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03. | 생명의 삶 | 권오향 목사
샬롬
하나님의 은총이 충만한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온누리 교회를 섬기는 권오향 목사입니다.
우리는 호세아를 통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배우고 있습니다.
지독히도 속을 썩이는 자녀에게 부모가 역정을 내면서도 그 마음 안에는 자녀를 향한 사랑이 담겨 있듯이,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 뒤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숨겨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한 사랑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통해서 신실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맛보시기를 원하면서 호세아 2장 14~23절 말씀 함께 보시겠습니다.
언약 관계의 회복, 복된 응답의 시작
호세야 2장 14절에서 23절 말씀입니다.
14 그러므로 보라 내가 그를 타일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 15 거기서 비로소 그의 포도원을 그에게 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그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에서 올라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 16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일컫고 다시는 내 바알이라 일컫지 아니하리라 17 내가 바알들의 이름을 그의 입에서 제거하여 다시는 그의 이름을 기억하여 부르는 일이 없게 하리라 18 그 날에는 내가 그들을 위하여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곤충과 더불어 언약을 맺으며 또 이 땅에서 활과 칼을 꺾어 전쟁을 없이하고 그들로 평안히 눕게 하리라 19 내가 네게 장가 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 들며 20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 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2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내가 응답하리라 나는 하늘에 응답하고 하늘은 땅에 응답하고 22 땅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에 응답하고 또 이것들은 이스르엘에 응답하리라 23 내가 나를 위하여 그를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그들은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하시니라 |
범죄 한 이스라엘을 향해서 심판으로 대응하시겠다는 하나님은 곧이어 회복을 선언하십니다.
오늘 본문은 북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한 하나님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는 내용인데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판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14절을 보십시오. 14절은 '보라 내가 그를 타일러...'로 시작하면서 회복의 주체가 하나님이심을 강조합니다.
14 그러므로 보라 내가 그를 타일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
여기서 '타일러'라는 동사는 설득하여라는 뜻으로 이미 우상숭배로부터 돌아서 버린 이스라엘을 다시 하나님에게로 돌아오도록 그 마음을 돌이키시겠다 하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저버린다 해도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그들과 맺은 언약을 지키시겠다는 하나님의 적극적인 행동이죠.
그런데 잘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타일러 데리고 가신 곳은 거친 들이었습니다.
거친 들이란 광야를 말하죠. 광야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특별한 장소였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급의 노예 생활에서 벗어나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던 장소요. 하나님께 충성을 맹세했던 장소요. 비로소 자유를 누릴 수 있었던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광야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으면서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을 경험할 수 있었고, 하나님의 말씀의 임재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비록 아무것도 없는 척박한 곳이었지만 이스라엘에 있어서 광야 40년은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누릴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이었고, 그러기에 광야는 축복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라는 표현은 하나님과의 첫사랑을 회복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적극적 의도입니다.
15절 보시겠습니다.
15 거기서 비로소 그의 포도원을 그에게 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그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에서 올라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용서의 하나님이심과 동시에 회복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결핍과 고통을 다 마감하시고 소망의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게 하시는 회복의 하나님이시죠. 그러므로 우리의 삶이 때로는 광야와 같이 메마르고 황량하고 거친 것 같아도 광야 가운데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만날 때 광야는 더 이상 거친들이 아닌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16절의 말씀처럼 '하나님만이 내 남편이'라고 고백할 날이 올 것입니다.
16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날에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일컫고 다시는 내 바알이라 일컫지 아니하리라
혹여 지금 여러분의 삶이 거친 들과 같다고 생각지는 않으십니까?
앞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광야길을 홀로 걸어가고 있다고 생각지는 않으십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광야의 한복판에서 여러분을 맞이하시면서 나와 함께 가자라고 말씀하시고 인도하여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하나님만이 나의 하나님이심을 고백할 날이 올 것입니다.
18절에서 호세아 선지자가 그날이라고 부르는 날은 하나님의 온전한 회복이 이루어지는 날입니다.
이스라엘의 회복뿐만 아니라 먼 미래에 일어날 회복, 종말에 있을 회복까지도 포함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시는 회복은 에덴의 회복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18절을 보실까요?
18 그 날에는 내가 그들을 위하여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곤충과 더불어 언약을 맺으며 또 이 땅에서 활과 칼을 꺾어 전쟁을 없이하고 그들로 평안히 눕게 하리라
하나님의 회복은 개개인의 회복을 넘어 모든 피조세계의 회복, 만물의 회복을 뜻합니다.
하나님과 깨어진 모든 관계가 회복되는 총체적인 회복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그리고 이것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주권과 의지와 성품에서 비롯됩니다.
19절, 20절인데요.
19 내가 네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들며
20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 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여러분 지금 이 구절에서 '장가'라는 단어가 몇 번이나 나오고 있나요? 무려 세 번이나 나오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을 다시 아내로 맞아들여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으로 사랑하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확고한 사랑을 강조하는 것이죠.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대하는 방식과 태도는 네 가지인데,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입니다.
모두 하나님의 속성이나 성품을 대변하는 용어들인데요.
사실은 서로 매우 상반되는 조합이기도 합니다. 공의와 정의는 범죄 한 자를 징벌하시는 하나님의 속성이고요.
은총과 긍휼은 죄지은 자를 불쌍히 여기시고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그러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은 완전하신 하나님을 대변해 주죠.
하나님은 죄를 간과치 아니하시지만 죄지은 자를 용서하시고 죄는 미워하되 죄인은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이를 실현케 한 사건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죠.
예수님의 십자가만이 이 네 가지 속성과 성품을 완벽하게 충족할 수 있는 유일한 해답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결혼 관계란, 과거 이스라엘이 신의산에서 맺었던 언약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겁니다.
신혜산의 언약이 조건적이었다면 호사야에서의 결혼은 신실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한 영원히 변치 않는 관계를 말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성령의 오심으로만 가능합니다. 애스겔 36장
에스겔 36:26~27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죠.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과 영원한 관계를 위해서 날마다 성령을 구해야 합니다.
이제 마지막 23절은 오늘 말씀의 결론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23 내가 나를 위하여 그를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그들은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성취됩니다.
십자가의 모진 고난과 고초를 다 당하시고 우리를 위하여서 죽으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이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켜서 하나님께 돌아오게 할 것이며, 예수님만이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할 날이 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예수님의 오심으로 만물이 새롭게 됨을 믿으면서 그날이 올 때까지 믿음으로 전진하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거친들과 같은 광야의 삶도 오히려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축복의 시간임을 믿습니다.
광야의 한복판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는 하나님을 보게 하시고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는 은혜를 부어주시옵소서
그리고 광야의 끝자락에서 하나님만이 나의 하나님이심을 고백할 수 있는 은총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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