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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과 질병을 통한 경고, 구원의 길로 이끄시는 사랑 (욥기 33:14~33)

2021.12.13. | 생명의 삶 | 윤광서 목사                                                                                                         

 

환상과 질병을 통한 경고, 구원의 길로 이끄시는 사랑

 

평안하십니까?

영화 교회 윤광서 목사입니다.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은 무려 12년 동안 미국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지도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소아마비로 제대로 걸을 수 없는 절망을 겪기도 했습니다.
실의와 좌절에 빠질 때마다 그는 기도했고,

그때마다 주님은 찬란하게 떠오르는 태양으로, 때로는 푸른 새싹으로, 혹은 뛰어넘는 어린아이들의 모습으로 그에게 새로운 생명력을 깨닫게 하셨다고 그는 회고합니다.

그렇습니다.
같은 모습을 보아도 깨닫지 못하던 것을 깨닫게 하시는 것이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보여주시고 알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올라서 깨달아 그 은혜를 말씀 가운데에 누리시기를 빕니다.

오늘은 욥기 33장 14절로부터 33절까지의 말씀을 함께 묵상하겠습니다.

 

 

환상과 질병을 통한 경고, 구원의 길로 이끄시는 사랑


욥기 33장 14절에서 33절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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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하나님은 한 번 말씀하시고 다시 말씀하시되 사람은 관심이 없도다
15 사람이 침상에서 졸며 깊이 잠들 때에나 꿈에나 밤에 환상을 볼 때에

16 그가 사람의 귀를 여시고 경고로써 두렵게 하시니
17 이는 사람에게 그의 행실을 버리게 하려 하심이며 사람의 교만을 막으려 하심이라
18 그는 사람의 혼을 구덩이에 빠지지 않게 하시며 그 생명을 칼에 맞아 멸망하지 않게 하시느니라
19 혹은 사람이 병상의 고통과 뼈가 늘 쑤심의 징계를 받나니
20 그의 생명은 음식을 싫어하고 그의 마음은 별미를 싫어하며

21 그의 살은 파리하여 보이지 아니하고 보이지 않던 뼈가 드러나서
22 그의 마음은 구덩이에, 그의 생명은 멸하는 자에게 가까워지느니라
23 만일 일천 천사 가운데 하나가 그 사람의 중보자로 함께 있어서 그의 정당함을 보일진대
24 하나님이 그 사람을 불쌍히 여기사 그를 건져서 구덩이에 내려가지 않게 하라 내가 대속물을 얻었다 하시리라
25 그런즉 그의 살이 청년보다 부드러워지며 젊음을 회복하리라

26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므로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사 그로 말미암아 기뻐 외치며 하나님의 얼굴을 보게 하시고 사람에게 그의 공의를 회복시키시느니라
27 그가 사람 앞에서 노래하여 이르기를 내가 범죄하여 옳은 것을 그르쳤으나 내게 무익하였구나
28 하나님이 내 영혼을 건지사 구덩이에 내려가지 않게 하셨으니 내 생명이 빛을 보겠구나 하리라
29 실로 하나님이 사람에게 이 모든 일을 재삼 행하심은
30 그들의 영혼을 구덩이에서 이끌어 생명의 빛을 그들에게 비추려 하심이니라

31 욥이여 내 말을 귀담아 들으라 잠잠하라 내가 말하리라
32 만일 할 말이 있거든 대답하라 내가 기쁜 마음으로 그대를 의롭다 하리니 그대는 말하라
33 만일 없으면 내 말을 들으라 잠잠하라 내가 지혜로 그대를 가르치리라


엘리후는 앞선 13절에서 욥에게 하나님께서 사람의 말에 대답하지 않으신다 하여 어찌 하나님과 논쟁하겠느냐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욥기 33:13
하나님께서 사람의 말에 대답하지 않으신다 하여 어찌 하나님과 논쟁하겠느냐

엘리후는 욥이 하나님과 논쟁하려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친히 하시는 일에 대하여 스스로 다 일러 주시지 않았다는 욥의 주장이 잘못되었기 때문이죠.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하시는 모든 일에 대하여 일일이 다 알려 주셔야 할 책임이 없다는 뜻도 담겨 있습니다.
그러므로 욥이 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그런 고통을 주시고 고난을 당하게 아시는 가에 대해 따진다거나 변론하려는 것은 옳지 않은 점 임을 분명히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알게 해 주실 때에 얻는 은혜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피조물인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복은 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것입니다.
반대로 그 뜻을 알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것처럼 불행한 것은 없습니다.


너무나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당신의 뜻을 알 수 있도록 은혜를 베푸신다는 사실입니다.
그것도 어리석은 인생이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말씀하시고 또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인생은 그러한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사랑에 도무지 관심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깨어 있을 때에는 환상을 통해 그 뜻을 보여 주시고, 또 깊은 밤에는 꿈을 통해서도 일러주십니다.
주님의 메시지를 알아들을 수 있도록 분명하게 역사하시고 두려울 정도로 선명하게 계시하십니다.

 

그렇게 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저마다 자기 마음대로 행하던 인생들을 돌이켜 주님 뜻에 합당하게 인도하시기 위함입니다. 17절 말씀에서 보듯이

17 이는 사람에게 그의 행실을 버리게 하려 하심이며 사람의 교만을 막으려 하심이라

하셨습니다.
자기 행실을 버리지 않고 교만한 채 고집을 부린다면 인생에게 남은 결과는 패망뿐입니다.
영적으로는 피폐해지고 그의 삶은 구덩이에 빠지고 말 뿐입니다.


