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18. | 생명의 삶 | 권 준 목사
CGNTV 정기후원의 달입니다.
CGNTV 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접할 수 있도록 정기 구원의 함께 동참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안녕하세요.
시애틀 형제교회 권준 목사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꿈은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복을 주시어.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나가는 복의 근원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 모든 것이 우리가 생각한 대로 다 잘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고난이 따른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난이 왔을 때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는가? 고난을 어떻게 해석하는가?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섭리의 하나님의 주권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반드시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믿음이 있을 때 고난을 해석하는 방법이 다릅니다.
고난은 고난이지만, 고난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축복의 씨앗으로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 우리 안에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함께 나눌 말씀의 욥기 9장 11절에서 24절 말씀입니다.
대항할 수 없는 하나님, 까닭 없이 당하는 고난
욥기 9장 11절에서 24절 말씀입니다.
11 그가 내 앞으로 지나시나 내가 보지 못하며 그가 내 앞에서 움직이시나 내가 깨닫지 못하느니라 12 하나님이 빼앗으시면 누가 막을 수 있으며 무엇을 하시나이까 하고 누가 물을 수 있으랴 13 하나님이 진노를 돌이키지 아니하시나니 라합을 돕는 자들이 그 밑에 굴복하겠거든 14 하물며 내가 감히 대답하겠으며 그 앞에서 무슨 말을 택하랴 15 가령 내가 의로울지라도 대답하지 못하겠고 나를 심판하실 그에게 간구할 뿐이며 16 가령 내가 그를 부르므로 그가 내게 대답하셨을지라도 내 음성을 들으셨다고는 내가 믿지 아니하리라 17 그가 폭풍으로 나를 치시고 까닭 없이 내 상처를 깊게 하시며 18 나를 숨 쉬지 못하게 하시며 괴로움을 내게 채우시는구나 19 힘으로 말하면 그가 강하시고 심판으로 말하면 누가 그를 소환하겠느냐 20 가령 내가 의로울지라도 내 입이 나를 정죄하리니 가령 내가 온전할지라도 나를 정죄하시리라 21 나는 온전하다마는 내가 나를 돌아보지 아니하고 내 생명을 천히 여기는구나 22 일이 다 같은 것이라 그러므로 나는 말하기를 하나님이 온전한 자나 악한 자나 멸망시키신다 하나니 23 갑자기 재난이 닥쳐 죽을지라도 무죄한 자의 절망도 그가 비웃으시리라 24 세상이 악인의 손에 넘어갔고 재판관의 얼굴도 가려졌나니 그렇게 되게 한 이가 그가 아니시면 누구냐 |
사랑하는 여러분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의 하나님을 어찌 깨달아 알 수 있겠습니까?
자 욥의 말을 한번 같이 들어 보도록 합니다. 11절 말씀입니다.
11 그가 내 앞으로 지나시나 내가 보지 못하며 그가 내 앞에서 움직이시나 내가 깨닫지 못하느니라
욥은 하나님이 지나가시고 움직이시는 것을 깨닫지 못함을 고백합니다.
인간은 권능과 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을 이해할 수도 그리고 깨달을 수도 없는 그런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자 12절, 13절 말씀 봅니다.
12 하나님이 빼앗으시면 누가 막을 수 있으며 무엇을 하시나이까 하고 누가 물을 수 있으랴
13 하나님이 진노를 돌이키지 아니하시나니 라합을 돕는 자들이 그 밑에 굴복하겠거든
욥이 어떻게 고백합니까?
하나님은 절대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죠.
하나님이 진노하시면 어느 누구도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감히 하나님께 왜 빼앗느냐고 항의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는 것이죠.
하나님께 맞설 수 없는 인생입니다.
자 그리고 '라합을 돕는 자들'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 라합은 신화적 존재입니다. 혼돈의 세력을 상징합니다. 세상의 질서를 위협하는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라합과 함께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보존하시는 그 질서를 위협하는 그자들,
이들도 하나님에 의해 제압당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굴복당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의 힘과 하나님의 결정을 막는 존재는 이 땅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14절에서 16 잘 말씀입니다.
14 하물며 내가 감히 대답하겠으며 그 앞에서 무슨 말을 택하랴
15 가령 내가 의로울지라도 대답하지 못하겠고 나를 심판하실 그에게 간구할 뿐이며
16 가령 내가 그를 부르므로 그가 내게 대답하셨을지라도 내 음성을 들으셨다고는 내가 믿지 아니하리라
혼돈의 세력들도 감히 하나님께 머리를 들지 못하는 데,
연약한 인간 중에 하나인 내가, 욥이 어찌 감히 하나님께 물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욥은 자신의 무기력함을 고백하면서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하나님께 진지하게 묻고 싶어 합니다.
욥의 이 고백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인간은 하나님께 간청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의롭더라도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 하나님의 자비를 구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하는 사실이죠.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기독교의 유일한 특징이 무엇입니까?
은혜라고 하는 단어입니다.
