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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자의 오묘함에 대한 서로 다른 견해 (욥기 11:1~11)

2021.10.22. | 생명의 삶 | 권 준 목사                                                                                                           

 

전능자의 오묘함에 대한 서로 다른 견해

 

사랑하는 여러분 시애틀 형제 교회를 섬기는 권준 목사입니다.
CGNTV 정기후원의 달입니다.
CGNTV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접할 수 있도록 정기후원에 함께 동참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안녕하세요

시애틀 형제교회 권준 목사입니다.
인간의 가져야 하는 가장 중요한 질문은 두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은 누구신가?

그리고 둘째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에 대한 분명한 답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누구신가?
하나님은 나를 누구보다도 사랑하시는 창조주 아버지이시다.
그리고 나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아들이요 딸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기에 진정한 평강이 있고 소망이 있습니다.
이 분명한 믿음을 가지고 오늘도 주안에서 기쁨과 평강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함께 나눌 말씀의 욥기 11장 1절에서 11절 말씀입니다.

 

 

 

전능자의 오묘함에 대한 서로 다른 견해


욥기 11장 1절에서 11절 말씀입니다.

더보기
1 나아마 사람 소발이 대답하여 이르되
2 말이 많으니 어찌 대답이 없으랴 말이 많은 사람이 어찌 의롭다 함을 얻겠느냐
3 네 자랑하는 말이 어떻게 사람으로 잠잠하게 하겠으며 네가 비웃으면 어찌 너를 부끄럽게 할 사람이 없겠느냐
4 네 말에 의하면 내 도는 정결하고 나는 주께서 보시기에 깨끗하다 하는구나
5 하나님은 말씀을 내시며 너를 향하여 입을 여시고

6 지혜의 오묘함으로 네게 보이시기를 원하노니 이는 그의 지식이 광대하심이라 하나님께서 너로 하여금 너의 죄를 잊게 하여 주셨음을 알라
7 네가 하나님의 오묘함을 어찌 능히 측량하며 전능자를 어찌 능히 완전히 알겠느냐
8 하늘보다 높으시니 네가 무엇을 하겠으며 스올보다 깊으시니 네가 어찌 알겠느냐
9 그의 크심은 땅보다 길고 바다보다 넓으니라
10 하나님이 두루 다니시며 사람을 잡아 가두시고 재판을 여시면 누가 능히 막을소냐

11 하나님은 허망한 사람을 아시나니 악한 일은 상관하지 않으시는 듯하나 다 보시느니라

 

오늘 본문은 욥의 세 친구 중 마지막 주자인 소발이 발언을 하는 것으로 시작이 됩니다.
그는 좀 더 격하게 공격적이고 비판적인 어조로 발언을 합니다.


1절과 2절 말씀입니다.

1 나아마 사람 소발이 대답하여 이르되
2 말이 많으니 어찌 대답이 없으랴 말이 많은 사람이 어찌 의롭다 함을 얻겠느냐

 

욥은 친구들이 자신의 처지를 알아주기를 원했죠.

그래서 이해하고 변호해준다면 그 얼마나 큰 위로를 받겠습니까?
그런데 욥을 정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이 세 친구와 같을 수 있다는 것이죠.
헨리에타 미어스라는 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만일 당신이 다른 사람이라면 당신은 당신의 친구가 되고 싶은가?"
내가 다른 사람이라면 나는 나와 친구가 되고 싶은가?

 

욥이 고난 가운데 있다는 소식을 듣고 친구 셋이 욥을 위로하고자 찾아왔죠.
엘리아스빌닷소발입니다.

그들은 욥의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병들고 초췌해진 욥의 모습에 그들은 울면서 옷을 찢고 티끌을 뿌리며 비통함을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할 말을 잃은 채 7일 밤낮을 침묵하면 욥과 함께 합니다.

여러분 이것이 친구입니다.
여기까지가 친구입니다.

친구는 우는 자와 함께 울고, 웃는 자와 함께 웃는 사람이죠.
아픈 사람에게는 잘잘못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아픔에 공감해 주는 것입니다.
그런 공감의 능력이 우리 안에 있기를 바랍니다.

 

사실 소발도 듣기만을 원했어요.
그런데 듣다 보니 많은 말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 말은 무슨 말이냐면, '어리석고 정의롭지 못한 자'라는 뜻입니다.
욥이 이 말도 안 되는 주장으로 자신의 죄를 부인하고 자신을 변호하려고 하는 것이죠.

그래서 소발이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거예요.
욥이 자신의 분수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죠.

 

자 3절과 4절입니다.

3 네 자랑하는 말이 어떻게 사람으로 잠잠하게 하겠으며 네가 비웃으면 어찌 너를 부끄럽게 할 사람이 없겠느냐
4 네 말에 의하면 내 도는 정결하고 나는 주께서 보시기에 깨끗하다 하는구나

욥의 말은 자신을 자랑하는 말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그 건방진 욥을 제재해야 되겠다.

하나님을 비난하고 친구들에게 반박하는 욥을 그냥 볼 수 없다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의 공의와 하나님의 정의의 대해 도전하는 욥

행위 화복의 원리를 공격하는 욥의 발언을 방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요 욥의 교만과 잘못된 가르침을 비난하고 훈계하는 것입니다.
욥의 탄식과 아픔을 헛된 말로 비판을 하고 있습니다.

