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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 후에 주시는 회복의 신호 (예레미야 52:24~34)

2020.10.31. | 생명의 삶 | 서정오 목사                                                                                                                                       



샬롬 

주님 안에서 오늘도 평안 하시지요? 

오늘도 살아계신 주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삶과 일터와 생각과 영혼에 온전히 하나님의 놀라우신 능력으로 나타나시길 축원합니다.


지도자란? 어떤 사람일까요?

어떤 리더십 교제에 보니까. 참 재밌게 해석을 한 사람두 있었습니다.

Leadership is leading a ship

라고 표현했습니다. 

즉, 다시 말하면 리더십이란 한 배를 목적지까지 끌고가는 능력이라고 표연한 거죠.

참으로 그렇습니다. 

지도자란 목적지가 어디인지를 알고 배를 그 목적지로 끌고가는 선장과 같은 존재입니다.


자, 그런데 이 지도자가 지도자답지 못하면, 가야할 곳이 어디인지 모르고, 

또 그를 이끌어가는 능력이 부족할 때, 그만 그 공동체는 망하고 말 것입니다.

이런점에서 한 나라든, 교회든 혹은 어떤 공동체이든지 간에 지도자의 역할은 잠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도자는 열심히 실력을 쌓아야 하고, 

어떤 상황에서 올바른 분별력을 가지기 위하여 겸손히 하나님 앞에 매순간 엎드려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유다 왕국의 지도자들은 그렇게 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유다의 멸망의 모습을 오늘 본문을 통해서 읽어봅니다. 

예레미야 52장 24절부터 34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심판 후에 주시는 회복의 신호심판 후에 주시는 회복의 신호


심판 후에 주시는 

회복의 신호


예레미야 52장 24절에서 34절 말씀입니다.



24절부터 27절까지 제가 읽어 봅니다.

24 사령관이 대제사장 스라야부제사장 스바냐성전 문지기 세 사람을 사로잡고

25 또 성 안에서 사람을 사로잡았으니 곧 군사를 거느린 지휘관 한 사람과 또 성중에서 만난 왕의 내시 칠 명군인을 감독하는 군 지휘관의 서기관 하나성 안에서 만난 평민 육십 명이라

26 사령관 느부사라단은 그들을 사로잡아 립나에 있는 바벨론의 왕에게 나아가매

27 바벨론의 왕이 하맛 땅 립나에서 다 쳐 죽였더라 이와 같이 유다가 사로잡혀 본국에서 떠났더라


27절 상반절에 '바벨론의 왕이 하맛 땅 립나에서 다 쳐 죽였더라' 끔찍한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누구를요? 오늘 24절에서 부터 나오는 그 수많은 사람들...

일반 평민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앞에 나오는 지도자들이었죠. 보니까 

대제사장 스라야, 부제사장 스바냐 그리고 그 뒤에 나오면 성전 문지기 세 사람, 성 안에서 새롭게 사로잡은 사람 즉 군사를 거느린 지휘관 아마 장군 쯤 되겠지요. 성 중에서 만난 왕의 내시 일곱 명, 군인을 감독하는 군 지휘관 서기관 등등


대개가 오늘날로 치면 고위직 공무원들이었을 것이라는 상상을 해봅니다.

대제사장과 부제사장,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서 중보자 역할을 하면서 하나님을 섬기고 백성을 섬겨야 영적지도자였읍니다.

성전 문지기는 하나님의 성전, 하나님의 집에서 안전을 책임지는 보안 책임자 였습니다.

특별히 구별 받은 사람들, 기름부음 받은 레위 족속 중에서 선택받습니다.

군대 지휘관, 서기관, 내시 또한 아주 중요한 직책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들이 해야 할, 자신의 책임을 재대로 감당하지 못한 결과 때문에, 유다가 무너져 내리고 만 것입니다. 

물론 그 한사람 한사람이 잘못 때문에 유다 전체가 멸망 했다고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책임자들 각 요소 요소에서 자기가 맡은 책임을 잘 감당하지 못한 그 무책임이, 

합하고 합하고 모아져서 나라 전체가 무너져 내리고 만 것이었습니다.

그 무책임한 그들의 실수와 게으름이 국가를 무너뜨린 것이라다 그 말입니다.


사실 어떤 면에서 그들은 유다 왕국의 멸망에 직접적인 책임자는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접적인 책임일지라도, 자기의 책임 감당하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지는 모습으로, 

그 책임의 일부를 감당하기 위해, 그 처참하게 바벨론 왕에게 그렇게 죽임을 당하고 만 것이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유다 왕국의 멸망은 단지 시드기야 왕 한 사람의 책임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유다 왕국의 모든 백성들의 책임이였죠. 그 중에도 특별히 일반 힘없는 평민보다는, 지도자들의 책임이 가장 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한국사회, 한국교회의 문제 몇몇 사람의 지도자의 문제는 아닐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어진 자리에서, 주어진 만큼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모든 지도자들이 제 몫을 감당하지 못할 때 

함께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는 것이죠


이런 점에서 묻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직장에서 어떤 위치에 있으십니까?

