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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롱 속에 역설적으로 드러난 메시아 왕의 정체성 (요한복음 19:1~16)


2020.03.10.화 | 생명의 삶 | 도육환 목사 |



우리가 예배 때마다 고백하는 사도신경에는 성부, 성자, 성령 세 분 하나님 외에 두 사람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사람은 '마리아'이고, 또 한사람은 '본디오 빌라도'지요.

마리아는 그녀가 고백하고 찬양한 그대로 만세에 그의 이름이 높임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본디오 빌라도는 우리가 늘 고백하는 대로, 악행 한 자에 대표로 그 이름이 남아있지요.


본디오 빌라도는 예수 그리스도가 무죄하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가진 지우, 그의 명에, 그가 추구하는 욕망을 이루기 위해서 현실적인 타협을 해야만 했던 사람이지요.

그의 인간적인 고뇌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자주 우리도 본디오 빌라도 처럼 그와 같은 상황에서 자신과 타협할 때가 많기 때문에, 빌라도의 마음을 누구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지켜야할 믿음에 도리와 신념들은 굳건히 지켜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말씀을 통해서 깨닫게 됩니다.

빌라도 법정에서 일어났던 일들, 우리 자신에게 적용하면서 다시 묵상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조롱 속에 역설적으로 드러난 

메시아 왕의 정체성


요한복음 19장 1절에서 16절 말씀입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으로부터 아무런 죄를 발견 할 수 없었습니다.

특별히 십자가 형에 처해야할만한 악을 저지른 분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요. 

그 때문에 유월절 특사로 그리스도를 풀어보고 싶어 하는 그의 의도가 있었지만,

군중들이 바라바를 요구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예수님 십자가로 내어 놓아야만 했습니다.


빌라도는 그에게 십자가형이 아닌 태형(笞刑)정도로 성난 민심들을 달래 보려고 했습니다. 약식 형병을 한번 취하고 싶었던 거죠. 

그래서 군인들은 주님을 채찍질하고, 가시관을 씌우고, 홍포를 입힌채로 군중들 앞에 내어 놓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데리고 군중들 앞에 나와 예수님의 무죄를 보여주고 싶어했습니다. 4절 6절 말씀입니다.

4 빌라도가 다시 밖에 나가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을 데리고 너희에게 나오나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로라 하더라

5 이에 예수께서 가시관을 쓰고 자색 옷을 입고 나오시니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이로다 하매

죄를 못 찾았다는 사실과 함께, 빌라도는 유대인의 왕으로서 정치적인 선동을 할만한 위임이 아님을 보여 주고자 했던 겁니다.

'보라 이 사람이로다' 다분히 정치적인 퍼포먼스(performance)일 확률이 높습니다.


그러나 이 또한 구약 성경의 예언된 그 말씀을 이루어 나가는 과정 중의 하나였습니다.

우리가 잘아는 이사야 53장 '메시아의 수난장' 이지요.

거기 이렇게 5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사야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빌라도가 정치적 퍼포먼스(performance)로 행했던 이 모든 일들은 구약 성경의 예언들을 성취해 나가는 과정이 되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수치와 조롱을 당하시고, 우리가 당해야 할 그 모멸과 모든 죄책을 다 담당해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에게 나음을 입게 하셨습니다.

예수님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기 칠백 년 전 이사야의 예언의 말씀들을 통해, 

주님께서 어떠한 죽음과 어떠한 고난을 받게 될 것인지를 예언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온몸으로 그 고난을 받으셨고 수치와 조롱을 받으심으로 우리의 죄와 형벌을 대신 담당하셨습니다.


지금은 어느 때보다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에게 나음을 입었도다' 는 말씀들이 필요한 시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수많은 코로나-19(COVID-19)로 감염자들이 있고 그 곁에서 함께 불안하고 두려워하는 가족들이 있죠.

이 나라, 이 민족, 정치, 경제, 소상공인들의 여러 가지 어려움들은 우리에게 나음을 요구하는 현실적인 어려운 상황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나음이 필요합니다.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에게 나음을 허락하신 그 주님이 그 어느 때보다 절박한 때가 되었습니다.

우리 주님이 기꺼이 우리의 모든 고난을 위해서 미리 담당하시고, 미리 우리 모든 아픔들을 다 짊어지셨습니다.

그 주님이 오늘 저와 여러분이 주님이십니다.

