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26 | 생명의 삶 | 윤광서목사
샬롬
영화 교회를 섬기는 윤광서 목사입니다.
삶의 모든 순간에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의 평강이 이 시간 말씀을 사모하는 모든 분들을 위해 임하시기를 소망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오해 속에서 상처를 받고 또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오해는 때로 진실보다 빠르게 퍼져나가서 사실이 밝혀지기도 전에 우리의 마음에 깊은 골을 만들곤 합니다.
작은 말 한마디, 의도를 알 수 없는 행동 하나가 공동체 전체를 뒤흔드는 위기의 불씨가 되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묵상할 여호수아 22장의 말씀은 바로 그러한 오해가 한 민족을 내전 직전에 벼랑 끝으로 몰고 간 아찔한 사건을 다룹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갈등의 한 복판에서 일하시며 오해를 이해로, 분열을 연합으로 바꾸십니다.
이 말씀을 통해 오늘 우리의 가정과 교회, 그리고 모든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오해의 강을 어떻게 건너서 화평의 열매를 맺을 수 있을지, 그 거룩한 지혜를 함께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오늘 말씀은 여호수아 22장 21절로 34절의 말씀입니다.

갈등을 해소하고 연합하는 공동체
여호수아 22장 21절에서 34절 말씀입니다.
| 21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가 이스라엘 천천의 수령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22 전능하신 자 하나님 여호와, 전능하신 자 하나님 여호와께서 아시나니 이스라엘도 장차 알리라 이 일이 만일 여호와를 거역함이거나 범죄함이거든 주께서는 오늘 우리를 구원하지 마시옵소서 23 우리가 제단을 쌓은 것이 돌이켜 여호와를 따르지 아니하려 함이거나 또는 그 위에 번제나 소제를 드리려 함이거나 또는 화목제물을 드리려 함이거든 여호와는 친히 벌하시옵소서 24 우리가 목적이 있어서 주의하고 이같이 하였노라 곧 생각하기를 후일에 너희의 자손이 우리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25 너희 르우벤 자손 갓 자손아 여호와께서 우리와 너희 사이에 요단으로 경계를 삼으셨나니 너희는 여호와께 받을 분깃이 없느니라 하여 너희의 자손이 우리 자손에게 여호와 경외하기를 그치게 할까 하여 26 우리가 말하기를 우리가 이제 한 제단 쌓기를 준비하자 하였노니 이는 번제를 위함도 아니요 다른 제사를 위함도 아니라 27 우리가 여호와 앞에서 우리의 번제와 우리의 다른 제사와 우리의 화목제로 섬기는 것을 우리와 너희 사이와 우리의 후대 사이에 증거가 되게 할 뿐으로서 너희 자손들이 후일에 우리 자손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여호와께 받을 분깃이 없다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28 우리가 말하였거니와 만일 그들이 후일에 우리에게나 우리 후대에게 이같이 말하면 우리가 말하기를 우리 조상이 지은 여호와의 제단 모형을 보라 이는 번제를 위한 것도 아니요 다른 제사를 위한 것도 아니라 오직 우리와 너희 사이에 증거만 되게 할 뿐이라 29 우리가 번제나 소제나 다른 제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성막 앞에 있는 제단 외에 제단을 쌓음으로 여호와를 거역하고 오늘 여호와를 따르는 데에서 돌아서려는 것은 결단코 아니라 하리라 30 제사장 비느하스와 그와 함께 한 회중의 지도자들 곧 이스라엘 천천의 수령들이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자손의 말을 듣고 좋게 여긴지라 31 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자손에게 이르되 우리가 오늘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 줄을 아노니 이는 너희가 이 죄를 여호와께 범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너희가 이제 이스라엘 자손을 여호와의 손에서 건져내었느니라 하고 32 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와 지도자들이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을 떠나 길르앗 땅에서 가나안 땅 이스라엘 자손에게 돌아와 그들에게 보고하매 33 그 일이 이스라엘 자손을 즐겁게 한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을 찬송하고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이 거주하는 땅에 가서 싸워 그것을 멸하자 하는 말을 다시는 하지 아니하였더라 34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이 그 제단을 엣이라 불렀으니 우리 사이에 이 제단은 여호와께서 하나님이 되시는 증거라 함이었더라 |
형제들에게 반역자로 낙인 찍혀서 전쟁의 위협 앞에 서게 된 요단 동편의 지파들 그들의 마음이 얼마나 답답하고 한편으로는 또 얼마나 억울했을까요?
