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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악에 거하는 옛사람, 거룩함에 거하는 새사람(에베소서 4:17~24)(20231024)

2023.10.24. | 생명의 삶  | 윤광서 목사

 

죄악에 거하는 옛사람, 거룩함에 거하는 새사람

 

샬롬 

영화 교회를 섬기는 윤광섭 목사입니다. 

오늘도 주님의 평강으로 풍성한 복된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상 사람들은 교회 공동체로 모인 우리들을 단지 사람들의 모임 중 하나로 여길 것이겠습니다마는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교회는 사람들의 인식을 넘어서는 영광과 신비를 품은 채 존재합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하나님께 속한 것이고,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교회 공동체는 하나님의 영광을 복음의 신비와 함께 세상에 나타내야 할 증인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이 놀라운 사명을 위해 그리스도의 피로 세워졌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를 세워주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의 교회가 이러한 사명에 끊임없이 관심을 두고 모여 있는지,

아니면 주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그 기대를 까맣게 저버리고 인간적인 사귐이나 즐거움에 더 몰두하고 있는지 깊이 성찰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나의 생각은 어떤지, 우리 공동체의 관심은 어디에 있는지, 에베소서 4장 17절로 24절 말씀을 통해서 함께 묵상해 보시겠습니다.

 

 

죄악에 거하는 옛사람, 거룩함에 거하는 새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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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언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
18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19 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20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21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23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교회 공동체와 성도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당연히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랑하라 하는 명령의 참 뜻입니다.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스스로 낮아지심으로 우리를 죄 가운데에서 구원하셨습니다.

그 예수님의 피 흘리신 사랑 위에 교회를 세워주신 것이지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섬김과 희생을 딛고 교회가 서 있는 것이오, 우리가 은혜를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은혜에 합당하게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17절 말씀을 보면 허망한 것으로 마음을 채운 이방인처럼 행하지 말라고 엄히 권면하십니다. 

17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언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

교회 공동체와 성도들에게 이 같은 권면을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허망한 것으로 마음을 채운 이방인들과 같은 행동을 하는 성도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허망하다'라는 말은 보람이 없고 허무하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즉 헛된 것, 아무 의미 없는 것, 이런 것들을 믿고 바라며 살아가는 모습을 말하는 거죠. 

다시 말하자면 생명이 되지 못할 것을 쫓고 썩어질 것에 집착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에베소 교인들도 이전에는 하나님을 모르던 이방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아닙니까? 

그런데 그들이 믿지 않는 이방인들처럼 살아간다면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새로운 신분과 특권을 포기하는 것과 다름이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권면을 하면서 바울 사도는 이방인들의 중요한 세 가지 특징을 설명을 합니다.

첫째는 영적인 무지입니다. 18절, 상반절을 보면 

18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그들이 어두워진 총명과 그로 인한 무지함을 분명히 지적을 합니다.

지혜와 총명은 우리 주님을 경외하는 자들에게만 주어지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방인들에게서 볼 수 있는 두 번째 특징은 바로 영적인 죽음입니다. 

마음이 굳어져서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으니 당연한 결과라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특징은 도덕적인 타락과 방탕입니다. 

19절 말씀에서 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었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19 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감각을 잃어버렸다'

특별히 하나님께 대하여 영적 감각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사람, 인생을 포기한 자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죠.

인간이 길을 포기한 것입니다.

이렇듯 이방인들은 지각이 어두워져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구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일러주어도 깨닫지를 못합니다. 

또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탓에 하나님보다 자기 자신이 더 대단하다고 여기고, 그래서 스스로 지혜가 있다고 교만 속으로 빠져들어갑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헛되고 무의미한 지경으로 추락하는지조차 알지 못합니다. 

감각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전도서의 첫 구절을 다들 기억하실 것입니다. 

전도서 1
1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2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이 말은 누구의 고백입니까?

아무도 흉내 낼 수 없을 영광과 부와 지혜를 누린 솔로몬 왕이 한 말이 아닙니까? 

 

그뿐 아닙니다. 

전도서 12장에서는 

전도서 12:1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너는 청년회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는 인생이 어떤 결과를 얻게 될 런지를 분명히 일러주시는 것이죠.

