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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이 평안히 사는 세상, 신앙적 기대와 다른 현실 (욥기 21:17~34)

2021.11.10. | 생명의 삶 | 백상욱 목사                                                                                                         

 

악인이 평안히 사는 세상, 신앙적 기대와 다른 현실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 자양동에 있는 요한 서울교회를 섬기는 목사 백상욱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하며, 주님을 예배하면서 하루를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에게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가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욥기는 성경의 한 복판에 실려있습니다.
학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욥기는 모세오경 보다 먼저 있었던 내용이고, 아브라함 보다 욥이 앞선 사람이라고들 이야기합니다.

그것은 욥기에 있는 내용은 율법이나 또는 선지서에 기록이 실려있기 전부터, 하나님에 관한 신앙과 인생에 관해 고민하고 번뇌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그래서 욥기는 고뇌하는 사람, 고난과 고통 앞에서 고뇌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위로를 줍니다.

위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친구들이 있었지만,

하나님은 믿음의 선한 삶을 살면서 고난 받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욥기를 통해 말씀해 주고 계시는 것이죠.


오늘도 욥의 친구들의 대화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주신 말씀을 함께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은 욥기서 21장 17절부터 34절에 말씀입니다.

 

 

악인이 평안히 사는 세상, 신앙적 기대와 다른 현실


욥기 21장 17절에서 34절 말씀 입니다.

더보기
17 악인의 등불이 꺼짐과 재앙이 그들에게 닥침과 하나님이 진노하사 그들을 곤고하게 하심이 몇 번인가
18 그들이 바람 앞에 검불 같이, 폭풍에 날려가는 겨 같이 되었도다
19 하나님은 그의 죄악을 그의 자손들을 위하여 쌓아 두시며 그에게 갚으실 것을 알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20 자기의 멸망을 자기의 눈으로 보게 하며 전능자의 진노를 마시게 할 것이니라

21 그의 달 수가 다하면 자기 집에 대하여 무슨 관계가 있겠느냐
22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높은 자들을 심판하시나니 누가 능히 하나님께 지식을 가르치겠느냐
23 어떤 사람은 죽도록 기운이 충실하여 안전하며 평안하고
24 그의 그릇에는 젖이 가득하며 그의 골수는 윤택하고
25 어떤 사람은 마음에 고통을 품고 죽으므로 행복을 맛보지 못하는도다

26 이 둘이 매 한 가지로 흙 속에 눕고 그들 위에 구더기가 덮이는구나
27 내가 너희의 생각을 알고 너희가 나를 해하려는 속셈도 아노라
28 너희의 말이 귀인의 집이 어디 있으며 악인이 살던 장막이 어디 있느냐 하는구나
29 너희가 길 가는 사람들에게 묻지 아니하였느냐 그들의 증거를 알지 못하느냐
30 악인은 재난의 날을 위하여 남겨둔 바 되었고 진노의 날을 향하여 끌려가느니라

31 누가 능히 그의 면전에서 그의 길을 알려 주며 누가 그의 소행을 보응하랴
32 그를 무덤으로 메어 가고 사람이 그 무덤을 지키리라
33 그는 골짜기의 흙덩이를 달게 여기리니 많은 사람들이 그보다 앞서 갔으며 모든 사람이 그의 뒤에 줄지었느니라
34 그런데도 너희는 나를 헛되이 위로하려느냐 너희 대답은 거짓일 뿐이니라


욥은 신앙과 인생의 문제를 율법적 사고방식이나 혹은 착한 사람은 복 받고 악인은 벌 받는다는 권선징악적,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는 신앙인들 또 그렇게 해석하는 분들을 향해서 도전을 하고 있습니다.
신앙은 그렇게 이분법적으로 단순히 도식화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요.

 

오늘 본문 17절에서 이런 도전을 합니다.

