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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욕망을 투사한 잘못된 서원 (사사기 11:29~40)

2021.08.31. | 생명의 삶 | 이기훈 목사                                                                                                         

 

이기적 욕망을 투사한 잘못된 서원

 

안녕하십니까?
여러분과 함께 말씀을 나눌 온누리 교회의 이기훈 목사입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을 해오면서 한 번쯤은 하나님께 서약(誓約)을 해보신 적 혹시 있나요?
또 그 서약(誓約)을 지키셨나요?

아니면 잊어버린 채 지금까지 나아오고 계신가요?

 

오늘은 서약(誓約)과 관련된 말씀을 함께 묵상하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사사기 11장 29절로 40절입니다.

 

이기적 욕망을 투사한
잘못된 서원


사사기 11장 29절에서 40절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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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이에 여호와의 영이 입다에게 임하시니 입다가 길르앗과 므낫세를 지나서 길르앗의 미스베에 이르고 길르앗의 미스베에서부터 암몬 자손에게로 나아갈 때에
30 그가 여호와께 서원하여 이르되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넘겨 주시면

31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물로 드리겠나이다 하니라
32 이에 입다가 암몬 자손에게 이르러 그들과 싸우더니 여호와께서 그들을 그의 손에 넘겨 주시매
33 아로엘에서부터 민닛에 이르기까지 이십 성읍을 치고 또 아벨 그라밈까지 매우 크게 무찌르니 이에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 자손 앞에 항복하였더라
34 입다가 미스바에 있는 자기 집에 이를 때에 보라 그의 딸이 소고를 잡고 춤추며 나와서 영접하니 이는 그의 무남독녀라
35 입다가 이를 보고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어찌할꼬 내 딸이여 너는 나를 참담하게 하는 자요 너는 나를 괴롭게 하는 자 중의 하나로다 내가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열었으니 능히 돌이키지 못하리로다 하니

36 딸이 그에게 이르되 나의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여셨으니 아버지의 입에서 낸 말씀대로 내게 행하소서 이는 여호와께서 아버지를 위하여 아버지의 대적 암몬 자손에게 원수를 갚으셨음이니이다 하니라
37 또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이 일만 내게 허락하사 나를 두 달만 버려 두소서 내가 내 여자 친구들과 산에 가서 나의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애곡하겠나이다 하니
38 그가 이르되 가라 하고 두 달을 기한하고 그를 보내니 그가 그 여자 친구들과 가서 산 위에서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애곡하고
39 두 달 만에 그의 아버지에게로 돌아온지라 그는 자기가 서원한 대로 딸에게 행하니 딸이 남자를 알지 못하였더라 이것이 이스라엘에 관습이 되어
40 이스라엘의 딸들이 해마다 가서 길르앗 사람 입다의 딸을 위하여 나흘씩 애곡하더라


오늘은 경솔한 맹서(盟誓)로 인해서 사랑하는 딸을 잃어버리는 입다의 슬픈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입다는 그렇게 자기 딸을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겠다고 하는 경솔한 서약(誓約)을 했을까요?
30절 31절입니다.

30 그가 여호와께 서원하여 이르되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넘겨주시면
31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물로 드리겠나이다 하니라

승리를 주시면, 내가 돌아올 때 제일 먼저 나를 영접하는 그를 하나님께 번제물로 드리겠다고 하는 서약(誓約)에 내용이죠.
입다는 왜 이와 같은 서약(誓約)을 했을까요? 그것이 굉장히 궁금하죠.
여기서 우리는 입다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우리들의 문제가 무엇인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입다는 믿음이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자신이 사사가 되는 것에 대해서도 하나님께서 동의하신 일인지까지도 확인했던 그런 인물이었죠.
그리고 암몬과의 싸움에서 결코 승리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런 입다가 이와 같이 경솔한 맹서(盟誓)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의 맹서(盟誓) 뒤에는 인간의 교만함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승리한 것은 당연한 일이죠.
그러나 그 믿음 뒤에 무엇이 숨어 있었을까요?
자기의 능력을 과시하는 교만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싸움이 뭔지도 알았고, 싸워서 누군가를 이겨 보기도 했고, 그리고 싸움에 용감함을 가지고 있었던 용사였습니다.
믿음으로 하는 싸움이지만 그 싸움 뒤에는 자기 능력, 자기 경험, 자기의 실력을 과시하고자 하는 교만함이 자리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정말 우리가 믿음으로 주의 일을 할 때에 주의해야 될 모습을 입다에게서 발견하게 됩니다.
기본적으로 우리는 믿음으로 살고, 모든 일들을 믿음으로 행하는 자들이죠.

그러나 그 믿음 이면에 담겨있는, 아니 숨어있는 자기 과신 이것을 주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믿음으로 했다가 낭패를 보는 일이 있어요.