 

우리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던 감각을 잃은 채 살던 인생이었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예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의 죄를 씻어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 앞에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와 사랑만 있을 뿐입니다. 

그 길로 인도하시는 주님을 찬송하며, 기쁨으로 순종하는 가운데 걸어가는 믿음의 날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그리스도가  없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특징은 어떤 것들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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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이제 세 사람에 대하여 설명하려고 하면서, 에베소 교인들에게 말하기를, 

20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않았다'라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바울의 이러한 표현은 그들이 믿지 않는 이방인들과 전혀 다른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말이면서,

동시에 이방인들처럼 살아서는 안 된다고 강하게 경고하는 메시지입니다. 

 

바울은 21절에서 에베소교회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듣고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던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다시 한번 그 가르침을 일깨워 줍니다. 

21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바울이 그들에게 제시한 것은 우선 옛사람을 벗어버리라는 것입니다. 

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여기서 벗어버려야 할 옛 사람은 우리의 일부가 아닌 전인격적, 즉 모두를 의미하는 것이오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새 사람을 잃기 전에 우리의 전 존재를 벗어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마치 새 옷을 입기 위해서는 헌 옷을 벗어야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서 고백하기를, 

갈라디아서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 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에는 죄와 죽음이 지배하는 삶의 방식을 따라 살아가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구원을 받았다면,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세 사람을 잊게 되는 것입니다. 

 

옛사람을 벗는다는 것은 단지 이전의 악한 행동이나, 혹 감추고 싶은 과거의 행적 몇 가지를 고치는 차원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옛사람의 모습을 벗어버리지 않으면, 새 옷을 입은 자로 온전히 새로워질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고치거나 깨끗하게 새롭게 수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성도가 입어야 할 옷을 우리 주님이 그래서 주셨습니다.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신 옷, 바로 그것입니다. 

사람은 어떤 옷을 입느냐에 따라 자기의 행동 양식과 인식의 변화를 체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성도의 거룩한 옷을 입으라 하신 의미를 우리가 바로 깨닫지 못하면, 우리에게 어떤 놀라운 은혜와 축복이 주어졌는지조차 망각하게 됩니다. 

 

바울은 로마서 13장 14절에서도 오늘 본문과 비슷한 의미로

로마서 13: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으라' 이렇게 권면하기도 하지 않았습니까?

 

즉, 예수 안에 있는 진리를 따라 행하는 자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을 자라는 뜻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와 연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도 그리스도로 옷 입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더 이상 정욕을 위해 살지 않고, 이제는 그리스도를 따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새 사람을 입으라' 하신 그 명령 앞에서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일까요?

'새 사람을 입으라' 하셨다고 해서, 그 세 사람을 입기 위해 우리가 힘써야 할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옛사람을 벗기 위해 이전에 행했던 나쁜 습관을 버려야 한다는 뜻도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의 결단으로 깨끗해지는 것이 아님을 이제는 알지 않습니까? 

오직 주의 보혈이 우리를 정케 하실 뿐이오.

십자가의 은혜가 우리를 온전케 할 뿐입니다.

새 사람을 입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용서의 은혜와 구원의 은총을 입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용서의 은혜를 입은 그가 바로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새롭게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인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가 새 사람을 입었다면 자연히, 우리의 관심은 우리를 새롭게 지으신 분으로 향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분명히 알게 될 것입니다. 

그 사랑을 아는 자야말로 그 은혜에 합당한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고, 마땅한 사랑으로 이웃을 섬기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교회 공동체는 새 사람을 입은 자들의 모임이 아닙니까?

그러니 새 사람을 입은 자들이 모인 곳에서 보일 것들은 오직 사랑이요, 십자가의 은혜만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썩어질 인생들을 서로 자랑하고 드러내느라 분주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새롭게 하신 그리스도의 의와 무한한 사랑이 증거 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앞에 허락된 길이오, 그 길로 인도하심을 따라 걸어가야 함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바울이 새사람을 입으라고 교훈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 
우리가 이제는 옛 사람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 사람을 입었음을 기억하고 
새 사람의 합당한 삶을 살아가도록 성령이여 저희를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말씀을 통하여 더욱 하나님을 알아가는 지혜를 얻게 하시고, 
주님 주시는 지혜로 죄를 분별하며 구별된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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