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거룩함과 형제 사랑(데살로니가전서 4:1~12)(20240824)

2024.08.24. | 생명의 삶 | 김주환 목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거룩함과 형제 사랑

 

안녕하세요 

허브 교회를 섬기고 있는 김주환 목사입니다.

행복한 주말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요즘은 조깅뿐만 아니라 걷는 것도 상당히 인기 있는 운동이자 야외 활동이 된 것 같아요.

개인뿐만 아니라 가족 전체가 공원에서 혹은 숲 속에서 산책을 즐기는 장면을 흔히 볼 수 있죠.

 

그리스도인의 삶은 어떤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는 것과 비슷합니다.

사실 바울이 가장 즐겨 사용한 표현이 바로 걸어가는 거예요.

몇몇 구절을 한번 직역해서 인용을 해보면, 에베소서 4장 1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걸으라'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또 17절은 '너희는 이방이니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걸어감같이 걷지 말라' 이렇게 되어 있고요.

또 5장 2절은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걸으라.'

또 8절의 경우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걸어라.'

그리스도인의 삶은 한마디로 믿음의 걸음으로 시작되고 믿음의 걸음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렇게 한 걸음 한걸음 나아가는 것이죠. 

고린도후서 5장 7절 역시 이 부분을 직역을 하면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걷고 보는 것으로 걷지 아니함이로다.

그래서 NIV 성경을 비롯해 많은 영어 성경들은 대부분 다 이 Walk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걸음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요구되는 나아감 진전을 의미합니다.

걷기 위해서 힘도 필요하죠. 

다리에 힘이 없는 사람은 결코 걸을 수 없습니다.

걷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빛 가운데 걷는 것이에요.

빛이 없는 어둡고 캄캄한 곳에서 걸으면 위험합니다.

원수는 우리를 실족케 하기 위해서 온갖 함정과 우회로를 준비해 뒀기 때문이죠.

우리의 걸음의 최종 목적지는 주님의 품임을 잊지 마십시오.

 

바울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걸어야 하는 세 가지 길에 대해서 오늘 나누고 있습니다.

오늘 함께 우리가 살펴볼 말씀은 데살로니가전서 4장 1절에서 12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거룩함과 형제 사랑

 

더보기
1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끝으로 주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구하고 권면하노니 너희가 마땅히 어떻게 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배웠으니 곧 너희가 행하는 바라 더욱 많이 힘쓰라
2 우리가 주 예수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무슨 명령으로 준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
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4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대할 줄을 알고
5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따르지 말고

6 이 일에 분수를 넘어서 형제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고 증언한 것과 같이 이 모든 일에 주께서 신원하여 주심이라
7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하게 하심이 아니요 거룩하게 하심이니
8 그러므로 저버리는 자는 사람을 저버림이 아니요 너희에게 그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림이니라
9 형제 사랑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너희들 자신이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서로 사랑함이라
10 너희가 온 마게도냐 모든 형제에 대하여 과연 이것을 행하도다 형제들아 권하노니 더욱 그렇게 행하고

11 또 너희에게 명한 것 같이 조용히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
12 이는 외인에 대하여 단정히 행하고 또한 아무 궁핍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그리스도인들이 걸어야 할 첫 번째 길은 바로 거룩한 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1절에서 8절의 메시지를 통해서 '거룩함 안에서 걸으라'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 로마 제국의 도덕성은요. 형편없었죠.

이 노예 제도 때문에 많은 자유인들은 쾌락을 좇을 여유가 있었어요.

그래서 거룩한 삶을 추구하는 기독교 메시지는 당시 문화에 너무나 생소했던 거예요.

특히 이제 갓 믿은 성도들은 주위에 있는 유혹에서 벗어나기가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바울은 성도는 왜 거룩한 삶을 추구해야 하는지 네 가지 이유를 들어 설명하고 있어요.

 

첫 번째는 뭐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모든 사람은 누군가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살아요.

많은 사람들은 자신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살죠.

다른 사람의 필요에 대해서는 관심이 별로 없어요.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기쁨을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는 사람을 기쁘게 하면서 하나님을 욕되게 할 수도 있어요.

갈라디아서 1장 10절을 보면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갈라디아서 1: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도 이런 마음으로 사역을 했어요. 그래서 2장 4절을 보면은

데살로니가전서 2:4
오직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을 위탁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주 목적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나는 항상 아버지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한다'라고 요한복음 8장 29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 이상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면서도 얼마든지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 예로 요나 선지자는 순종했지만 억지로 순종했기 때문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순종은 에베소서 6장 6절의 표현대로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6:6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여러분 안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순종의 마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모든 성도가 계속해서 거룩함 안에서 길을 가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순종하는 삶으로 부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거룩함이에요. 곧 음란을 버리는 것이라고 사도바울은 2절 3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성적 순결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음란한 습관을 기뻐하지 않으셨어요.

