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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육의 정에 매이지 않는 단호한 신앙 결단(열왕기상 15:9~24)(20240510)

2024.05.10. | 생명의 삶 | 권오향 목사

 

혈육의 정에 매이지 않는 단호한 신앙 결단

 

점점 푸르러지고 있는 5월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자연 속에서 하나님을 찬송하고 묵상하는 하루가 되기를 원합니다.

안녕하세요. 우리 교회를 섬기는 권오양 목사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란, 결국 자신의 믿음의 결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죠.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리는 자마다 영생을 물려받게 될 것이다.

조금 부담스러운 말씀 같지만 하나님 우선의 삶의 중요함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오늘도 은혜의 하나님을 기대하며 열왕기상 15장 9~24절 말씀 함께 보시겠습니다.

 

 

혈육의 정에 매이지 않는 단호한 신앙 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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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왕 제이십년에 아사가 유다 왕이 되어
10 예루살렘에서 사십일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마아가라 아비살롬의 딸이더라

11 아사가 그의 조상 다윗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12 남색하는 자를 그 땅에서 쫓아내고 그의 조상들이 지은 모든 우상을 없애고
13 또 그의 어머니 마아가가 혐오스러운 아세라 상을 만들었으므로 태후의 위를 폐하고 그 우상을 찍어 기드론 시냇가에서 불살랐으나
14 다만 산당은 없애지 아니하니라 그러나 아사의 마음이 일평생 여호와 앞에 온전하였으며
15 그가 그의 아버지가 성별한 것과 자기가 성별한 것을 여호와의 성전에 받들어 드렸으니 곧 은과 금과 그릇들이더라

16 아사와 이스라엘의 왕 바아사 사이에 일생 동안 전쟁이 있으니라
17 이스라엘의 왕 바아사가 유다를 치러 올라와서 라마를 건축하여 사람을 유다 왕 아사와 왕래하지 못하게 하려 한지라
18 아사가 여호와의 성전 곳간과 왕궁 곳간에 남은 은금을 모두 가져다가 그 신하의 손에 넘겨 다메섹에 거주하고 있는 아람의 왕 헤시온의 손자 다브림몬의 아들 벤하닷에게 보내며 이르되
19 나와 당신 사이에 약조가 있고 내 아버지와 당신의 아버지 사이에도 있었느니라 내가 당신에게 은금 예물을 보냈으니 와서 이스라엘의 왕 바아사와 세운 약조를 깨뜨려서 그가 나를 떠나게 하라 하매
20 벤하닷이 아사 왕의 말을 듣고 그의 군대 지휘관들을 보내 이스라엘 성읍들을 치되 이욘과 단과 아벨벧마아가와 긴네렛 온 땅과 납달리 온 땅을 쳤더니

21 바아사가 듣고 라마를 건축하는 일을 중단하고 디르사에 거주하니라
22 이에 아사 왕이 온 유다에 명령을 내려 한 사람도 모면하지 못하게 하여 바아사가 라마를 건축하던 돌과 재목을 가져오게 하고 그것으로 베냐민의 게바와 미스바를 건축하였더라
23 아사의 남은 사적과 모든 권세와 그가 행한 모든 일과 성읍을 건축한 일이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그는 늘그막에 발에 병이 들었더라
24 아사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그의 조상들과 함께 그의 조상 다윗의 성읍에 장사되고 그의 아들 여호사밧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아사는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 아버지 아비암에 이어 유다의 왕이 됩니다. 10절에서는 

10 예루살렘에서 사십일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마아가라 아비살롬의 딸이더라

 

이렇게 말씀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마아가는 아사의 어머니가 아닌 할머니입니다.

어머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엠은 어머니뿐만 아니라 할머니, 증조, 할머니까지도 포함하는 단어로 문맥상으로 볼 때 마가는 아사의 할머니였던 것이죠.

아사는 그의 아버지 아비암과는 달리 과감한 종교 개혁을 단행하는데요.

유레 땅에 있는 남창을 쫓아내고 조상들이 만든 모든 우상을 없애버리며 

특별히 자신의 할머니 마가를 데비 자리에서 쫓아내고 그녀가 만든 아세라 목상을 찢어내 버립니다.

아무리 할머니라 할지라도 하나님 대신 아세라를 섬기는 죄악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어떻게 해요? 아사는?

지독한 우상 숭배자인 할머니와 아버지 밑에서 이와 같은 과감한 결단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일까요?

역대야 16장에서 그 원인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당시 선지자 아사라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하고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아사라가 아사에게 말씀을 전하니 아사가 그 말에 감동을 받고 담대히 종교 개혁을 감행했던 것이죠.

