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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민족의 예배가 회복되는 날(스가랴 14:16~21)(20251031)

2025.10.31. | 생명의 삶  | 유현목목사

 

모든 민족의 예배가 회복되는 날

 

 

안녕하세요.

저는 온누리 교회를 섬기는 유현목 목사입니다.

 

오늘 우리는 즐거움과 고통이 공존하는 세상 속에 살고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불꽃놀이와 축제가 이어지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전쟁과 재난의 참상 속에 눈물 흘리는 이들이 있습니다.

세상의 축제는 일부 사람들만의 잔치로 끝나고, 고통은 계속됩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마지막 날 하나님께서 열방을 초청하시고 열리게 될 그 축제는 누구도 배제되지 않으며, 시간과 공간을 넘어 영원히 이어지는 거룩한 예배라고, 우리의 현실은 술병이 흩어진 축제와 같지만, 본문은 하나님 나라의 완전한 잔치를 우리 눈앞에 보여줍니다.

이 말씀의 현장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스가랴 14장 16절에서 21절입니다.

 

 

 

 

모든 민족의 예배가 회복되는 날

 

 

스가랴 14장 16절에서 21절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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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이방 나라들 중에 남은 자가 해마다 올라와서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며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
17 땅에 있는 족속들 중에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러 예루살렘에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비를 내리지 아니하실 것인즉
18 만일 애굽 족속이 올라오지 아니할 때에는 비 내림이 있지 아니하리니 여호와께서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이방 나라들의 사람을 치시는 재앙을 그에게 내리실 것이라
19 애굽 사람이나 이방 나라 사람이나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가 받을 벌이 그러하니라
20 그 날에는 말 방울에까지 여호와께 성결이라 기록될 것이라 여호와의 전에 있는 모든 솥이 제단 앞 주발과 다름이 없을 것이니
21 예루살렘과 유다의 모든 솥이 만군의 여호와의 성물이 될 것인즉 제사 드리는 자가 와서 이 솥을 가져다가 그것으로 고기를 삶으리라 그 날에는 만군의 여호와의 전에 가나안 사람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16절을 보십시오.

16 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이방 나라들 중에 남은 자가 해마다 올라와서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며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

 

초막절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기쁘고 풍성한 절기였습니다.

이 시간 스가랴는 말합니다. 마지막 날에는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모든 민족이 함께 이 절기에 참여할 것이라고.

예배는 민족의 경계를 넘어 인류 전체를 향한 보편적 초대가 됩니다.

이는 하나님이 모든 민족의 하나님이시며, 구원의 복음이 모든 인류를 향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17절을 보십시오.

17 땅에 있는 족속들 중에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러 예루살렘에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비를 내리지 아니하실 것인즉

 

그 초대를 거절하는 자에게는 비가 내리지 않습니다. 는 곡식을 키우는 생명의 근원이며 하나님의 축복을 상징합니다.

 

18 만일 애굽 족속이 올라오지 아니할 때에는 비 내림이 있지 아니하리니 여호와께서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이방 나라들의 사람을 치시는 재앙을 그에게 내리실 것이라

 

18절을 보면 이집트처럼 나일강 덕분에 비에 크게 의존하지 않는 나라조차도 예외는 아닙니다.

아무리 강대국이라도 하나님을 거역한다면 결국 메마름과 죽음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선언입니다.

결국 예배하는 자는 살고 예배를 거부하는 자는 메말라 죽어 버립니다.

 

이 시간 우리의 삶을 돌아봅시다.

우리는 예배를 어떻게 대하고 있습니까?

주일 예배는 뒷전으로 미뤄두면서 세상의 축제에는 발 빠르게 달려가는 모습은 없습니까?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예배는 선택이 아니라 생명입니다.

예배 없는 인생은 가뭄으로 말라버리는 논밭처럼 금세 갈라지고 황폐해집니다.

철학자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는 인간은 존재를 기억하는 존재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존재란 더 큰 존재, 곧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예배는 우리가 누구인지, 어디서부터 생명을 얻는지를 기억하게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배는 단순한 의무가 아니라 영혼을 살리는 생명의 빗줄기입니다.

