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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좋은 소망이신 예수 그리스도(히브리서 7:11~22)(20230912)

2023.09.12.ㅣ생명의 삶 | 조호영 목사

 

더 좋은 소망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녕하세요.

온누리 교회 조호영 목사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종종 어떤 한 사람을 믿음의 롤 모델처럼 그렇게 삼고, 그 사람을 좋아하고, 또 그 믿음을 담고 싶어 합니다.

설교를 잘해서 내가 은혜받은 어떤 목사님 또 겸손하게 이웃을 섬기면서 가진 것을 나누며 살아가는 어느 장로님, 또 말씀도 많이 알고 기도도 잘해서 정말 배우고 싶고 닮고 싶은 어떤 권사님, 이런 분들이 우리의 믿음의 롤 모델이 될 수가 있겠는데요.

그러나 어느 날 내가 정말 믿고 따랐던 그 신앙의 멘토, 믿음의 롤 모델의 그 연약한 모습, 실망스러운 그 뒷모습을 보게 될 때, 혹은 그의 이중적인 삶의 모습을 발견할 때, 우리는 정말 실망하고 좌절하게 됩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믿음이 흔들려서 방황하기도 하고요. 

심지어는 이런 일로 교회를 떠나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참으로 바라보고 믿고 따라야 할 진정한 롤 모델은 바로 예수님이시라는 것을 

사람들은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고 격려하고 축복할 그런 대상이지만은 

진정한 믿음의 롤 모델은 완전하고, 실수가 없으시고, 우리를 절대로 실망시키지 않으시는 예수님 한 분뿐이라는 것이죠.

 

오늘 말씀 속에서도 참 소망되시고 완전하신 분 우리 영원한 믿음의 롤 모델 예수님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히브리서 7장 11절에서 22절 말씀입니다.

 

더 좋은 소망이신 예수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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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백성이 그 아래에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따르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냐
12 제사 직분이 바꾸어졌은즉 율법도 반드시 바꾸어지리니
13 이것은 한 사람도 제단 일을 받들지 않는 다른 지파에 속한 자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14 우리 주께서는 유다로부터 나신 것이 분명하도다 이 지파에는 모세가 제사장들에 관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없고
15 멜기세덱과 같은 별다른 한 제사장이 일어난 것을 보니 더욱 분명하도다

16 그는 육신에 속한 한 계명의 법을 따르지 아니하고 오직 불멸의 생명의 능력을 따라 되었으니
17 증언하기를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였도다
18 전에 있던 계명은 연약하고 무익하므로 폐하고
19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하게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20 또 예수께서 제사장이 되신 것은 맹세 없이 된 것이 아니니

21 (그들은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었으되 오직 예수는 자기에게 말씀하신 이로 말미암아 맹세로 되신 것이라 주께서 맹세하시고 뉘우치지 아니하시리니 네가 영원히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22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

 

성경 속에 등장하는 제사장들은 레위 지파 그중에서도 대제사장은 아론의 그 직계 후손 가운데 세워지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 레위지파도 아론의 후손도 아닌 다른 한 사람이 제사장으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바로 어제 큐티 말씀에도 계속 언급되었던 멜기세덱인데요.
하나님은 왜 레위지파 출신의 제사장이 아닌 다른 새로운 제사장을 세우셨을까? 

히브리서 기자는 이 질문에 이렇게 답하고 있습니다. 7장 11절입니다. 

11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백성이 그 아래에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따르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냐

제사장 직분은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에서 중재 역할을 담당했던 사람입니다.

백성들이 거룩한 삶을 살도록 힘썼고, 또한 백성들이 죄를 지을 때 하나님 앞에서 나아가서 자신이 그를 대신해 속죄 제사를 드리면서 죄 사함을 강구했던 사람이 바로 제사장입니다. 

그러나 그 제사장도 온전하지 못해서, 매년 자신의 죄를 가지고, 또 하나님 앞에 나아가 용서를 간구해야만 했던 동일한 죄인이라는 것이죠.

 

성경에 보면, 수많은 타락한 제사장들이 자신의 죄로 인하여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는 모습들도 보게 됩니다.

한마디로 아론의 반차에서 세워진 제사장들은 자신뿐 아니라 백성들을 거룩하게 할 수 없고,

또 죄사함을 사할 수 있는 그런 능력이 없었습니다.

또한 그동안에 그들에 의해 들여졌던 구약의 제사 제도, 또 율법도 완전하지 않아서, 

오히려 율법을 통해서 사람들의 죄를 들춰내는 역할만 하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한계를 넘어서 완전한 제사장으로 완전한 제사를 드릴 수 있는 새로운 한 제사장을 세워야 할 필요성을 말하고 있는 것이죠. 12절에서 15절까지입니다. 

12 제사 직분이 바꾸어졌은즉 율법도 반드시 바꾸어지리니
13 이것은 한 사람도 제단 일을 받들지 않는 다른 지파에 속한 자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14 우리 주께서는 유다로부터 나신 것이 분명하도다 이 지파에는 모세가 제사장들에 관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없고
15 멜기세덱과 같은 별다른 한 제사장이 일어난 것을 보니 더욱 분명하도다

아론의 반차가 아닌 다른 반차를 따른 그 한 제사장, 바로 멜기세덱과 또 유다 지파의 반차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새롭게 세워진 완전한 제사장으로 소개합니다.

그동안 육체에 속한 규례, 곧 율법을 따라 세워진 제사장들과 완전히 차별될 수 있는 것은, 

16절에 보니까 썩지 않는 생명의 힘을 따라 된 것이다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데요.

한번 7장 16절 읽어볼게요. 

