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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성전을 꿈꾸는 선한 의지(열왕기하 12:1~8)(20240717)

2024.07.17. | 생명의 삶  | 도육환 목사

 

아름다운 성전을 꿈꾸는 선한 의지

 

할렐루야 

오늘도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입술의 모든 말과 마음의 묵상을 주께 열납 되게 해 주시기를 구합니다.

저는 온누리 교회를 섬기는 도육환 목사입니다.

지금 큐티 방송을 시청하는 분들은 대부분 개혁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계실 겁니다.

개신교라는 이름 자체가 개혁적 신앙을 가진 종교를 의미하기 때문이죠.

프로테스탄트 곧, 개혁신앙은 과거에 있었던 한 번의 종교개혁으로 완성된 것이 아닙니다.

늘 깨어 지속적으로 개혁할 때 우리의 신앙의 본질을 지켜 나갈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제헌절을 지키는 이유도 헌법을 제정한 목적을 돌아보고 바른 실행을 약속하기 위한 것 때문인 것과 같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이전에 개혁을 주도했던 사람들이 오히려 개혁의 대상이 되는 안타까운 사건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통해 우리 자신도 돌아보는 그런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묵상하실 말씀은 열왕기하 12장 1절에서 8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아름다운 성전을 꿈꾸는 선한 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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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후의 제칠년에 요아스가 왕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사십 년간 통치하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시비아라 브엘세바 사람이더라
2 요아스는 제사장 여호야다가 그를 교훈하는 모든 날 동안에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되
3 다만 산당들을 제거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여전히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였더라
4 요아스가 제사장들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성전에 거룩하게 하여 드리는 모든 은 곧 사람이 통용하는 은이나 각 사람의 몸값으로 드리는 은이나 자원하여 여호와의 성전에 드리는 모든 은을
5 제사장들이 각각 아는 자에게서 받아들여 성전의 어느 곳이든지 파손된 것을 보거든 그것으로 수리하라 하였으나

6 요아스 왕 제이십삼년에 이르도록 제사장들이 성전의 파손한 데를 수리하지 아니하였는지라
7 요아스 왕이 대제사장 여호야다와 제사장들을 불러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성전의 파손한 데를 수리하지 아니하였느냐 이제부터는 너희가 아는 사람에게서 은을 받지 말고 그들이 성전의 파손한 데를 위하여 드리게 하라
8 제사장들이 다시는 백성에게 은을 받지도 아니하고 성전 파손한 것을 수리하지도 아니하기로 동의하니라

 

아달랴가 왕족을 멸절하고 있을 때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로 살아남은 요아스는 7살의 나이로 남유다 왕국 여덟 번째 왕으로 등극합니다. 아직 어린 요아스는 고모부인 제사장 여호야다의 섭정에 절대적으로 의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요아스의 생애에 대한 열왕기의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입니다.

특히 제사장 여호야다가 곁에서 어린 왕이 율법을 따라 정직하게 행하도록 이끌어줄 때는 그는 바른 길을 걸어갔습니다.

그러나 그의 정치에는 한계가 있었지요. 2절 3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2 요아스는 제사장 여호야다가 그를 교훈하는 모든 날 동안에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되
3 다만 산당들을 제거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여전히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였더라

 

요아스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다고 평가를 받습니다. 그러나 온전하지는 못했습니다. 

특히 제사장 여호야다가 그를 교훈하는 모든 날 동안에는 이라는 전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왕족 학살에서 구출되던 갓난아기 때부터 여호야다와 여호세바 부부에게 너무나 의존적으로 성장했기 때문일까요?

요아스는 자신의 신앙과 신념으로 통치한 것이 아니라 여호야다의 신앙에 지나치게 의존되어 있었습니다.

여호야다가 죽은 이후 그는 여호와 보시기에 잘못된 선택을 반복하고 결국 불행한 죽음을 맞이합니다.

 

우리가 삶에 좋은 스승과 멘토를 만나는 것은 분명히 축복이지만, 

결국은 하나님 앞에 우리 자신이 단독자로 서서 우리의 믿음과 가치관을 바로 세우는 것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지요.

뿐만 아니라 요아스는 여호와 신앙에 늘 걸림돌이 되었던 산당을 제거하지 못했습니다.

이미 예루살렘에는 성전이 세워져 있고, 성전 중심의 제사와 정한 절기, 그리고 제사장 제도가 확립된 상태였습니다.

그럼에도, 백성들은 자신의 삶의 현장 가까이에서 종교 활동을 할 수 있는 산당에 늘 집착하고 있었고,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이는 풍요와 다산을 추구하던 가나안의 민간 신앙의 영향을 받아온 것입니다.

바알 신당과 우상들을 무너뜨리기는 했지만, 

백성들의 삶 깊숙이에 뿌리를 내리고 있던 민간 신앙까지는 개혁하지 못한 것이 한계였습니다.

우리 역시 우상숭배를 멀리하고 하나님을 섬기고 있지만, 우리 문화와 삶 속에 뿌리 내린 그릇된 습관, 태도, 그리고 샤머니즘적인 신앙의 온전한 개혁을 이루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살겠다고 고백하지만, 어느새 우리 자신을 높이고 사람들의 칭찬과 인정에 목말라할 때도 많습니다.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겠다고 찬양하지만, 내 마음은 끊임없이 더 가지고 싶고 더 쌓아두어야 안정감을 누리고 작은 욕심에도 쉽게 노출되기도 합니다.