이스라엘에는 농사를 짓기 위해 구덩이를 많이 파서 사용했다고 합니다.
일종의 간이 저수지처럼 사용됐던 것이지요.
그러니 그 구덩이가 꽤 깊어서, 그곳에 물이 다 빠져 말라있는 때라면 사람이나 동물이 빠졌을 때 쉽게 빠져나올 수 없을 정도로 깊었다고 합니다.
창세기에 보면 요셉이 형들에게 팔린 후에 구덩이에 빠뜨려졌다고 했는데, 바로 그 구덩이가 이런 형태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는 인생이 온몸이 고통하는 징계를 받게 되어 식음을 패하고 생의 의욕마저 잃게 되었을 때,
마침내 그의 마음이 이처럼 구덩이에 빠지고 그의 생명은 멸하는 자에 가까워지는 불행에 직면하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엘리후는 이렇게 끊임없이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오해하여 하나님이 침묵한신다고 말했던 욥의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합니다.
즉, 하나님이 말씀하시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인생들이 깨닫지 못하는 것임을 분명히 일러 줍니다.
욥은 하나님이 말씀 하시지 않으셨다고 항변했지만,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우리로 알게 하시려고 지금도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셔서 일러 주시고 또 알게 하셔서,

마침내 우리가 주님의 뜻을 아는 기쁨 가운데에 거하게 하십니다.
죄와 악의 길에서 떠나 온전히 주님을 향하고 인도하심을 준행하는 길로 나오시길 축원합니다.

 

 

내가 자주 경험하는 하나님의 계시 방식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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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의 고난을 바라보는 세 친구와 엘리후의 시각은 사뭇 달랐습니다.
세 친구는 욥의 죄로 인한 재앙으로 보는 반면에, 엘리후는 하나님께서 욥을 가르친 시련은 기회로 그 의미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목적으로 사람으로 하여금 구덩이에 빠지지 않게 하고 멸망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죄와 상관없이 누구든 고난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 되며,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에 좀 더 가깝게 다가가는 시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엘리후의 말에는 빈 틈이 별로 없어 보입니다.
특별히 23절과 24절 말씀을 보면, 엘리후가 메시아에 대해서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하기도 합니다.

23 만일 일천 천사 가운데 하나가 그 사람의 중보자로 함께 있어서 그의 정당함을 보일 진대
24 하나님이 그 사람을 불쌍히 여기사 그를 건져서 구덩이에 내려가지 않게 하라 내가 대속물을 얻었다 하시리라

중보자와 대속물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엘리후에 대해서는 말씀하지 않고, 욥이 옳다고만 하십니다.
오히려 욥보다 엘리후가 옳은 말을 한 것 같은데도, 욥이 옳다고 하시는 것을 보면,

우리의 생각이나 판단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메시지가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욥의 세 친구들은 욥의 고난을 과거의 죄에 관점에서 보려고 했지만, 엘리후는 이제 다가올 미래에 구원의 관점에서 바라봤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욥의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과 그분의 일하심을 알게 하시는 뜻을 주목하게 합니다.

19절로 22절 말씀을 보면 

19 혹은 사람이 병상의 고통과 뼈가 늘 쑤심의 징계를 받나니
20 그의 생명은 음식을 싫어하고 그의 마음은 별미를 싫어하며
21 그의 살은 파리하여 보이지 아니하고 보이지 않던 뼈가 드러나서
22 그의 마음은 구덩이에, 그의 생명은 멸하는 자에게 가까워지느니라

말씀합니다
육신이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서 죽음에 가까워졌다고 해도, 우리를 생명의 가르침에 가깝게 하시기 위함이라는 뜻입니다.
엘리후는 하나님의 가르치심에 결과를 삶의 회복으로 바랍니다.

즉,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잘 받으면 삶이 회복된다는 것이 엘리후의 말에 핵심이 되는 것이죠.
이것은 25절과 26절 말씀에도 잘 드러납니다.

25 그런즉 그의 살이 청년보다 부드러워지며 젊음을 회복하리라
26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므로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사 그로 말미암아 기뻐 외치며 하나님의 얼굴을 보게 하시고 사람에게 그의 공의를 회복시키시느니라


하지만 욥과 세 친구와 엘리후에 주장에서 드러난 한계는 여전히 인간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인간을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이라는 틀을 벗지 못하는 것이 이들의 한계이고 우리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나 자신의 한계에 갇혀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과 알게 하시려는 그 뜻을 깨닫지 못하는 안타까움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자유하게 하시는 분이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피조물인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다 알 수 있게 하시려고 모든 방법을 다 허락하십니다.
심지어 죽음의 고통이 어른거리는 극심한 질병에도 주님의 뜻을 알 수 있는 은혜를 허락하십니다.
하나님의 원하시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고통의 자리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없다고 여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징계와 심판의 자리에도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천사가 중보자로 와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죄인도 하나님의 긍휼로 회복시키시려는 놀라운 은혜가 그곳에 임하기 때문이죠.
23절을 보면

23 만일 일천 천사 가운데 하나가 그 사람의 중보자로 함께 있어서 그의 정당함을 보일 진대

천사 가운데 하나가 그 사람의 중보자로 함께 있어서 그의 정당함을 보인다고 말씀하십니다
엘리후는 천사 중의 하나가 나서서 대속물을 얻게 하면 그가 죽음에 이르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불쌍히 여기사 그를 건져서 구덩이에 내려가지 않게 하시는 은혜를 예비하신 것입니다.
멸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시는 은혜를 오늘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육체의 고통은 나의 내면세게에 어떤 영향을 끼치나요?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뜻을 알고자 소원하기보다는
내가 원하는 응답을 받지 못했다고 원망했던 무지와 불신앙을 자복합니다.
말씀을 통해 주의 뜻을 구하는 갈급한 심령에 하나님의 뜻을 일러주시고
그 뜻대로 살도록 저희를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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