.
인간의 무지와 어리석음을 깨닫는 가장 좋은 교실입니다.


엘리후는 자연을 통하여 하나님을 나타내고자 애를 씁니다.
창조의 은혜와 인간의 무지를 일러 주는 것은 물론이요.
하나님의 통치와 심판의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자연현상으로 하나님을 증거 하는 엘리후에 언급은 마치 38장에서 시작하는 욥을 향한 하나님의 질문과 비슷합니다.

 

하지만 질문에 담긴 의도는 다릅니다.

하나님은 질문을 통해 하나님의 일도 알 수 없는 인간이 자신에 대한 일을 알고자 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지를 들어내십니다.
반면에 엘리후는 단지 모든 자연 만물을 다스리시는 크신 하나님 앞에 자신의 약함을 인정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엘리후의 말처럼 안개와 비가 내리는 모든 일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며 구름과 우레 소리와 번갯불도 하나님이 하시는 일임을 인정하는 것이 하나님을 높이는 일일까요?
하나님께서는 자연현상을 통해 단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입증하시거나 이점을 사람들로 하여금 인정하라고 요구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자기 기분을 위해 비가 왔으면 좋겠다고도 말하고, 안전의 욕구로 인해 지진이 없으면 좋겠다고도 말하지만 어느새 자연을 통해 일 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기보다는, 그 가운데에서도 내가 주인 되려는 속내를 드러내고 마는 것입니다.
모든 환경과 형편을 통해 주님은 일하십니다.
전심으로 신뢰하고 의지하며 우리를 인도하시는 주님을 찬양하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교육적 의도로만 전하는 말에는 어떤 한계가 있을까요?

 

하나님 아버지
모든 자연현상과 환경도 주님의 것임을 찬양합니다.
주님의 뜻과 일하시는 모든 것이 언제나 옳음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저희의 어리석음으로 깨닫지 못하는 매 순간에 삶에서
오직 주님의 전능하심을 믿고 순종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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