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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자원하는 사람들(느헤미야 11:1~9)(20240922)

2024.09.22. | 생명의 삶 | 김상수 목사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자원하는 사람들

 

안녕하세요 

대전 온누리 교회를 섬기고 있는 김상수 목사입니다.

느헤미야의 영적인 리더십으로 수많은 난관 속에서도 52일 만에 성벽을 잘 완공하였습니다.

예루살렘 성은 외적으로 평온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성은 내적으로는 여전히 불안했습니다.

겉모습과 달리 예루살렘 성 안에는 거주할 사람들은 별로 없었기 때문입니다.

성벽 공사가 다 끝났다고 해서 고향으로 돌아갈 경우 이방인들에 의해 다시 공격을 받을 수 있는 위태로운 상황이었습니다.

이에 지도자들이 먼저 헌신했고, 백성들 가운데에도 10분의 1을 제비 뽑아 예루살렘 안에서 살아가도록 격려하였습니다.

그럼 오늘 나눌 말씀인 느헤미야 11장 1절에서 9절까지의 말씀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자원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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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백성의 지도자들은 예루살렘에 거주하였고 그 남은 백성은 제비 뽑아 십분의 일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서 거주하게 하고 그 십분의 구는 다른 성읍에 거주하게 하였으며
2 예루살렘에 거주하기를 자원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 백성들이 복을 빌었느니라
3 이스라엘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느디님 사람들과 솔로몬의 신하들의 자손은 유다 여러 성읍에서 각각 자기 성읍 자기 기업에 거주하였느니라 예루살렘에 거주한 그 지방의 지도자들은 이러하니
4 예루살렘에 거주한 자는 유다 자손과 베냐민 자손 몇 명이라 유다 자손 중에는 베레스 자손 아다야이니 그는 웃시야의 아들이요 스가랴의 손자요 아마랴의 증손이요 스바댜의 현손이요 마할랄렐의 오대 손이며
5 또 마아세야니 그는 바룩의 아들이요 골호세의 손자요 하사야의 증손이요 아다야의 현손이요 요야립의 오대 손이요 스가랴의 육대 손이요 실로 사람의 칠대 손이라
6 예루살렘에 거주한 베레스 자손은 모두 사백육십팔 명이니 다 용사였느니라
7 베냐민 자손은 살루이니 그는 므술람의 아들이요 요엣의 손자요 브다야의 증손이요 골라야의 현손이요 마아세야의 오대 손이요 이디엘의 육대 손이요 여사야의 칠대 손이며
8 그 다음은 갑배와 살래 등이니 모두 구백이십팔 명이라
9 시그리의 아들 요엘이 그들의 감독이 되었고 핫스누아의 아들 유다는 버금이 되어 성읍을 다스렸느니라

 

느헤미야 7장은 어떻게 성벽이 완성되고 몇 명이 포로에서 귀환했는지를 잘 설명하였습니다.

그리고 8장에서 10장까지는 에스라의 말씀을 들으며 언약백성으로의 정체성을 회복하였습니다.

그러자 언약 백성들은 다시 가슴이 뜨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주를 위하여 살아가기로 결단하자 오늘 11장부터는 이스라엘 백성이 좀 더 현실적인 문제를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성벽 공사가 마무리되었다고 각자의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면 예루살렘 성은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아직까지 성 안에 실제로 거주하는 백성들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기업과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면 예루살렘에는 적은 인원만 남게 되고, 또다시 성벽은 이방인들로부터 공격을 받아 쉽게 무너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성벽 공사를 위해 헌신한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익숙한 고향과 집을 버리고 예루살렘으로 재이주한 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거기에는 엄청난 희생과 헌신이 필요합니다. 

 

이에 지도자들이 스스로 솔선수범하여 예루살렘에 정착하기로 결단했습니다.

백성들도 10분의 1을 제비 뽑아 예루살렘으로 거주지를 옮길 사람을 선택하였습니다.

여기서 제비를 뽑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택받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순종했다는 것은 믿음의 헌신을 의미합니다.

이에 몇몇 사람들이 더 자원하는 마음으로 순종하였고, 나머지 백성들은 이들의 삶을 축복해 주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의 진정한 공동체가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믿음의 순종으로 예루살렘 성은 외부와 내부가 아름답게 회복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으로서 자신을 비우고 피조물의 모습으로 오셔서 우리 죄인들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사도바울도 2차 선교 여행 중 고린도에서 타 지역으로 이동하려 했지만 

성령 하나님은 고린도에 더 남으라고 하셔서 1년 6개월 동안을 불편했지만 그곳에서 더 사역해야만 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희생하는 자들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내가 함께하며 좀 더 도와야 하는 소그룹 혹은 공동체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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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 남아서 거주할 사람들이 정해지자 바벨론 포로 이후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남유다 사람들을 잘 소개하고 있습니다.

남유다 왕국은 주로 유다와 베냐민 지파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바벨론으로 끌려간 사람들이 돌아와 이스라엘을 대표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는 유다와 베냐민 지파의 사람들을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중요한 인물과 사건을 소개하기 전에 족보 이야기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유다 지파의 지도자 아다야 족보를, 5대조 / 마세야 족보를, 7대조 / 베냐민의 지도자 살루 족보를 7대조까지.

이처럼 느헤미야가 수많은 이름들을 언급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이들이 신앙의 순수성을 보존하고 있는 유대인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익숙했던 바벨론을 떠나 예루살렘에 돌아온다는 것은 이 당시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불편하고 특별한 사명감이 없다면 도저히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 남기로 결단한 사람은 자신의 안락함보다 믿음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삶을 희생하였던 것입니다.

물론 예루살렘 성안에는 실제로 유다와 베냐민 지파의 사람들만 거주했던 것은 아닙니다.

다른 지파들도 함께 있었지만, 느헤미야는 역대기서와 같이 하나님 나라의 관점으로 남한국과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구속사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혈통과 족보를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과 함께 남은 베레스의 자손도 소개하고 있는데, 

이들은 강한 용사로서 예루살렘 성을 수비하기에 아주 적합한 사람들이라고 소개합니다.

이와 같이 예루살렘 성벽이 다 완공되고 많은 사람들이 거주하게 되자

하나님의 도성은 점차 안정감을 되찾았고 진정한 평안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성벽을 재건하고 거주지에 유다와 베냐민 지파 사람들이 정착했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황폐했던 성이 이제 하나님을 예배하는 거룩한 성전으로 완성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방인의 공격으로 다시 위기 속에 빠질 수 있었지만, 믿음의 연합을 통해 다시 예루살렘의 영광이 회복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었던 죄인이었지만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예수님의 사랑과 희생 때문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공동체를 유지하고 성장시키기 위해 내가 감당할 역할은 무엇인가요?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세워지기를 간절히 원하면서도 
여전히 나 중심적으로 생활하고 희생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 세상에 살아가면서 정체성을 잃어버리지 않게 하시고 
믿음의 순결함을 지키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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