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15 | 생명의 삶 | 신동식 목사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는 평택 온누리 교회를 섬기는 신동식 목사입니다.
현대를 사랑하는 그리스도인들의 문제는 부활을 소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머리로는 알지만 부활이 없는 사람처럼 살아갑니다.
입술로는 천국을 고백하지만 이 땅에서는 천국 시민처럼 살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세상을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성경은 이 세상의 마지막이 하나님 나라의 완성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 권세는 영원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나라만 영원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고린도 전서 15장 29절에서 34절까지의 말씀입니다.

고린도 전서 15장 29절에서 34절 말씀입니다.
| 29 만일 죽은 자들이 도무지 다시 살아나지 못하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 어찌하여 그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느냐 30 또 어찌하여 우리가 언제나 위험을 무릅쓰리요 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32 내가 사람의 방법으로 에베소에서 맹수와 더불어 싸웠다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33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34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 |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 매 맞고 배척당하고 감옥에 갇혔고 생명의 위협을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멈추지 않았던 이유는 부활을 실제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날마다 죽는다고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29 만일 죽은 자들이 도무지 다시 살아나지 못하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 어찌하여 그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느냐
당시 고린도 성도들 사이에선 이미 죽은 가족이나 친구를 대신해 세례 받는 관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바울은 그들의 행동을 예를 들어 반대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죽은 자를 위해 세례받는 형식적인 의식은 진행하면서 왜 정작 부활의 소망을 가지지 않고 있는가 그들의 부활에 소망이 없었음에 대해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만약 부활이 없고 이 땅에서의 삶이 전부라면 위험을 무릅쓰고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의 행동이 가장 어리석은 선택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가장 귀한 일에 여러분의 인생을 들이고 계십니까?
예수님의 이름으로 고난에 동참하고 계신가요?
만일 우리의 죽음이 인생의 마침표라면 맹수와 더불어 싸우는 것 같은 치열한 믿음의 경주 그리고 싸움은 무익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이 있습니다.
부활은 감정으로 느끼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약속이고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으신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고린도 전서 15장 20절 말씀
성경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믿을 수 있습니다.
고난 후에 주어질 영원한 상급을 기대하면 현재의 고난은 장차 올 영원한 하늘나라와 비교할 수 없습니다.
세 가지 부르심이 있습니다.
구원으로의 부르심, 구원받는 것을 감사하는 삶입니다.
또한 거룩으로 부르심입니다. 세상으로부터 구별되어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마지막은 사명으로서의 부르심입니다.
이것은 복음을 위해 고난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부르심은 무엇인가요? 사명으로 부르셨나요?
가장 귀한 일에 여러분을 들이십시오.
우리의 삶을 늘 선하게 인도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바울은 속지 말라 경고합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 안에는 부활이 어디 있느냐 육체는 죽으면 끝이다.
육체가 원하는 대로 살아도 된다. 영지주의와 헬라의 허무주의가 침투해 있었습니다.
부활 소망을 가진 사람은 그의 삶을 절제하게 됩니다.
영원한 삶을 믿고 부활 소망으로 사는 사람과 오늘 하루만 사는 사람의 삶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당시 어떤 사람들은 죽음 이후는 없으니 지금 즐기면 살면 된다고 사람들을 현혹했습니다.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과 어울리면 쾌락주의나 도덕적인 해이에 빠지기가 쉽습니다.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더럽힌다는 말은 헬라어로 *프테이로(φθείρω, phtheirō)*입니다.
과일이 썩어가는 것처럼 점진적인 부패입니다. 결국 다른 과일까지 썩게 만드는 부패입니다.
이런 사람들과의 지속적인 교재와 만남은 그 마음을 썩게 만듭니다.
영원한 소망을 가진 분들과 소망에 관해, 우리 하나님에 관해, 하나님의 선하심에 관해 많이 나누시기를 바랍니다.
성도의 선한 행실은 곧 거룩한 용기입니다.
세상에서 선한 그리스도인으로 살려면 믿음의 결단과 용기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담대하십시오.
다니엘은 바벨론의 포로 생활 중에도 깨끗해지기를 결심했고 더럽혀지지 않도록 용기를 내어 행동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모든 종류의 꿈과 환상을 깨닫는 지혜를 주셨고 이를 통해 하나님은 그를 높여 이스라엘을 보호하고 구원하시는 일에 크게 사용하십니다.
여러분 거룩한 용기를 가지십시오.
선한 행실은 단순히 나쁜 행동을 하지 않는 소극적인 태도가 아닙니다.
부활 소망을 가지고 매 순간 하나님의 뜻, 기뻐하시는 것을 적극적으로 선택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34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
34절에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마라 영적 취기에서 깨어나라고 말씀하십니다.
바울은 영적인 잠에서 깨어날 것을 명령합니다. 깨어 있다는 것은 술 취함이나 방탕함에서 정신을 차리는 것인데 취한 사람은 자신이 취했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위험한 영적 상태는 자신이 무감각해졌다는 것을 모르는 상태입니다.
신양 생활 하는 것 같지만 교회 생활이었고 말씀을 들었지만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모두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상태이죠. 신앙생활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의 쾌락과 영적 무감각에서 깨어나십시오.
거룩한 용기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도전하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하나님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 부활, 소망이 흔들리지 않게 하시고
장차 올 영원한 상급을 바라보며 현재의 고난을 넉넉하게 이길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무관각한 영적 잠에서 깨어나 하나님과 동행하는 거룩한 인생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함께 읽는 큐티
- 부활 소망이 없으면 삶의 소망도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 주님의 부활, 우리의 부활 (고린도전서 15장)
- 부활 소망을 굳게 붙잡고 주님 일에 더 힘쓰십시오 (고린도전서 1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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