여러분 이처럼 주변에 누가 있는가, 또 어떤 말을 해주는가가 너무나 중요하고 무엇보다 성령 충만이 매우 중요합니다.

성령 충만한 자의 말은 그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역사로 인해서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고 설득력이 있어서 용기를 줄 수 있습니다.

아사는 아사라 선지자의 말에 힘을 잃어 용기를 입는데요.

이와 같이 신앙에는 단호한 결단이 필요합니다. 

서로 그 대상이 사랑하는 가족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날 수밖에는 없는 것이죠.

 

예수님은 마태복음 10장 37, 38절에서

마태복음 10
37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말씀하십니다.

냉정한 말씀 같지만 하나님을 따르는 길에는 가족이라 할지라도 타협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죠.

아사는 비록 산당은 없애지 못했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정직히 행하였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11절 

11 아사가 그의 조상 다윗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유다의 왕들의 평가의 기준은 다윗입니다.

비록 그 행위가 온전치 못하여도 하나님 앞에 정직히 나아가는 자를 하나님은 기뻐해 주시고 축복해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혈육의 정에 매이지 않고 신앙적으로 단호히 대처할 일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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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의 전쟁은 계속됩니다. 

그런데 이 전쟁은 북 이스라엘 왕 바사가 여로보암과 그의 아들 나답을 죽이고 왕위에 오르면서 자신의 정권을 강화하기 위한 전쟁이었습니다.

 

바아사는 예루살렘에서 약 6km 떨어진 북쪽 지역인 라마의 성을 건축하는데,

그 이유는 북이스라엘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올라가 예배드리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고,

자유로이 왕래하는 것을 금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혹여라도 북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예배를 드리다가 자신의 정권에 반기를 들거나 정통성을 걸고 반항한다면 자신의 위치가 위태로울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었죠.

이처럼 자기 스스로 정권을 쟁취한 자에게는 마음의 평안이 있을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아사는 전쟁이 길어지자 하나님의 성전과 자신의 왕궁 창고에 있는 금과 은을 아람의 벤하닷에 갖다 바치며 협조를 요청합니다. 19절인데요. 

19 나와 당신 사이에 약조가 있고 내 아버지와 당신의 아버지 사이에도 있었느니라 내가 당신에게 은금 예물을 보냈으니 와서 이스라엘의 왕 바아사와 세운 약조를 깨뜨려서 그가 나를 떠나게 하라 하매

 

이에 베하닷은 아사의 요청을 따라서 군대를 이끌고 가서는 이스라엘 성읍을 치고, 결국 바하사는 라마를 건축하는 일을 중단하고 라마에 있는 건축 자재들을 가져와서 베냐민의 마을을 건축하는 일에 사용하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외교적인 성공과 전쟁의 승리 같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악한 일이었습니다.

 

아사가 나라의 위기 상황에서 하나님께 기도하였다는 언급이 단 한 줄도 나오고 있지 않았고, 

오히려 하나님의 성전에 있는 기물들을 아람의 왕에게 다 갖다 바치는 굴욕 외교를 감행합니다.

그로 인해 얻은 결과가 눈에 보이는 성공이었다 해도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셨던 것이죠. 23절을 보시면  그는 늙그막에 발에 병이 들었더라라고 말씀하고 있는데요.

23 아사의 남은 사적과 모든 권세와 그가 행한 모든 일과 성읍을 건축한 일이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그는 늘그막에 발에 병이 들었더라

 

이 구절이 아사의 행적에 추가된 것은 아사의 발병이 하나님의 진노였음을 암시해 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산은 조상 다윗이 행한 것처럼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동한 왕이었습니다.

아사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는 A+는 아니었어도 A- 정도는 되는 점수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위기의 순간에 보였던 그의 반응은 안타까움이 남아있죠.

유종의 미라는 말이 있듯이 아무리 처음이 좋았어도 그 마지막이 좋지 않으면 그 결말은 서글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인생의 위기가 닥쳐올 때 사람이 아닌 하나님을 찾고 의지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처음보다는 나중에 더 좋은 등장보다는 퇴장이 더 아름다운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나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나의 어떤 부분을 긍정적으로 보실까요?

 

하나님 아버지 
우리들의 주어진 평생의 과제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믿음의 길을 변치 않고 꿋꿋이 걸어가는 것임을 믿습니다.
그러나 비록 연약하여 실족한다 할지라도 
다시 일으켜 주시고 동행하여 주시며 우리로 믿음의 여정을 완성케 하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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