우리 마음에 스스로 높여놓은 산당들이 적지 않다는 뜻이지요.

예배하고 말씀 묵상하며 살 때는 여호야다의 교훈에 따르며 살던 요아스처럼

바른 길 가고 주님의 뜻 아래 있는 것 같지만,

우리가 예배에서 멀어지고 영적으로 게을러지면 금세 하나님의 뜻과는 다른 엉뚱한 결정,

그리고 작은 것에도 넘어지는 실패하는 신앙이 되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연약합니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단 한순간도 온전히 믿음의 사람으로 살 수 없습니다.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은혜, 그분의 교훈 아래 늘 있어야 합니다.

오늘도 주의 말씀과 사랑 안에 살아가십시다. 

주를 향한 우리의 사랑과 신뢰가 매일 매 순간, 그리고 일평생 변치 않기를 소망하며 살아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의 신앙생활에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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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아스도 늘 어린 왕으로 남아 있지는 않았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성장했고, 스스로 국가를 통치할 수 있는 역량도 갖추게 되었습니다.

요아세는 무엇보다 솔로몬 때 세워졌던 그 성전이 세월이 지나면서 많이 낡아졌다는 사실을 잘 알았습니다.

성전에서 6년간 성장했기 때문이었을까요? 성전에 대한 열심히 특별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성전 봉원된 지도 이미 130년 넘었습니다.

곳곳에 낡고 부서진 곳이 많았을 겁니다. 

예배의 중심지였던 성전이 퇴락했다는 말은 

그만큼 여호와에 대한 신앙이 식었다는 뜻이오, 예배를 귀하게 여기지 않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성전의 회복 없이는 신앙의 개혁도 없다고 생각한 요아스는 성전 리모델링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요아스는 백성들이 성전에 올 때 드리던 그 은과 성전세로 성전에 파손된 곳을 수리하라고 제사장들에게 명령합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왕의 명령이 있었음에도 제사장들이 꿈쩍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제사장 여호야다를 포함하여 성전을 섬기는 제사장들은 요아스에게는 특별한 사람들이었죠.

아달야로 인해서 성전 신앙이 무너지고 있을 때 우상숭배가 만연해 있을 때 여호야다를 중심으로 신앙 개혁을 주도해 왔고, 무엇보다 요아스를 보호해 온 사람들이 제사장들입니다.

그 누구보다 다윗의 언약이 회복되도록 앞장서 일한 사람들이죠.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여호야다도 이제는 너무 늙었기 때문일까요?

모든 것이 안정되고 기득권이 보장되었으니 안주하고 있는 것일까요?

개혁을 주도하던 이들이 이제는 개혁의 대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도 이전에 한국교회가 거룩의 능력을 잃어버린 채 

세속주의와 인본주의에 적당히 타협하고 안전하는 것에 대해서 누구보다 마음 아파하고 목소리를 높이지는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 같은 문제를 가슴으로 끌어안고 한국교회를 위해서 기도하던 그 마음이 지금도 여전하십니까?

지금은 어떻습니까? 

개혁해야 한다고 말하던 그 문제 안에 우리도 함께 적당히 조우하며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배를 그렇게 소중히 여기던 마음이 코로나 시기를 지나면서 어느새 우리의 마음에 예배를 너무 가볍게 여기고 있는 상태는 아닌지요?

혹 우리 마음이 개혁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겸손히 돌아보게 됩니다.

 

개혁은 단 한 번의 성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개혁교회의 전통을 따라 믿음을 지키고 있습니다.

영적으로 늘 새로워져야 하고, 날마다 십자가 앞에 다시 돌아와야 합니다.

요아스가 이에 따라 특단의 조치를 내립니다. 6절 7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6 요아스 왕 제이십삼년에 이르도록 제사장들이 성전의 파손한 데를 수리하지 아니하였는지라
7 요아스 왕이 대제사장 여호야다와 제사장들을 불러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성전의 파손한 데를 수리하지 아니하였느냐 이제부터는 너희가 아는 사람에게서 은을 받지 말고 그들이 성전의 파손한 데를 위하여 드리게 하라

 

7살에 왕위에 오른 요아스도 이제 30살이 되었습니다.

재위 23년이 되었다니깐요.

성전 수리를 명령한 것도 수년이 지났지만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아늘에 빠진 제사장들에게 맡겨두고 기다릴 수만은 없었습니다.

요아스는 제사장들을 꾸짖은 뒤 그들로부터 성전 수리에 관계된 일에 손을 떼라고 말합니다.

제사장들이 직접 헌금과 성전세를 거두지 않게 하고 이 일을 전문적으로 감당해 줄 사람을 따로 세웁니다.

 

그렇습니다. 

성전이 바로 서야 예배가 바로 설 수 있습니다.

또한 예배가 바로 서면 성전도 바로 설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성전은 주님을 모시고 있는 우리 마음이라 그랬죠?

우리 마음에 성전이 퇴락하여 수리가 필요한 것은 없는지 세심하게 살펴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예배의 삶, 그리스도 중심의 신앙이 잘 회복되는 개혁이 매일 매 순간 우리 안에서부터 이루어져서 

하나님 경외하고 온전한 예배자로 세워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 드린 물질을 잘 사용하기 위해 공동체 안에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요?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성전 된 우리의 몸과 마음을 새롭게 하고 
온전한 예배자로 주를 섬기며 겸손히 주와 동행하는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매일 매 순간 신앙의 개혁을 통해 바른 신앙, 십자가만 붙드는 정도 인생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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