여러분의 동네에서는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으신가요? 

여러분이 교회에서는 어떤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까?


저는 저 자신에게도 지금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과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책임, 소임을 다 잘 감당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죠.

만일 이 대한민국이, 그리고 한국교회가 무너져 내리게 된다면, 

그 책임은 어느 누구 한 사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짊어져야 할 것이고, 

그 고통과 시련은 우리 모두가 다 감내해야 할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자리에서 우리가 할 수있는 한, 우리에 최선을 다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맡기신 책임은 무엇인가요?하나님이 나에게 맡기신 책임은 무엇인가요?




유다 왕국이 망하고, 마지막 유다 20대 왕이었던 시드기야 두 눈이 뽑혀 바벨론으로 끌려가고난 이후에 기록들은 성경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전임자였던 즉, 19대 왕이었던 시드기야의 조카이자, 18대 여호야김 왕의 아들이였던, 19대 여호야긴 왕에 대한 기록이 

갑자기 예레미야의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31절부터 34절까지죠.

31 유다 왕 여호야긴이 사로잡혀 간 지 삼십칠 년 곧 바벨론의 에윌므로닥 왕의 즉위 원년 열두째 달 스물다섯째 날 그가 유다의 여호야긴 왕의 머리를 들어 주었고 감옥에서 풀어 주었더라

32 그에게 친절하게 말하고 그의 자리를 그와 함께 바벨론에 있는 왕들의 자리보다 높이고

33 그 죄수의 의복을 갈아 입혔고 그의 평생 동안 항상 왕의 앞에서 먹게 하였으며

34 그가 날마다 쓸 것을 바벨론의 왕에게서 받는 정량이 있었고 죽는 날까지 곧 종신토록 받았더라


사실 시드기야 임금(20대 임금)이 유다를 마지막으로 통치 하면서 멸망할 때까지는, 

그 전대였던 19대 여호야긴 왕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감옥 속에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시드기야 임금이 유다가 멸망한 후, 두눈이 뽑혀 바벨론으로 끌려간 이후에 소식이 없는 상태에서, 

갑자기 19대 여호야긴 왕이 '남은 평생을 참 편안하게 잘 살았다' 이 기록이 남아있다는 것이죠.

도대체 이 기록을 예레미야서의 마지막 결론 부분에서 왜 언급하고 있을까? 하는것이 의문입니다.

왜 남유다의 멸망이나 시드기야의 죽음으로 예레미야서를 끝 마무리 짓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죠.


근데 여기에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가 숨어 있음을 우리는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호롱불 같이 남아있는 불안한 그 불씨 같은 여호야긴을 다시 높여서, 당신의 백성들을 회복시켜가는 소망의 작은 빛으로 사람들에게 보여 주신 것입니다.

이 회복, 이 회복, 이 놀라우신 하나님의 축복의 회복의 소망을 

우리는 이사야 선지자의 글을 통해서도 발견 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 6장 13절에 이렇게 말씀하죠.

이사야 6:13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시더라


밤나무, 상수리 나무가 다 베어져도 밑둥거리 그루터기가 남아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다 멸망 시킨 것 같아도, 

그 그루터기 같은 남은 불씨를 통해, 

온 세상을 새롭게 할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백성들을 새롭게 회복하실 것이라는 겁니다.


이런점에서 

여호와 하나님, 역사의 주인이신 그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를 섬겨가는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은 

어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결코,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절망의 바닥 속에서도 우리를 다시 일으켜 주실 것을 우리는 믿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삶이 너무 힘듭니까? 정말 낙심이 됩니까?

하나님 바라보십시요. 

하나님께서 모든 것, 다 짤려 가버리고 불타버린 밑둥거리, 그루터기를 통해서 새로운 거룩한 회복의 씨앗을 이루어 주실 줄 믿습니다.


오랜 고난 가운데서도 낙심하지 않고 붙잡아야 할 소망은 무엇인가요?오랜 고난 가운데서도 낙심하지 않고 붙잡아야 할 소망은 무엇인가요?



온 세상이 뒤집어져도 

여전히 하나님은 우리의 소망이요 큰 능력이심을 믿습니다

거룩한 그루터기를 남겨놓으시고 그들을 통해 믿음의 대를 잇게 하여 주시는 하나님

우리가 어떤 절망 속에서 소망의 끈을 놓지 않도록 

우리를 붙잡아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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