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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 택하시고 은혜로 남기십니다(로마서 11:1~10)(20250928)

2025.09.28 | 생명의 삶 | 조호영 목사

 

 

은혜로 택하시고 은혜로 남기십니다

 

 

안녕하세요.

온누리교회를 섬기는 조호영 목사입니다.

로마서를 통하여 우리는 계속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라는 것이지요.

어떤 죄를 지어서 죄인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어린이나 노인이나 모두 아담의 후손으로 원죄 가운데 태어난 우리는 의의를 행할 수 있는 능력도, 죄를 사할 능력도 없는 연약한 인간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에게 Good 뉴스, 복음이 선포됩니다.

바로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게 된다는 놀라운 소식입니다.

오늘도 이 복된 소식을 나의 이웃에게 또 나의 가족에게 세상에 외치고 전하는 하루가 되기를 바라면서요.

오늘 말씀은 로마서 11장 1절부터 10절입니다.

 

 

 

 

은혜로 택하시고 은혜로 남기십니다

 

 

 

로마서 11장 1절에서 10절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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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2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 너희가 성경이 엘리야를 가리켜 말한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고발하되
3 주여 그들이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 버렸고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 하니
4 그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냐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 명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5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6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
7 그런즉 어떠하냐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 그 남은 자들은 우둔하여졌느니라
8 기록된 바 하나님이 오늘까지 그들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
9 또 다윗이 이르되 그들의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하시옵고
10 그들의 눈은 흐려 보지 못하고 그들의 등은 항상 굽게 하옵소서 하였느니라

 

 

로마서 9장부터 11장까지는 복음을 거부한 이스라엘 유대인들로 인해서 이방인들에게까지 그 구원의 복음이 전해지는 그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만 본다면

택한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그 불신앙으로 구원의 문이 이방인에게도 열렸으니,

이제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버림 받고 실패한 민족으로 그냥 남게 될 것인가?

라고 물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자신의 동족들, 그 유대인들의 이런 상황을 바라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이렇게 대답합니다. 1절입니다.

1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사도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받았지만 그는 결코 자신의 백성들을 버린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의 일원으로서 자신의 정체성, 그 민족의 뿌리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런 그의 모습 속에서 정말로 동족을 사랑하고 그들이 언젠가 복음을 받아들이고 다시 그 땅에 영적인 회복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그런 절실한 마음이 느껴집니다. 이 마음을 로마서 9장에서도 느낄 수 있는데요.

로마서 9장 3절에 보면

로마서 9:3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라고 말하고 있죠. 

자신이 저주받아 죽게 될지라도 형제, 친척, 민족의 구원을 원하는 그 바울의 애타는 중보기도입니다.

성경 곳곳에는 이런 죄 가운데 있는 자신의 민족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어놓고 중보 하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금송아지를 만들고 우상 숭배한 백성들의 죄를 사해달라며 생명책에서 자기 이름이 지워져도 좋다고 외쳤던 모세입니다.

또 저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그들은 자신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해서 그렇다고 갈보리 언덕 위에서 생명까지 내어놓으시며 중보 하셨던 예수님의 그 십자가의 외침도 중보기도도 기억합니다.

 

이런 중보기도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어떤 마음으로 가족들과 우리나라를 위해 기도하는가 돌아보게 됩니다.

복음을 거부하는 가족들, 또 노골적으로 하나님을 저주하고 대적하는 이 나라를 향한 그 믿음의 중보기도 애타는 그 바울의 눈물이 나에게 있는가라고 돌아보게 됩니다.

바울이 이렇게 믿음으로 확신하며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었던 것은 백성들에게 어떤 변화의 조짐이 보여서도 아닙니다. 교회가 부흥했거나 주변 상황이 바뀌어서도 아닙니다.

오직 믿음 안에서 하나님의 언약을 붙들었기 때문인데요.

오래전 엘리아에게 주셨던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입니다. 로마서 11장 2절에서 5절입니다.

로마서 11:2~5 [우리말]
11:2 하나님께서는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여러분은 성경이 엘리야에 관해 말한 것을 알지 못합니까? 그가 이스라엘을 고발해 하나님께 호소하기를
11:3 “주여, 그들이 주의 예언자들을 죽이고 주의 제단들을 부수었습니다. 오직 저만 남았는데 그들이 제 목숨도 찾고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11:4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에게 무엇이라고 대답하셨습니까? “내가 나 자신을 위해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7,000명을 남겨 두었다”라고 하셨습니다.
11:5 그러므로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선택을 받아 남은 사람이 있습니다.

 

갈매산에서 엘리아가 450명의 발 선지자들을 죽인 후에

이에 분노한 이세벨이 그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죽이고 엘리아를 죽이려고 할 때에

호랩산으로 도망갔던 그 사건을 지금 소개하고 있습니다.

홀로 남은 것 같아서 좌절하고 기도하는 엘리아에게

'너는 혼자가 아니다. 발에게 무릎 꿇지 않은 7천 명이 남아 있다.'

그렇게 엘리아를 위로하고 격려하셨던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기록하고 지금 그것을 바울이 붙잡고 있습니다.

