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14. | 생명의 삶 | 이해영 목사
안녕하세요
성민교회를 섬기는 이혜영 목사입니다.
헬리나우에는
"우리는 사랑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랑받지 않는다고 느끼는 이유는 우리의 마음이 깊은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다"
라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나오앤의 말은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인간의 모습을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한 무한한 사랑을 표현하시지만,
이스라엘은 그 사랑을 외면하고 자신만의 길을 걷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전히 포기하지 않으시고 그들의 마음을 돌이키기 위해 끊임없이 부르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끊임없는 사랑과 인내를 확인하며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크신 사랑에 우리 스스로 응답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은 호세야서 11장 1절에서 11절 말씀입니다.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사랑
호세야 11장 1절에서 11절 말씀입니다.
1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냈거늘 2 선지자들이 그들을 부를수록 그들은 점점 멀리하고 바알들에게 제사하며 아로새긴 우상 앞에서 분향하였느니라 3 그러나 내가 에브라임에게 걸음을 가르치고 내 팔로 안았음에도 내가 그들을 고치는 줄을 그들은 알지 못하였도다 4 내가 사람의 줄 곧 사랑의 줄로 그들을 이끌었고 그들에게 대하여 그 목에서 멍에를 벗기는 자 같이 되었으며 그들 앞에 먹을 것을 두었노라 5 그들은 애굽 땅으로 되돌아 가지 못하겠거늘 내게 돌아 오기를 싫어하니 앗수르 사람이 그 임금이 될 것이라 6 칼이 그들의 성읍들을 치며 빗장을 깨뜨려 없이하리니 이는 그들의 계책으로 말미암음이니라 7 내 백성이 끝끝내 내게서 물러가나니 비록 그들을 불러 위에 계신 이에게로 돌아오라 할지라도 일어나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 8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 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 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이키어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9 내가 나의 맹렬한 진노를 나타내지 아니하며 내가 다시는 에브라임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이요 사람이 아님이라 네 가운데 있는 거룩한 이니 진노함으로 네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10 그들은 사자처럼 소리를 내시는 여호와를 따를 것이라 여호와께서 소리를 내시면 자손들이 서쪽에서부터 떨며 오되 11 그들은 애굽에서부터 새 같이, 앗수르에서부터 비둘기 같이 떨며 오리니 내가 그들을 그들의 집에 머물게 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
오늘 본문의 첫 부분에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어린아이로 그렇게 부르시며 그들을 애타게 돌보시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1절의 말씀을 봅니다.
1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냈거늘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냈다'라는 이 표현은 하나님의 부모와 같은 사랑을 나타내 보여줍니다. 여기서 '사랑하다'라는 이 말은 단순한 감정을 넘어서서 행동과 책임을 포함하는 깊은 헌신을 의미하는 그런 단어가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이끌어내시고 마치 부모가 아이를 품에 안고 보살피듯 이스라엘을 인도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외면하고 다른 신을 쫓아갔습니다.
이스라엘은 점점 하나님을 멀리했고, 또 오히려 바울에게 제사하면서 우상에게 분양했습니다.
3절에서는 자신을 고치시는 하나님을 결국 알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3 그러나 내가 에브라임에게 걸음을 가르치고 내 팔로 안았음에도 내가 그들을 고치는 줄을 그들은 알지 못하였도다
그들을 고치시는 줄을 그들은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사랑하십니다.
4절을 보시죠.
4 내가 사람의 줄 곧 사랑의 줄로 그들을 이끌었고 그들에게 대하여 그 목에서 멍에를 벗기는 자 같이 되었으며 그들 앞에 먹을 것을 두었노라
'사람의 줄' 곧 '사랑의 줄'로 그들을 이끌었다라는 이 표현은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자비하심을 강조합니다.
멍예를 벗기시고 또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 이러한 표현은 마치 탕자를 품해하는 아버지의 사랑을 보여준 예수님의 예화와 같아 보입니다. 사랑을 거부하는 이스라엘의 모습은 이렇게 우리 자신을 비추는 거울과 같습니다.
우리의 신실하지 못한 삶과 하나님에 대한 외면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끝내 포기하지 않는 그런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끊어지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반역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사랑이 끊어지지 않음을 보았다면, 이제 그 사랑이 긍휼과 회복으로 이어지는 것을 보여줍니다. 8절의 말씀입니다.
8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 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 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이키어 나의 긍휼히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하나님은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라고 말하시면서 결코 이스라엘을 완전히 버리지 않으시겠다는 의지를 표현하셨습니다.
여기서 '놓다'라고 하는 이 아자부라는 말은 완전히 포기하거나 떠난다라는 그런 의미를 갖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 같이 놓겠으며 스포임같이 두겠느냐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드마와 스보임은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때 함께 멸망한 성읍들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결코 그렇게 멸망하는 다른 도성과 같이 이스라엘을 멸망시키지 않겠다라고 그렇게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의 잘못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보이신 사랑의 모습과 일맥상통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 사랑을 참으로 잘 알았습니다. 로마서 8장 35절을 보시죠.
로마서 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결코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이렇게 아름답게 노래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치유는 우리가 사랑받고 있다는 진리를 받아들일 때 시작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이 진정한 회복의 시작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께 돌아가 그분의 사랑 안에서 회복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에 그러한 눈부신 회복이 시작되기를 축원합니다.
사랑의 하나님
우리를 향한 주님의 끝없는 사랑에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립니다.
우리의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그 사랑으로 우리를 붙잡아 주시옵소서.
오늘도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우리 모두가 주님을 더욱 찾는 복된 하루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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