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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사랑으로 다져지는 거룩한 삶 (레위기 19:11~18)


2019.10.06.주일 생명의 삶 이해영 목사



할렐루야.

복된 주일입니다.

오늘 이 주일도 하나님의 말씀과 임하시는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통해서 하나님을 경험하는 그런 감격스러운 오늘이 되길 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기독교의 한 부분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모든 삶의 전반에 인간 모든 역사 속에 살아 숨쉬고 있는 실제 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또 그 말씀이 우리의 삶 속에 어떻게, 능력이 있게 역사 하고 또 우리의 삶을 다스려야 하는지, 

주에 말씀을 통해 교훈을 받기 원하고, 큰 도전을 얻기 원합니다.

그래서 오늘 주에 말씀이 성도님들의 삶 속에서 놀랍도록 변화시키는 능력이 나타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웃 사랑으로 다져지는 

거룩한 삶


레위기 19장 11 절에서 18절 말씀입니다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하나님으로부터 증거의 돌판 2개를 받은 것은 그 내용에 십계명이 기록되어 있었지요.

십계명만이 하나님의 말씀 이라고 말할 수 없이, 

십계명만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표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 전체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의 본문 속에 우리가 십계명에 몇가지를 발견하게 되는데요. 

그 십계명의 말씀은 종교적인 어떤 주문이나 법칙이 아니라, 

어떻게 파생적으로  우리의 전 삶을 제어하고 또 영향력을 미치는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속에서는 특별히 두 구절씩 마칠 때마다 '나는 여호와이니라'라는 그런 마침 어구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두 구절씩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먼저 11절을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11 너희는 도둑질하지 말며 속이지 말며 서로 거짓말하지 말며

11절에서 보는 것처럼 십계명에 제 8계명이 눈에 보여지지요? 

'도둑질하지 말라' 라고 말하는 데

레위기서 말씀은 그 제 8계명에 연이어서, '속이지 말고 또 서로 거짓말하지 말라' 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도둑질과 속임과 거짓말이 이미 하나의 연속 선상에 있다'라는 사실을 우리들에게 이야기 해줍니다.

'속임과 거짓은 도둑질과 다르지 않다' 라는 의미가 되겠습니다.


가난한 자를 돌아보아야한다'라른 10절 말씀에 연이어서 11절에서 도둑질하지 말라' 라는 십계명 의 제 8계명을 언급한 이유는 

바로 도둑질에 대한 경고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이야기 해주는 것이지요.

신약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에베소서 4장 28절 말씀에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라고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바로 윗 구절 10절에서 가난한 자를 돌아보아야 한다'라는 주의 말씀에 이어서 11절에서 도둑질하지 말라'라는 이 권고는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는 도둑질하지 말고 살아야 한다라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도둑질에 반대는 도둑질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서 선한 일을 하는 것, 곧 구제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은 그저 어떤 법칙을 우리들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어 우리의 삶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지요.




12절에 말씀도 읽어봅니다 

12 너희는 내 이름으로 거짓 맹세함으로 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12절에서도 '내 이웃에 대해 거짓 증거하지 말라'라는 제 9계명과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라고 하는 제 4계명에 대해서 종합적으로 의역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이 거짓 맹세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밝히고 계신 것이지요.

상대방을 속이기 위해 맹세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왜 상대방을 속이기 위해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자신의 이익을 채우기 위한 탐욕으로서 빠르게 명분을 얻으려고 하는 까닭일 것입니다.

빠르게 어떤 권위를 쉽게 취하려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무엇인가를 맹세 하는 것이지요.

하나님 이름에 대한 도형 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 신앙생활에 있어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아주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11절과 12절이 서로 동등한 입장 속에서 맹세하는 상황을 다룬 것이라면 

13절과 14절은 강자의 입장에서 약자를 대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13절을 읽어봅니다. 

13 너는 네 이웃을 억압하지 말며 착취하지 말며 품꾼의 삯을 아침까지 밤새도록 네게 두지 말며

14 너는 귀먹은 자를 저주하지 말며 맹인 앞에 장애물을 놓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상대적인 약자인 이웃을 억압하거나, 착취 하지 말고, 정해진 품삯을 빼먹지 말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 청각장애인들 앞에서 저주의 소리를 내거나, 또 시각장애인들의 앞에 무엇인가 장애물을 주는 것은 비인륜적인 행위에 해당된다'라고 말할

수 있겠죠.

오늘날에도 얼마든지 우리가 목격할 수 있고, 또 실천할 수 있는 그런 부분이고 대상 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눌린 자를 자유케 하시려고 한다'라는 말씀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십계명 그것은 결코 기독교의 어떤 종교적 법칙이나 원리가 아니라. 

그것은 참으로 우리의 모든 범 사 속에서 지금도 살아 숨쉬고 있는 하나님의 성품 입니다.


하나님의 명령 중

'~하지 말라'는 명령에는

어떤 것이 있나요?