하나님은 처음부터 한 남성과 한 여성의 거룩한 연합으로 결혼을 만드셨어요.

히브리서 13장 4절을 보면 모든 사람은 결혼을 귀히 여기라 침소를 더럽게 하지 말라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3:4
모든 사람은 결혼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

 

성적 순결을 향한 하나님의 명령은 우리의 기쁨을 빼앗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세 번째 이유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도록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죠.

4절 5절을 보게 되면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결코 거룩한 삶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거룩한 삶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 삶을 갈망하죠.

이 4절에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대할 줄을 알고 이렇게 되어 있는데, 이 자기 아내로 번역될 수도 있지만 자신의 몸을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4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대할 줄을 알고

 

그래서 영어 성경에는 어떻게 돼 있죠? 

Thessalonians 4:4 NIV
4 that each of you should learn to control your own body in a way that is holy and honorable,

 

그러니까 바울의 이 명령은 결혼한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말씀이에요.

믿는 사람은 자신의 몸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입니다.

성적인 죄를 짓는 사람은 자신의 몸을 범하는 것이에요. 자신의 몸을 더럽히는 것이에요. 

성도의 몸은 누구의 것입니까?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고린도전서 6장 19절 20절은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몸을 범하는 사람은 사실 하나님의 영광을 더럽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성적 순결을 요구하시는 것이죠.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몸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이에요.

 

네 번째 이유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해야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게 바로 6절 8절이에요. 

하나님은 결코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분이에요. 죄를 지으면 그 죄에 대해서 간과하지 않으십니다.

어떤 사람이 믿는 사람이 짓는 죄와 믿지 않는 사람이 짓는 죄는 다르지 않냐고 질문한 적이 있어요.

당연히 다릅니다. 믿는 자의 죄가 믿지 않는 자의 죄보다 더 악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더 이상 정죄함이 없다'라는 이 로마서 8장 1절 말씀은 사실이지만, 분명하지만

죄에 대한 처벌에서 우리는 결코 자유롭지 않습니다.

다윗이 밧세바를 범하고 자신의 죄를 덮고자 했을 때 하나님은 그를 호되게 책망했죠.

결국 그가 죄를 고백하자 용서해 주시지만, 그러나 그 죄의 결과 그 죄의 형벌은 거두지 않으셨습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심은 대로 거두리라라는 그 말씀을 믿는 우리 모두에게 적용됨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릇된 이성 문제에 빠지지 않도록 내가 지켜야 할 선은 무엇인가요?

 

반응형

 

9절과 10절 말씀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걸어야 할 두 번째 길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데요.  

바로 화목함 안에서 걷는 것입니다. 

이 바울의 메시지는 거룩함에서 화목함으로 너무나 자연스럽게 넘어가죠.

거룩함과 화목함 사이에는 긴밀한 관계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아갈수록 하나님의 사랑도 닮아가게 되어 있기 때문이에요.

하나님의 사랑은 거룩한 사랑이에요. 

그러므로 거룩한 삶을 추구하는 성도는 언제나 하나님의 사랑을 더 많이 경험하게 되어 있고, 그 사랑을 더 많이 베풀게 되어 있습니다. 성도가 이웃을 거룩한 사랑으로 사랑하면 결코 그 이웃에게 죄를 짓지 않습니다.

 

헬라어에는 사랑을 가리키는 단어가 네 가지가 있어요.

육체적인 사랑을 가리키는 에로스가 있고, 

가족 간의 사랑, 특히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을 가리키는 스토르게가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단어는 필리아와 아가페인데요.
필리아는 우정이나 또 형제 관계 안에서 갖는 깊은 감정을 뜻하고, 

아가페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내신 사랑으로 감정에만 기초한 사랑이 아닌 의지,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는 사랑을 가리키고 있죠.

아가페 사랑은 하나님이 나를 대하신 것처럼 나도 다른 사람을 대하는 것을 뜻합니다.

즉 하나님이 무조건적으로 나를 사랑해 주신 것처럼, 내가 사랑스럽지 않을 때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내 감정과 기분과 상관없이 상대방을 대하는 것이죠.

바울이 구절에서 말한 이 형제 사랑은 필리아 사랑으로 여기에서는 필라델피아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이는 형제 간의 사랑으로 모든 성도는 한 아버지를 둔 같은 형제자매임을 보여주고 있죠.

