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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렬한 진노의 원인, 지도자들의 죄악(예레미야애가 4:11~22)(20230615)

2023.06.15.ㅣ생명의 삶 | 노치형 목사

 

맹렬한 진노의 원인, 지도자들의 죄악

 

샬롬

오늘도 하나님 주신 생명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하루 보내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저는 온누리 교회를 섬기는 노치형 목사입니다.

우리가 눈으로 보이는 것을 바라보는 것, 그것은 우리 삶에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다면 그것은 어떤 것일까? 한번 깊이 생각해 보는 하루가 되길 소망합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는 믿고 있지만 그분도 또한 과거에 계셨던 분이며

지금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계시는 것을 알고 있을 뿐입니다. 

성령 하나님마저도 우리는 볼 수가 없습니다. 

바람처럼 또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그 성령 하나님, 느낄 수는 있으나 볼 수는 없는 그런 하나님을 우리는 믿고 따르고 있는 것이죠. 

그 하나님을 더 깊이 바라볼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하는 마음으로 오늘의 말씀을 함께 나누기 원합니다. 

오늘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예레미야애가 4장 11절에서 22절입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함께 듣겠습니다. 

 

 

맹렬한 진노의 원인, 지도자들의 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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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여호와께서 그의 분을 내시며 그의 맹렬한 진노를 쏟으심이여 시온에 불을 지르사 그 터를 사르셨도다
12 대적과 원수가 예루살렘 성문으로 들어갈 줄은 세상의 모든 왕들과 천하 모든 백성이 믿지 못하였었도다
13 그의 선지자들의 죄들과 제사장들의 죄악들 때문이니 그들이 성읍 안에서 의인들의 피를 흘렸도다
14 그들이 거리 거리에서 맹인 같이 방황함이여 그들의 옷들이 피에 더러워졌으므로 그들이 만질 수 없도다
15 사람들이 그들에게 외쳐 이르기를 저리 가라 부정하다, 저리 가라, 저리 가라, 만지지 말라 하였음이여 그들이 도망하여 방황할 때에 이방인들이 말하기를 그들이 다시는 여기서 살지 못하리라 하였도다

16 여호와께서 노하여 그들을 흩으시고 다시는 돌보지 아니하시리니 그들이 제사장들을 높이지 아니하였으며 장로들을 대접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17 우리가 헛되이 도움을 바라므로 우리의 눈이 상함이여 우리를 구원하지 못할 나라를 바라보고 바라보았도다
18 그들이 우리의 걸음을 엿보니 우리가 거리마다 다 다닐 수 없음이여 우리의 끝이 가깝고 우리의 날들이 다하였으며 우리의 종말이 이르렀도다
19 우리를 뒤쫓는 자들이 하늘의 독수리들보다 빠름이여 산 꼭대기까지도 뒤쫓으며 광야에서도 우리를 잡으려고 매복하였도다
20 우리의 콧김 곧 여호와께서 기름 부으신 자가 그들의 함정에 빠졌음이여 우리가 그를 가리키며 전에 이르기를 우리가 그의 그늘 아래에서 이방인들 중에 살겠다 하던 자로다

21 우스 땅에 사는 딸 에돔아 즐거워하며 기뻐하라 잔이 네게도 이를지니 네가 취하여 벌거벗으리라
22 딸 시온아 네 죄악의 형벌이 다하였으니 주께서 다시는 너로 사로잡혀 가지 아니하게 하시리로다 딸 에돔아 주께서 네 죄악을 벌하시며 네 허물을 드러내시리로다

 

예레미야는 지금 무너지고 있는 예루살렘 성 안에 있습니다.

그 무너지는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면서 그 심각한 하나님의 심판을 직접 체험하고 있는 것이죠. 

그것을 바라보면서 슬픔의 노래를 부르며 이 현장을 오늘 우리에게까지 전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는 계속 이어져서 오늘 본문으로 이어집니다. 11절 말씀입니다.

11 여호와께서 그의 분을 내시며 그의 맹렬한 진노를 쏟으심이여 시온에 불을 지르사 그 터를 사르셨도다

하나님께서 진노를 보여주시고 계십니다.

그 예루살렘 성을 태워버리시는 것이죠. 

그런데 그 태우심의 정도가 그 터를 사르셨다는 것까지 표현되고 있습니다.

바로 그 기초까지도 다 불태워 버리시겠다는 그 말씀 그대로 이루고 계신다라는 것이죠. 

그 모든 것들을 뽑아내시고 무너뜨리시겠다는 그런 하나님의 의지를 그대로 보여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예레미아는 이러한 하나님의 모습을 보며 큰 두려움에 빠졌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행하고 계시는구나.'

우리의 인생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그렇게 너무나 철저하게 뽑아버리시는 장면들을 볼 때가 있습니다. 

우리 속에 있는 죄악들을 뽑아내시기 위해 우리를 힘들고 어려운 상황으로 몰고 가실 때도 있습니다. 

정말 정결한 인생으로 회복할 수 있도록 아주 밑바닥까지, 가장 아래까지 내려보내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는 그런 하나님을 만날 때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믿음의 삶을 선택하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은 그런 하나님을 기억하고 바라보는 것이죠. 

그런 믿음의 삶이 우리에게 있지 않다면 우리는 눈 먼 사람들처럼 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보이는 것만 본다고 해서 보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예레미아는 예루살렘 성이 이렇게 된 것,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된 것은 바로 지도자들의 죄악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12절부터의 말씀입니다. 