그 명령 중에서

특히 내 마음에 깊이 새기고

지켜야 할 명령은 무엇인가요?



15절을 다시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15 너희는 재판할 때에 불의를 행하지 말며 가난한 자의 편을 들지 말며 세력 있는 자라고 두둔하지 말고 공의로 사람을 재판할지며

기독교는 우리 사회에 아주 크나큰 사상에 영향을 미쳤죠.

지금까지 우리 모든 현대 역사 속에서 기독교 사상이 떨쳐온 영향력은 지대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상을 형성할 수는 있으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지 사상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15절이 바로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연약한자라고 무조건 지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가난한 자라고 무조건 우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너희는 재판할 때에 불의를 행하지 말아야 하는데 가난한 자에 편을 들어서도 안되고 세력 있는 자라고 두둔 해서도 안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짧은 구절이지만 얼마든지 근대와 현대 역사 속에서 세계사를 뒤흔들었던 그런 큰 사상적 어떤 흐름 들 속에 지금 이 두 가지 요소들이 많이 실제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어쩌면 오늘날 우리 한국 사회에서도 지금 이러한 생각이 아주 강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말합니다. 

가난한 자에 편을 들지 말며 세력이 있는 자라고 두둔 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의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어떤 사상을 따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자요.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자라는 것은 어떤 사상에 치우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의 삶 속에 

기독교사상 이라고 해서 혹시나 오해가 잊지 않기를 원하고, 오직 의가 되신 하나님의 말씀 앞에 견고히 서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원합니다.




16절의 말씀도 이야기합니다.

16 너는 네 백성 중에 돌아다니며 사람을 비방하지 말며 네 이웃의 피를 흘려 이익을 도모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16절의 말씀은 15절의 말씀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가난한 자를 편을 들으려고 하는 일종의 어떤 주장과 가치와 슬로건 

그것을 추구하려고 그렇지 않은 어떤 대상과 또 그룹을 대항하기 위해서 돌아다니면서 비방한다던지 세력을 모은다던지 여론을 형성하는 일련의 그런 우리들의 사회 생활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그렇게 하지 말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들의 신앙이 순수한 하나님 나라의 정치가 있을 수 있지만, 그러나 우리는 어떤 사상의 치우친체 

우리의 마음에 어떤 자기의 목적과 자기의 성향을 추진하고 그것을 성취하려고 돌아다니면서 비방 한다던지, 

누군가에게 큰 해를 입히려 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말씀에 부합하지 않는 것을 보게 됩니다.




17절에 말씀도 보겠습니다 

17 너는 네 형제를 마음으로 미워하지 말며 네 이웃을 반드시 견책하라 그러면 네가 그에 대하여 죄를 담당하지 아니하리라

우리는 형제에 대해서 마음으로도 미워할수 없다'라고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속에서 알고 있지만, 구약의 말씀에서부터 그 기초가 있습니다.

악한 형제에 대하여서 어떻게 미워하지 않을 수 있는가?' 생각할 수 있지만 

오늘 하나님의 말씀은 미움과 분노 대신에 또 질책으로 동요하기보다 그에 대하여서 반드시 경책하라고 명령이 주어지고 있습니다.

계도가 목표가 되는 것이지 어떤 원망과 분노와 미움이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할 수 없다 라는 뜻이 되겠지요.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사실 어렵지 않습니다. 

성령님께서 주의 말씀이 우리로 하여금 악한 형제, 악한 대상 일지라도 그 죄는 미워할 지라도 사람은 미워할 수 없으며 

그리고 반드시 그를 경책해야 한다' 라는 신앙적 목표를 갖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18절에 말씀을 읽어 봅니다.

18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모든 율법에 가장 근본이 되는 계명이 요약 되고 있습니다.

'분노에 서린 원수들에게 복수할 수 없다' 라는 하나님에 기준이 되겠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되 원수 까지 사랑해야 하고,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해야 한다' 라는 이 레위기의 말씀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통해 우리들에게 너무나 잘 알려집니다.

마태복음 22장 39절에서 40절 인데요

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주님은 원수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되, 네 몸과 같이 사랑해 한다'라는 이 사랑의 선포가 

모든 율법의 강령이라고 요약 하셨고, 완성 시켜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기독교 정신에 한 부분도 아니고 기독교의 어떤 사상적인 원리나 법칙도 아닙니다. 

그것은 너무나도 성품적인것이고 완전한 사랑입니다.

성도님들의 삶 속에 이 사랑의 열정이 오늘도 살아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주님의 말씀을 우리가 삼가 듣고 경청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종교적인 어떤 방식과 법칙을 말씀 하심이 아니요, 하나님의 사랑의 계시오.

주님의 성품에 비추심 임을 우리가 보았습니다.

우리 모두가 주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형상을 닮고 

이 어두운 땅을 비추는 주님의 사자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니다.

아멘


장애인들을 향한 태도에서

하나님이 금하신 것은

무엇인가요?

하나님을 경외함과

장애인을 대하는 태도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요?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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