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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으로 세우는 성도, 사역자의 영광과 기쁨(데살로니가전서 2:13~20)(20240822)

2024.08.22. | 생명의 삶  | 김주환 목사

 

복음으로 세우는 성도, 사역자의 영광과 기쁨

 

안녕하세요 

허브 교회를 섬기고 있는 김주환 목사입니다.

오늘도 생명의 말씀이 여러분을 살리기를 바랍니다.

 

아이가 자라나면서 흔히 겪는 것 가운데 하나가 성장통이죠.

이 성장통은 아이의 뼈와 근육이 성장에 따라서 늘어나는 과정에서 발생하게 되는 현상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교회도 성장통을 겪게 될 수 있죠.

잃어버린 영혼을 구하는 일에 힘쓰는 교회는 어떤 면에서 성장통을 겪게 될 수 있습니다.

비록 우리는 초대교회 성도들이 겪었던 그런 정치적 탄압과 종교적 박해를 겪지는 않지만, 

오늘도 여전히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극심한 박해를 받는 사람들이 지구 곳곳에 많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어떤 환경에 있든지 간에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면 반드시 어려움과 고난을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 12절 말씀처럼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오늘 본문은 우리가 고난을 겪을 때 언제든지 받을 수 있는 세 가지 도움, 영적 자원에 대해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오늘 함께 보게 될 말씀은 데살로니가전서 2장 13절에서 20절입니다.

 

 

복음으로 세우는 성도, 사역자의 영광과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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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14 형제들아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을 본받은 자 되었으니 그들이 유대인들에게 고난을 받음과 같이 너희도 너희 동족에게서 동일한 고난을 받았느니라
15 유대인은 주 예수와 선지자들을 죽이고 우리를 쫓아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게 대적이 되어

16 우리가 이방인에게 말하여 구원받게 함을 그들이 금하여 자기 죄를 항상 채우매 노하심이 끝까지 그들에게 임하였느니라
17 형제들아 우리가 잠시 너희를 떠난 것은 얼굴이요 마음은 아니니 너희 얼굴 보기를 열정으로 더욱 힘썼노라
18 그러므로 나 바울은 한번 두번 너희에게 가고자 하였으나 사탄이 우리를 막았도다
19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20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에 믿음 때문에 어려운 일을 만나게 되면 우리에게 항상 주어진 세 가지 영적 자원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첫 번째, 그것은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두 번째는 우리 주위에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이고요.

세 번째는 우리 앞에 항상 있는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우리 먼저 우리 안에 있는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13절 말씀을 제가 읽겠습니다. 

13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데살로니가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요? 하나님의 말씀, 곧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태어난 교회입니다.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한 복음은 또한 우리로 그리스도를 위해 살고, 그를 위해 어떤 고난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능력이 있습니다.

바울은 그 무엇보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올바른 태도를 지닌 것에 대해 거듭거듭 감사하고 있습니다.

성도가 그의 성경을 어떻게 대하느냐를 보면 그가 예수님을 어떻게 대하느냐를 정확히 알 수 있죠.

예수님은 영원전부터 계신 살아있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그 말씀이 기록되었다고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어요.

둘은 사실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에요. 

예수님말씀도 다 이요 진리생명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실제 경험과 정치적 성향과 문화적 배경과 상충되기만 하면 그 말씀을 무시하고 평가절하하죠.

자신의 생각과 일치하는 말씀만 골라서 읽고 그 앞에서 아멘 합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거룩하고 흠이 없고 완전한 말씀으로 받아들였습니다.

100% 받아들였습니다. 

믿음으로 말씀을 받는 자에게는 반드시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역사가 끊이지 않을 줄 믿습니다.

 

여러분은 말씀을 얼마나 사랑합니까?

여러분이 가장 사랑하는 게 어떤 것이 있을까요?

그것들과 한번 비교해 보면 아마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보다 혹시 더 말씀을 즐기시나요?

 

욥의 고백을 한번 들어보면 어떨까요? 

욥은 23장 12절에서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않고 정한 음식보다 그의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욥은 매일 먹는 음식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소중하게 여겼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떡이에요. 또 우유와 고기로도 표현됩니다. 히브리서를 보면 

그리고 시편 119편 13절을 보면 꿀이라고도 표현되어 있습니다.

또 잠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더 소중히 여깁니까?

시편 119편 148절을 보게 되면 내가 주의 말씀을 묵상하려고 밤새도록 깨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주일날조차 말씀을 듣기 위해 일어나지 못합니다. 잠이 더 좋기 때문에 

우리가 고난 가운데서 승리하려면 반드시 말씀을 사랑하고 가까이해야 합니다.

