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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 앞에서도 포기할 수 없는 사명 (예레미야 37:11~21)

2020.09.27. | 생명의 삶 | 노치형 목사                                                                                                           



할렐루야 귀하고 거룩한 주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9월의 마지막 주일에 하나님께 주신 생명 안에서 늘 승리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코로나 19의 상황이 계속되고 있고, 또 여러가지 자연재해로 인해서 고통받는 분들이 많은 그런 상황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하는 기쁨을 놓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만나서 예배하건 또한 영상으로 예배하건, 우리 모두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께 집중하는 하나님을 간절히 사랑하는 그런 예배를 드리길 소망합니다.


오늘도 하나님 주신 말씀 속에서 우리가 서기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깊이있게 묵상하고, 하나님 말씀 속에서 기쁨을 누리는 주일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 부문 말씀은 예레미야 37장 11절에서 21절입니다.

오늘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겠습니다.

고난 앞에서도 포기할 수 없는 사명고난 앞에서도 포기할 수 없는 사명


고난 앞에서도 

포기할 수 없는 사명


예레미야 37장 11절에서 21절 말씀 입니다.



혹시 요즘 두렵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이 생길 때, 우리는 모든 것을 멈추게 됩니다.

그리고 그 두려움에 집중하게 되죠.


하지만 그 두려움이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이 주는 것이라면, 우리는 아무리 집중해도 그 두려움에서 헤어나올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두려워할 존재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심을 우리가 기억할 때, 

하나님만을 두려워하는 그 두려움 속에서 우리는 두려움에 집중하다가 하나님을 보게 되고, 

그 하나님 속에 있는 사랑을 보게 되고, 하나님 속에 있는 사랑 속에서 우리는 평안을 되찾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말씀을, 예레미야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보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 11절의 말씀을 읽겠습니다.

11 갈대아인의 군대가 바로의 군대를 두려워하여 예루살렘에서 떠나매


오늘 이 말씀의 배경이 되는 그러한 부분입니다.

바벨론 사람들을 갈대아라고 말하고 있죠. 바로의 군대는 이집트의 군대를 예기합니다.

이것은 역사적인 사건으로 BC 586년에 시드기야 왕이 이집트의 왕에게 요청을 하고, 

자기를 도와 달라는 요청 속에서 이집트가 군사를 보내게 됩니다.

물론 이집트도 이집트 나름대로의 마음이 있었겠죠.

이번 기회를 통해서 북방진출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찾아오는 것을 보고, 바벨론 그 왕의 군사들은 잠깐 피하게 됩니다. 작전상 후퇴가 되겠죠.

그냥 무조건 싸우기에는 이집트라는 나라가 강대국이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들에게는 모두 두려움이 있습니다. 

시드기야 왕에게도 두려움이 있고, 

그리고 이집트 바로의 군대에게도 두려움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바벨론이라는 큰 나라와 싸운적은 없기 때문이죠. 

그리고 바벨론 왕의 군사들에게도 두려움이 있습니다.

이것은 다 세상적인 두려움입니다.

이 두려움 속에서 사람들은 고민하죠

"어떻게 하면 이 두려움을 빨리 이겨낼 수 있을까?"

그대는 무력을 사용하려고 할 것이고 그들은 모략을 사용하려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다른 사람을 죽이기 위한 생각들이죠.

죽이기위한 생각들 속에서 시드기야 왕은 정말 자기가 구원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계속 믿을 수 있을까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려움을 경험할 때 정말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 주신다는 믿음말고, 

이 세상이 나를 도와줄 수 있을 것이다. 이 세상의 사람들이 나를 도와줄 수 있을 것이다.'라는 그 생각이 정말 나를 평안하게 만들 수 있을까요?


우리는 시드기야 왕처럼 그렇게 두려워하며 여러가지 방법을 생각하지 않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린 앞서 나온 시드기야 왕에게 해서 3가지의 실수와 잘못이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그것은 첫번째가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어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두 번째로 사람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세상과 사람을 두려워하는 마음은 우리에게 유익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를 흔들어 놓고,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이죠.

또한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세상을 두려 하고, 사람을 두려워 했기 때문에 

자기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세상과 사람 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실수를 이 시드기야 왕은 하고 있다는 것이죠.


그런 상황 속에서 어떤일이 일어납니까?

우리는 12절에 말씀에서 16절의 말씀을 읽겠습니다.


12 예레미야가 베냐민 땅에서 백성 가운데 분깃을 받으려고 예루살렘을 떠나 그리로 가려 하여

13 베냐민 문에 이른즉 하나냐의 손자요 셀레먀의 아들인 이리야라 이름하는 문지기의 우두머리가 선지자 예레미야를 붙잡아 이르되 네가 갈대아인에게 항복하려 하는도다

14 예레미야가 이르되 거짓이다 나는 갈대아인에게 항복하려 하지 아니하노라 이리야가 듣지 아니하고 예레미야를 잡아 고관들에게로 끌어 가매

15 고관들이 노여워하여 예레미야를 때려서 서기관 요나단의 집에 가두었으니 이는 그들이 이 집을 옥으로 삼았음이더라

16 예레미야가 뚜껑 씌운 웅덩이에 들어간 지 여러 날 만에


여기에서는 예레미야의 두려움이 나옵니다.

예레미야는 아나돗 이라는 자기의 고향으로 가기 위해서 베냐민 문과 제일 가깝기 때문에 그곳을 향해 갑니다.