지금은 유대인들이 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믿음에서 떠난 것 같지만, 엘리아의 시대처럼 눈에 보이지는 않을지라도 하나님의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분명히 있고, 지금, 아직은 아닐지라도 언젠가 이스라엘도 다시 영적 회복이 일어나서 구원의 역사가 일어날 것을 확신하며, 소망 가운데 중보하고 있는 바울을 우리는 만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는 이렇게 끝까지 언약을 붙잡고 인내하며 견디는 믿음의 그 한 사람,

그리고 그 곁에 하나님께서 동역자로 세우신 남은 자들을 통해서 이루어 가십니다.

지금 힘을 잃은 것 같은 이 시대에 교회를 바라보면서,

또 창조주 하나님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대항하는 것 같은 이 나라의 흐름을 바라보면서,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상황이 아니라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꿈꾸며 인내하며 믿음으로 살아가는 그 한 사람, 또 믿음으로 살아가는 남은 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언약을 반드시 이루실 것임을 잊지 말길 바랍니다.

 

무너져가는 음란의 도시 소돔과 고모라에서도 의인 10명을 찾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잊지 않고,

오늘도 그렇게 남은 자로, 거룩한 씨로, 이 땅의 그루터기로 살아가는 은혜가 저와 여러분에게 넘치길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허물 많은 나를 버리지 않으심을 나는 확신하나요?
하나님이 허물 많은 나를 버리지 않으심을 나는 확신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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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고 율법의 행위로 자신의 의를 이루려는 사람들에게 임하는 심판은 바로 영적인 무감각함의 현상입니다.

7절, 8절 보겠습니다.

11:7 그러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찾던 것을 얻지 못했습니다. 오직 택하심을 받은 사람이 얻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완악해졌습니다.
11:8 기록되기를 “하나님께서 오늘날까지 그들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하는 눈과 듣지 못하는 귀를 주셨다”라고 한 것과 같습니다.

 

이스라엘은 율법과 행위를 통해 택함을 받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율법의 마침표, 율법의 완성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만이 은혜로 택함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을 부인하고 복음을 거부한 나머지 유대인들은 영적으로 우둔하여서 더 이상 하나님의 계시도, 성령의 감동도 느끼지 못하고, 영적으로는 눈멀고 귀가 먹은 상태가 됩니다.

8절에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가진 사람들은 바로 신명기 29장에 모세가 가나 한 입성을 앞에 두고 모아 평지에서 그 출애굽 2세대들에게 설교할 때에 불신앙으로 40년을 광야에서 방황했던, 죽어갔던 그 출래급 1세대들의 영적 상태를 설명할 때 사용했던 동일한 구절입니다.

 

사도바울은 계속해서 시편에 다윗의 시를 인용하면서 하나님의 복음을 거부하는 유대인들의 완악함을 고발합니다.

9절, 10절입니다.

11:9 또 다윗도 말하기를 “그들의 밥상이 그들에게 덫과 올가미와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하시고
11:10 그들의 눈이 어두워져 볼 수 없게 하시고 그들의 등이 영원히 굽게 하소서”라고 했습니다.

 

광야 1세대의 눈멀고 귀먹은 영적 무지의 모습과 다윗이 원수들에게 임하기를 강구했던 그런 재앙이,

지금 복음을 거부하는 유대인들에게 동일하게 임했다고 사도바울은 선언하며 경고합니다.

이 경고는 오늘을 살아가는 지금 우리들에게도 동일합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무감각해지고 둔해지면 가장 먼저 나타나는 현상이 바로 나의 생각과 고집에 갇혀서 혼미한 심령으로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눈이 멀고 귀먹은 현상입니다.

 

설교를 들어도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습니다.

말씀을 보아도 하나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예배를 드려도 나의 생각과 고집으로 가득하니 하나님의 임재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세상적인 욕심과 밥상이 올모와 덧이 되어서 감사도 기쁨도 평안도 사라집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허락한 영적인 형벌이라고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은 우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이 두려운 것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영적으로 우둔한 사람들을 이렇게 불신앙의 모습으로 살아가도록 내버려 두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적인 심판이라는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요즘

나의 영적인 상태는 어떠합니까? 하나님의 음성에 예민하십니까?

하나님의 임재를 갈망하고 말씀을 듣고 순종하십니까?

혹시 형식적인 믿음으로 살아가면서 매너리즘에 빠져서 감사를 잃어버리고 구원의 은혜를 당연히 여기고 있지는 않은지요?

신앙인이 아니라 종교인으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요?

오늘 말씀 속에서 나의 믿음의 상태를 점검하는 시간 되기를 기도합니다.

다시 한번 살아계시고 말씀하신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그 은혜가, 그 결단이 저와 여러분에게 있기를 간구합니다.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를 위해 나는 어떻게 기도하고 권면해야 할까요?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를 위해 나는 어떻게 기도하고 권면해야 할까요?

 

 

하나님
영적인 무감각함으로 이렇게 눈멀고 귀먹은 이스라엘의 모습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내 안에도 주님을 거부할 때, 나의 생각에 갇혀 있을 때
동일하게 이런 모습이 일어나는 것을 고백합니다.
오늘도 다시금 나의 죄를 고백하며 죽게 돌아가는 은혜가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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