우리에게 찾아보시길 원하십니다.

우리의 질고를 담당 하십니다.

아픔을 취하시고 회복해 주시는 주님이십니다.

이 나라, 이 민족도, 온 세계에 주어진 이 아픔도 우리 주님이 대신 질고를 지시고 회복의 날을 속히 허락하실 줄로 믿습니다.


빌라도와 군인들의 말은

결국 예수님이 어떤 분이심을

나타내나요?

예수님이 참사랑이심이

내게 주는 의미와 교훈은

무엇인가요?



대제사장과 그에게 속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한 가지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제거하고, 십자가에 못 박게 하는 일이었지요.

7절 말씀에 유대 종교법 만으로는 빌라도를 설득하기 힘들어지자. 

그들은 급기야, 예수님을 정치범으로 계속해서 몰아가기 시작합니다.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다며 정치적 압박으로 몰아붙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 와중에도 빌라도는 세 번이나 예수님에게 아무런 죄를 찾지 못했다는 사실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빌라도는 아내가 들려준 꿈이야기나, 

자신이 심문 과정에서 확인한 것으로는, 그리스도는 무죄한 분이시고 고결한 스승이라는 걸 잘 알게 되었고, 

도리어 우리 주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말하는 그것이 그에게는 두려움으로 와닿게 되었습니다.

12절 말씀입니다. 

12 이러하므로 빌라도가 예수를 놓으려고 힘썼으나 유대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닙니다'

'이 사람은 가이사에게 반역한 자입니다' 

라는 정치적인 프레임으로 몰고가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빌라 그는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자신의 신념과 타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혹시 그들이 밀란을 일으켜 봉기를 하게 된다면, 그의 출세길에도 큰 지장을 초래할 것이 틀림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민심에 의해서 자신에게 불이익이 올 수 있는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선택을 하고야 맙니다. 15절 말씀 보시지요

15 그들이 소리 지르되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이르되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 대제사장들이 대답하되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하니

그들이 소리지르 되 

'없이 하소서' , '없이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습니다' 

얼마나 이중적인 태도 입니까?

유대인들의 유일한 왕은 하나님이시라는 것, 그들은 늘 고백하고 왔고, 그것이 유대의 정체감을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현장 앞에서 그들은 너무나 엉뚱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도록 넘겨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빌라도에게 무엇보다 정치적인 위협이 되는 것은 가장 큰 어려움이였기 때문이죠.


우리도 때로는 자주 우리 신념과 신앙 양심에 위배되는 줄 알면서도 타협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에게는 가이사외에 다른 왕이 없습니다.

실제로 그렇습니까?

우리는 돈이 중요하고, 우리의 명예, 우리의 자존심이 정말 우리의 마음에 너무나 중요한 건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것외에 왕이 없습니까?

우리에게 왕이 있지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참 된 왕이시고 우리의 구주가 되십니다.

그분이 내 삶의 모든 것이고, 그분이 네 운명이고, 그분이 내 영원한 노래라는 것도 우리는 잘 압니다. 


그런데 우리가 매일 삶의 현장 속에서는 마치 가이사가 우리의 유일한 왕인 것처럼, 이 땅에 필요에 골몰하며 살고 현실과 타협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믿음을 지켜야 하고 끝까지 우리의 왕이신 한 분 하나님 그 분께만 우리의 충성과 헌신을 다 해야 합니다.

하늘의 모든 권세와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이 걸어가셨던 그 길을 보십시오.

그분은 당장이라도 열 두 영이나 더 되는 엄청난 천군 천사를 동원해서 이 모든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으시겠지만, 기꺼이 이 고난을 담당하셨읍니다.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그것이 저와 여러분의 길입니다. 제자의 길입니다.

오늘도 좁은 문, 좁은 길이라도 기꺼이 그리스도의 길을 걸어가는 일에 우리 자신을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쫒으라 말씀하신 그 주님이 

오늘 우리에게 보여주신 그 십자가의 길을 저희도 묵묵히 따라 가기를 원합니다.

쉬~ 타협하고, 쉬~ 배반하는 저희들이지만,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오로지 우리의 한분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 주님만 따라 사는 저희들이 되게 도와주옵소서

예수님 귀하신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대제사장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세상과 타협하며

살고 있지는 않나요?

자신의 생존을 위해

진리를 저버리는

결정을 하지 않으려면

어떤 삶의 기준을 가져야 할까요?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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