하지만 그들은 감정적으로 대응하거나 변명이나 분노로 맞서지 않습니다.
그 대신 그들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 앞에서, 그리고 온 우주의 재판장이신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의 진심을 호로합니다.
22절을 보니까 그들의 첫 마디는 엄숙한 신앙 고백 그 자체였습니다.
22 전능하신 자 하나님 여호와, 전능하신 자 하나님 여호와께서 아시나니 이스라엘도 장차 알리라 이 일이 만일 여호와를 거역함이거나 범죄함이거든 주께서는 오늘 우리를 구원하지 마시옵소서
전능하신 하나님 여호와 전능하신 자 하나님 여호와께서 아시나니
히브리어 원문을 보면 하나님을 부를 수 있는 가장 장엄하고 강력한 호칭을 반복하여 사용하였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모든 신 위에 뛰어나신 강한 하나님, 바로 그 언약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의 중심을 아신다는 절박한 외침이었습니다.
그들은 사람의 판단이 아닌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에 먼저 호소하며, 만일 자신들의 행동이 하나님을 거역하거나 배신하려는 것이었다면, 22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주께서는 오늘 우리를 구원하지 마시옵소서라고 말하면서 자신들을 스스로 저주 아래에 기꺼이 둡니다.
이는 자신들의 결백에 대한 확신이자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온전히 신뢰하는 믿음의 태도였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이토록 큰 오해를 살 만한 거대한 재단을 세우려고 했었던 것일까요?
그들의 설명 속에는 미래를 향한 깊은 염려가 담겨져 있었습니다.
그들은 24절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후일에 너희의 자손이 우리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이런 이야기들을 하게 될 때를 두려워 했던 것입니다.
24 우리가 목적이 있어서 주의하고 이같이 하였노라 곧 생각하기를 후일에 너희의 자손이 우리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요단강이라는 지리적 경계가 세월이 흘러 신앙적 경계선이 되고, 결국 후손들이 너희는 여호와께 받을 분 깃이 없느니라 이런 말을 듣게 될까 봐 염려했던 겁니다.
25절에서 분깃으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헬레크(חֵלֶק, ḥēleq)라는 말인데, 이것은 단순히 땅의 소유만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 누리게 될 영적 권리와 정체성을 포함하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후손이 이 거룩한 유산에서 끊어질 것을 가장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재단을 쌓았습니다. 그들의 목적은 분명했습니다.
이는 번죄를 위함도 아니오 다른 제사를 위함도 아니라 우리와 너희 사이에, 그리고 우리와 후대 사이에 증거가 되게 할 뿐이다 이렇게 말을 하고 있는 것이죠.
이 재단은 제사의 장소가 아니라 교육적인 장소이고, 희생 제물을 드리려 함이 아니라 신앙적 정체성을 입증하기 위한 기념물이었다 이런 말입니다.
요단강 동편에 사는 우리도 요단강 저편에 사는 너희와 똑같이 슬로의 성막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의 백성이다라는 사실을 대대손손 증언하기 위해 증거의 재단을 쌓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죠.
이들의 행동은 분열의 씨앗이 아니라 오히려 연합을 지키려는 절박한 몸부림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다음 세대가 하나님의 은혜 안에 거할 수 있도록 어떠한 노력을 하고 있을까요?
어떤 증거의 재단을 두려고 하고 있을까요? 우리의 자녀들에게도 그리고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도 우리도 하나님 나라의 분깃을 가진 백성이다라는 사실을 보여줄 수 있는 믿음의 흔적, 삶의 증거를 남기고 있는지 겸손히 돌아보아야 할 것이겠습니다.

요단강 동편지파의 진심 어린 해명을 들은 요단강 서편지파의 사절단의 반응은 놀랍습니다.
32절에 보는 대로 그 말을 듣고 좋게 여긴지라 의심의 눈초리로 가득했던 그들의 마음이 녹아 내려졌습니다.
