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25. | 생명의 삶 | 김주환 목사
며칠 전에 아들 녀석 하고 어디를 가서 서 있었습니다.
아들 녀석 하고 한참 이야기하고 있는데,
아들 녀석 뒤로 지나간 한 성인 남성이 우리 아들을 얼마나 세계 첫냐면
아들이 거의 앞으로 넘어질 뻔할 정도로 꽤 세게 이렇게 치고 지나갔어요.
또 아내한테 최근에 들은 얘긴데,
어떤 아이가 서서 스마트폰을 하고 있는데, 지나가던 사람이 그 아이를 탁 치면서,
핸드폰이 이제 땅에 떨어져서 이게 깨졌다는 것이죠.
그럴 때 '어 미안', '쏘리' 이렇게 하면은 이제 끝나는 게 맞는가?
법적으로는 그 스마트폰을 회산 할 책임이 없다는 것이에요.
과연 이런 부분에 대해서
즉, 우리의 태만, 우리의 부주의로 인해서 사고가 일어났을 때 하나님은 뭐라고 말씀하실까?
오늘 출애굽기 21장 28절에서부터 36절 말씀 함께 듣도록 하겠습니다.
공의를 완성하는
공평한 후속 처리
출애굽기 21장 28절에서 36절 말씀입니다.
28 소가 남자나 여자를 받아서 죽이면 그 소는 반드시 돌로 쳐서 죽일 것이요 그 고기는 먹지 말 것이며 임자는 형벌을 면하려니와 29 소가 본래 받는 버릇이 있고 그 임자는 그로 말미암아 경고를 받았으되 단속하지 아니하여 남녀를 막론하고 받아 죽이면 그 소는 돌로 쳐죽일 것이고 임자도 죽일 것이며 30 만일 그에게 속죄금을 부과하면 무릇 그 명령한 것을 생명의 대가로 낼 것이요 31 아들을 받든지 딸을 받든지 이 법규대로 그 임자에게 행할 것이며 32 소가 만일 남종이나 여종을 받으면 소 임자가 은 삼십 세겔을 그의 상전에게 줄 것이요 소는 돌로 쳐서 죽일지니라 33 사람이 구덩이를 열어두거나 구덩이를 파고 덮지 아니하므로 소나 나귀가 거기에 빠지면 34 그 구덩이 주인이 잘 보상하여 짐승의 임자에게 돈을 줄 것이요 죽은 것은 그가 차지할 것이니라 35 이 사람의 소가 저 사람의 소를 받아 죽이면 살아 있는 소를 팔아 그 값을 반으로 나누고 또한 죽은 것도 반으로 나누려니와 36 그 소가 본래 받는 버릇이 있는 줄을 알고도 그 임자가 단속하지 아니하였으면 그는 소로 소를 갚을 것이요 죽은 것은 그가 차지할지니라 |
하나님은 먼저 의도적으로 짓는 죄에 대해서 특별히 중죄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을 죽이거나 또 부모를 치거나 저주하는 사람 또 납치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반드시 죽여야 된다 이렇게
말씀하셨죠.
자 그렇다면은 태만에 의해 일어나는 사고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즉, 조심하지 않아서, 부주의함 때문에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이죠.
특별히 이스라엘 당시에는 이 동물들이 많았어요.
가축업을 했기 때문에 이제 이 소나 이런 짐승의 의해서 사람이 죽임 당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28절
28 소가 남자나 여자를 받아서 죽이면 그 소는 반드시 돌로 쳐서 죽일 것이요 그 고기는 먹지 말 것이며 임자는 형벌을 면하려니와
'소가 남자나 여자를 받아서 죽이면 그 소는 반드시 돌로 쳐 죽일 것이오'
자 이 부분에 대해서는 소에 주인님 어떻게 할 수가 없었겠죠. 소가 사람을 죽일 줄 알았겠습니까?
근데 이제 소에게 이러한 폭력적인 성향 이력이 있었을 경우는 어떻게 하느냐? 29절입니다.
