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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붙임 비유와 하나님의 구원(로마서 11:11~24)(20250929)

2025.09.29 | 생명의 삶 | 조호영 목사

 

 

접붙임 비유와 하나님의 구원

 

 

안녕하세요.

온누리 교회를 섬기는 조영 목사입니다.

 

저는 모태 신앙인이 아닙니다.

10대 후반이 되기까지 교회에 한 번도 가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예수님이 나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기까지 나를 사랑하신다는 그 말씀, 그 십자가의 보혈로 내가 구원받았다는 그 말씀이 놀랍게도 제 마음으로 믿어졌고, 또 입술로 신앙을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그 은혜에 눈물로 감격하고 기뻐하며 감사했습니다.

 

그 기쁨과 감사함, 감격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동일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변한 것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나 중심의 신앙생활을 하던 내가, 성경을 계속 읽으면서 믿음이 조금씩 조금씩 성장하기 시작합니다.

나를 넘어 더 큰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온 세계가 하나님 나라고 또 온 인류가 하나님의 자녀요, 열방이 구원받고 죽게 돌아와 하나님을 예배하고 경비하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씩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 속에서도 유대인의 불신앙으로 이방인에게도 복음의 문이 열렸습니다.

그러나 이방인뿐 아니라 넘어졌던 유대인들도 다시 회복되어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마음이 숨겨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로마서 11장 11절에서 24절 말씀입니다.

 

 

접붙임 비유와 하나님의 구원
접붙임 비유와 하나님의 구원

 

 

접붙임 비유와 하나님의 구원

 

 

로마서 11장 11절에서 24절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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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그들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12 그들의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며 그들의 실패가 이방인의 풍성함이 되거든 하물며 그들의 충만함이리요
13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14 이는 혹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하게 하여 그들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
15 그들을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거든 그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리요
16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
17 또한 가지 얼마가 꺾이었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가 되었은즉
18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랑하지 말라 자랑할지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19 그러면 네 말이 가지들이 꺾인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리니
20 옳도다 그들은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21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22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심이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
23 그들도 믿지 아니하는 데 머무르지 아니하면 접붙임을 받으리니 이는 그들을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이라
24 네가 원 돌감람나무에서 찍힘을 받고 본성을 거슬러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았으니 원 가지인 이 사람들이야 얼마나 더 자기 감람나무에 접붙이심을 받으랴

 

 

 

세월이 지나갈수록 깨닫게 되는 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과 그것을 이루어가시는 방법은 나의 생각, 계획과 너무나 다를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계획은 우리가 할지라도 그것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서 하나님을 배척하고 거부한 그 폐역 한 유대인들 이제 넘어지고 실패한 것 같지만 이스라엘의 실패는 놀랍게도 이방인들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에 도구가 되었습니다. 11절, 12절 함께 읽겠습니다.

11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그들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12 그들의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며 그들의 실패가 이방인의 풍성함이 되거든 하물며 그들의 충만함이리요

 

유대인들의 복음을 배척했던 결과로 이방인이 구원을 받게 되고, 그들이 구원의 기쁨을 누리는 그 모습을 보고 시기심, 질투심이 발동한 유대인들이 다시 하나님을 찾고 영적인 회복이 일어난다는 바울의 그 선포는 어찌 보면 역설적이고 우리의 이성으로는 잘 이해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나의 좁은 생각, 또 이성 경험으로 하나님의 능력과 온전하심을 의심하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 달라서 우리가 절대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방법으로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시는 놀라운 하나님이십니다. 광야에 길을 내시고 사막의 샘을 만드시는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비록 지금 눈에는 희미하게 보일지라도 반드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고야 마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방인들은 자신들에게 복음을 전해준 사도 바울에게 감사하지만, 정작 그의 깊은 속 곤해와 절실한 기도 제목은 잘 알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자신의 심정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13절, 14절입니다.

13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14 이는 혹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하게 하여 그들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

 

바울은 이방인 선교를 위해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히 부르심 받은 사도이고 또 그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지만, 마음 깊이 그들과 나누지 못한 기도 제목이 있었습니다. 바로 동족의 구원이었습니다.

이방인의 구원의 풍성함을 바라보면서 유대인들 적은 숫자라도, 그 내면에 시기심이 발동하여서라도 다시 구원의 풍성함에 이르기를 바라는 바울의 심정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변화되어 충만하게 되면 온 열방이 더 크고 놀라운 은혜가 임할 것임을 믿음의 눈으로 소망하며 기도하고 있는 바울입니다.