32 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와 지도자들이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을 떠나 길르앗 땅에서 가나안 땅 이스라엘 자손에게 돌아와 그들에게 보고하매
특히 사절단의 리더였던 제사장 비누하스의 반응은 이 사건의 해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그는 과거에 브올의 우상숭배 사건 때에 죄에 대한 하나님의 거룩한 진노를 누구보다 앞장서서 용감하게 집행했던 인물이 아닙니까?
그런 그가 이번에는 심판 대신 형제의 말을 끝까지 경청하고, 그 진정성을 받아들이는 영적 성숙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더 이상 의심을 고집하지 않고, 공동체의 화평을 위하여 기꺼이 마음을 열었습니다.
비느아스의 고백은 이 사건의 영적 의미를 정확하게 꿰뚫고 있음을 일러줍니다.
31절에서 나오는 대로, 오늘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 줄을 아노니 이는 너희가 이 죄를 여호와께 범하지 아니하였어이니라.
너희가 이제 이스라엘 자손을 여호와의 손에서 건져내었느니라.
31 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자손에게 이르되 우리가 오늘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 줄을 아노니 이는 너희가 이 죄를 여호와께 범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너희가 이제 이스라엘 자손을 여호와의 손에서 건져내었느니라 하고
이 고백은 참으로 깊은 통찰을 담고 있었습니다.
그는 갈등의 해결을 사람들의 지혜나 설득의 결과로 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요단 동편 지파의 진실함과 그로 인해 회복된 공동체의 연합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다 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라고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요단 동편에 있었던 지파들이 정말로 배교를 했다면, 여호수아 7장에 나오는 아간의 범죄나 또한 민수기 25장에 나오는 브올의 죄악처럼, 하나님의 진노가 이스라엘 전체에 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결백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온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건져낸 셈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공동체의 거룩함과 하나 됨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통로가 될 것이며, 서로를 향한 신뢰와 용납은 공동체 전체를 지키는 힘이 됩니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요단강 서편 지파의 백성들은 기뻐하며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그리고 형제들을 향해서 들었던 분노의 칼을 거두었습니다.
의심과 분노로 가득했던 신로의 집회는 이제 감사와 찬양의 예배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갈등의 해결이 곧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예배의 자리가 된 것이지요.
마지막으로 요단 동편의 지파들은 그 재단의 이름을 에드, 즉 증거라고 부릅니다.
우리 사이에 이 재단은 하나님께서 하나님 되시는 증거라 하는 고백의 뜻이죠.
어쩌면 처음에는 분열의 상징으로 오해를 받았던 돌무더기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여단강 동편과 서편 모든 민족이 한 하나님을 섬기는 한 백성이 되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연합의 기념비가 된 것입니다.
우리는 갈등의 잿더미 속에서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시다 하는 살아있는 증거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단 강가의 재단 이야기는 오늘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
동편 지파들은 다음 세대를 위한 신앙의 증거를 남기려는 절박함을 가지고 있었고, 서편 지파는 하나님의 거룩함을 지키려는 뜨거운 열심히 있었습니다.
둘 다 선한 동기였죠.
그렇지만 소통의 부재는 큰 오해를 낳기도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자신들을 돌아보고 서로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지혜를 보입니다.
결국 파국을 막고 더 견고한 연합을 이루게 되었던 것이지요.
우리의 삶에도 때때로 수많은 재단이 세워지기도 합니다.
때로는 나의 선한 의도가 오해를 받기도 하고, 또 내가 다른 사람의 행동을 섣불리 판단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오늘 이 말씀을 기억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는 나의 중심을 먼저 살피고,
사랑과 인내로 상대방의 진심에 귀 기울이려 노력하며, 공동체의 하나 됨을 깨뜨리지 않도록 힘쓰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의 삶을 통해 여호와께서 하나님 되신다라는 사실을 증거 하는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길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이 분열의 담을 허물고 화평을 이루는 증거의 재단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랑의 하나님
오늘 말씀을 통해 오해와 갈등 속에서 공동체 연합을 지키는 지혜를 배우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억울함 속에서도 감정보다 하나님을 먼저 찾았던 동편지파의 믿음을 저희에게도 주시옵소서.
저희의 삶이 다음 세대에게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는 거룩한 증거의 재단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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