29 소가 본래 받는 버릇이 있고 그 임자는 그로 말미암아 경고를 받았으되 단속하지 아니하여 남녀를 막론하고 받아 죽이면 그 소는 돌로 쳐 죽일 것이고 임자도 죽일 것이며
그러니까 이 소가 공격적인 성향을 갖고 있고 언제든지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위험성을 갖고 있다 것을 알면서도 그걸 방치했다면은 소의 주인도 죽임을 당하게 된다.
하나님은 이 부분에 대해서 굉장히 철저하십니다.
이것이 우리와 오늘 무슨 상관일까요?
소의 주인이 무조건 책임져야 된다는 얘기입니다.
말하자면은 이 소나 양은 그 당시에 생계수단이에요. 그렇죠?
오늘날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소유물, 우리 애완견, 우리 동물뿐만 아니라 시설에 대해서도 스스로 책임을 져야 된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서 직장의 안전을 누가 책임져야 됩니까?
또 일터 공장의 안 줘 또 에 애완견을 키우는 경우 그 애완견이 다른 사람을 공격하고 해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책임이
누구에게 있습니까?
주인에게 있다는 거예요.
사장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어 죽으면 다치면 반드시 보상해야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원칙이죠.
그때 당시 이 함무라비 법전을 보게 되면요.
부자들만 배상받을 수 있었습니다.
일반인들은 대상 못 받아요.
남종과 여종 죽이면 괜찮아요. 아무 일 없는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은 남종과 여종까지도 아들과 딸 다 포함합니다.
이게 다시 한번 생명의 존엄성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죠.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32절에
32 소가 만일 남종이나 여종을 받으면 소 임자가 은 삼십 세겔을 그의 상전에게 줄 것이요 소는 돌로 쳐서 죽일지니라
그가 소가 종을 받아 죽게 하면 은 30 세겔이면 된다는 얘기입니다.
이런 게 왜 중요하죠?
예수님이 저와 여러분을 위해서 종이 되셨습니다.
소 같은 존재들한테 들이 받힘을 당해서 예수님이 죽으셨는데,
종처럼 은 30 세갤에 그렇게 배신당한 분이 우리 주님입니다.
이와 같이 철저하게 종의 몸으로 자신을 낮추신 예수님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놀라운 사랑을 보게 되는 것이죠.
또 33절 이하를 보게 되면
33 사람이 구덩이를 열어두거나 구덩이를 파고 덮지 아니하므로 소나 나귀가 거기에 빠지면
34 그 구덩이 주인이 잘 보상하여 짐승의 임자에게 돈을 줄 것이요 죽은 것은 그가 차지할 것이니라
이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냐면,
우리가 한 것에 대해서만 책임을 져야 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된다는 거예요.
아니 우리가 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도 우리가 책임을 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자 여기서 한 사람이 구덩이를 팠습니다.
그런데 그걸 그냥 열어둔 거예요. 그걸 완전하게 덮어 둬야 되는데, 그걸 열어둔 거예요.
전혀 의도가 없었지만, 짐승이 지나가다가 소나 나귀가 거기에 빠지게 됩니다. 그럼 배상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어! 이것은 내가 생각한 게 아닌데, 나는 전혀 이럴 마음이 없었는데, 쏘리"
이렇게 해서는 결코 해결이 안 된다는 것이죠.
그래서 오늘 이 말씀을 우리의 삶 속에, 우리에 이 현실에 적용을 하면 상당히 많은 지혜가 필요합니다.
왜냐하면은 우리가 자주 보게 되지만,
이 부당한 배상을 청구하는 경우도 많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기서 또 중요한 하나의 개념을 배우게 되는데, 바로 lex talionis, 복수법이라는 것이죠.
탈리오 법칙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얘기냐 하면,
이 피해자가 입은 그 피해의 규모에 맞게 가해자도 피해를 입도록 하는 법입니다.
이게 그래서 이거를 또 우리가 동해보복법(同害報復法) 이렇게 부르기도 하죠.