또는 원하는 대로 일이 되지 않고 그르쳐지는 경험을 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내가 기도도 많이 했고 또 믿음으로 했는데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이런 것 때문에 의아해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그 내면에 보면 믿음에 가려져 있는 자기 확신 그것이 결국은 일을 그르칠 수 있다고 하는 것을 입다를 통해서 발견하죠.

 

사랑하는 여러분

먼저 우리 내면의 순수한 믿음이 있는 지를 돌아보시고,

결코 자기 확신을 믿음으로 착각하지 않는 여러분의 삶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내가 아직 포기하지 못한 이기적 욕망은 무엇이며, 이를 어떻게 버릴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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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다가 우리에게 보여줬던 첫 번째 문제는 믿음 뒤에 숨어있는 자기 과신, 자기 확신이 있었다는 거죠.

 

두 번째 입다가 우리에게 보여준 문제는 하나님께 대하여 무지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사람을 제물로 받는 분이 아니십니다.

물론 이삭의 경우는 예외적인 아브라함의 믿음을 테스트하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 었을 뿐이죠.
그러나 그 이후에 어떤 제사 법에도 사람이 제물로 드려지는 일은 없습니다.
이런 사람을 제물로 드리는 일은 당시 이방 문화에서 성행했던 것이죠.

입다는 하나님의 대하여 무지했고,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무지했기 때문에

자기 딸을 번제물로 바치겠다고 하는 이와 같은 서약(誓約)을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에 대하여 무지하니까. 잘못된 헌신을 하게 되는 거예요.
여러분 이런 무지막지한 아빠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들의 일상에서도 하나님께 대하여 무지함으로 잘못된 헌신을 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하나님을 위하여 헌신한다고 가정을 팽개치는 일들 이것은 잘못된 헌신입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자기 몸을 다 드린다고 해서 생업을 열심히 행하지 않고 가족들을 굶어가며 살게 만드는 일들 

이것도 잘못된 헌신이죠.
불쌍한 이웃을 돕는다고 해서 자기 가족이 먹어야 될 쌀과 양식과 자기 자녀들이 입어야 될 옷들을 다 불쌍한 사람들에게 갖다 주는 것 이것도 잘못된 헌신입니다.

저는 목회하면서 실질적으로 아버지가 그렇게 함으로 상처를 받아서 평생 어려움을 겪고 사는 지체들을 만나본 적이 있습니다.

 

분명히 입다는 잘못된 헌신을 했던 것이죠.

근데 그 잘못된 헌신은 하나님에 대한 무지해서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무지가 잘못 헌신을 하게 하는 것이죠.

분명히 레위기의 말씀에 가면, 서원(誓願)했던 것을 하나님 앞에서 다시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입다는 그런 사실을 몰랐던 것이죠.
그래서 사랑하는 딸을 제물로 드려야 되는 위기를 겪어야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서 또 한 가지 우리가 주목할 것은 입다의 딸의 처신입니다.

36 딸이 그에게 이르되 나의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여셨으니 아버지의 입에서 낸 말씀대로 내게 행하소서 이는 여호와께서 아버지를 위하여 아버지의 대적 암몬 자손에게 원수를 갚으셨음이니이다 하니라

아버지가 하나님께 맹서(盟誓)했으니 아버지의 그 뜻에 나도 순종하겠습니다.
입다는 사랑하는 딸이 었지만 하나님께 서원(誓願) 한 일이었기 때문에 결국은 제물로 드려야 됐던 것이죠.

물론 이 제물로 딸을 드렸다는 것에 대해서는 성경적인 논란이 있습니다.
진짜 제물로 드렸느냐? 아니면 그 딸이 평생 하나님 앞에서 동녀로써 사는 일이었느냐? 뭐 이런 두 가지 문제를 가지고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했던 서원(誓願)을 지켰다는 것이죠.

아버지도 딸도 그 서원(誓願)에 헌신을 했다는 것입니다.

 

자 여러분 

혹시나 내가 믿음 생활하면서 잘못된 헌신하고 있는 부분은 없는가?

입다를 통해서 한번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한 가지는 하나님께 서원(誓願) 한 일이 있다면, 내가 그 서원(誓願)을 지켰는가? 아니면 잊어버리고 지키지 않고 있느냐?

어떤 분들은 지키지 않은 서원(誓願)때문에 마음에 가책을 갖고 있는 분들이 있어요.

염려하지 마십시오.

그 하나님 앞에서 그 서원(誓願)을 다시 끄집어내서 excuse 하는 것입니다.

내가 무지해서 했던 서원(誓願)입니다. 하나님 용서해주세요.
그래서 이 잘못된 서원(誓願)으로부터 자유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거래(흥정)하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하나님 아버지
믿음 뒤에 숨어있는 자기 과신, 자기 확신
혹시나 그러한 것들이 없는지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 잘못된 헌신을 했던 경험은 없었는지,
또한 하나님께 했던 서원을 지켰었는지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하루가 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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