하지만 그곳에 문지기의 우두머리였던 이 이리야는, 

그를 붙잡고 바벨론 왕에게 다가가려고 하고 배반하려 한다' 라고 생각하여서 고관들에게 끌려가고,

그리고 예레미야는 매를 맞아서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그런데 그 감옥은 뚜껑을 씌운 웅덩이라고 했어요. 이것은 토굴입니다. 

땅을 파서 만들고 진흙이 있는 그런 곳에 처박혀 버렸고, 뚜껑이 덮여 깜깜한 곳에 묻혀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두려운 상황에 임하게 됩니다.

그 진실을 얘기하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억울한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런 상황 속에서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하나님을 정말 바라볼 수 있을지, 우리가 이 시간 다시 한번 이 상황을 생각하길 소망합니다.


요즘 나를 두렵게 하는 상황은 무엇인가요?요즘 나를 두렵게 하는 상황은 무엇인가요?




앞서 살펴 본 사람들의 두려움은 서로 다른 것들이었습니다.

그 모든 것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그런 두려움이였습니다.

이 인생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또한 그것을 앞에 두고 있다고 생각할 때, 오는 두려움을 우리는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유는 매우 중요한 구원의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부터의 구원을 약속하신 것일까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통해서 우리는 세 가지로부터의 구원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첫번째는 우리의 거짓으로 부터의 구원입니다.

우리는 거짓에 매여 있습니다. 

지금 시드기야 왕은 리더로서 무언가를 결정해야 하는데, 어떠한 것이 바른 정보 인지를 알 수가 없습니다.

누구의 예언이 진짜 맞는지를 모르겠습니다.

물론 오늘 본문 뒷부분에 나오는 시드기야 왕이 예레미야에 대한 생각은 굉장히 신뢰하고 있는 상태이구나 라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신뢰 하지만 믿지는 않습니다. 

잠 좀 이상한 말이 되겠죠? 

신뢰하면서 어떻게 믿을 수 없느냐?

그말이 하나님께로 부터 오는 거 같기도 하고, 그것이 정말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예레미야가 가장 진지하다고 생각하나, 자기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믿음에는 믿어지는 그러한 정도까지의 믿음과, 

내가 믿고 행동할 수 있도록 선택하고 순종하는 믿음이 있다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시드기야 왕을 통해서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믿음은 

"그냥 믿음직한 믿음, 그 정도로 끝나지 마라"

"그것을 따라서 실천 해라" 

그것이 위험을 향해 가는 길이고 그것이 죽을 것 같은 그러한 위기속에 두려움 속으로 몰고 간다 할지라도, 

그러한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이 침묵하는 것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그래도 그 하나님을 그 하나의 말씀을 전하는 그 예레미야를 신뢰해라. 

그 말씀을 우리는 기억해야 된다는 것이죠.

우리가 듣기 좋은 말보다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해 주시는 그 말씀을 기억하게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시드기야가 이런 일을 해야죠. 한번 17절에 말씀 읽겠습니다. 


17 시드기야 왕이 사람을 보내어 그를 이끌어내고 왕궁에서 그에게 비밀히 물어 이르되 여호와께로부터 받은 말씀이 있느냐 예레미야가 대답하되 있나이다 또 이르되 왕이 바벨론의 왕의 손에 넘겨지리이다


그 두려운 상황 속에서 시드기야는 '하나님이 뭔가 말씀해 주시지 않는가?' 물어보는 거예요. 성경에는 그런 왕들이 나옵니다.

아합과 같은 왕도 물어 보죠. '하나님이 뭐라고 하시더냐?' 하지만 하나님의 말을 전하면 듣지 않습니다.

이사야에게도 하나님이신 말씀이 그 것이었죠

니가 전하더라도, 그는 보지 못할 것이고, 듣지 못할 것이고, 깨닫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듣는다고 해서, 본다고 해서, 우리가 지식이 있고, 우리가 이성에 판단이 빠르다고 해서, 

우리에게 촉이 있고, 육감이 뛰어나다고 해서,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우리는 이 두려운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귀가 열려 있는지, 그것을 깊히 묵상해 보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이 두려운 순간에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일 수 있도록 우리는 하나님을 향해 서야합니다.


예레미야는 그걸 알고 있어요. 

시드기야 왕에게 늘 얘기했지만 그는 듣지 않았다는 사실,

시드기야는 예레미아를 그 흙구덩이, 감옥 속에서 구출해 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예레미야는 시드기야 왕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자기에게 말씀을 주시는 오직 하나님만 붙들고,

그 위기와 두려움 속에서 그 바벨론 군사도, 이집트의 군사도, 시드기야 왕도 하나님께 눈을 돌리지 않았지만,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눈을 돌립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눈을 돌리는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귀한 주일 우리가 함께 모여 예배 하거나, 그렇지 않거나, 하나님 안에서 우리의 두려움을 계속 묵상하기 보다. 

하나님 향해서 우리의 눈을 돌려 하나님을 예배하며 우리의 두려움이 결국에 변하여 승리가 되는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억울하고 두려운 상황에도 늘 하나님을 생각하나요?억울하고 두려운 상황에도 늘 하나님을 생각하나요?


우리의 모든 상황을 아시는 하나님

거룩한 주일을 맞아 삼위일체 하나님께 예배하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코로나 19와 자연재해로 인한 두려움 속에서도 예배의 기쁨을 알게 하시고, 누리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진실을 말하다가 억울함을 당해도, 두려운 상황에 의지할 것이 하나도 없을 지라도

삼위일체 하나님만 의지하여 있는 자리에서 담대하게 예배하게 하여 주십시오.

고난 앞에서도 사명을 포기하지 않았던 예레미야 처럼 

믿음의 걸음을 당당히 선택하는 사람들에게 하늘과 땅의 복으로 충만케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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