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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을 이기는 소망, 주님의 신실한 사랑(예레미야애가 3:19~39)(20230611)

2023.06.11.ㅣ생명의 삶 | 노치형 목사

 

고난을 이기는 소망, 주님의 신실한 사랑

 

할렐루야 

거룩한 주일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 예배하며 큰 승리의 기쁨을 누리길 소망합니다. 

저는 오늘이 교회를 섬기는 노치형 목사입니다. 

 

우리가 '소망한다'라는 이야기를 할 때 이 땅에 소망할 것들이 있는가 생각해 보면 그렇게 많지 않은 것을 알게 됩니다.

오히려 이 땅을 살면서 우리는 걱정과 근심, 염려를 더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소망의 근원이 하나님께 있다면 우리는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의 소망의 근원 되신 하나님께서 하늘에 계심을 기억하며 그 하늘을 바라보게 될 때 우리의 소망은 다시 새로워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늘 하루 소망의 하나님이 계시는 그 하늘을 바라보며 거룩한 예배자로 세워지길 소망합니다.

오늘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구약 성경 예레미야애가 3장 19절에서 39절입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함께 듣겠습니다. 

 

 

고난을 이기는 소망, 주님의 신실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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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
20 내 마음이 그것을 기억하고 내가 낙심이 되오나

21 이것을 내가 내 마음에 담아 두었더니 그것이 오히려 나의 소망이 되었사옴은
22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23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24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그를 바라리라 하도다
25 기다리는 자들에게나 구하는 영혼들에게 여호와는 선하시도다

26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27 사람은 젊었을 때에 멍에를 메는 것이 좋으니
28 혼자 앉아서 잠잠할 것은 주께서 그것을 그에게 메우셨음이라
29 그대의 입을 땅의 티끌에 댈지어다 혹시 소망이 있을지로다
30 자기를 치는 자에게 뺨을 돌려대어 치욕으로 배불릴지어다

31 이는 주께서 영원하도록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며
32 그가 비록 근심하게 하시나 그의 풍부한 인자하심에 따라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33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
34 세상에 있는 모든 갇힌 자들을 발로 밟는 것과
35 지존자의 얼굴 앞에서 사람의 재판을 굽게 하는 것과

36 사람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는 것은 다 주께서 기쁘게 보시는 것이 아니로다
37 주의 명령이 아니면 누가 이것을 능히 말하여 이루게 할 수 있으랴
38 화와 복이 지존자의 입으로부터 나오지 아니하느냐
39 살아 있는 사람은 자기 죄들 때문에 벌을 받나니 어찌 원망하랴

 

저희가 묵상하는 예레미야 애가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슬픔의 노래입니다.

예레미야가 예루살렘 성이 무너지는 그 이야기를 들었을 뿐 아니라, 그 무너지는 그 현장에 있으며, 그 아픔을 체험하고 있는 것이고, 그것을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슬픔의 노래에는 절망이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절망은 다시 소망으로 바뀔 수 있는 절망일 것인지 아니면 소망은 아예 꿈도 꿀 수 없는 절망인 것인지 그것을 살펴볼 수 있게 됩니다.

현재 상황은 무조건 절망일 뿐일 것입니다. 

그 어려움에 대해서 예레미아는 이렇게 슬픔의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19절부터의 말씀입니다. 

19 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
20 내 마음이 그것을 기억하고 내가 낙심이 되오나
21 이것을 내가 내 마음에 담아 두었더니 그것이 오히려 나의 소망이 되었사옴은

쑥과 담즙 같은 고초와 재난 속에 있다고 얘기합니다.

이것은 단지 쓰다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아주 힘들고 괴롭다라는 것이고 견딜 수 없을 정도이다라는 것입니다. 

아주 쓴 것을 갑자기 먹게 되면 우리는 그것을 뱉게 되어 있죠.

그 정도로 맞지 않는 그 고난과 고통이 그 삶 속에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고난과 고통이 직접 다가오지 않을 때는 그것을 이길 수도 있겠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직접 그 고난과 고통을 겪게 되면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피할 수 없을까?라는 생각밖에는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죠.

쉽게 피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그것에 묶여버리게 되고, 우리는 소망을 잃어버리고 절망하며 낙심하게 됩니다. 

예레미야도 동일한 낙심을 경험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고난과 고초에 있어서 다가오는 그 절망과 낙심을 우리는 피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고난과 고초로 인한 낙심이 거기서 멈춰지지 않기를 우리는 간절히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 기도에 대한 간절한 한 가지 탈출구가 되는 단어가 오늘 본문에 나오는데, 그 단어가 바로 '소망'이라는 단어입니다.

이 소망이라는 단어를 예레미아가 얘기하며, 예레미아의 고백은 갑자기 찬양으로 바뀌어지게 됩니다.

22절부터의 말씀입니다. 

22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23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아멘

우리가 잘 아는 찬양곡이죠.