17 악인의 등불이 꺼짐과 재앙이 그들에게 닥침과 하나님이 진노하사 그들을 곤고하게 하심이 몇 번인가

다시 말하면 '악인이 벌 받는 것이 도대체 몇 번이나 되겠느냐?' '그런 일이 많지 않지 않느냐?'라고 물어보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도 쉽게 이 땅에서 선한 사람이 마침내 복 받고, 악인은 그 세대에서 벌을 받거나 악인의 영광이 오래가지 못한다고 쉽게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지금 욥은 말하기를 '그렇게 악인이 땅에서 재앙을 받고, 벌을 받는 게 몇 번이나 되느냐? 있기는 있지만, 많지 않지 않느냐?'라고 묻고 도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 뭐라고 말을 하느냐 하니 19절에 보면

19 하나님은 그의 죄악을 그의 자손들을 위하여 쌓아 두시며 그에게 갚으실 것을 알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아울러 20절 이렇게 얘기합니다.

20 자기의 멸망을 자기의 눈으로 보게 하며 전능자의 진노를 마시게 할 것이니라

이 말은 앞서 친구 소발이 악인이 쾌락과 이 땅에서 유익을 누려도, 다음 세대에 자손들은 망하게 되고, 자손들은 형벌받는다는 것에 대해서 도전하고 있는 거예요.

지금 욥이 하는 말은 우리말 성경에서 19절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범죄를 쌓아 두셨다가 그 자식들에게 갚는다’고 하지만 그에게 갚아 주어야 그가 깨닫게 되리라.

다시 말하면 자식이 갚을 것이 아니라, 죄를 지은 당사자에게 갚아 줘야 되는 것 아닙니까?
잘못한 사람이 그 당대에 진노를 받아야 마땅하지 않습니까?라고 친구와 하나님에게 도전하고 있는 것이죠.
여러분께서 얼마나 타당합니까?

그러나 우리는 너무나 흔히 악인이 벌을 받고, 그 당대나 그 자손이나 그다음 세대에 벌을 받을 것이기 때문에 그것으로 인하여 낙심하지 말라고 너무나 쉽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 욥의 이야기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삶과 인생과 역사를 좀 더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살펴보라고 재촉하고 촉구하고 있는 셈입니다.

 

아울러 또한 그가 말하기를 욥은 지금 죽음의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선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이나 모두 똑같은 죽음에 처하는 것을 내가 보았다고 말합니다. 본문 26절에 이렇게 표현합니다.

26 이 둘이 매 한 가지로 흙 속에 눕고 그들 위에 구더기가 덮이는구나

죽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나 악을 일삼는 사람이나 똑같이 임하여서 모두 흙으로 돌아가 버리기 때문에, 인생에 결과물을 가지고 그에 선과 의를 판단하기 어렵다는 말을 하고 있는 거예요.
다시 말하면,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동안에 그가 얻은 결과물을 가지고 그가 선한 사람인지, 의로운 사람인지, 악한 사람인지, 불의한 사람들을 판정하기는 어렵다.
인생의 결과물은 결국은 다 똑같이 큰 차이 없이 나타나지 않느냐?

그러므로 내가 오늘 이 고난을 당하고, 역경을 겪고, 괴로움을 당한다고 해서 이것이 나의 죄의 결과물이라고 판단한다니 타당하지 못하다 라고 말하는 셈이죠.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도 그러합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고난을 당하거나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이 그의 죗값 때문이라고 쉽게 판단하지 맙시다.
잘 되는 사람이 그가 그전에 뭔가 자르기 때문이라고 쉽게 단정 하지도 맙시다.
아울러 여러분이 지금 잘 누리고 있고 형통하고 성공에 가도를 달리고 있다면,
그것이 여러분의 한 일과 선한 일 때문에 노력 때문에 되었다고 결론을 짓지도 맙시다.
우리는 그저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누리고 있는 것뿐이에요.

악인도 하나님께서 그에게 베푸신 은총으로 잠시 잠깐의 유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 줍시다.

누군가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심판하실 때까지, 그저 잠잠히 기다리는 것이 지혜가 아닐까 싶습니다.

 

끝까지 평안을 누리는 사람과 고통 가운데 죽는 사람은 죽음 앞에서 어떤 차이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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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가족 중에 암 투병하다가 임종하신 분이 계시는데요.

