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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 없는 성전을 향한 주님의 분노 (마가복음 11:11~19)


2019.02.02.토 생명의 삶 최원준 목사



20세기에 영국에 유명한 철학자요 또 그리고 수학자인 버트런드 러셀이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라는 책을 썼습니다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개정판)
국내도서
저자 :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 / 송은경역
출판 : 사회평론(Bricks) 2005.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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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책을 보면 자신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이유 가운데 하나로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예수님께서 무화과 나무를 저주한 사건을 들고 있습니다


성경이 분명히 무화과나무에 때가 아니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무화과나무가 열매를 맺지 않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데 

왜 예수님께서는 시장하시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무화과나무를 저주 하셨는가? 

이것은 자신으로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고 이런 예수님의 모습은 소크라테스나 아니면 공자님보다 못한 모습이다' 그렇게 주장한바가 있습니다 


사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예수믿는 우리들도 '왜 예수님이 무화과나무의 때가 아닌데 열매가 없다고 해서 그 나무를 저주하셨을까?'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과연 오늘 이 말씀을 우리가 어떻게 이해해야 될까요 

왜 사랑 많으신 예수님 무화과나무를 꼭 저주하셔야만 했을까요? 

이 질문을 가지고 오늘 말씀을 한번 같이 묵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열매 없는 성전을 향한 

주님의 분노


마가복음 11장 11절에서 19절 말씀입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께서는 비유로 말씀하신적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비유라고 하는 것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혹은 탕자의 비유 같이 어떤 이야기 형식으로 된 비유도 있지만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어떤 특정한 행동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시고자 했습니다 

이것을 비유행동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사실 이 비유행동은 구약에서도 여러 차례 나타나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에스겔 선지자의 경우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인분으로 빵을 구워 먹으라고 요구[각주:1]하는 등 일반 사람은 이해하기 어려운 낮선행동을 하게 하십니다 

그 모든 것은 그 행동을 통해 어떤 하나님의 메세지를 전하는 비유행동인 것입니다 


오늘 말씀 가운데 있는 예수님이 무화과나무를 저주한 사건도 예수님의 비유행동으로 우리는 이해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것을 통해 어떤 메세지를 전하기를 원하셨던 것일까요? 

여기에서 무화과나무는 구약을 배경을 보면 이스라엘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무화과나무에때 라고하는 이 말은 

무화과나무가 사시사철에 어떤 때 가운데서 열매를 맺을 때 라고하는 시슨이라고 하는 의미라기 보다는 

헬라어 카이로스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 단어는 다름 아닌 하나님이 정하신 때라고 하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무화과나무 그리고 하나님이 정하신 때 이 두 가지를 결합해 생각해보면 

겉만 무성하고 잎만 무성하고 그리고 열매를 맺지 못 하고 있는 이 무화과나무는 

다름 아닌 아무런 실속 없이 겉만 번지르르 하고 매일 같이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지만 입술로는 하나님을 경배한다고 하지만 열매를 드리지 못하는 

삶이 없는 이스라엘의 모습을 질타하신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전 정화 사건은 바로 예수님께서 그러한 이스라엘의 헛된 모습을 행동으로 보여 주셨던 대표적인 모습이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우리의 삶에 열매가 있기를 진정 원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씨뿌리는자의 비유에도 네 가지 땅이 나옵니다

길가 그리고 돌밭, 가시 떨기, 옥토 

땅은 네 가지 이지만 사실 그러나 그 네가지의 땅은 두 종류의 땅으로 분리될 수 있지요 

열매를 맺었느냐, 열매를 맺지 못했느냐

오직 옥토만이 열매를 맺는 땅이었습니다 

씨뿌리는자의 비유도 그렇고 오늘 말씀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 삶에는 반드시 열매가 있어야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 주셨습니다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까닥은 

육신의 본성을 따라 살아가던 우리가 예수 믿고 성령 받아 성령의 열매를 맺기 위함 인 것입니다 

또한 요한복음 15장 5절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요한복음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주님 안에 있는 자는 열매를 맺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주님과 함께 하고 성령이 함께 하는자의 삶의 모습인 것입니다 


돌아가신 故 옥한흠 목사님께서 한국교회'세 가지 비어있다' 삼허현상(三虛現像)을 말씀 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첫번째는 허수(虛數)입니다. 그것은 숫자를 부풀리는 것입니다 

둘째는 허세(虛勢) 입니다. 허세란 실속은 없으면서도 있는 척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더욱 더 화려해 가고 건물은 커져 가지만 실제 모든 성도들에 삶은 그렇지 않다고 하는 것을 원로 목사님께서 지적하신 것이죠

마지막 세번째는 허상(虛像) 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비전이 아니고 자신의 야망을 신앙으로 포장하여 살아가고 있는 한국 성도들을 질타하신것입니다

허수(虛數), 허세(虛勢), 허상(虛像) 

이 세가지가 한국교회 그리고 나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아닙니까? 

