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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각오한 사명의 길(사도행전 21:1~14)(20230812)

2023.08.12.ㅣ생명의 삶 | 박종길 목사

 

죽음을 각오한 사명의 길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성도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주님의 뜻입니다. 

내 뜻이 아니라 주님의 뜻이 중요하고,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내 의지와 내 생각과 내 뜻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과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 특별히 주의를 준비하며 우리의 믿음이 주님의 뜻을 따라가는 귀한 삶이 되고, 또 주님의 뜻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마음 가운데 기쁨을 나누는 그런 우리의 믿음의 삶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 나눌 말씀은 사도행전 21장 1절에서 14절의 말씀입니다.

 

 

죽음을 각오한 사명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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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가 그들을 작별하고 배를 타고 바로 고스로 가서 이튿날 로도에 이르러 거기서부터 바다라로 가서
2 베니게로 건너가는 배를 만나서 타고 가다가
3 구브로를 바라보고 이를 왼편에 두고 수리아로 항해하여 두로에서 상륙하니 거기서 배의 짐을 풀려 함이러라
4 제자들을 찾아 거기서 이레를 머물더니 그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 하더라
5 이 여러 날을 지낸 후 우리가 떠나갈새 그들이 다 그 처자와 함께 성문 밖까지 전송하거늘 우리가 바닷가에서 무릎을 꿇어 기도하고

6 서로 작별한 후 우리는 배에 오르고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니라
7 두로를 떠나 항해를 다 마치고 돌레마이에 이르러 형제들에게 안부를 묻고 그들과 함께 하루를 있다가
8 이튿날 떠나 가이사랴에 이르러 일곱 집사 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가서 머무르니라
9 그에게 딸 넷이 있으니 처녀로 예언하는 자라
10 여러 날 머물러 있더니 아가보라 하는 한 선지자가 유대로부터 내려와

11 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 주리라 하거늘
12 우리가 그 말을 듣고 그 곳 사람들과 더불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하니
13 바울이 대답하되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14 그가 권함을 받지 아니하므로 우리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쳤노라

 

사도 바울은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가기를 원했지만, 그것이 어렵게 되었을 때

적어도 오순절 때는 가고자 하는 마음으로 예루살렘을 향해 계속 나아갑니다. 계속 이동하죠. 

그러면서도 바울은 그가 가는 곳곳마다 예수님을 믿는 제자들과의 아름다운 만남과 교재를 이어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특별히 두로에서는 한 제자들과 일주일 정도 교제하고, 또 둘레마이라고 하는 곳에서는 하루를 머물고,

그리고 또 계속해서 가이사랴로 가서 결국 예루살렘을 향한 그의 이 선교 여정의 일정을 이어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특별히 사도 바울이 그 가정 가운데서 믿음의 고백을 또 축복과 또 은혜를 나누는 그런 장면들이 있습니다. 

5절, 6절 말씀인데요. 

5 이 여러 날을 지낸 후 우리가 떠나갈새 그들이 다 그 처자와 함께 성문 밖까지 전송하거늘 우리가 바닷가에서 무릎을 꿇어 기도하고
6 서로 작별한 후 우리는 배에 오르고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니라

참 놀라운 그런 내용입니다.

아름다운 장면이죠. 두어에서도 그렇고, 또 나중에 이제 가이사라에서도 그렇고 바울은 가는 곳마다 믿음의 형제들을 찾고 또 함께 만나면 은혜를 나누고, 그리고 또 서로 헤어질 때는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그런 모습을 우리가 보게 됩니다. 

바울이 여기에 보면 귀한 만남을 이어가면서 또 특별히 영적인 그런 은혜를 나누기도 하죠. 

물론 많은 사람들이 바울을 성령의 음성을 통해 그의 예루살렘행을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중단했으면 좋겠다'라고 하지만 또 그 과정 가운데 또 바울과 나누는 영적인 그런 대화들 만남들 또 서로를 위해서 사랑하는 마음으로 눈물로 기도해 주고 또 함께하는 그런 것이 또 얼마나 귀한지 모르겠습니다.

사랑과 기도와 또 성령의 인도함을 구하는 이런 만남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이런 모임이 있는지요? 

또 이런 친구가 있는지요? 

이런 성도 간에 그런 교재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 공동체를 통해서 또 교회 안에서도 우리가 예배만 드리는 것이 아니라,

또 교구라든지 또 구역이라든지 아니면 순이라든지 또 다락방 

어떤 여러 모양의 그런 공동체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주 오래전 일인데요. 

제가 중국에 선교사로 있었을 때, 지금 돌아가신 하용조 목사님께서 한번 중국에 오시게 돼서 상해해서 중국에 흩어졌던 선교사님들이 모임을 가졌던 적이 있었습니다.

함께 모여서 뭐 특별한 것을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돌아가면서 자기의 사역을 이야기도 하고, 또 어려웠던 일들 힘들었던 일들 또 얘기도 하고 그러면 또 함께 그 이야기를 다 듣고 또 울기도 하고 또 함께 안수하여 기도도 하는 그런 한 3박 4일 정도의 일정이었던 것 같은데요.