암 투병하는 동안에 온갖 좋은 약이 관한 이야기를 굉장히 많이 들었습니다.
이것을 먹고 이렇게 치료를 받았고, 저렇게 하면 저렇게 치료받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저도 많은 시도를 해보았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자연 요법이나, 민간요법으로 치료받은 경우는 많은 경우 중에 지극히 한두 번, 혹은 적은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민간요법을 통해 치료받은 사례는 전체의 확률을 따지면 많은 경우가 아니었습니다.

이것을 보편적인 의학적 진리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흔히 우리의 신앙생활에서도 한두 사람의 간증을 가지고 그것이 마치 신앙의 원리인 것처럼 여긴다면,
단순하게 손쉽게 일반화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염려가 됩니다.

 

오늘 욥은 자신의 친구 소발에 관하여 이 세상에서 벌어진 일들을 살펴보라, 그리고 눈을 좀 객관적으로 가져보라고 권면합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 29절 말씀입니다.

29 너희가 길 가는 사람들에게 묻지 아니하였느냐 그들의 증거를 알지 못하느냐

이 말은 무슨 말입니까?

길가는 사람은 행인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의 길가는 사람들은 상인들이었습니다.

먼 길을 다니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는 상인이나, 혹은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는 여행객들을 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말은 많은 경우를 경험하고,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다양하고 풍부한 경험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라는 거예요.
그들의 말을 들어볼 때 정말 악인은 그 당대에서 망하더냐? 의인은 그 당대에서 정말 보상을 받더냐?

그렇지 않다고 하는 말이 더 많지 않으냐?라고 항변하고 있는 셈입니다.
오늘 본문을 우리말 성경에서는 30절을 이렇게 말하는데요.

악인이 멸망의 날에 목숨을 부지하고 진노의 날에도 살아남는다고 말하지 않던가?

이렇게 욥은 도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신앙이란 이름으로 우리가 믿음을 따라 너무나 우리 주변에 벌어지는 것을 손쉽게 단순화, 일반화시키는 것을 좀 멈추고, 먼저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경건하고, 정직하며, 균형 잡힌 신앙인이라면, 보편적 상식과 보편적 의식을 먼저 가져야 합니다.

일반상식의 바탕 아래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를 그 위에 쌓아야지 

일반 상식과 보편적 진리를 뒤로하고, 듣지 않고, 무시하고 내가 알고 있는 편엽 하고 단순한 성경 구절 몇 가지만 가지고 이것을 진리의 확신인 양 붙들고 있는 것은 자칫 편협하고, 단편적인 생각의 우물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욥이 오히려 말해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놀라운 사실은 욥은 언급한 것처럼 아브라함 이전 사람입니다.

율법이 주어지기 전에 있었던 사람입니다.

욥은 경건한 사람으로서 인생을 살펴보고 하나님 앞에 씨름하면서

이러한 신앙인들이 가질 수 있는 이런 문제를 의식하고, 고민하였고, 이것을 성경에 남김으로 오고 오는 사람들이 율법주의나 신앙의 일반화, 단순화시키는 이 오류로부터 벗어나도록 재촉하고 있는 셈인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에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역사와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경륜은 무엇인지 알고자 할 때, 

먼저는 탄탄하고 튼튼한 보편 상식의 기초 위에 우리의 신앙을 쌓아야 합니다.
상식은 잘못된 세상 지식이 아니라, 역사를 운행하고 있는 하나님의 경륜이고, 수많은 역사적 경험을 통해 얻게 된 하나님의 운영에 방법이 바로 상식의 바탕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그리고 그 위에 상식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이런 균형 잡힌 생각을 가질 때,

우리는 비로소 건강한 하나님의 자녀로, 또 세상을 향하여 올바른 길을 제시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이 땅을 살게 될 것입니다.
오늘 세상 사람들을 대할 때,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대할 때도 보편적 상식 속에서 사람들을 대하고, 권면하고, 격려하고, 그리고 그 위에 믿음에 도전을 주는 복되고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내가 하는 말이 '헛된 위로'가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삶이 하나님 경륜의 손안에 있음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의 손안에 있음을 믿습니다.
주의 말씀에 따라 우리 삶을 한 걸음, 한 걸음 살아가되
다른 사람을 향하여 귀를 기울이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함으로
생각의 지평을 넓히고 더 마음을 넓히고 살아가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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