 

두 번째 자원은 14절에서 16절 사이에 나와 있는데요. 우리 주위에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고난당하면서 '동일한 고난을 당한 성도들을 생각하면서 이겨낼 수 있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성도는 주위에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 위로받고 힘을 얻게 되죠.

 

목회를 하면서 느끼게 되는 것은 이 사람들은 고난을 당하게 되면 더 자기중심적으로 변하기가 쉽다는 사실이에요.

마치 자신이 혼자 고난을 겪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기가 쉽기 때문이죠.

물론 사는 곳에 따라 더 심한 박해를 겪는 성도들도 있죠.

바울은 유대에 있는 성도들도 유대인들에게 고난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유대인의 책임으로 돌립니다. 15절과 16절 말씀입니다. 

15 유대인은 주 예수와 선지자들을 죽이고 우리를 쫓아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게 대적이 되어
16 우리가 이방인에게 말하여 구원받게 함을 그들이 금하여 자기 죄를 항상 채우매 노하심이 끝까지 그들에게 임하였느니라

 

바울은 지금 예수님의 죽음과 성도 핍박의 주범으로 유대인들을 지목함으로 종교적 편협성을 보이고 있는 것처럼 보여요.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바울은 지금 역사적인 사실을 팩트를 그대로 말하고 있는 것뿐이에요.

하지만 이는 결코 반유대주의의 근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성경은 결코 모든 유대인들에게 이 책임을 전가하고 있지 않아요.

로마인들도, 이방인들도 다 함께 이 십자가에 동참하고 참여했습니다.

우리도 동참했죠.

결국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 모두의 죄, 이사야서 53장 6절 말씀대로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하지만 지금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바울은 이곳에서 왜 유대인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발언을 하고 있을까요?

왜 그들이 죄와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쌓아간다고 말하고 있을까요?

언젠가 하나님의 인내심이 바닥나고 심판이 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과 모든 성도들에게 권면하며 위로합니다.

비록 우리가 고난당하고 박해를 경험하게 되지만 우리에게 고통과 핍박을 가하는 사람들은 결국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 어떤 마음가짐으로 받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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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주어진 세 번째 영적 자원은 17절에서 20절 사이에 나와 있는데요.

바로 우리 앞에 항상 있는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향한 애정을 가감 없이 드러내죠.

영적 부모로서 자식을 너무 보고 싶어 하는데, 보지 못하는 슬픔에 잠겨 있었습니다.

그곳에 더 오래 머물고 싶었지만 유대인들의 박해가 너무 심했기 때문에 쫓겨나다시피 떠났어야 했습니다.

이제 다시 데살로니가로 가고자 여러 차례 시도를 했지만, 그때마다 사탄이 방해를 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몸이 떨어져 있다고 해서 마음이 떨어져 있지 않음을 강조하고 있죠.

바울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을 봤습니다. 

그래서 늘 기뻐할 수 있었던 거예요.

왜냐하면 성도에게는 언제나 가장 좋은 것이 앞에서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앞을 보니까 그의 데살로니가 교회 형제자매들이 영광 가운데 있는 것을 보게 된 거예요.

힘든 일을 만날 때 성도는 언제나 긴 안목으로 봐야 합니다.

바울은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를 보면서 살았어요.

그가 취한 행동은 언제나 하나님이 앞으로 하실 일들에 대한 믿음과 기대감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현재의 고난 속에서 결코 지치거나 주저앉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끝까지 신실하게 달려갈 수 있었던 것이죠.

성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신실함입니다. 

믿음의 경주를 인내로서 끝까지 경주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면류관이 주어질 것입니다.

어떤 면류관이요?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바로 자신의 면류관이라고 밝힙니다. 19절을 보게 되면은 

19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20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

 

여러분의 면류관은 무엇입니까?

바로 여러분의 가족, 여러분이 복음을 전하고 사랑하고 섬긴 수많은 영혼들입니다.

데살로니가의 성도들은 바울의 이 편지를 읽고 극심한 박해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견딜 수 있는 새 힘을 얻었습니다.

여러분 모두 포기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는 엄청난 영적 자원들이 있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 

그리고 우리 주위에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 

무엇보다 우리 앞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 

이 세 가지를 항상 믿음으로 취하게 되는 여러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후일 주님 앞에서 나의 기쁨이자 자랑의 면류관이 될 대상은 누구인가요?

 

사랑의 주님 
오늘도 생명의 말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매일 먹는 음식을 주님의 말씀보다 더 소중하게 대하고, 
말씀 앞에서 때로는 저의 생각과 경험과 계획을 버리지 못했음을 회개합니다.
말씀을 향한 온전한 믿음을 회복시켜 주옵소서. 
힘들 때마다 믿음의 동역자들을 보면서 새 힘을 얻게 하여 주옵소서 
바울과 데살로니가 성도들처럼 긴 안목으로 영원한 미래, 우리 앞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며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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