그 모임이 참 잊을 수가 없고 또 너무 좋았던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귀한 모임들을 허락해 주시고 

또 이런 믿음의 공동체와 믿음의 교재를 통해서 우리의 신앙이 더 자라갈 수 있죠.

 

사도 바울이 가는 곳마다 믿음의 제자들과 또 믿음의 성도들과 함께 아름다운 교재를 하고 

또 서로의 비전을 나누고 또 성령의 음성을 나누고 또 함께 기도해 주면서 서로 울기도 하고 또 서로 포옹하며 격려하는 이 아름다운 모습이 우리의 교회 가운데 또 우리의 가정 가운데 그리고 또 우리의 삶의 자리 가운데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 모임을 통해 은혜가 충만하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주님의 일을 위해 나와 함께 기도하며 서로 격려하는 동역자는 누구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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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바울의 여정은 가이사라라고 하는 곳에 도착하게 됐습니다. 

그곳에서 바울은 빌립이라는 분의 가정에 머물게 되는데, 이 빌립은 우리가 아는 예루살렘교회 일곱 집사님 가운데 한 분이신 분이죠.

스테반 집사님의 순교 이후에 사마리아에 가서 놀라운 부흥의 역사를 이루었던 그리고 또 성령의 인도함을 따라서 이도피아의 내시에게 또 복음을 전했던 분인데

그리고 그는 아마 가이사랴에 정착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하나님의 증인으로 또 하나님의 사역자로 귀한 삶을 살아가고 

또 그의 딸 4명도 또 예언하는 또 처녀로 사역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빌립 집사님뿐 아니라 그의 가족이 또 온전한 사역자가 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되는데,

 

여기에 이제 바울이 머무는데 아주 귀한 선지자 한 분이 오게 됩니다.

아가버라고 하는 분인데, 그분이 이제 유대로부터 이제 이 가이사랴에 와서 빌립 집사님 댁에 함께 머물게 되는데 

이 바울의 허리띠를 가져다가 이 띠의 주인이 성령이 이제 말씀하시는데 이 죄인을 결박해서 이방인의 손에 넘겨준다라는 예언을 합니다. 

이 아가보라는 분이 이 예언의 말씀은 참 그때 모인 모든 분들에게 충격을 준 것은 

이분이 성령을 따라 예언을 하는 그 사역에 열매들이 있고,

또 대단한 분이시죠. 사도행전 11장 28절에 보면 로마의 아주 큰 흉년이 있을 거라는 예언을 했고 또 그대로 이루어진 것을 보게 됩니다. 

두로에서도 그랬고 또 가이사라에서도 그렇고 또 이 아가버라고 하는 분을 통해서도 계속해서 성령이 이야기합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에 가면 결박을 당하고 환란을 당한다는 것을 그래서 가지 말라는 그런 이야기를 계속하게 됩니다. 

그러면 바울이 예루살렘에 가는게 성령의 음성을 거스리는 건가? 성령의 뜻을 거스리는 건가?

그거는 아니죠. 

바울이 믿음의 고백을 할 때도 밀레도에서도 성령이 말씀했죠.

바울에게도 예루살렘에 가면 큰 환란과 결박이 있을 거라는 것을 말했죠. 

성령님이 가지 말라는 말은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얘기하는 것은 어떤 점에서 보면 바울을 준비시키는 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바울에게 그런 위험이 있고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준비시키는 것을 볼 수도 있고요. 

또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상황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는 것이 이렇게 서로 틀리는 게 아니라 바울의 성령님과 이 아가보의 성령님이 틀리는 그런 거가 아니라 한 성령님이 같은 말씀을 주시는데, 결국은 우리가 선택하고 그리고 우리가 결단해야 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하죠. 

'나를 괴롭히지 말고, 내가 예루살렘을 향해서 갈 것이고 죽을 것도 각오한다고.'

그랬을 때 오늘 말씀 14절 말씀입니다. 

14 그가 권함을 받지 아니하므로 우리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쳤노라

참 중요한 말씀입니다.

바울이 '왜 울어서 내 마음을 힘들게 하는가?  나는 죽을 것도 각오되어 있다'라고 말할 때

그때 그 모인 모든 분들이 '주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한다'라고 더 이상 막지 않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의 뜻이 중요한 것입니다. 

주님의 뜻, 사도 바울에게 주신 주님의 사명과 또 주님의 뜻, 우리 모두에게 갖고 계시는 주님의 뜻이 중요합니다. 

저와 여러분 바울과 같이 또 이 자리에 함께했던 성도들과 같이 주님의 뜻에 순종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뜻을 바로 알고 그 뜻을 위해 우리가 목숨까지도 바치겠다는 사도바울과 같은 그런 믿음의 결단과 고백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오늘 하루가 되고 우리의 삶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나는 무엇을 따라 내 인생의 우선순위를 결정짓나요?

 

거룩하신 하나님,
주님의 뜻에 순종하고 주님의 뜻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의 믿음의 삶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어떤 박해와 어려움이 있어도 주의 뜻이면 가게 하시고 
주의 뜻이면 멈출 수 있는 그런 믿음과 순종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자녀와 가정과 일터를 축복하시며 환우들에게 위로와 치유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해외에 있는 한인들에게도 한인 교회들에게도 큰 은혜를 더해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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