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9.26. | 생명의 삶 | 이기훈 목사
기도응답은 말씀순종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서, 기도가 응답될 기를 바라는 것은 기복신앙과 똑같은 것이죠.
우리는 이런 생각을 미처하지 않은채 기도생활을 할 때가 참 많죠.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기도의 한계가 무엇인지를 함께 묵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예레미야 37장 1절로 10절을 묵상하겠습니다.
순종함이 없는 기도,
거듭되는 심판 선언
예레미야 37장 1절에서 10절 말씀입니다
여호야김 왕이 바벨론에 의하여 폐위가 되고 시드기야가 대신 왕으로 새움을 받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2 그와 그의 신하와 그의 땅 백성이 여호와께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하신 말씀을 듣지 아니하니라
그러니까 시드기야 왕 뿐 아니라, 그와 함께 하는 모든 위정자들 심지어 그 백성들까지도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서 주시는 말씀을 듣지 않았다. 말씀과 상관없이 그들은 살았다. 말씀을 자기들의 삶의 신앙의 중심으로 삼지 않았다. 이런 말씀이죠.
그런데 3절에 보면
3 시드기야 왕이 셀레먀의 아들 여후갈과 마아세야의 아들 제사장 스바냐를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보내 청하되 너는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라 하였으니
말씀과 상관없이 인생을 살면서, 어느 날 예레미아에게 중보기도를 부탁 한 것입니다. 어떤 중보기도를 부탁했을까요?
5 바로의 군대가 애굽에서 나오매 예루살렘을 에워쌌던 갈대아인이 그 소문을 듣고 예루살렘에서 떠났더라
지금 마지막 멸망 때에 그 유다는 그 바벨론과 이집트 사이에 있었습니다.
이집트와 바벨론의 싸움 한가운데서 늘 고통을 겪고 있었던 것이죠.
그런데 지금 바벨론이 침공을 해 와서 있던차에 애굽 군대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잠시 물러간 그러한 틈 이였던 것이죠.
이 상황에서 시디야가 중보기도를 부탁한 것은, 바벨론이 물러가고 이집트가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해 주십시오.
이런 기도를 하나님께 해 달라고 부탁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에서 기도응답과 말씀순종에 관계를 발견하게 됩니다.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기도를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 처음 기도는 대부분 자기욕심, 자기필요를 구하는 기도를 하죠.
그러나 그 단계를 넘어서면, 기도는 이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단계로 올라가게 되죠.
그래서 이 말씀과 기도가 항상 같이 있는 이유는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해야되기 때문입니다.
말씀으로 하는 기도가 응답 받는 기도에요.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자기욕심, 자기이기심, 자기야심을 채우기 위해서 기도하는 내용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응답이 없다는 것이죠.
물론 자기 생각이나 자기의 마음이나 소원이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거라면 하나님께서 얼마든지 응답을 하시겠죠.
그러나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말씀과 반대되는 것들을 요구할 때에 하나님은 결코 그 기도를 들으시지 않는다는 것이죠.
애굽이 물러가고 바벨론이 유다 땅에 들어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데,
이 시드기야 왕은 바벨론이 물러가고 애굽이 이 땅에 들어오게 해 달라고 기도했던 것이죠.
그러나 그 기도는 결코 응답될 수가 없던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가 야고보 4장 3절에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구하여도 얻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 이니라.
우리의 기도가 자기 욕심, 이기심을 채우려는 것이 될 때에 하나님은 결코 그 기도에 응답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여러분 기도생활을 열심히 해야 됩니다.
매일 기도하는 것이 삶의 원칙이요 습관이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그 기도가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해야 된다는 거죠.
하나님의 뜻에 일치할 때, 그 기도는 응답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어떤 제목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있습니까?
이제는 기도를 하시되, 이 기도 내용이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한가를 한번 점검해 보시고, 그 기도를 계속해서 하시던지,
아니면 기도제목을 바꾸시든지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는 하루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말씀에 합당한 기도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시드기야 왕의 한계가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께 하나님의 뜻을 위한 기도를 하지 않고 자기 뜻을 이루려는 기도를 했다는 것이죠.
그러한 기도는 결코 응답될 수 가 없다는 사실을 우리도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결국 시드기야에게서 최선의 선택은 뭐냐?