이해하고 감싸는 마음이 부족한 것이죠.
사랑 없는 비판인 것입니다.

'너는 죄인이다' 또는 '의로운 사람이 아니다'

 

맞아요 맞아요 

우리는 많은 경우 자신에 대해서는 언제나 긍정적이고, 타인에 대해서는 쉽게 부정을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자기부정의 태도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인간은 선하지도 온전하지도 않습니다.
보는 것이 정확하지도 않습니다
내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 것이죠.

그래서 내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듣는 마음, 듣는 마음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한 겸손한 마음으로 상대방을 대하는 그러한 우리의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남의 말을 잘 이해하기 위해 어떤 태도가 필요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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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의 친구인 소발은 자신이 하나님인 것처럼, 하나님의 관점에서 욥을 심판하고 정죄합니다.

5절과 6절 말씀입니다.

5 하나님은 말씀을 내시며 너를 향하여 입을 여시고
6 지혜의 오묘함으로 네게 보이시기를 원하노니 이는 그의 지식이 광대하심이라 하나님께서 너로 하여금 너의 죄를 잊게 하여 주셨음을 알라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해 주기를 원한다
하나님은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는 분이시다.
욥이 살아있는 것은 하나님이 욥의 죄를 다 묻지 않아서이다.
욥의 죄악보다 가볍게 하나님께서 처벌하셨기 때문인 것이다.


자 그러면서 계속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7절에서 9절 말씀입니다.

7 네가 하나님의 오묘함을 어찌 능히 측량하며 전능자를 어찌 능히 완전히 알겠느냐
8 하늘보다 높으시니 네가 무엇을 하겠으며 스올보다 깊으시니 네가 어찌 알겠느냐
9 그의 크심은 땅보다 길고 바다보다 넓으니라

욥이 하나님의 오묘함을 어찌 측량할 수 있겠냐는 겁니다.

하늘보다 높으시고 스올보다 깊으신 하나님

그 높이와 깊이  제대로 모르는 인간이 어찌 하나님을 알 수 있겠나? 하는 것이죠.

땅보다 길고 파도보다 넓으신
감히 누가 하나님을 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욥의 얄팍한 지식으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함부로 판단하면 안 된다는 것이죠.

 

자 10절에서 11절 말씀입니다.

10 하나님이 두루 다니시며 사람을 잡아 가두시고 재판을 여시면 누가 능히 막을소냐
11 하나님은 허망한 사람을 아시나니 악한 일은 상관하지 않으시는 듯하나 다 보시느니라

하나님이 가두시고 하나님이 재판을 여신 다면, 그 누구도 하나님의 심판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죠.
하나님은 죄 없는 사람을 잡아다가 재판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악인들을 낱낱이 살피고 계신다.
자신이 무지하다고 하나님을 비난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어리석음을 떠벌리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어리석음을 떠벌리지 말라 라고 지금 욥에게 충고하고 있습니다.
어리석어서 자신의 죄를 기억하지도 못하고, 하나님께 죄를 인정하고 용서를 빌어야 한다라고 소발이 주장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욥이 원하는 것은, 왜 하나님이 자기에게 이런 고통을 허락하시는가? 그것을 깨닫기를 원했어요.


하나님은 누구십니까?

지혜가 오묘하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세요.

그 하나님의 신비하심과 그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을 우리 인간이 어떻게 다 깨달아 알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여러분 놀라운 사실이 무엇입니까?
그 하나님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너무나 사랑하세요.
인간의 언어로 그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그것을 다 설명할 수 없고, 그것을 표현할 수 없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워요.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십니다.

나를 아세요. 그리고 나와 함께 하세요.
그 하나님이 나를 아시고 나와 함께 하시는데 내가 무엇 때문에 두려워하고 낙심하겠습니까?
낭떠러지 앞에 서더라도 우리는 담대할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고난을 통과했을 때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비로소 우리는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그리고 이 과정이 하나님의 가장 사랑의 손길이었음을 우리는 깨닫고 그 하나님을 찬양하게 된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그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더욱 충만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고 우리가 진정으로 섬길 수 있는 것이죠.

그 하나님을 우리는 더욱더 전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하나님을 예배합시다.
나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시고, 나를 구원하신 그 하나님의 모든 지혜와 은혜를 찬양합시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 겸손합시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하는 사람입니다.
고통받는 사람에게 우리 무례하게 하지 맙시다.
내 말이 맞기는 하지만, 틀릴 수도 있습니다.
세상을 단편적으로만 보면 안 됩니다.
인과응보 사상으로 정죄해서도 안 됩니다.
겸손히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의 말을 잘 듣고, 위해서 기도함으로, 우리 모두가 또한 위로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인간의 이해 범위를 넘어서는 하나님의 '오묘하심' 앞에서 취할 바른 태도는 무엇일까요?

 

 

사랑의 하나님
하나님의 오묘하심과 하나님의 신비하심을 다 알 수 없어도, 나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이것이 나의 고백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너무나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오늘도 고통받는 사람에게 무례히 행하지 않는 내가 되기를 원합니다.
함께 울고 함께 웃는 진정한 친구가 되게 하옵소서.
주님의 긍휼한 마음을 갖게 하옵소서 
그러므로 고통받는 분들을 주께로 인도하는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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