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11. | 생명의 삶 | 백상욱 목사
안녕하세요.
저는 자양동에 있는 요한 서울 교회를 섬기는 목사 백상욱입니다.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해서 결혼을 하고, 사랑해서 자녀를 낳아 살아가도,
두 사람 사이에 갈등과 다툼이 끊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왜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 갈등과 다툼이 있을까요?
그것은 아마도 서로 대화하는 기술과 방법을 잘 알지 못하고,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기술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런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사랑하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마음에 답답함과 눌림만 더 깊어가는 한 사람
오늘도 욥의 이야기를 다시 한번 살펴보도록 합시다.
오늘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욥기 22장 1절부터 20절까지의 말씀입니다.
확증 편향성에 항상 주의하십시오
욥기 22장 1절에서 20절 말씀입니다.
1 데만 사람 엘리바스가 대답하여 이르되 2 사람이 어찌 하나님께 유익하게 하겠느냐 지혜로운 자도 자기에게 유익할 따름이니라 3 네가 의로운들 전능자에게 무슨 기쁨이 있겠으며 네 행위가 온전한들 그에게 무슨 이익이 되겠느냐 4 하나님이 너를 책망하시며 너를 심문하심이 너의 경건함 때문이냐 5 네 악이 크지 아니하냐 네 죄악이 끝이 없느니라 6 까닭 없이 형제를 볼모로 잡으며 헐벗은 자의 의복을 벗기며 7 목마른 자에게 물을 마시게 하지 아니하며 주린 자에게 음식을 주지 아니하였구나 8 권세 있는 자는 토지를 얻고 존귀한 자는 거기에서 사는구나 9 너는 과부를 빈손으로 돌려보내며 고아의 팔을 꺾는구나 10 그러므로 올무들이 너를 둘러 있고 두려움이 갑자기 너를 엄습하며 11 어둠이 너로 하여금 보지 못하게 하고 홍수가 너를 덮느니라 12 하나님은 높은 하늘에 계시지 아니하냐 보라 우두머리 별이 얼마나 높은가 13 그러나 네 말은 하나님이 무엇을 아시며 흑암 중에서 어찌 심판하실 수 있으랴 14 빽빽한 구름이 그를 가린즉 그가 보지 못하시고 둥근 하늘을 거니실 뿐이라 하는구나 15 네가 악인이 밟던 옛적 길을 지키려느냐 16 그들은 때가 이르기 전에 끊겨 버렸고 그들의 터는 강물로 말미암아 함몰되었느니라 17 그들이 하나님께 말하기를 우리를 떠나소서 하며 또 말하기를 전능자가 우리를 위하여 무엇을 하실 수 있으랴 하였으나 18 하나님이 좋은 것으로 그들의 집에 채우셨느니라 악인의 계획은 나에게서 머니라 19 의인은 보고 기뻐하고 죄 없는 자는 그들을 비웃기를 20 우리의 원수가 망하였고 그들의 남은 것을 불이 삼켰느니라 하리라 |
욥의 친구들과 욥의 세 번째 논쟁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욥의 친구들은 욥에게 '너 자신의 죄를 먼저 하나님 앞에 자백하고 회개하라. 그러면 복이 임하지 않겠느냐?'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죠.
그러나 그런 친구들의 권면과 요구에 대해서 욥은 자신의 결백함을 계속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이것을 듣고 있던 친구 엘리바스는 더욱더 화가 나서 격한 어조로 논쟁 조로 욥을 책망하고, 나무라고 있습니다.
먼저 본문 4절 5절을 읽어보겠습니다.
4 하나님이 너를 책망하시며 너를 심문하심이 너의 경건함 때문이냐
5 네 악이 크지 아니하냐 네 죄악이 끝이 없느니라
욥의 친구들은 여전히 생각하기를 욥이 당하고 있는 형벌은 그의 죗값 때문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욥이 보기에는 이것이 답답한 것입니다.
자신의 삶을 자신이 살펴볼 때, 하나님 앞에 반듯하고 정의로운 길을 걸어가려고 하였기 때문에,
자신의 삶을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끊임없이 욥의 처지와 형편, 그 마음을 살피지 못하고,
자신이 알고 있는 단순한 신앙의 논리 '선한 사람은 복 받고 악한 사람은 벌 받는다'는
단순한 신앙의 논리에 집착해서, 이 논리로 욥을 대하고 있기 때문에
끝없는 논쟁, 끝없는 갈등만 되풀이되고 있을 뿐인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논쟁은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논쟁으로 설득해서 위로를 얻을 수 없습니다.
위로는 설득적인 말보다는 마음에 공감을 주는, 이해해주는 말로부터 위로가 시작되는데,
욥의 친구 엘리바스도 여전히 욥의 고집스러운 자기주장을 꺾고, 자기 생각을 주입하려 하니까.
논쟁은 격해지고 대화는 점점점 격한 길로 가게 된 것입니다.
아울러 욥의 친구 엘리바스는 욥의 선한 것이 하나님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으니,
너 자신의 선함과 의로움을 주장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오늘 본문 2절과 3절이 그런 것인데요.