12 대적과 원수가 예루살렘 성문으로 들어갈 줄은 세상의 모든 왕들과 천하 모든 백성이 믿지 못하였었도다
13 그의 선지자들의 죄들과 제사장들의 죄악들 때문이니 그들이 성읍 안에서 의인들의 피를 흘렸도다
14 그들이 거리 거리에서 맹인 같이 방황함이여 그들의 옷들이 피에 더러워졌으므로 그들이 만질 수 없도다
15 사람들이 그들에게 외쳐 이르기를 저리 가라 부정하다, 저리 가라, 저리 가라, 만지지 말라 하였음이여 그들이 도망하여 방황할 때에 이방인들이 말하기를 그들이 다시는 여기서 살지 못하리라 하였도다

예레미아는 지금 이스라엘 백성의 그 성직자들, 제사장들, 모든 리더들이 눈이 멀었었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눈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눈을 바라보면서 하나님과 함께하는 그 믿음의 눈을 사용하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그 눈먼 사람이 눈먼 사람을 인도하는 그러한 일들을 우리가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5장 14절에서 맹인이 되어 맹인을 인도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계십니다. 

마태복음 15:14
그냥 두라 그들은 맹인이 되어 맹인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하시니

또 마태복음 23장 16절에서는 눈 먼 인도자여라고 탄식하며 선포하십니다.

마태복음 23:16
화 있을진저 눈 먼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마태복음 23장 26절에는 눈먼 바리새인이요라고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마태복음 23:26
눈 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그것을 기억하면서 우리는 이 시대에 리더가 된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는 믿음의 눈을 뜨게 되길 소망합니다. 그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하루 되길 소망합니다.

 

예레미야는 시온의 멸망이 누구의 죄악 때문이라고 고발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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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아의 고백을 통해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한 가지는 

믿음의 사람, 또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갈 때 

우리에게 믿음의 눈을 사용하는 훈련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지 않으면 우리는 어떠한 것을 체험하게 될까요? 

예레미아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17절입니다.

17 우리가 헛되이 도움을 바라므로 우리의 눈이 상함이여 우리를 구원하지 못할 나라를 바라보고 바라보았도다

허망한 것을 향해 우리의 눈을 사용하게 된다는 것이죠.

바른 것을 바라보는 그 믿음의 눈을 사용하지 않게 되면 우리는 헛된 것을 소망하게 되고, 

그것을 이루었다고 착각하게 되는 것이죠. 

그러면 그럴수록 우리는 눈이 상하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구원하지 못할 나라를 향해서 우리는 나아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이 시대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마태복음 6장에서 얘기하셨던 것처럼 하나님과 재물을 경하여 섬기지 못한다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우리는 이 경제라는 이름의 제물, 그 세상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 눈에 보이는 것임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죠. 

그것을 따라가다가 우리는 진정한 하나님, 보이시진 않지만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을 놓치게 된다라는 것이죠.

 

그러한 고백을 예레미아를 통해서 우리는 확인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18절의 말씀입니다. 

18 그들이 우리의 걸음을 엿보니 우리가 거리마다 다 다닐 수 없음이여 우리의 끝이 가깝고 우리의 날들이 다하였으며 우리의 종말이 이르렀도다
19 우리를 뒤쫓는 자들이 하늘의 독수리들보다 빠름이여 산 꼭대기까지도 뒤쫓으며 광야에서도 우리를 잡으려고 매복하였도다

하나님의 심판은 계속되어서 진실로 강한 나라, 다시 말하면 바벨론이 예루살렘 성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을 쫓아가 그들을 함께 포로로 끌고 갈 것이라는 것, 그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눈에는 바벨론이 강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들이 이 모든 나라들을 이끌어 나갈 거라고 착각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그 바벨론의 강함이 아닙니다. 

그것보다 더 크신 하나님, 우리의 살아가는 장소가 어딘지를 결정하는 그러한 모습이 아니라,

우리가 해야 할 일을 결정하는 어떤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명의 가장 근원 되는 호흡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우리를 맡겨드려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죠. 

20절의 말씀입니다.

20 우리의 콧김 곧 여호와께서 기름 부으신 자가 그들의 함정에 빠졌음이여 우리가 그를 가리키며 전에 이르기를 우리가 그의 그늘 아래에서 이방인들 중에 살겠다 하던 자로다
21 우스 땅에 사는 딸 에돔아 즐거워하며 기뻐하라 잔이 네게도 이를지니 네가 취하여 벌거벗으리라
22 딸 시온아 네 죄악의 형벌이 다하였으니 주께서 다시는 너로 사로잡혀 가지 아니하게 하시리로다 딸 에돔아 주께서 네 죄악을 벌하시며 네 허물을 드러내시리로다

아멘.

 

사실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은 바로 이 '콧김'이라는 그러한 단어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생명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죠. 

우리의 호흡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곤란한 처지에 놓여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죠. 

하지만 이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했던 그 수치의 상황, 포로 잡힘의 상황, 그 고초의 상황을 겪을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원합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이 나라 민족을 맡겨드리며 함께 기도하길 원합니다. 

특별히 오늘 하루 이 대한민국과 온 세상에 흩어져 있는 한민족 디오스 디아스포라의 온전한 치유 회복과 하나님께로 돌이킴을 위해 기도하는 하루가 되길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다급한 위기 상황에서 나는 하나님을 의지하나요, 힘 있는 사람을 의지하나요?

 

나라와 민족을 구원하시는 하나님 
이 시간 대한민국과 한민족 디아스포라의 치유와 회복과 구원을 간절히 소망하며 삼위일 하나님께 맡겨드립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들과 각계각층의 리더들이 하나님 앞에서 지은 모든 죄를 진실하게 회개하게 하소서.
폭력을 방관하여 서로의 피를 흘리게 했고, 
쾌락에 방치하여 헛된 것에 취해 벌거벗은 수치를 느끼게 했으며,
심판의 종말을 향해 달려가게 한 죄악들을 모두 회개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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