자 근데 이게 바로 이제 23절과 25절 어제 본문이지만 오늘 본문 하고 집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23 그러나 다른 해가 있으면 갚되 생명은 생명으로,
24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25 덴 것은 덴 것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지니라
이렇게 왜 말씀하십니까?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원리를 보게 됩니다.
하나님이 왜 이러한 원칙을 세우셨을까?
주목적은 무엇이냐면은, 피해자가 직접 가해자에게 보복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마을의 원로들이 재판을 통해서 밝혀내고 판결을 해야 하는 부분이죠.
어떤 경우에도 내가 피해를 입었다고 직접 정의를 실천해서는 안 된다는 거죠.
직접 가해자를 찾아가서 복수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죠.
이게 왜 중요합니까?
왜냐면 우리 인간은. 죄의 본성 때문에, 당했으면 당한 대로 갚아 주지 않죠.
당한 것 이상으로 갚아 줘야지. 두 배 세 베 갚아 줘야지만 성에 차요. 아니 그래도 성이 안 차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런 갈등, 이런 폭력이 더 이상 증폭되지 않도록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라는 원칙을 세우신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것을 잘 지킬 수만 있다면 이 사회, 이 공동체는 굉장히 건강한 사회와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의해야 되는 것은,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라는 것은 뭐냐면
누군가가 내 눈을 다치게 했으면 나도 상대방의 눈을 다치게 하는 얘기가 아닙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라는 것은 상대방이 피해를 입었을 경우 그 손해만큼 배상하라는 얘기죠.
자 여기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해야 될까요?
하나님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요?
여러분 예수님이 바로 이 말씀을 놓고 바리새인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너희가 이 말씀을 오해하였도다. 너희가 이것을 거꾸로 해석했다"라고 지적하신 적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5장에 보면 예수님이 뭐라고 그러시죠?
마태복음 5:39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누군가 네 오른 빰을 치면 왼 빰을 돌려 대라"
이 말씀을 보면 이게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에 계명과 이 법규와 너무나 위배되는 상충되는 내용인 것 같습니다.
즉 이 말씀의 참된 의미는 뭐냐면은,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는 피해자 입장에서 피해자가 요구할 것이 아니라.
가해자가 책임져야 할 가해자가 스스로 해야 할 부분을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누군가에게 손해를 끼쳤다면, 손해를 끼친 사람이 적극적으로 자발적으로 이 부분에 대해서 배상하라는 것이에요.
자 그렇다면 내가 피해자인데, 가해자가 이 부분에 대해서 제대로 하지 않을 때 어떻게 해야 됩니까?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배울 수 있습니다.
"오른뺨을 치면 왼 뺨을 돌려 대라"
즉 예수님이 원하시는 참된 율법은 무엇이냐? 하나님의 마음은 어떤 것이냐?
우리가 남에게 피해를 입혔을 때는 우리가 책임을 지고 거기에 따르는 보상을 해야 하는 게 맞지만,
우리가 피해를 입었을 때 그것을 요구하고 손해배상 청구하는 것이 항상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가 손해를 봤더라도 우리가 피해자 입장에 있더라도
얼마든지 우리는 복수보다 긍휼을 베풀고, 사랑을 베풀고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부당한 대우를 당하고, 침 뱉음을 당하고, 징계를 당하셨을 때 복수를 하셨다면,
저와 여러분은 오늘날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다 참으셨습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피해자셨지만 예수님은 도리어 이 모든 것을 사랑으로 대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오늘 하루 그리고 매일매일 저와 여러분은 피해자가 될 때가 많이 있을 거예요.
누군가가 우리에게 부당하게 대우하고 우리에게 아픔을 주고 우리에게 손해를 끼쳤을 때 우리에게는 선택권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예수님처럼 용서하고, 예수님처럼 사랑할 수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랑의 주님
예수님이 우리를 대하신 것처럼 우리도 다른 사람을 대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어려움을 당할 때, 힘든 일을 당할 때, 복수가 아닌 긍휼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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