자기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모든 상황 가운데서 돌보시고 인도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벨론을 사용해서 유다 왕국을 심판하시고,
또 바벨론 이후에 그들이 70년 지난 뒤 다시 회복될 것에 대한 이미 프로젝트를 갖고 계십니다.
그런데 시드기야 왕은 그런 하나님의 계획과 반대되는 일을 추구하고, 또 기도 하니까, 그의 신앙과 기도에 한계가 있었던 것이죠.
실질적으로 바벨론으로부터 멸망을 당한 결정적인 원인은 시드기야 왕도 그렇고 엘리야긴도 그렇고 엘리야김도 그렇고
하나님은 분명히 바벨론에 붙어 있으면 결코 멸망은 당하지 않는다.
그 땅의 지배를 받고 속국은 될 수 있어도 멸망을 당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애굽에 붙어 버리면 너희들 완전히 멸망 당할 것이다.
이 메시지를 계속 주셨던 거에요.
근데 이 시드기야 왕은
'그게 틀렸다
나는 애굽에 붙고 싶다. 바벨론 싫다
그러니 바벨론이 떠나고 애굽이 우리 땅에 있게 해달라'
이런식의 생각과 고집을 하나님 앞에서 계속 피었던 것이죠.
결국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림으로 자기도 망하고, 나라도 망하고, 백성도 망하게 하는 그러한 결정을 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인생에 있어서 최선의 선택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결정을 하는 것입니다.
내게 이익이 되지 않아도, 내가 억울해도,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면 그 뜻을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것
내 이해와 내 판단과 내 경험에 합당하지 않아도,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그것들을 내려놓고 포기하는 것,
이것이 최선의 선택인 것이죠.
여러분
밤새도록 그물질 했지만 고기 한 마리도 못 잡던 베드로를 기억하십니까?
주님께서 아침에 깊은데가서 그물을 던지라 그랬더니
일반적인 사람들 같으면 '
저런 무식한 사람이 있나? 이 아침에 무슨 깊은데 고기가 있어? 고기들은 다 낮은 곳으로 오는데'
이렇게 하고 하나님 말씀에 예수님의 말씀을 거부 했겠죠.
그러나 베드로는 말씀에 의지하여, 상식이 안 맞지만, 내 경험에 안맞지만,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해서 엄청 그물이 찢어지도록 고기를 잡았던 말이죠.
여러분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뜻과 계획은 하나님과 다를 때가 많아요.
왜냐하면 우리는 생각이 좁고 시야가 좁기 때문에 하나님이 보실 때
우리에게 안좋은 선택과 결정을 할 때는 많은 거예요
그러나 우리의 과거 현재와 미래를 다 아시는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때는, 그 분이 우리에게 재시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고 최고의 선물인 것이죠.
근데 우리는 그것들을 못 깨닫고,
내 생각과 계획과 경험과 다르다고 해서 거부하고, 내 생각을 고집할 때, 결국 그 결과는 망하는 것 뿐이죠.
이것이 시드기야의 한계였던 것입니다
여러분
아직도 내 뜻과 내 계획과 하나님의 생각사이에 갈등하고 고민하는 게 있습니까?
결단하지 못하고, 냉큼 순종하지 못한채, 차일피일 여기까지 온 그런 일들은 없습니까?
오늘 결단 하십시오.
우리들의 최선의 선택은 내 의지와 계획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여러분의 인생을 살리고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내 뜻과 생각의 한계는 무엇이고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요?
하나님 아버지
나의 지식, 경험, 계획,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선택할 수 있는 믿음의 결단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ND
CGNTV 공식 홈페이지 : http://www.cgntv.net
생명의 삶 구독 : http://www.duranno.com/qt/
|
|
|
'CGNTV > 2020 생명의 삶' 카테고리의 다른 글
들음과 따름 사이에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예레미야 38:14~28) (0) | 2020.09.29 |
---|---|
고난 앞에서도 포기할 수 없는 사명 (예레미야 37:11~21) (0) | 2020.09.27 |
말씀을 멸시하면 멸시받는 인생이 됩니다 (예레미야 36:20~32) (0) | 2020.09.25 |
심판과 경고의 말씀을 두려움으로 받으십시오 (예레미야 36:1~19) (0) | 2020.09.24 |
극명하게 대조되는 순종과 불순종 (예레미야 35:12~19) (0) | 2020.09.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