가정이 무너지고 직장에서 지칠 때 우리가 가장 먼저 회복해야 할 게 예배입니다.

나는 주일 예배를 생명의 빛처럼 사모하기 위해 어떻게 준비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전능하시고 은혜로우신 여호와 앞에 나올 때 주님은 새 힘을 주시고 메마른 심령을 적셔 주십니다.

오늘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생명의 단비가 되어 가정과 일터와 교회를 적시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께 마땅히 드려야 하는 경배와 감사를 나는 어떻게 드리고 있나요?
하나님께 마땅히 드려야 하는 경배와 감사를 나는 어떻게 드리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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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20 그날에는 말 방울에까지 여호와께 성결이라 기록될 것이라 여호와의 전에 있는 모든 솥이 제단 앞 주발과 다름이 없을 것이니

 

전쟁의 도구였던 말의 장식에조차 그 날에 성결이라는 글자가 새겨집니다.

이는 거룩함이 제사장이나 성전 안에만 머무르지 않고 삶의 가장 평범한 자리까지 스며든다는 선언입니다.

20절 하반절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여호와의 손에 있는 모든 소이 재단 앞 주발과 다름이 없을 것이니'

이는 성전의 기물과 부엌의 솥 사이에 구별이 사라진다는 의미입니다.

죄사와 가정, 성전과 일상이 더 이상 분리되지 않습니다.

거룩함은 성전에서 가정으로, 가정에서 사회로, 사회에서 열방으로 흘러갑니다.

우리가 부엌에서 설거지를 할 때도, 직장에서 보고서를 작성할 때도, 자녀를 위하여 기도할 때도 그 모든 순간에 여호와께 성결이 새겨질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제 스가랴는 마지막 절을 이렇게 마무리합니다.

21 예루살렘과 유다의 모든 솥이 만군의 여호와의 성물이 될 것인즉 제사드리는 자가 와서 이 솥을 가져다가 그것으로 고기를 삶으리라 그날에는 만군의 여호와의 전에 가나안 사람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우리 21절 마지막 부분을 보게 되면 '그날에는 만군의 여호와의 손에 가난한 사람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여기서 가난한 사람은 단순한 민족 명이 아니라 불의한 거래와 탐욕을 상징합니다.

즉 마지막 하나님의 성전에서는 더 이상 탐욕과 불의가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역사의 마지막 거룩한 공동체, 곧 완성될 하나님 나라에는 사랑과 정의만이 가득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현실은 어떻습니까? 세상은 여전히 불의와 탐욕으로 가득합니다.

우리는 그 속에서 세상과 구별되게 살고 있습니까?

정직을 선택하고 작은 말과 행동에서 사랑을 실천하며 모든 삶의 순간마다 거룩함을 드러내고 있습니까?

우리가 서 있는 자리에서 여호와께 성결을 새길 세상은 그리스도인과 교회를 통해 거룩하신 하나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거룩은 교회 안에서만 머물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면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우리의 가정과 일터와 사회, 우리 대한민국과 열방 위의 거룩함이 덮이게 될 것입니다.

나는 일상의 언어와 선택 속에서 어떻게 여호와께 성결을 드러내며 살고 있습니까?

오늘도 우리의 삶에 먼저 여호와께 성결을 새기며 그 거룩함을 세상에 드러내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삶의 가장 작은 부분까지 거룩해지도록 내가 실천할 일은 무엇인가요?
삶의 가장 작은 부분까지 거룩해지도록 내가 실천할 일은 무엇인가요?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열방을 예배의 자리로 부르시고 우리의 삶의 영역에 성결을 새겨주심을 감사합니다.
우리의 예배가 형식이 아니라 생명의 단비가 되게 하시고 우리의 일상을 주님의 거룩하심으로 덮어 주옵소서.
부엌의 솥에서, 직장의 책상에서, 이웃을 향한 작은 말과 행동 속에서도 여호와께 성결이 드러나게 하옵소서.
탐욕과 불의가 떠나가고 사랑과 정의와 구원의 빛이 가득한 교회를 세워 주옵소서.
마지막 날 완성될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우리 모두가 기쁨으로 참여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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