세계 선교로 먼 길 떠나는 선교사님들, 또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다니던 직장을 내려놓고 목회자의 길로 들어서는 목사님들의 기도 제목을 종종 듣습니다.

온 세상의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지만, 정작 복음을 거부하는 가족들의 구원 문제를 놓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중보를 요청하곤 합니다.

 

오래전 어느 목사님의 간증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고 좋은 직장을 내려놓고 신학 공부를 하려고 할 때에, 불신자이신 아버지가 자신을 불러놓고 슬픈 목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너는 왜 없는 하나님을 자꾸 있다고 하면서 밥 벌어먹으려고 하느냐?'

어쩌면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아버지의 입장에서는 당연하게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목사님의 입장에서는 믿음이 없으신 아버님이 하나님을 믿고 구원받기를 바라면서 이렇게 사도 바울처럼 간절하게 눈물로 기도하였을 것입니다. 

저도 그 아버님이 반드시 반드시 예수님을 꼭 만나 아들과 함께 그 복음의 풍성함을 누리시기를 간절히 진심으로 간구합니다.

 

 

실패까지 사용해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앞에 내가 순복할 일은 무엇인가요?
실패까지 사용해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앞에 내가 순복할 일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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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5장에 보면 예수님은 포도나무요, 우리는 가지라 말합니다.

그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을 때 열매를 맺게 되고, 나무에서 떨어지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말라서 불소시계밖에 될 수 없음을 말씀하십니다.

오늘 사도바울은 참 감 남 나무의 가지였던 이스라엘이 불신앙으로 나무에서 찍혀 떨어진 그 자리에 돌 감남나무 가지인 이방인들이 젖붙임을 받아서 참 감남나무 열매를 맺게 되었음을 비유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17절, 18절입니다.

17 또한 가지 얼마가 꺾이었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가 되었은즉
18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랑하지 말라 자랑할지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이방인들이 자랑하지 못할 것은 원래 이방인들은 진노의 자녀였으나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아서 양자로 입양되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유대인들보다 더 경건하고 거룩하여서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받은 결과임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구원은 우리의 행위로 인함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디모드 후서 1장 9절에는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오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2장에도 이렇게 말하고 있지요.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 나은 것이 아니오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나온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은혜로 시작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자꾸 율법으로 자신의 행위로 뭔가를 이루려고 하는 것, 자꾸 자기의 행위를 통해 의를 이루려고 하는 것은 교만입니다.

 

바울은 유대인들의 자리를 대신 차지한 그 이방인들에게도 경고합니다.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인 동시에 정의 하나님이심을 잊지 말아라.

교만을 버리고, 오히려 그렇게 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을 가지라 경고합니다. 20절에서 21절입니다.

20 옳도다 그들은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21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하나님께는 늘 이렇게 양면성이 있습니다.

은혜와 진리의 하나님,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 자비와 진노의 하나님, 거룩하시지만 동시에 친밀하신 하나님, 용서하시지만 또한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 속에서 인자하시면서 또 준엄하신 하나님이시라 말하고 있습니다. 22절, 23절 읽어보겠습니다.

22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심이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
23 그들도 믿지 아니하는 데 머무르지 아니하면 접붙임을 받으리니 이는 그들을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이라

 

그 당시 참 감남나무 가지였던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준엄하심으로 나무에서 찍혀 떨어졌고 또 하나님의 임재 하심으로 이방인들이 그 자리에 접붙임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하심과 준엄하심의 잣대는 바울 사도 그 시대뿐만이 아니라 은혜로 구원받은 이 시대 우리 모두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됨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교만함으로 실패했던 구약 이스라엘의 전철을 밟지 말고 낮아짐으로 영광을 얻으신 그리스도의 그 겸손함을 본받아서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늘 머물며 승리하는 우리 모두 되기를 간구합니다.

 

 

바울이 접붙임의 비유로 전한 교훈은 무엇인가요?
바울이 접붙임의 비유로 전한 교훈은 무엇인가요?

 

 

하나님 이방인으로서 은혜로 구원받은 저희들임을 오늘도 말씀 속에서 보았습니다.
주님의 그 낮아짐처럼 저희도 낮아져 오직 주의 은혜를 강고하는 저희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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