이 은혜를 아는 사람은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라,
한량없는 은혜, 갚을 길이 없는 은혜
내 삶을 에워싸는 하나님의 은혜
사랑하는 여러분
아무리 의롭더라도 심판하시는 하나님 앞에 은혜와 긍휼을 구하며 나갑시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은혜 그리고 그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긍휼 하심을 찬양합시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 여기까지 온 것, 주의 크신 은혜 하니겠습니까?
계속해서 욥은 자신이 까닭 없이 하나님께 고난을 당하고 있다고 인식하고, 하나님께 토로하고 있습니다.
17절과 18절 말씀입니다.
17 그가 폭풍으로 나를 치시고 까닭 없이 내 상처를 깊게 하시며
18 나를 숨 쉬지 못하게 하시며 괴로움을 내게 채우시는구나
경외하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숨 쉬는 것조차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이해할 수가 없는 거예요.
삶의 의미를 점점 잃어가고 있습니다.
고난의 근원지가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래서 자신의 절망감을 탄식하고 있는 것이죠.
자 19절 말씀입니다
19 힘으로 말하면 그가 강하시고 심판으로 말하면 누가 그를 소환하겠느냐
자신의 억울함을 알리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상대는 욥이 감당할 수 있는 분이 아닌 것이죠.
'누가 하나님을 소환하겠느냐?'
하나님을 결코 이길 수 없다는 것이죠.
그래서 인간은 죄인 일 뿐이다 는 거예요.
그래서 이 사실 앞에 욥은 또다시 절망합니다.
20절 말씀입니다.
20 가령 내가 의로울지라도 내 입이 나를 정죄하리니 가령 내가 온전할지라도 나를 정죄하시리라
하나님을 재판장에 소환하더라도 욥이 죄인으로 취급받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래서 무죄판결을 기대하지만 기대할 수가 없는 거예요.
하나님은 욥을 정죄하실 것이라는 것이죠.
하나님의 지혜와 힘 앞에서는 무력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욥은 지금 삶의 욕구를 더 잃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21절 말씀입니다.
21 나는 온전하다마는 내가 나를 돌아보지 아니하고 내 생명을 천히 여기는구나
그럼에도 욥은 자신의 무죄를 처리할 마음이 없어요. 자신의 온전함을 주장합니다.
자신이 의로운 자, 자 의로운 자인데,
그러나 이 변하지 않을 이 상황과 현실 속에서 그래서 욥은 차라리 죽으면 좋겠다고 탄식을 하고 있습니다.
22절에서 24절 말씀입니다.
22 일이 다 같은 것이라 그러므로 나는 말하기를 하나님이 온전한 자나 악한 자나 멸망시키신다 하나니
23 갑자기 재난이 닥쳐 죽을지라도 무죄한 자의 절망도 그가 비웃으시리라
24 세상이 악인의 손에 넘어갔고 재판관의 얼굴도 가려졌나니 그렇게 되게 한 이가 그가 아니시면 누구냐
악인은 하나님이 심판하시고, 의인은 하나님의 복을 받는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거죠.
하나님은 무죄 한자나, 악한자나 똑같이 멸하고 계신다는 겁니다.
악인에게 닥쳐야 할 재앙이 의인에게도 임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욥은 이렇게 불의한 세상을 자기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죠.
하나님은 공의와 정의에 별로 관심이 없는 듯, 무죄한 자의 고난도 비웃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도대체 이 세상에서 어떤 일을 하고 계시는가?
하나님이 재판관의 눈을 가림으로 세상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만 것이다.
그래서 세상은 악인의 손에 넘어간다.
세상을 이렇게 만드신 이가 하나님 이시다.
결국 하나님이 책임을 지셔야 되는 것 아니겠는가?
자신의 어떠한 노력도 소용이 없다는 거죠.
하나님이 마음대로 하시기 때문에
그래서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신데 어찌 나에게 이렇게 고난을 허락하실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무력함을 지금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해석이 안 될 때에도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합시다.
욥이 23장 10절에 보면 이런 고백을 합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나의 가는 길을 내가 알기를 원하지만, 내가 알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러나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하시는 거죠.
'오직 그가 아시나니'
하나님이 아시면 된 거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세요.
그래서 무엇입니까?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고난이 문제가 아니라 고난의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죠.
고난이 해석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이 주관하십니다.
하나님의 주 되심을 인생 하십시오.
왜?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자 그렇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는 신앙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해가 안 될 때에는 이해하려고 애쓰기보다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의 주권적이고, 선하신 역사를 믿으십시다.
그럴 때 우리는 성령의 위로하심과 하나님 위로의 음성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시는 그 하나님,
오늘도 그 하나님을 신뢰하며 나아갑시다.
하나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지 믿음조차 갖기 힘듭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을 믿습니다.
모든 것을 합력하여 반드시 선을 이루어주실 하나님을 내가 믿습니다
이것이 나의 고백입니다.
고난을 통해 나를 빚어 가시는 하나님
나로 믿음의 반석 위에 서게 하실 하나님
그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주여
나를 붙도록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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