주인 자는 끝이 없고, 주의 자비는 무궁하며, 아침마다 새롭고 늘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큼이라. 성실하신 주님,

 

우리 귀한 하나님에 대해서, 그 성실함에 대해서 찬양하는 예레미아의 고백을 듣게 됩니다. 

우리는 소망이라는 단어 하나가 주는 힘을 발견하게 됩니다. 

거룩한 주일 하나님 앞에 예배하며 정말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소망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길 바랍니다. 

 

성경은 그 소망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시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소망을 붙들고 이 고난과 고초가 많은 이 현실을 이겨내야 하겠습니다. 

'소망'이라는 단어를 잊어버리지 마십시오. 

그것을 꼭 부르고 또 외쳐서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로 함께 나아가길 소망합니다.

 

절망 가운데 있던 예레미야가 소망을 발견한 근거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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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난과 고초 속에 있는 예레미야가 이 절망 중에, 낙심 중에 소망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레미야에 대해서 생각할 때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구절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레미야 1장 10절의 말씀입니다. 

예레미야 1:10
보라 내가 오늘 너를 여러 나라와 여러 왕국 위에 세워 네가 그것들을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며 건설하고 심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예레미아를 처음 부르실 때 하나님께서 주셨던 약속의 말씀이죠.

이 약속의 말씀은 이미 성취될 것이라는 확증된 말씀입니다.

성실하신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하시고 그것을 이루어내시죠.

그래서 그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시며, 우리가 믿을 수 있는 분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하게 됩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아에게 모든 것을 다 뽑아버리고 파괴시키고 무너뜨리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현장이 바로 예루살렘 성이 된 것이고, 예레미야는 지금 그것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거기서 말씀이 끝나지 않았죠. 

'다시 건설하고 심게 하겠다.' 예레미야는 거기서 소망을 봅니다.

이렇게 무너지지만 아직 하나님의 역사의 일부가 끝난 것이라고, 이제 그다음 편이 남아있다고 하는 소망을 갖게 됩니다. 

인생의 반전이라는 것은 우리의 최후에 보면 명확하게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냥 인생에 굴곡처럼 일어나는 반전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으로 가는 반전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통한 부활의 믿음과 소망으로 가능해지는 것이죠. 

그것에 대해서 기억할 때 예레미아가 확신했던 그 소망을 우리도 같이 품게 될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이런 말을 합니다. 24절부터의 말씀입니다.

24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그를 바라리라 하도다
25 기다리는 자들에게나 구하는 영혼들에게 여호와는 선하시도다
26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하나님이 선하신 분이며 하나님이 구원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확신하며, 잠잠히 기다리고 바라는 삶을 선택하는 것이죠. 

 

하나님을 바라는 자들은 하나님이 좋게 여기시는 것과 싫어하시는 것을 구별할 수 있게 됩니다. 

그것에 대해서 예레미아는 또 이렇게 얘기합니다. 33절부터의 말씀입니다.

33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
34 세상에 있는 모든 갇힌 자들을 발로 밟는 것과
35 지존자의 얼굴 앞에서 사람의 재판을 굽게 하는 것과
36 사람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는 것은 다 주께서 기쁘게 보시는 것이 아니로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그저 괴롭히시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알려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보기 싫어하는 것들을 하나님은 치워버리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이죠. 

 

그러면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리며 잠잠히 바라보는 자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자기가 하지 말아야 할 것과 해야 할 것을 명확하게 구분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일들을 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그것을 발견하는 하루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예레미야에게는 또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37 절부터입니다. 

37 주의 명령이 아니면 누가 이것을 능히 말하여 이루게 할 수 있으랴
38 화와 복이 지존자의 입으로부터 나오지 아니하느냐
39 살아 있는 사람은 자기 죄들 때문에 벌을 받나니 어찌 원망하랴

화와 복의 주인이 되신 하나님께 우리가 바로 서게 될지라도

하나님이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해 주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 보시기에 선할 수 없다는 고백을 하게 됩니다.

 

우리의 더럽고 추한 것, 거짓과 죄악과 죽음을 두려워하는 모든 것들은 다 뽑히고 무너지고 다 깨어져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 기도하는 하루, 그리고 하나님께서 다시 세우실 것에 대한 소망을 가지는 하루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본심을 알기에 내가 소망을 잃지 않고 인내할 일은 무엇인가요?

 

아침마다 새롭고 성실하신 하나님, 
거룩한 주일, 우리 모두가 오직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 하나님만을 예배하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고 싶으나 그렇지 못한 우리의 삶에 찾아오셔서 
하나님의 선한 일을 성실하게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마음을 깊이 새겨 전심전력으로 회개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구원을 간절히 바라고 잠잠히 기다리는 삶을 살게 하소서. 
고생과 근심 속에 있을 때에라도 죄인임을 인정하며 
삼일 치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삶을 선택하고 실천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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