하나님께서는 예수를 따르는 우리들에게 진정한 삶에 열매를 바라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일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신앙의 연수만큼 성장도 없고

열매도 없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는 성전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 좀처럼 평상시에 볼 수 없었던 예수님의 과격한 모습이 오늘 말씀에 등장합니다 

예수님은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쫒아 내셨고 돈 바꾸는 자들에 상을 엎으셨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왜 예수님께서 이렇게 과격한 행동을 하셨을까요?

온유하시고 겸손하신 예수님이 왜 이토록 분노에 찬 행동을 하셔야만 했을까요? 


먼저 여기서 매매하는 자들 이라고 하는 것은 

성전에서 사용된 제물로 사용되는 재물로 사용되는 소나 양이나 이런 제물들을 파는 자들을 의미합니다 


유대교는 제사의 종교입니다 

자신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 또 여러가지 하나님께서 말씀 하신 말씀에 따라 제사를 들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 제사를 드리는 것이 성전입니다 

그런데 제사에 사용되는 제품은 흠이 없어야 합니다

성도들이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자신의 집에서 기른 양이나 소를 가지고 왔을때 

혹시라도 흠이 있다면 제사장이 보기에 흠이 있다면 그것은 제물로 결격사유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전에서 제사장들이 다 감독하고 관리했던 

그래서 아무런 흠이 없는 제물을 성전에서 파는 것이죠 

가만히 생각해보면 성도들을 위한 정말 좋은 일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매매할 때에 

자기에 집에서 길러온 그런 양 이라던지 소에 비해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에 파는 것이었습니다 

이익보는 사업 이였던것이였습니다


돈을 바꿔준다고 하는것은 

하나님께서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반세겔에 성전세를 내도록 요구[각주:2] 하셨습니다 

그당시 로마제국이 지배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던 화폐는 로마 황제의 얼굴이 그려져 있고 

그리고 '로마 황제는 신의 아들이다'라는 라틴어 글귀가 씌여져 있었던 동전 이였습니다 은전이였습니다

그 동전 은전은 그대로 하나님 앞에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상숭배가 되기 때문입니다 

'너를 위해서 우상을 세기지 말라'고 말씀하신 십계명[각주:3]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전세를 드리기 위해서는 성전에서 성전세로 드릴 수 있는 동전으로 바꾸어야만 합니다 

이 때에 환전상들은 일종에 수수료를 받았습니다 고액에 수수료 였습니다 

이런 모든 것들이 바로 종교라는 이름으로 행해졌던 이익보는 사업 이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있었던 매매하는 자들 환전상들 등등은 다 성전에 주관자였던 제사장들로부터 허락을 받은 것이였고 

또한 그 제사장들에게 그 자리세 즉 그 안에서 영업할 수 있는 권한을 얻기 위하여 제사장들에게 돈을 바쳤던 것은 물론입니다 

이러한 모든것을 아셨던 예수님께서는 성전이야 말로 타락한 성전이고 강도에 소굴로 전락했다고 비판 하셨던 것입니다 

그 비판에 행동이 바로 예수님에 과격한 모습으로 나타났던 것이였습니다


우리는 이 시간 즈음에 이런 질문을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쩌다 성전이 이 지경이 되었을까?' 


예수님께서는 성전이 어떤곳이 되어야 되는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다

성전의 본질은 기도입니다 


기도하지 않을 때 탐욕이 자리잡고 

기도하지 않을 때 우리는 성전이 탐욕의 소굴로 전락 할 수 있음을 오늘 말씀을 통해 똑똑해 볼 수가 있습니다 


존 라일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 하신 적이 있습니다 

"죄는 기도를 이기고 기도는 죄를 이긴다"

기도하지 않으면 우리는 죄에 굴복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면 죄를 이길 수 있습니다 

기도가 상실되고 예배가 상실되는 그곳은 더 이상 성전 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교회 본질은 건물이 아니고 성도 수가 아니고 그리고 역사도 아닙니다

교회 본질은 겸오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 하고 예배 하는 것입니다 

나에 죄인됨을 고백하고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는 그 시간이 기도요 예배인 것입니다 

무늬만 제사였던 이스라엘의 예배에 예수님은 질타하셨습니다 


성도여러분 우리는 하나님 앞에 진정한 제사 진정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우리 마음 가운데 탐욕이 다 사라지고 

그리고 부서지고 깨어진 심령으로 우리 주님만 바라볼 때 

우리 주님은 우리를 인정하시고 축복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예배의 회복, 교회의 본질 회복은 바로 기도와 예배로부터 시작이 될 것입니다 

기도 드리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교회는 만민이 기도하는 집인 줄 믿습니다 

기도의 능력 기도의 영이 사라진 교회가 아니라 

기도의 은혜와 능력을 경험하는 교회가 될 수 있도록 이 한국교회를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매주일 드리는 우리의 예배가 무늬만 예배가 아니라 

하나님앞에 깨어진 심령으로 드리는 참된 예배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성전에서 예수님이 행하시고

교훈하신 것을 보고 들은

종교 지도자들의 심경은

어떠했을까요?

지금 교회가 회개하고

회복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END


이 글은 청각을 잃은 제 친구를 위해 작성되었습니다

전체 또는 일부가 잘못 듣고 잘못 옮겨 적은 내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에 댓글 남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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