16 그는 육신에 속한 한 계명의 법을 따르지 아니하고 오직 불멸의 생명의 능력을 따라 되었으니

초대교회의 유대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옛 율법과 제사, 규율에 여전히 메워서 살다가

큰 환란과 어려움이 닥치자 자꾸 율법과 복음 사이에서 갈등하고 또 배교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신약 서신서와 달리 히브리서는 아직도 그들이 붙들고 있는 이 과거의 관습을 버리라고 계속 반복해서 도전합니다. 

또 옛 믿음의 선진들, 모세, 아브라함, 여호수아, 또 아론의 반차로 세워진 제사장들과 예수님을 계속 비교하면서 더 좋은 언약의 보증되시는 예수님의 우월성과 영원토록 완전하심을 하나하나 자세히 거론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새로운 소망이신 예수님을 붙잡도록 매번 선포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오랜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참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놓치고 다른 부수적인 것을 잡고 헤매고 갈등할 때도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향한 첫사랑을 놓치고 자꾸 습관적으로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면 오랜 신앙생활인으로 우리의 삶이 바뀌게 됩니다. 

또 오래된 교회도 세월과 함께 나름 규율, 교회 관습, 예습, 예식 이런 것들이 생기게 됩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참 복음을 놓치게 되는 경우를 봅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생각하실까? 이거보다도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우리는 그동안 그렇게 하지 않았는데, 그동안 전통과 자신들이 경험한 것, 사람의 의견과 눈에 더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또 성도들도 중요하지 않는 것을 찾고 본질이 아닌 부수적인 것을 갖고 서로 싸우고 갈등하는 것도 보게 됩니다.

오늘도 나는 영원한 대제사장 예수님과 함께 살고 있는지, 아니면 짝퉁인 그 옛 관습,

불완전한 그 율법에 매여서 갈등하며 살고 있는지,

오늘 말씀 속에서 나의 하루를 점검하는 은혜가 있기를 간구합니다.

 

불완전한 제사를 폐하고자 유다 지파에서 나신 새 제사장은 누구를 가리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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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론의 반차로 율법의 요구에 따라 세워진 제사장들은 그 직무를 잘 수행할 만큼 도덕적으로 합당한 사람들이라는 보장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스스로 율법도 어겼고, 도덕적으로 합당치 못한 제사장들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또 모든 제사장들은 죽음으로 그 지임이 맞춰졌지요.

그러나 메기 세대의 반차를 따라 세워지신 대제사장 예수님은 인격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완전하신 분이시오 죄가 없는 자신이 친히 속죄 제물이 되어서 십자가에서 구속 제사를 드림으로 온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신 구세주가 되셨습니다.

또한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 영원히 사시는 분이시기에, 그의 제사장의 직임도 영원토록 지속된다는 것이죠. 

오늘 히브리서 17장 17절에서 19절 읽어보겠습니다. 

17 증언하기를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였도다
18 전에 있던 계명은 연약하고 무익하므로 폐하고
19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하게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아론의 반차로 세워진 제사장직은 약하고, 무익하고, 폐기된 육신적인 법에 근거했지만,

멜기세덱의 반차로 세워지신 예수님의 제사장직은 불멸의 생명의 능력에 따라서 완성된 것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 천상적인 대제사장이십니다. 

 

여기 눈에 들어오는 말씀이 있습니다. 바로 19절 말씀인데요. 

19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하게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더 좋은 소망 중에 하나는 예수님이 지금도 천상에서 우리를 위해 중보 하시는 중보자의 역할을 담당하고 계시는 분이시라는 것이죠.

히브리서 7장 25절에 보니까 

히브리서 7: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찬양 중에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아무도 나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지 않아 내가 우리 가정에서 처음 예수님을 믿거든 하면서 속상해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대제사장 되시는 천상의 중보자 예수님이 계심을 잊지 말길 바랍니다. 

 

두 번째로 더 좋은 소망은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

구약의 제사장은 백성들을 대신해 홀로 거룩한 지성소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대제사장 되신 예수님은 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그 지성소의 휘장을 가르셨고,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담대히 하나님과 만나는 장소, 그 지성서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그런 은혜가 주어졌습니다.

 

사람들은 종종

'난 하나님은 믿겠는데, 예수님은 잘 모르겠다.'

'하나님께 기도하는데 왜 꼭 예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하는가?' 묻곤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오직 원외의 길이라고 그 길을 통과하지 않고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없다 말하고 있습니다.

너무 잘 아는 요한복음 14장 6절에 보면 

요한복음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그 예수님께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제사장직은 하나님의 맹세에 의해 이루어진 것임을 성경은 강조하고 있습니다. 21절 볼까요? 

21 (그들은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었으되 오직 예수는 자기에게 말씀하신 이로 말미암아 맹세로 되신 것이라 주께서 맹세하시고 뉘우치지 아니하시리니 네가 영원히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히브리서 저자는 시편 104편의 그 말씀을 인용하면서 예수님의 대제사장 되심을 그 하나님의 맹세로 이루어졌음을 강조합니다.

그랬기에 절대 변할 수 없고 변함이 없는 하나님의 맹세이기에 예수님은 우리에게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시어 소망이 되십니다. 

오늘도 그 소망되신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언약의 보증되신 그분을 신뢰하는 하루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더 좋은 소망이신 예수님 안에서 내가 품게 된 소망은 무엇인가요?

 

대제사장 예수님께서 우리의 진정한 더 좋은 소망 되심을 고백합니다. 
주님 앞에 나아가 늘 기쁨으로 감사하며, 예배하며 하나님께 더 나아가는 저희들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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