2 사람이 어찌 하나님께 유익하게 하겠느냐 지혜로운 자도 자기에게 유익할 따름이니라
3 네가 의로운들 전능자에게 무슨 기쁨이 있겠으며 네 행위가 온전한들 그에게 무슨 이익이 되겠느냐
여러분
엘리바스의 이 이야기는 매우 타당합니다.
우리의 선한 행위나 우리의 악한 행위가 하나님의 거룩함을 오염시킬 수도 없고,
하나님의 의로움에 더 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람은 질적 차이가 있어서,
사람 편에서 무엇을 한다 한들, 그것이 하나님께 무슨 영향이 있겠습니까?
성경적이고 타당하지만 그러나 욥에게는 적용되기가 어려웠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놀랍고, 크고, 넓고, 깊어서 우리가 다 알 수 없는 것이죠.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며 정의의 심판자이신 부분도 있지만,
하나님의 공의보다 긍휼과 자비가 앞서서, 긍휼과 자비로 아픔과 상처를 보듬 안아주실 때도 있으시고,
의로운 사람들을 연단의 불로, 풀무불의 연단으로,
그 속에 남아 있는 죄성을 뽑아내기 위하여 연단하실 때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지혜와 인간의 생각으로 그 넓은 하나님을 다 알 길이 없는 것이죠.
그래서 내가 알고 있는 한편 지식으로만 하나님을 판단한다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것입니다.
지금 엘리바스는 자신이 알고 있는 신학적 지식과 좁은 성경적 지식으로 욥을 대하고 있기 때문에
욥에게 위로를 주지 못하였고, 하나님의 뜻에도 부합하지 못한 것입니다.
엘리바스의 말은 타당하지만,
오늘 욥에게 던져주는 권면과 지혜로운 조언으로는 적절하지 못했기 때문에
훗날 하나님으로부터 책망받는 사람이 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엘리바스는 욥을 향한 마지막 그의 권면에서도 여전히 욥을 죄인으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엘리바스가 욥을 죄인으로 취급하는 까닭은 욥이 당한 결과, 욥의 삶에 찾아온 결과물을 보고 그를 판단한 것입니다.
그는 모든 재산은 일시 잃게 되었고, 사랑하는 자녀들이 한 날에 다 죽음을 당하였으며, 아내로부터 이혼을 당하게 되지 않았습니까?
'이런 끔찍한 삶의 결과가 내 삶에 벌어졌다면, 그것은 네가 틀림없이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이런 끔찍한 재앙은 네가 얼마나 큰 죄를 지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러므로 잘 생각해서 너의 죄를 자백해라'라고 말하는 거예요.
그러나 거기에서 지나서 엘리바스는 욥이 범죄 한 죄인이며, 틀림없이 숨겨놓고 있는 잘못이 있다고 확증하고 나서 살펴보니까. 욥이 가지고 있었던 재산도 어쩌면 가난한 자로부터 탈취한 것이고, 마땅히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주어야 할 것을 나눠주지 않은 것이 틀림없겠구나 라고 확증편향(確證偏向)적 판단을 한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에 있는 이야기입니다. 6절에 이런 표현이 있지 않습니까?
6 까닭 없이 형제를 볼모로 잡으며 헐벗은 자의 의복을 벗기며
7 목마른 자에게 물을 마시게 하지 아니하며 주린 자에게 음식을 주지 아니하였구나
욥은 결코 이런 삶을 살지 않았습니다.
욥은 의로운 사람으로 자신의 재산을 나누어 주었고, 정직하고 선한 길을 걸어왔는데,
욥이 당한 고난을 보면서, 그 친구는 욥이 아마도 틀림없이 이렇게 가난한 자를 돕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형벌을 받았을 거라고 유추하고 그 스스로 확정한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이 사회가 양극화되어서 심한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서로 상대편 진영에 관해서는 악한 것으로 생각하고, 잘못됐다고 판단하고, 소위 말은 '내로남불'로 여기고 있습니다.
상대편 진영에서 하는 것은 전부 다 나쁜 의도를 가지고 있고, 우리 편에서 하는 것은 이해할 만한 일로 여기고 있지 않습니까?
단순한 일반화와 확증편향 이야말로, 갈등을 조장시키는 요인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엘리바스는 충분히 심사숙고하지 않고,
상대방 입장에서 그의 삶을 정직하게 살펴보지 않고, 너무나 쉽게 판단 해 버렸기 때문에
그가 마지막 친구 욥에게 할 수 있는 마지막 재안과 권면에서도 여전히 갈등을 조장하고 논쟁과 다툼을 일으키는 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 매우 큽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때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왜 저 사람은 저런 식으로 생각할까?
저런 식으로 생각하게 된 내면의 배경과 마음에 동기는 무엇이 있을까?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생각해보고, 그 사람 편에서 한 번 더 귀 기울여 본다면,
그의 이해하기보다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서로 공통점과 마음을 합할 수 있는 지점을 찾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억울하게 욥처럼 의심을 받고, 억울하게 욥처럼 죄인으로 뒤집어 씌울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서
서로를 이해해가는 복된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너무 손쉽게 내린 결론 때문에,
누군가가 정죄받지 않도록, 우리 마음에 겸손을 더해 주시고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배려와 경청의 기회를 갖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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