부모로서 가장 행복할 때는 저는 우리 세 자녀가 서로를 극진히 사랑하는 모습을 볼 때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서 거듭 말씀하셨어요.

대표적인 말씀으로 요한복음 13장 34절, 35절

요한복음 13
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왜 성령을 주셨을까요? 로마서 5장 5절을 보면 

로마서 5: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성령님은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주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사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동물들은요 자신을 살게 하고 안전하게 하는 행동을 본능적으로 취하게 되어 있습니다.

물고기는 헤엄치는 수업을 따로 듣지 않아도 헤엄칠 수 있습니다.

새는 굳이 나는 그런 수업에 등록하고 그 수업을 듣지 않아도 날게 되어 있어요.

그리스도인은 그 안에 하나님의 사랑에 영이 거하시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사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면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하나님은 어떻게 우리 안에서 사랑이 자라나게 하실까요? 데살로니가 성도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일하십니다.

서로 사랑하도록 만드는 환경을 허락하심으로써 성도는 함께 고난과 어려움을 겪으면서 피차 더 사랑하는 것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지 않는 세상을 놀라게 하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모든 성도가 걸어야 할 마지막 세 번째 길, 그것은 바로 품위 있게 걷는 길입니다. 11절과 12절 말씀을 제가 읽겠습니다. 

11 또 너희에게 명한 것 같이 조용히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
12 이는 외인에 대하여 단정히 행하고 또한 아무 궁핍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12절에서 단정히 행하고로 기록된 이 표현은 품위 있게 예의 바르게 젊지 않게 존경받을 만하게라는 뜻을 갖고 있어요.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향해서도 공예배 시간에 성령의 은사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동일한 표현을 사용합니다.

고린도전서 14장 40절을 보면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라'라고 말합니다.

데살로니가와 고린도 교회의 둘 다 믿지 않는 사람들, 곧 세상 앞에서 비춰지는 성도들의 모습을 다루고 있습니다.

믿는 사람들은 믿지 않는 사람들 앞에서 어떻게 말하고 행동해야 할까요?

품위 있게 예의 바르고 젊지 않고 존경받을 만하게 해야 된다는 것이에요.

성도는 서로 사랑해야 할 뿐만 아니라 세상에 있는 사람들에게 언제나 좋은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아름다운 증인이 되어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사도바울은 11절에서 조용히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영어 성경은 이렇게 돼 있어요.

Thessalonians 4:11 and to make it your ambition to lead a quiet life: You should mind your own business and work with your hands, just as we told you,
데살로니가전서 4:11 또 너희에게 명한 것 같이 조용히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

 

조용히 살기를 힘쓰라는 거예요.

 

그러면 어떤 삶이 조용한 삶일까요? 

믿지 않는 사람들의 눈을 찌뿌리게 하는 그런 말과 행동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남의 일에 간섭하고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말라는 것이에요.

이게 바로 조용히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에 충성을 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삶에 간섭할 여유가 없어요.

 

어떤 사람이 남의 일에 간섭하는지 아세요? 게으른 사람이에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사람 데살로니가 교회에도요. 이런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래서 데살로니가후서 3장 11절을 보면

데살로니가후서 3:11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게으르게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을 만들기만 하는 자들이 있다 하니

 

이렇게 말합니다.

게으른 사람의 특징이 뭔지 아세요? 

자기 할 일은 하지 않고 남의 일에 참견하는 사람 그래서 늘 일을 만들어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은 자신의 믿음을 세우고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고 격려하는 데 바쁘기 때문에 남의 일에 참견할 여유가 없습니다.

안타깝게도 예배 후에 또는 성경 공부 시간 또는 중보 기도 시간, 기도 제목을 나누면서 험담하고 수다 떠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성도로서 늘 모든 언행에 있어 믿지 않거나 믿음이 약한 사람들 앞에서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됩니다.

어떻게요?

자기 일에 열심을 냄으로써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열심히 할 일들을 주셨습니다.

공부, 육아, 살림, 직장, 사역, 무엇이든지 주께 하듯 하는 오늘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은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실천하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 내 손으로 힘써 행할 일은 무엇인가요?

 

 

데살로니가전서 4장의 말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날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기 원합니다.
모든 형태의 성적인 죄를 멀리하며 거룩함을 추구하게 하여 주옵소서 
어디를 가든지 모든 형제와 자매를 사랑하는, 화목해하는 자가 되기 원합니다.
나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다른 사람의 일에 참견하지 않고,
믿는 자들뿐만 아니라, 믿지 않는 사람들 앞에서
언제나 품위 있고 단정하고 존경받을 만한 말과 행동을 배우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 제 삶이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